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소우가 죽다
그녀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뒤로 몸을 피했다.
알 수 없는 상황에 긴장하던 것도 잠시, 병풍에 검붉은 핏자국이 잔뜩 튀었다.
“육냥!”
목운요는 육냥을 부르며 병풍을 쓰러트렸다. 소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바닥에는 핏자국만이 가득했다.
목운요의 외침을 들은 육냥은 이미 창을 뛰어넘어 범인을 쫓고 있었다. 그녀는 창턱에 남은 혈흔을 확인하고, 육냥의 뒤를 따랐다.
핏자국은 멀지 않은 연못으로 향했다. 목운요를 일부러 유인하기라도 하는 건지, 핏자국을 숨기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그녀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점점 두려움이 차올랐다. 연못 근처에 도착하자 연못에서 사람의 형체가 떠올랐다. 옷을 보니 소우가 틀림없었다.
“언니!”
목운요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연못가로 빠르게 달려갔다.
그때, 피 묻은 칼이 발에 밟혔다. 그것을 자세히 보기도 전에 다급한 외침과 함께 하인들이 다가왔다.
“찾았다! 여기 계신다!”
“연못…… 연못 좀 봐요! 연못에 사람이 빠졌어요!”
“사람 살려! 사람 살려요!”
하인들은 목청 높여 소리치며 연못에 뛰어들어 사람을 건져 올렸다.
“소우 아가씨가…… 소우 아가씨가 죽었습니다!”
연못은 앞마당과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하인들이 너도나도 소리치자 계례에 참석한 손님들이 빠르게 연못 근처로 모여들었다.
이는 이부인 척 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옆에 있던 시녀들이 부축한 후에야 이부인은 정신을 차렸다.
“부인…….”
손님들의 안색이 하나둘 변하기 시작했다. 경삿날이 장례로 변하다니…….
“가여운 내 딸……!”
이부인은 바닥에 엎어져 온몸을 덜덜 떨며 목놓아 소리쳤다.
노부인을 부축하며 다가온 대부인도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어찌 된 일인가? 방금까지 멀쩡히 계례를 기다리던 것 아니었나? 어찌 눈 깜짝할 사이에 우가 죽었단 말인가?”
노부인이 휘청거렸다. 그새 얼굴이 몇 년은 더 늙은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냐? 멀쩡하던 아이가 어찌 갑자기 죽어!”
하인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대답했다.
“노부인께 아룁니다. 저희는 무언가가 물에 빠지는 소리를 듣고 뛰어온 겁니다. 도착해 보니 소우 아가씨께서 이미 연못에 빠져 계시더군요. 등에 상처가 나서 옷이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습니다.”
“저는 땅에 있는 핏자국을 봤습니다. 동쪽 행랑채에서 연못 근처까지 쭉 이어져 있었지요.”
“소인이 도착했을 때는 운요 아가씨가 소우 아가씨를 구하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운요가?”
노부인이 절박하고 비통한 얼굴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그래, 네가 아까 우와 함께 동쪽 행랑채에 있었잖느냐. 어서 말해 봐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목운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저와 언니는 병풍을 사이에 두고 계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갑자기 언니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 겁니다. 무언가 이상해 병풍 근처로 가니 장검이 병풍을 뚫고 나와 저를 공격했어요. 전 운 좋게 피할 수 있었지만, 병풍을 제쳤을 땐 언니는 이미 사라진 후였습니다. 그리고 핏자국을 따라갔더니 언니가 연못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 계례 날 소씨 가문에 들어와 우를 살해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는 것이냐?”
노부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언성을 높였다.
이부인은 통곡을 멈추고 서늘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우는 몸이 좋지 않아 집에서만 지내느라 알고 지내는 사람도 얼마 없었다. 그런데 누가 우를 죽이려 했겠느냐? 넌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으면서 왜 큰 소리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야! 핏자국을 따라왔다는 것은, 네가 소우를 죽인 자를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따라온 것이냐? 목운요, 네 말이 허점투성이라고 느끼지 않아?”
“작은외숙모, 저는 언니와 사이가 좋았어요. 외숙모도 아실 텐데 어찌 제가 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십니까?”
옆에 있던 대부인이 매정하게 말했다.
