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시체가 벌떡 일어나다
손님들의 시선이 대부인을 향했다. 목운요도 대부인을 바라보았다.
“큰외숙모, 정말이십니까……?”
대부인이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난 아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 없어!”
“순천부로 가서 말씀하시지요.”
목운요가 사금과 사기를 향해 말했다.
“즉시 순천부에 가서-”
“그럴 필요 없소. 본관이 여기 있으니.”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은 목소리의 주인이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다름 아닌 심병괴였다.
대부인의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이 쳐졌다.
노부인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곧 표정을 가라앉힌 그녀가 나아가서 입을 열었다.
“심 대인께서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심병괴가 인사를 올렸다.
“노부인을 뵙습니다. 이 댁 소저의 일로 찾아왔습니다.”
“막 일어난 일인데 소식이 그리 빨리 전해졌단 말입니까?”
노부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일이 점점 손쓸 수 없게 커지는 것 같았다. 아무 말도 없이 한쪽에 서 있는 소문원의 얼굴은 한없이 어두웠다.
목운요는 곧장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
“심 대인, 마침 잘 오셨습니다. 오늘은 본디 저와 우 언니의 계례 날이었는데…….”
뒤이어 목운요의 진술을 들은 심병괴의 미간이 세게 찌푸려졌다.
“신책이 목 소저의 지시를 받고 소우를 죽였다고 주장했단 말이오?”
“네, 그렇습니다.”
“정말 터무니없는 말이군.”
이에 소문원이 나섰다.
“심 대인, 목운요의 말만 듣고 제대로 조사하지 않으면 결론을 짓기 어려울 겁니다.”
“소 대인께서는 정말 목 소저가 소 소저를 죽였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것은 아니고, 진상을 밝히려면 자세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목 소저가 무고하다는 것은 저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심병괴의 확신에 찬 말투에 소문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순천부의 부윤으로서 어찌 그리 성급하게 단정 지으십니까?”
“본관이 성급한 게 아니라 이번 사건이 근본적으로 ‘자허오유(子虚乌有, 허구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심병괴의 말뜻을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자허오유?”
“어떤 근거로 목운요가 무고하다고 저렇게까지 확신하시는 거지?”
심병괴는 돌아서서 시위에게 분부했다.
“이리 모셔 와라.”
시위가 서둘러 나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여인을 데리고 돌아왔다.
이내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소…… 소…….”
이부인도 넋을 잃었다가 황급히 여인에게 다가갔다.
“우야……!”
여인이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다름 아닌 소우였다.
대부인과 노부인은 어안이 벙벙해져서 바닥에 누운 시체를 바라보았다.
‘분명 우는 연못에 빠져 죽었는데 어떻게 살아 있단 말인가? 게다가 심병괴와 함께 오다니?’
이해가 되지 않기는 이부인도 마찬가지였다. 이부인은 눈물을 흘리다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우야……. 어떻게 된 것이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게야?”
고개를 가로젓는 소우의 낯빛은 몹시 창백해 보였다.
“저도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동쪽 곁채에서 계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시녀가 창으로 뛰어 들어와 제게 비수를 들이밀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타나서 그 시녀의 등을 찌른 후 저를 데리고 밖으로 벗어났지요. 얼마 안 가 저는 기절했고, 깨어나 보니 순천부 앞에 누워 있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이부인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여봐라! 어서 바닥에 있는 시체의 머리카락을 걷어 보아라. 대체 누구인지 똑똑히 봐야겠다.”
시체의 얼굴은 진흙으로 얼룩진 데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가려져 있었다. 시체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본 사람은 없었기에 모두가 소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심병괴의 지시에 함께 온 검시관이 시체의 머리카락을 젖히더니, 얼굴을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검시관은 이내 매미 날개처럼 얇은 인피면구를 벗겨 냈다.
“일부러 소 소저처럼 변장했습니다. 사람들의 이목을 속이기 위함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쳤다.
“묵옥?! 노부인의 시녀, 묵옥이야!”
손님들의 표정은 제각각이었다. 사건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터져서 결국 노부인까지 엮이다니……. 진짜 흑막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사이 노부인은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바닥으로 쓰러졌다.
소문원이 서둘러 노부인을 부축했다.
“어머니, 괜찮으십니까? 여봐라, 어서 의원을 불러라!”
그에 의녀 임우함이 서둘러 노부인을 진맥해 보았다.
“맥이 불안정하십니다. 너무 놀라셔서 혈액 순환이 잘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한데 그때, 쓰러진 노부인이 갑작스레 눈을 번쩍 뜨더니, 옆에 있던 소우를 지팡이로 때리기 시작했다. 흐리멍덩한 눈빛이 전혀 딴사람 같았다. 그동안 감춰져 있던 흉악함이 온전히 드러나는 듯했다.
“네년이 죽었어야 했는데! 어찌 안 죽은 것이야?!”
주변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노부인 손 씨를 바라보았다. 이게 할머니가 손녀에게 할 말이란 말인가?
노부인이 소우를 때리기 시작하자 이부인은 재빨리 몸으로 딸아이를 막았다.
