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44화 (244/442)

244화 월왕의 등장

그사이 금란, 금교, 사금 등의 시녀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소저, 채비를 끝냈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가자. 이곳을 떠나는 거야.”

시녀들은 각자 나무 막대를 챙긴 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소문원이 제월각 입구에 서서 음침한 눈으로 목운요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청아, 정말로 목운요가 소란 피우도록 내버려 둘 거냐?”

소청은 고개를 들어 최대한 냉담한 목소리를 냈다.

“저는 소씨 가문의 딸이지만, 시집을 갔으니 출가외인입니다. 한데 어찌 나가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어머니를 돌보며 효도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이게 도리에 맞는 일이냐?”

“가문에는 오라버니도 있고, 청오와 우의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노부인을 모신 효심 깊은 아들과 현명한 손주들이 있는데, 길에서 주워 온 딸이 필요하겠습니까?”

소청은 이미 소씨 가문에 완전히 정이 떨어진 상태였다.

“청이, 너…….”

소문원은 언제나 유한 성정이던 소청에게 이렇게 차가운 면모가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소청은 목운요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만약 조금이나마 남매간의 정을 생각하신다면, 오늘 저희를 편히 보내 주세요. 소란이 일어나면 체면을 잃는 건 저희가 아닙니다.”

소문원은 가늘게 실눈을 뜨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주마. 첫째, 얌전히 소씨 가문에서 지내는 것. 그럼 너희에게 좋은 것만 주며 돌봐 주겠다. 둘째, 가문을 뛰쳐나가는 것. 하지만 그러면 너희가 죽든 살든 하늘이 생사를 정하실 거다!”

그에 목운요는 피식 웃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도리를 따지며 감정으로 저희 마음을 움직이려고 하시더니, 갑자기 저희 목숨이 하늘에 달렸다고 하십니까?”

“얌전히 가문에 남으면 체면을 지킨 소씨 가문의 외손녀가 되는 거다.”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전 소씨 가문의 외손녀에게 체면이 있긴 한 건지 잘 모르겠군요. 어머니, 가요.”

소문원은 협상에 실패하자 뒤에 있던 시위들에게 손짓했다.

“막아라!”

그러자 사금, 사기 등이 시위들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그녀들이 막대를 내리칠 때마다 비명이 울려 퍼졌다.

소문원의 눈빛이 흔들렸다. 목운요의 곁을 지키는 시녀들의 무공이 비범하다고 들은 적이 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저 시녀들의 정체는 대체 무엇이지? 어쩌다 목운요의 곁을 지키게 된 것이란 말인가.’

* * *

한편, 소씨 가문 대문 밖.

입구를 지키던 시위는 대문 앞에서 돌연 멈추어 선 검은색 준마 위의 인영을 보고 황급히 인사를 올렸다.

“월왕 전하를 뵙습니다.”

월왕이 말에서 내리자, 검은색 겉옷이 바람에 휘날리는 소리와 함께 주위에 한기가 돌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라.”

“전하, 현재 가문에 일이 생겨서 처리하는 중이옵니다. 나리께서 오늘은 그 어떤 손님도 들이지 말라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월왕은 시위의 말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대문을 향해 걸어갔다.

시위들은 서로 눈짓을 하다 월왕의 앞에 꿇어앉았다.

“전하, 나리께서 오늘은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부디 돌아가 주십시오.”

월왕이 입을 떼기도 전, 뒤에 있던 우항이 빠르게 튀어나와 시위들을 걷어찼다.

“무엄하다!”

월왕은 고개를 들어 으리으리한 대문을 쳐다봤다. 냉기와 살기가 어린 눈이었다.

우항에게 차인 시위들은 가슴을 움켜잡은 채 월왕에게 말했다.

“전하, 대문은 잠겨 있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 오늘 저택의 문은 열리지 않을 겁니다.”

그러자 월왕의 얼굴에서 아까보다 더한 한기가 흘렀다. 순식간에 주변이 얼어붙었다.

“우항.”

“네, 왕야.”

우항이 손짓하자, 월왕을 따라온 시위들이 매서운 기세로 대문에 몸을 부딪치기 시작했다.

“하나!”

두껍고 무거운 대문에서 ‘쾅’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둘!”

월왕의 시위들이 다시 한번 문을 들이받았다. 대문 양쪽에서 흙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셋!”

시위들이 세 번째로 대문을 들이받자, 나무못이 쩌걱 소리를 내며 부러지더니 ‘쾅’ 소리와 함께 대문이 양쪽으로 갈라졌다.

월왕은 새하얗게 질린 문지기들을 무시하고 소씨 가문 안쪽으로 발을 내디뎠다.

그 뒤를 시위들이 질서정연하게 뒤따랐다.

* * *

그 시각, 제월각 앞에서는 소씨 가문의 시위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목운요는 창백해진 얼굴의 소문원을 보며 냉소했다.

“이래도 저희를 막으실 겁니까?”

소문원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마에는 시퍼렇게 핏대가 올라 있었다.

“목운요! 은혜도 모르는구나!”

