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38화 (238/442)

238화 제가 눈이 먼 것 같습니까?

신책은 무릎을 꿇은 신 총관을 곤란한 얼굴로 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제가 우 아가씨를 죽인 것은 맞지만, 다른 사람은 관계없는 일입니다. 이부인께서 절 때려죽이셔도 마땅합니다. 다음 생에는 소와 말 노릇을 하며 못 갚은 빚을 마저 갚겠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넌 평소에 주인 어르신들을 무척 공경하지 않았느냐? 어찌 이유도 없이 네가 우 아가씨를 죽였단 말이냐? 네 어머니는 네가 집에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나와 네 어미한테 자식은 너 하나뿐인데 부모더러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라는 말이냐?”

신책은 어금니를 꽉 물더니 완고한 눈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목 소저, 제게 더는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목운요는 제자리에 꼿꼿이 선 채로 냉랭한 표정을 지었다.

“참으로 우습구나. 네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이글거리던 신책의 눈빛이 점점 식어 갔다.

“어찌 그리 말씀하십니까? 이게 다 소저를 위해…….”

신책이 반쯤 말하다가 이야기를 멈추었다.

그러자 이부인이 서늘한 말투로 물었다.

“방금 뭐라 했느냐? 목운요를 위해서 그랬다고?”

신책은 이부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여전히 목운요를 응시하고 있었다.

“소저, 정말 제게 할 말이 없으신가요?”

별안간 목운요가 차갑게 웃었다.

“사람을 죽인 죄를 통쾌하게 인정한 건 좋다만, 왜 내게 계속 질문을 하지? 나를 네 죄에 끌어들이는 것이냐?”

“어찌 그리 매정하십니까? 좋습니다, 좋아요. 계속 그리 부정하실 거라면 저더러 의리 없다고 나무라지나 마십시오. 소저께서 따뜻한 말 한마디만 해 주셨더라면 제가 죄를 다 뒤집어썼을 겁니다! 정말 실망했습니다. 변하셨습니다.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하셨어요…….”

사람들은 재밌는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신책과 목운요를 번갈아 보기 시작했다. 신책의 말을 들어 보니 두 사람 사이에 뭐가 있는 게 분명했다. 한 집안의 아가씨와 하인의 아들이라니, 소설보다 더 재밌는 소재가 아닌가?

이부인은 채찍을 든 시위에게 신책을 놓아주라고 명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사실대로 고해라.”

신책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상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와 목 소저는 첫눈에 반해 지금껏 사랑을 키워 왔습니다. 소저께선 자신의 말만 들으면 저와 혼인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첫 마디부터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소씨 가문의 목운요가 하인의 아들과 사랑에 빠졌다니! 신책의 표정을 보아하니 분명 깊은 사이임이 분명했다.

“그래서 전 최선을 다해 목 소저의 말씀을 따랐지요. 대부인을 모함하라고 시키신 것도 그대로 따랐습니다. 사실 저번에 대부인에게서 나온 은자도 목 소저께서 몰래 넣어 두라고 시키신 것이었습니다. 이십만 냥이 아니라 십이만 냥만 넣어 둔 것은 대부인의 돈을 갈취하기 위함이었지요.”

신 총관은 너무 화가 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어, 어찌 네가 그럴 수 있단 말이냐? 대부인은 우리가 모시는 주인이시다. 어찌 주인을 배신해?”

신책은 자신의 뺨을 내리쳤다.

“전…… 그때 이성적인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불온한 일인 줄은 알았지만, 목 소저께서 간절히 부탁하셔서……. 대부인, 정말 송구합니다. 제가 부인의 명예를 더럽혔습니다.”

목운요의 가슴이 싸늘해졌다. 대부인이 이런 방식으로 명예를 되찾으려 하다니, 정말 촌극이 따로 없었다.

대부인은 탄식하며 고개를 저었다.

“……운요가 그렇게까지 날 해하려 했을 줄은…….”

신책이 고개를 들고 목운요를 보더니 다시금 말을 이었다.

“원래 목 소저와 저의 관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우 아가씨께 저희의 사이를 들키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목 소저께선 저희 사이가 만천하에 탄로 날까 봐 걱정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래서 소우 아가씨께서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하시도록 음모를 꾸몄습니다. 원래는 소우 아가씨의 숨을 틀어막고 병사하신 것처럼 위장하려 했으나, 예상과 달리 소우 아가씨께서 심하게 발버둥을 치셔서 어쩔 수 없이 소우 아가씨를 죽인 후 연못에 빠뜨렸습니다.”

이부인이 크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원통한 얼굴로 목운요를 보았다.

“네…… 네가 사람이냐! 왜 내 딸을 끌어들인 거야? 우가 널 얼마나 좋은 동생으로 생각했는데! 여동생이 생겼다고 온종일 자랑하던 아이다. 넌 그런 내 딸을 죽였어!”

대부인이 다가와 이부인을 부축했다.

“너무 흥분하지 말게. 이러다 몸이 상하겠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이부인은 노부인의 앞에 쿵 하고 무릎을 꿇었다.

“어머님, 부디 우를 위한 판단을 내려 주십시오!”

노부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침통해 보였다.

“운요야, 어찌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한 거냐? 내 외손녀인 네가! 어찌 하인을 마음에 품어서…… 참으로 어리석지!”