“어머님, 대체 왜 이러십니까!”
그러나 노부인은 여전히 흥분한 상태였다. 소우에게 깊은 원한이라도 있는 것 같았다.
“쓸모없는 것! 오랫동안 좋은 약, 좋은 음식을 갖다 바치면서 써먹을 날을 힘들게 기다렸더니, 계획을 다 망쳐 놔?!”
소문원은 당장이라도 노부인의 입을 막고 싶었다.
“어머니, 몸이 편찮으신 것 같습니다. 지금 제정신이 아니십니다.”
옆으로 떠밀린 임 의녀도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정신 착란을 일으키고 계십니다. 어서 붙잡아야 합니다.”
정신 착란? 소씨 가문의 노부인이 너무 놀라고 겁을 먹어서 정신 착란을 일으켰다고? 족히 반년은 웃음거리가 될 만한 일이었다.
게다가 노부인의 말을 들어 보면 그녀는 정말 소우가 죽기를 바랐던 것 같았다. 목운요에게 죄를 덮어씌운 이도 그녀가 틀림없었다. 평소 온화하던 노부인이 사실은 시커먼 속내를 가지고 있었을 줄이야!
소문원이 급히 노부인의 입을 막았지만, 노부인은 아들의 손가락을 끊을 듯이 깨물었다. 소문원은 비명을 지르며 손을 떼어 냈다.
노부인은 반쯤 정신이 나간 표정으로 목운요를 보았다.
“네년도 죽었어야 했는데! 자수법을 전수했다는 공로도, 하운방과 불선루도 우리 것이다! 말을 안 듣는 장기짝은 부숴 버리면 그만이지. 전부 부숴 버리겠어!”
그녀는 고함을 내지르다가 이내 서서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소문원은 노부인의 곁에서 맥없이 무릎을 꿇으며 손을 덜덜 떨었다.
“어머니…….”
사건의 전말이 얼추 드러나자, 이제는 누가 말하지 않아도 손님들이 알아서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좋은 구경거리를 충분히 보았으니 매우 만족스러웠다.
한편 심병괴는 순천부 관리와 함께 미동도 없이 서 있었다.
“소 대인, 오늘 일에 대해 자세히 조사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소문원이 어두운 얼굴로 일어났다.
“어머니의 병이 위중하신데 꼭 그러셔야겠습니까?”
심병괴가 강직한 얼굴로 말했다.
“노부인께서 위중하신 건 저도 걱정되지만, 이번 일은 살인 사건입니다. 만약 노부인께서 살인에 관련이 없으시다면 문제없이 해결될 겁니다. 혹 소 대인께선 이 일이 노부인과 관련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소문원의 안색이 더 나빠졌다.
“황상께서 아직 조사를 윤허하지 않으셨으니 일단은 물러가시지요. 황명을 받으신 후에 조사하러 오셔도 늦지 않습니다.”
심병괴는 소문원을 찬찬히 살피며 미간에 힘을 주었다. 만약 지금 떠나면 추후 증거를 찾기 힘들 터였다.
그때,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심 대인께서는 신책이 제 명예를 더럽힌 것과 제가 살인자라는 누명을 쓴 것을 조사하시려는 겁니다. 이건 외숙부와는 관계가 없는 일인데, 황상의 윤허가 필요한 건가요?”
이에 소문원이 탐탁지 않은 눈빛으로 목운요를 노려보았다.
“운요야, 자고로 안팎을 잘 구분하고 친소를 잘 따져야 하는 법이다. 정말 지금 조사가 이뤄지길 바라느냐?”
“안팎과 친소를 따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시비를 가리는 게 더 중요하지요. 조정의 관리로서 황상의 신임을 받고 계신 외숙부께서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합니다만.”
“너…….”
소문원이 눈빛에 살의를 담았지만, 목운요는 무서워하기는커녕 아주 당당하게 심병괴를 마주 보았다.
“심 대인, 제 사건을 맡아 주시겠습니까?”
“맡지 않을 이유가 있겠소? 바로 조사에 착수하겠소.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은 모두 순천부 감옥에 잡아넣어 본관이 일일이 심문할 테니 걱정 마시오.”
두 사람의 대화에 소문원이 다시금 앞으로 나섰다.
“감히 저희 가문의 하인들을 감옥에 가두시겠다는 겁니까?”
“하인들에게 품계라도 있습니까?”
“당신…….”
“그런 게 아니라면 본관이 체포하지 못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여봐라, 이들을 모두 데려가라!”
목운요가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심 대인, 궁금한 게 있으시면 언제든지 사람을 보내십시오. 다만 제가 곧 이사를 갈 듯하여 집을 구할 때까지는 잠시 하운방에서 기거하려고 합니다. 이사를 마치면 사람을 통해 주소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좋소.”
“목운요, 네 외할머니가 정신을 잃고 위중하신 지금 이사를 하겠다는 것이냐?”
소문원이 분노에 찬 눈으로 말했다. 목운요와 소청이 이 집에서 나간다면 상황을 통제하기가 더 어려워질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