소설리스트

교여독비-249화 (249/442)

249화 재회

장공주는 눈물을 머금고 웃었다.

“어쩐지……. 그래서 매번 목운요, 그 아이를 유독 친근하게 느낀 것이었구나. 심지어 그 아이가 네게 폐를 끼쳐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지. 그게 다 우리가 혈연으로 이어진 관계이기 때문이었어……. 목운요가 내 딸의 핏줄이어서 그랬던 것이야. 예전에 곡 마마도 목운요의 생김새가 나와 많이 닮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말하는 투나 행동도 젊은 시절의 내 모습과 비슷하다고 했지…….”

“운요는 확실히 지혜롭지요.”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굉장히 잘 처리하지. 사냥터에서 그 아이가 곁에 있던 며칠간 얼마나 편하게 지냈는지 모른다. 아직도 종종 떠오를 정도라니까.”

실제로도 장공주는 목운요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외손녀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욱 그녀가 좋게 보였다. 다른 가문의 소저들은 목운요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요는 이미 소씨 가문에서 나왔습니다. 만약 운요와 소 부인을 만나고 싶으시다면 제가 자리를 마련해 보겠습니다.”

월왕이 소씨 가문을 언급하자, 장공주는 서서히 미소를 거뒀다. 그녀의 눈에서 갑자기 얼음처럼 차가운 한기가 돌았다.

이전부터 서릉에는 많은 소문이 돌았었다. 소씨 가문이 목운요와 소청을 찾은 것은 두 모녀의 재산을 탐한 후에 죽이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그 후로도 어지러운 사건들이 일어나고 갖은 소문이 퍼졌다.

전에는 그런 소문에 대해 크게 관심 갖지 않았지만, 소청과 목운요가 자신의 혈육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지난 소문이 자연스레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운방에서 사람이 지낼 수는 있느냐?”

“운요는 일찍이 소씨 가문에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하운방을 꼼꼼히 정비해 뒀습니다. 잠시 머물기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네가 자리를 마련해 봐라. 내일 출궁하여 하운방에 갈 생각이다.”

“하오나 운요가 아직 소 부인에게 말하지 않았을 겁니다. 내일 만나는 것은…….”

“소 부인이라니? 내 딸과 소씨 가문은 그 어떤 관계도 없다. 내 딸의 이름은 허연한이야. 나와 허연의 아이란 말이다!”

월왕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했다고 했지만, 장공주는 어떠한 직감이 들었다. 소청이라는 여인이 제 딸이 맞다는, 목운요의 어머니는 반드시 제 딸일 것이라는, 반드시 자신과 허연의 아이일 것이라는 직감이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바로 돌아가서 운요에게 상황을 알리겠습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월왕이 떠난 후, 장공주는 의자에 앉아 아주 오랫동안 꼼짝도 하지 않았다.

곡 마마가 찻잔을 들고 들어와 혼이 나간 듯한 장공주를 걱정했다.

“전하, 왜 그러십니까?”

그제야 장공주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차가운 얼굴에선 일말의 따뜻함도 찾아볼 수 없었고, 주위는 온통 한기로 가득했다. 숨결이 마치 차가운 서리 같았다.

“곡 마마, 사람을 보내 그동안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조사하게. 내용은 자세할수록 좋아. 그들이 했던 사소한 짓 하나라도 놓쳐선 안 되네!”

감히 제 딸을 괴롭히다니. 장공주는 소씨 가문의 뿌리까지 끊어 버릴 생각이었다.

곡 마마는 깜짝 놀랐다. 과거 장공주가 지금과 같은 얼굴을 했을 땐 선황후가 모함을 당했을 때였다. 당시 장공주는 황제를 도와 여섯 고관대작의 가문을 은밀하게 처리했다. 서릉에선 피비린내가 끊이질 않았고, 형장은 피바다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리고 지금 장공주는 또 한 번 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소씨 가문의 운수는 굉장히 사나울 것이었다.

그날 밤, 많은 사람이 잠들지 못했다.

소씨 가문은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느라 바빴다.

진왕은 책사들과 함께 소씨 가문의 사건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상의했다.

소씨 가문과 진왕의 원수들은 어찌해야 이번 사건을 이용해서 소씨 가문과 진왕을 공격할 수 있을지 궁리했다.

궁 안의 장공주는 초조한 마음으로 내일의 만남을 기대하고 있었다…….

사건의 중심에 있는 소청과 목운요만이 서로에게 기대어 편히 잠들었다.

* * *

다음 날 아침.

목운요는 새벽같이 일어나, 어머니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옷을 갈아입었다.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월왕이 앉아 있었다.

사실 그는 어젯밤에도 찾아왔으나 목운요가 일찍 잠들어 버려 아침에 다시 찾아오게 되었다.

목운요는 조심스러워하는 채의와 시녀들에게 물러가라고 손짓하고는, 월왕의 앞으로 가 인사를 올렸다.

“월왕 전하께 인사 올립니다.”

목운요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따스함이 깃들어 있었다.

“운요, 너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목운요의 눈빛이 흔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내가 미안하게 됐다……. 어제 네 허락도 없이 부인의 신분을 고모님께 말하고 말았어.”

월왕은 진지하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하지만 장공주의 얼굴에서 그동안 얼마나 딸을 기다렸는지 느껴졌기에 더는 속일 수가 없었다.

