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39화 (239/442)

239화 한 방 먹다

“그건…… 우연일 거다. 무슨 소리가 들리니 확인하러 간 것이겠지.”

“아까 신책은 언니가 저희의 밀회를 누설할까 봐 제가 언니를 죽이라 명했다고 했죠. 그 말대로라면 그날 언니는 혼자서 석가산 뒤에까지 갔습니다. 사람을 죽이기엔 그곳이 더 은밀한 곳 아닙니까? 그때 바로 언니를 죽이면 되었을 텐데, 왜 당시에는 죽이지 않고 하필 제 계례가 열리는 오늘 이런 소란을 피웠겠습니까?”

“너희들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누가 알겠느냐? 어쩌면 너무 놀라서 그랬을지도 모르지.”

목운요가 시선을 돌려 이부인을 바라봤다.

“작은외숙모, 어서 언니의 시중을 들던 하인들을 잡아다 고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과 무슨 상관이 있다고?”

“어찌 상관이 없습니까? 주인을 잘 돌보는 것이 하인의 본분입니다. 언니 혼자 석가산 뒤편으로 가게 두었다면 본분을 다하지 못한 것 아닌가요?”

목운요가 서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보는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할 정도의 기세였다.

“그 전에,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께 증인이 되어 달라고 해야겠군요. 신책, 묻겠다. 우리가 언니에게 밀회를 들킨 날이 언제냐?”

신책의 눈에 자신이 없어졌다. 그가 머뭇거리며 답했다.

“팔월 십칠일 정오입니다.”

“정확하게 기억한 것이냐? 팔월 십칠일 정오?”

“맞습니다!”

신책이 이를 악물었다. 심장이 멈출 수 없이 요동쳤다. 분명 충분히 준비했는데 목운요의 질문에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목운요가 이부인을 향해 말했다.

“복수는 진짜 원수에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못하면 언니는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겁니다. 어서 언니의 시중을 들던 하인들을 불러 고문하세요.”

대부인은 보기 좋게 구겨진 얼굴로 이부인의 팔을 잡았다.

“잘 생각해야 하네…….”

이부인은 대부인을 밀어내고 뒤에 서 있는 시위들에게 명했다.

“당장 서원으로 가서 우의 시중을 들던 하인들을 데려와라. 잠깐, 서로 몰래 상황을 알려 줄지도 모르니 내가 함께 가지.”

그에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척 씨는 여기서 우의 곁을 지키고, 네 형님을 시위들과 함께 보내라.”

“어머님, 부디 명을 거역하는 며느리를 용서해 주십시오. 제 딸아이의 죽음이 연루된 일이니 저는 아무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녀는 말을 마친 후 시위들을 이끌고 서원으로 향했다.

노부인은 미간을 꿈틀거리며 지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노부인의 눈에 짙은 어둠이 서렸다.

목운요는 침착한 얼굴로 노부인과 대부인을 냉랭하게 쳐다봤다. 두 사람이 준비한 계획이 너무나도 철저해서, 성공한다면 이번 일로 자신은 힘들게 쌓은 명성을 하루아침에 잃을 터였다.

곧 소우의 시중을 드는 시종 두 명과 마마 두 명이 왔다.

이부인은 목운요가 입을 열기도 전에 바로 물었다.

“팔월 십칠일, 한시도 빠지지 않고 우의 시중을 들었느냐?”

하인들은 소씨 가문의 앞마당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만 전해 들었지,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는 알지 못했다.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들은 냉큼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얼굴엔 온통 두려움이 가득했다.

“소인들은 언제나 아가씨를 따라다녔습니다.”

“그날 우가 석가산 뒤쪽에서 목운요와 총관의 아들 신책이 밀회하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한 시녀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

“확실히 아가씨께서 석가산 뒤쪽으로 가신 적이 있습니다. 소인들에겐 먼 곳에서 기다리라고 명하셨기에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는지는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대부인은 남몰래 한숨을 쉰 뒤, 가슴 아픈 표정을 지으며 목운요를 바라봤다.

“운요야, 이래도 할 말이 남았느냐?”

하지만 목운요의 말투는 여전히 태연했다.

“작은외숙모의 질문이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뭐가 그리 급하십니까?”

이부인이 다른 하인들을 보며 물었다.

“너희는 왜 아무 말이 없어? 너희 중에 기억하는 사람이 저 아이 한 명밖에 없는 것이냐? 아니면 너희가 우를 제대로 돌보지 않은 것이냐?”

“당치도 않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십시오.”

“좋다. 그럼 말해 봐라. 언제 우가 혼자 제월각 뒤의 석가산에 갔지?”

“소인이 기억하기엔 팔월 십칠일, 아마도 오후였을 겁니다. 하늘이 어두워져 가고 있었습니다. 아가씨는 제월각의 붉은 계수나무를 보고 싶다 하셨지만, 이미 날이 어두워져서 석가산에 올라 정원을 엿보셨죠.”

이부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확실히 어두워질 때였느냐?”

“맞습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신책은 점점 두려움에 떨었다. 대부인이 구체적인 시간까지는 일러 주지 않았기에 다른 하인들과 자신이 말하는 시간대가 맞지 않았다.

이부인이 온몸을 떨었다.