대부인이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 운요가 신책을 좋아했다니요? 그저 저를 모함하기 위해 그를 이용했을 뿐입니다. 밖에선 아직도 저희가 소청과 운요의 재물을 빼앗으려고 두 사람을 데려온 줄 알고 있습니다. 운요가 일부러 계획한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노부인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참으로 실망이 크구나. 운요, 네가 시골에서 자라 교양이 부족하긴 해도 혈육의 정이라는 건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큰외숙모를 해하고 소씨 가문까지 위협하다니……. 심지어 넌 우까지 죽였다. 어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어?”

손님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운요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운요야, 아직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 것이냐?”

대부인의 말에 목운요는 소씨 가문 사람들을 쭉 훑어보더니 별안간 피식 웃었다.

“외할머니, 큰외숙모. 제가 눈이 먼 것 같습니까?”

대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면 혈육의 정을 봐서라도 죄를 너그러이 처리해 주마.”

목운요는 계속해서 웃었다.

“큰외숙모께선 아직 대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눈이 먼 것 같습니까?”

대부인은 목운요의 웃음에 오싹해졌지만 이를 악물고 콧방귀를 뀌었다.

“네 눈이 멀긴, 아주 멀쩡하지!”

그에 목운요가 신책의 곁으로 가더니 더러운 물건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요. 눈이 삐지 않았으면 제가 어찌 이런 것을 좋아했겠습니까?”

신책이 분개하여 얼굴을 들었다.

“목 소저, 그때는 저를 좋아한다고, 신분에 상관없이 저와 혼인하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정말…… 정말로 변하셨습니다. 예전의 착하고 따뜻하던 소저가 아니십니다.”

“더는 입을 열지 말아라. 네 말을 계속 듣다간 구역질이 나올 것 같으니까.”

대부인이 호되게 꾸짖었다.

“목운요, 네 잘못을 깨닫지 못한 것이냐?”

“큰외숙모, 뭘 그리 조급해하십니까? 저도 반론쯤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마 억지로 죄를 인정하라는 건 아니시겠지요?”

고개를 돌린 목운요의 얼굴에선 끝없는 냉기만 느껴졌다.

대부인은 그 모습에 다소 당황하는 눈치였지만, 노부인의 완벽한 계획을 떠올리고는 이내 안정을 되찾았다. 목운요가 제아무리 운이 좋다고 해도 이번에는 절대 빠져나가지 못할 터였다.

“좋다. 말해 봐라. 네가 무슨 말을 할지 한번 봐야겠구나!”

목운요는 다시 신책을 향해 말했다.

“넌 소씨 가문의 하인이다. 그러니 당연히 후원에 있어선 안 될 사람이지. 넌 너와 내가 첫눈에 반해 마음을 나누었다고 했다. 그것도 모자라 밀회를 나누다 우 언니에게 발각되었다고 했는데, 그게 모두 어디서 일어난 일이냐?”

신책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소씨 가문의 화원에서 만났습니다. 그날 저는 아버지의 명령을 받들어 화원을 정리하러 갔지요. 그때 소저께선 꽃밭에 서 계셨습니다. 그 자태가 얼마나 아름다우시던지, 한눈에 제 마음이 소저께 기울었습니다.”

“내게 첫눈에 반했다고 했으니 나를 특별히 신경 썼겠구나. 그날 내가 무슨 옷을 입고 있었지? 어떤 장신구를 하고 있었느냐? 어떤 신을 신고 있더냐?”

신책은 잠시 멈칫하더니 뒤이어 대답했다.

“소저께선…… 구름과 봄의 풍경이 새겨진 청색 비단 치마를 입고 계셨습니다. 어떤 비녀를 달고 계셨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고, 신은 보지 못했습니다.”

“거짓말을 하는구나. 그날 내가 입은 옷은 분명히 은색 주름이 잡힌 꽃 치마였다. 그리고 청색이 아닌 연보라색 치마였지.”

“맞습니다……. 방금 제가 잘못 말했군요. 은색 주름이 잡힌 꽃 치마가 맞습니다. 당시 소저의 모습에 몹시 매혹되어 어떤 옷을 입고 계셨는지는 자세히 보지 못했습니다.”

목운요는 웃으며 말했다.

“사실 먼저 한 말이 맞다. 나는 구름과 봄의 풍경이 새겨진 청색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어. 입만 열었다 하면 내게 한눈에 반했다고 하는데, 내가 뭘 입었는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느냐? 그게 정말이라면 사람들이 비웃겠구나. 그건 둘째 치고, 다시 한번 묻겠다. 내가 너와 밀회를 즐기다 우 언니에게 들켰다고 했는데, 그 장소는 어디였지?”

“제월각 밖에 있는 석가산 뒤였습니다.”

“제월각은 내원에 있다. 일개 총관의 아들에게 어찌 제월각을 드나들 기회가 있단 말이냐? 소씨 가문은 외간 남자가 내원에 쉽게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쉬운 곳이었나 보군.”

대부인이 차가운 목소리로 목운요의 말을 끊었다.

“목운요, 이젠 우리 소씨 가문까지 비방하는 것이냐?”

“큰외숙모, 이게 어찌 비방입니까? 일개 총관의 아들이 쉽게 내원에 들어온 것도 모자라 가문의 아가씨와 밀회를 즐기다뇨? 내원에 있는 호위와 시녀들, 그리고 노파들은 모두 눈이 멀었답니까? 건장한 사내가 들어오는데 아무도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는 말인가요?”

“신책은 총관의 아들이니 시위들도 그가 다른 명으로 들렀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을 하죠. 신책의 말대로라면 저와 신책은 밀회를 가졌습니다. 그것도 석가산 뒤에서요. 분명히 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은밀하게 만났겠지요. 한데 언니처럼 연약한 사람이 왜 쓸데없이 석가산 뒤에까지 갔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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