목운요는 고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혹 장공주 전하께서 저와 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신 건가요?”

“그래.”

월왕은 그녀의 마음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목운요가 고개를 숙인 채 얼굴을 보이지 않자 그는 점점 긴장했다.

“고모님께서 오랫동안 딸의 소식을 기다리셨잖느냐.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내가…….”

사실 목운요는 월왕에게 어머니의 신분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 장공주에게 크게 의지하는 월왕이 그 말을 아뢸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괜찮습니다. 이미 말씀드렸으니 어쩔 수 없죠. 올라가서 어머니께 상황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어머니도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죠.”

“운요…….”

월왕이 손을 뻗어 목운요의 비녀를 정리해 주었다.

“비녀가 비뚤어졌구나.”

목운요는 급히 뒤로 물러났다.

“월왕 전하…….”

“미안하구나. 어서 올라가서 부인께 알려 드려라. 우리 사이의 일은 바쁜 일이 끝난 후에 다시 얘기하자. 알겠지?”

목운요가 작게 입술을 깨물었다. 이내 그녀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월왕의 말에 동의한 것이었다.

* * *

장공주는 일찍이 일어나 눈앞에 펼쳐진 궁중 예복들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전혀 만족스럽지 못한지 고개를 저었다.

“예복을 입고 가면 너무 엄숙해 보이지 않겠어?”

“그럼 평상복을 입는 건 어떠십니까? 짙은 자주색의 평상복이 있는데 꽤 괜찮습니다. 단정하고 고상해 보이죠.”

장공주는 곡 마마가 고른 옷을 긴장한 얼굴로 살폈다.

“내게 어울리겠는가?”

“그 옷을 입으시고 점잖은 장신구를 차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겁니다.”

장공주는 한참 동안 고민한 후에야 그 옷으로 갈아입었다.

때마침 시녀가 아침 식사를 내오자 곡 마마가 장공주에게 식사를 권했다.

“전하, 조금이라도 음식을 드신 후 출궁하십시오.”

장공주는 거절을 표했다. 가슴속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지금은 그 어떤 산해진미를 먹어도 넘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곡 마마는 긴장한 장공주의 모습에 더는 식사를 권하지 않고, 겉옷을 가져와 그녀의 어깨에 걸쳤다.

이내 장공주가 발걸음을 옮겼다.

한편 월왕은 궁문에서 장공주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궁에서 나오는 장공주가 보였다.

“고모님.”

장공주는 월왕과 함께 마차에 오른 후 월왕부로 향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기 위해, 월왕부를 구경하는 척 명분을 만든 것이었다.

반 시진이 지난 뒤에야 평범한 마차 한 대가 월왕부의 후문을 빠져나갔다.

* * *

마차는 하운방의 후문 근처에 멈춰 섰다. 월왕이 장공주를 부축하며 마차에서 내렸다.

“소 부인과 운요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장공주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하운방 쪽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그녀의 머릿속에선 온갖 생각이 끊임없이 떠올랐다. 회임한 것을 알았을 때의 기쁨, 아이를 막 출산했을 때 느꼈던 신비, 아이 이름을 지을 때 남편 허연과 말다툼을 했던 일, 그리고 아이가 사라진 걸 알았을 때의 공포감까지…….

하운방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힘겨워졌다. 장공주의 마음속엔 기대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기대가 물거품이 될까 봐 두려웠고, 괜히 혼자 기뻐한 것일까 봐 두려웠다.

장공주가 이내 걸음을 멈췄다. 월왕은 그녀의 옆에 조용히 서 있을 뿐 재촉하지 않았다.

그 시각, 하운방 대청에서는 목운요가 소청을 부축하며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소청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요아야, 만약 소씨 가문의 노부인이 널 속인 거면 어떡하니? 만약 나와 장공주 전하가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면?”

목운요는 미소 지었다. 마치 소청을 위로하는 것 같았다.

“염려하지 마세요. 설령 아무런 사이가 아니어도 진심으로 사과한다면 장공주 전하께선 벌하지 않으실 거예요. 그러면 우리도 근심거리 하나를 없앤 것이니 앞으로 걱정하지 않고 마음 편히 살아가면 돼요.”

소청은 숨을 깊이 들이쉬며 긴장을 풀려고 애썼다.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오자 그녀가 목운요의 손을 꽉 붙잡았다.

“가자꾸나.”

“네.”

목운요는 문을 열었다.

장공주는 입구의 계단에 서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장공주와 소청의 눈이 서로 마주쳤다.

떠들썩한 거리와 달리, 하운방의 후원은 너무나도 고요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았다.

장공주는 손을 떨었다. 두 눈에 희열이 차올랐다. 오랜 세월 억눌렀던 그리움과 기대가 눈물이 되어 쏟아져 나왔다. 눈물이 양 볼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을 본 소청은 앞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재빨리 몸을 굽혀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췄다.

“장공주 전하를 뵙습니다.”

장공주는 비틀거리며 뛰어나가 떨리는 두 손으로 소청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여러 차례 노력한 후에야 겨우 잠긴 목소리를 내뱉었다.

“딸아, 내 딸아…….”

소청은 장공주 자신의 자식이 맞았다. 더 조사할 필요도, 증거를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한눈에 소청이 자기 아이라는 것을 알아봤다!

피로 이어진 사이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속일 수가 없었다. 아이가 돌아왔다. 드디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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