“우가 제월각의 붉은 계수나무를 보기 위해 석가산까지 가면서 하인들에게 따라오지 말라 했다고? 그 아이는 몸이 허약한데 어떻게 혼자서 석가산을 올랐다는 거지? 아무래도 너희에게 벌을 내리지 않으면 사실을 고하지 않을 것 같구나. 여봐라!”

서로 이러쿵저러쿵 떠들던 손님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분명히 앞뒤가 맞지 않는 사건이었다.

마음이 점점 불안해진 대부인은 노부인을 부축하는 척하며 노부인의 팔뚝을 세게 꼬집었다.

“어머님…….”

노부인은 이 사태를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목운요가 너무 똑똑해서 계획에 구멍이 있는 것을 알아채고 말았다. 어쩌면 목운요에게 유리하도록 상황이 뒤집혀 버릴지도 몰랐다.

그사이 하인 몇 명이 바닥에 눕혀져 곤장을 맞았다. 그러자 곧바로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여는 사람이 나왔다.

“사실대로 고하겠습니다! 아가씨께선 석가산에 가신 적이 없습니다. 유 마마가 저희에게 거짓을 고하라고 시켰습니다.”

누군가 이실직고하는 것을 보자 다른 하인들도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맞습니다. 유 마마가 거짓을 말하라고 윽박질렀습니다.”

이부인은 고개를 돌려 대부인의 뒤에 서 있는 유 마마를 바라봤다. 그리고 시위에게 손짓하여 유 마마에게 곤장을 칠 준비를 하라고 했다.

“유 마마, 말해 보세요. 왜 우의 주변 사람들을 매수했습니까? 왜 그들에게 거짓을 말하라고 했죠?”

유 마마는 시위들에게 짓눌리자 계속 팔을 뻗으며 발악했다.

“저, 저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저것들을 매수한 적이 없습니다!”

이부인은 냉소하며 명했다.

“때려라. 이실직고할 때까지!”

“멈춰라!”

노부인이 중간에 끼어들었다.

“척 씨, 개인적인 감정으로 벌을 내리면 무고한 자도 어쩔 수 없이 죄를 인정할지 모른다. 설마 그런 결과를 원하는 것이냐?”

그에 목운요가 앞으로 나섰다.

“외할머니, 지금이 캐묻기 가장 좋은 시기인데 어찌 멈추라고 하십니까? 유 마마는 큰외숙모의 사람인데 유 마마가 소우 언니의 하인을 매수했다고 거론되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 아닌가요? 더 찾지 못하게 막으시는 이유가 뭡니까? 아니면, 외할머니도 무언가를 알고 계신 건가요?”

“운요, 지금 날 의심하는 거냐? 우는 내 친손녀다. 난 언제나 그 아이를 아꼈어. 이런 내가 우를 죽였을 것 같으냐?”

“너무 흥분하지 마세요. 옳고 그름은 언제나 명확하게 구분해야 하니까요.”

한편 대부인의 얼굴엔 노기가 가득했다.

“죄목을 벗으려고 온갖 방법을 다 사용하는구나. 감히 네 외할머니까지 모함하여 사건에 연루시키는 것이냐? 나이도 어린 것이 왜 이리 악독해?”

“외할머니, 그래서 심문을 막으실 건가요?”

목운요는 대부인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계속 노부인에게 물었다.

“나는 조사하지 말라고 한 적 없다. 다만…….”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어서 노부인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계속 심문하라고 하죠. 작은외숙모, 뭘 기다리세요? 어서 벌을 내리며 물어보세요.”

그때, 신책이 높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소저, 그만하십시오! 더는 다른 사람을 해치려 하지 마십시오! 너무 오래전 일이라 시녀들과 마마들이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제게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거짓을 고하지 않았다는 증거 말입니다!”

목운요는 차가운 눈빛으로 신책을 노려봤다.

“증거가 있다고?”

“네. 소저의 왼쪽 어깨에는 꽃 모양의 붉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저희가 사랑을 나눌 때 봤지요.”

웅성웅성.

신책의 말에 손님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목운요를 쳐다봤다. 만약 신책이 말한 게 사실이라면 목운요는 절대 재기할 수 없었다!

기세는 다시 대부인 쪽으로 흘러갔다. 대부인은 속으로 노부인에게 감탄했다. 노부인이 전혀 불안해하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데, 역시 이런 계획이 있었기에 평온했던 모양이다.

“운요, 네게 정말 실망이 크구나. 소씨 가문은 명문가다. 체통을 지켜야 하는 가문에서 이런 더러운 일을 저지르다니, 용납할 수 없구나.”

노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보였다.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잘 진행되던 계례에서 갑자기 이런 일이 터지다니. 운요, 너 때문에 정말이지…….”

“어머님, 목운요는 천성이 지독한 아이입니다. 어머님이 아무리 잘해 주셔도 고마운 줄 모르고 오히려 우리 가문이 자신을 해치려 한다며 모함을 하지 않았습니까. 목운요가 들어온 이후로 소씨 가문이 조용했던 날이 있던가요?”

목운요는 서늘한 표정으로 비웃었다.

“저야말로 상상도 못 했습니다. 큰외숙모는 저를 그런 아이로 생각하고 계셨군요.”

“네가 소씨 가문을 모욕하는 짓을 하는데 그런 말도 못 하니?”

“외할머니도 저를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깊게 한숨을 내쉬는 노부인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운요……. 네게 실망이 크다.”

“하하하!”

목운요가 갑자기 크게 웃어 젖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