“전 원래 그런 사람입니다. 시위들은 보름 정도 푹 쉬지 않으면 완쾌하지 못할 겁니다. 정리도 되었으니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목운요, 네가 자초한 일이다. 난 언제나 혈연의 정을 생각했건만, 너는 사서 고생을 하는구나. 여봐라!”

소문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궁수 한 소대가 나타났다. 궁수들은 목운요 일행을 향해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겼다. 소문원의 명이 떨어지기만 하면 목운요 일행을 즉시 쏘아 죽이기로 작정한 것이었다.

그에 목운요는 더욱 냉랭한 웃음을 흘렸다.

“저와 어머니를 소씨 가문에 남기려고 정말 최선을 다하시네요. 관원의 저택에 시위를 둘 수는 있어도 사병을 양성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습니다. 한데 보아하니 저 궁수들은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 같군요. 진왕부에서 빌려 오셨나 봅니다.”

소문원이 차갑게 웃었다.

“저들이 어느 소속인지는 신경 쓰지 마라. 저들이 있는 한, 네게 날개가 달렸다고 해도 너는 절대로 소씨 가문을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떠나야겠다면?”

그때, 소문원의 뒤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서릿발이 선 것처럼 한기가 돌더니, 오싹한 기운이 사람들을 떨게 했다.

소청은 가까이 다가오는 월왕을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영 공자가 어찌……?”

소청의 목소리를 들은 월왕은 잠시 발걸음을 주춤하더니 소청의 앞으로 가 예를 차렸다.

“소 부인을 뵙습니다.”

“영 공자, 대체 어떻게……?”

소문원의 안색도 희게 질렸다.

‘대문을 확실히 잠그라고 했는데 월왕이 대체 무슨 수로 쳐들어온 것이지?’

“월왕 전하, 부하들을 대동하여 관원의 저택에 억지로 들어오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됩니다만.”

월왕이 고개를 돌려 소문원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소씨 가문 앞을 지나가던 중, 안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기에 그대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왔소. 실제로 자객들이 활도 들고 있더군. 한데 무엇이 잘못됐다는 거요?”

목운요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핑계 한번 적절하네.’

소문원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온몸을 떨었다.

“사실을 왜곡하지 마십시오!”

“소 대인이 오해했나 보군. 나는 본래 꾸밈없이 행동하는 사람이오.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그대가 가장 잘하는 일 아니오?”

월왕은 우항을 향해 차갑게 한마디를 외쳤다.

“죽여라!”

쉬익!

곧 참혹한 비명이 주위에서 울려 퍼졌다. 궁수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월왕이 데려온 자들의 검이 그들을 벤 것이었다.

집 안 가득 피비린내가 번지자 소문원은 공포에 질려 거의 졸도할 지경이었다.

‘가, 감히 서릉에서 제멋대로 굴어?’

월왕은 그런 소문원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곧장 목운요에게 걸어갔다.

“운요, 내가 왔다.”

천천히 눈을 깜빡이니 월왕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졌다. 주위의 풍경은 흐릿한 가운데 눈앞의 인영만 유독 생생하게 보였다.

회귀 전의 목운요는 사랑받고 보호받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번 생엔 예상치 못하게 지켜 주는 사람이 나타나 하늘이 내려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했건만, 그것마저도 자신을 시험하는 시련일 줄이야…….

어머니가 장공주의 딸이라는 게 사실이라면 목운요는 월왕을 ‘외당숙’이라고 불러야 했고, 둘의 사랑은 이어질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자 목운요는 칼에 베이기라도 한 듯 기력이 모두 빠졌다.

창백해진 목운요의 얼굴에 월왕은 유혈이 낭자한 주변 때문인 줄 알고 그녀의 시야를 가려 주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자.”

목운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소청을 부축했다.

“어머니, 이제 가요.”

“그래.”

소청과 목운요는 피가 흥건한 바닥을 지나 밖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소문원은 그들을 막으려고 했으나, 그 순간 월왕이 차가운 얼굴로 매서운 살기를 뿜었다. 감히 한마디라도 꺼냈다간 곧장 죽을 것 같았다.

눈앞이 깜깜해진 소문원은 힘이 풀려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사이 목운요와 소청은 소씨 가문을 완전히 벗어났다.

“어머니.”

“그래.”

소청은 딸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오른 후에야 마음 놓고 딸을 품 안에 안았다.

“아깐 정말 놀랐다.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네 외삼촌이 우릴 죽였을 거야.”

“그럴 일은 없었을 거예요. 제가 어머니를 끝까지 보호했을 테니까요.”

채의가 일찌감치 사람을 데리고 하운방 앞에 마중 나와 있었다. 마차가 천천히 들어오자 걱정스럽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부인, 소저, 드디어 오셨군요.”

주위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두 모녀가 하운방으로 이사한다는 소식을 일찍이 들은 터라 하운방 앞에 몰려들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목운요와 소청이 마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저흰 목 소저를 믿습니다!”

“그럼요. 소저, 힘을 내십시오! 여인들이 자수법을 배우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목운요는 얼떨떨한 얼굴로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의 큰 사랑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그녀는 사람들이 걱정하지 않도록 애써 웃어 보이고는 소청과 함께 하운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월왕은 부하들에게 밖에서 기다리도록 지시한 뒤, 목운요를 따라 들어가 소청의 시선을 어색하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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