“누구든 겉으로는 잘 지낼 수 있지. 하지만 그 속에 어떤 음흉한 속내가 있는지는 알 수 없는 법이다. 운요, 네 말대로라면 누군가 일부러 우를 납치한 후, 연못에 빠뜨려 죽였다는 것이지? 누가 우를 끌고 갔다면 범인의 옷에도 핏자국이 묻어 있을 것이다. 여봐라! 옷에 피가 묻은 사람이 없는지 속히 뒤져라! 대문을 걸어 잠그고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네!”
* * *
잠시 후, 대부인의 명을 받들러 갔던 하인 중 하나가 돌아와 아뢰었다.
“노부인과 대부인께 아룁니다. 앞마당은 수상한 점이 딱히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보내 후원을 뒤지라고 했습니다.”
대부인은 인상을 썼다.
“앞마당에 수상한 점이 없다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대체 누가 우를 죽였단 말이냐?”
이부인은 죽은 소우를 끌어안고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형님, 확실하지 않습니까? 목운요입니다. 목운요가 우를 죽였어요! 저것이, 저것이 바로 제 딸을 죽인 범인입니다!”
목운요는 이부인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왜 언니를 해치겠습니까? 언니를 해친들 제게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소우를 안은 이부인의 몸이 덜덜 떨렸다. 목소리가 마치 두견새의 구슬픈 울음소리 같았다.
“네가 아니라면 누가 내 딸을 해쳤단 말이냐? 운명도 참 각박하지……. 그나마 최근에는 병세가 호전되어 계례를 올릴 수 있겠다고 기뻐했는데, 이렇게 죽임을 당하다니!”
대부인이 다가와 이부인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슬픈 건 알지만 우선 범인을 찾는 게 급선무이지 않은가? 원수를 갚아야 그 아이도 편히 잠들 수 있네.”
이부인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누가 제 딸을 죽였는진 몰라도 목숨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 겁니다!”
“어? 우의 손에 뭔가 있는데?”
대부인이 놀라서 우의 손을 가리켰다.
“이, 이게 뭐죠?”
그때, 시위들이 남자 한 명을 체포해 왔다. 남자는 온몸이 물에 젖어 있었고 옷에 핏자국까지 묻어 있었다.
“집 안팎을 수색하다가 제월각 앞에서 핏자국을 발견했습니다. 제월각 안으로 들어가 조사해 보니 목 소저의 방에 이 남자가 있었습니다.”
“뭐? 운요의 방에 남자가 있었다고?”
대부인은 대경실색하여 재빨리 노부인의 곁으로 갔다.
“어머님, 이 일을 제대로 조사해야 합니다. 운요가 억울해선 안 되니까요.”
이부인은 소우가 손에 쥐고 있던 천 조각과 남자의 옷소매에 난 구멍을 비교해 보더니 돌연 비명을 질렀다.
“저자입니다! 저자가 우리 딸을 죽인 겁니다! 우가 쥐고 있던 천 조각이 저자의 옷소매에 딱 들어맞아요!”
그에 노부인이 큰 노성을 내질렀다.
“어서 저자의 얼굴을 들어라! 이렇게 간이 큰 놈이 누구인지 내 똑똑히 봐야겠다. 감히 소씨 가문의 친손녀를 죽이다니!”
서둘러 시위들이 남자의 머리채를 들어 올렸다. 곧 하인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저, 저 사람은……. 신 총관의 아들 신책이잖아?”
“저 사람이 어찌 여기에?”
“게다가 목 소저의 방에 숨어 있었다니! 이, 이게 대체 무슨 일입니까?”
노부인의 낯빛이 무척 어두워졌다.
“신책, 무슨 짓을 했는지 어서 사실대로 고하지 못하겠느냐?”
신책은 몸을 바들바들 떨다가 목운요를 힐끗 보았다. 그가 이내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러자 대부인이 차갑게 호통을 쳤다.
“운요는 뭣하러 보느냐? 넌 우를 연못에 빠뜨리려고 했을 거다. 그에 우가 발버둥 치다가 네 옷소매를 잡아 뜯은 거겠지. 그 후 넌 겁을 먹고 제월각으로 도망갔을 테고. 그렇지?”
신책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이에 이부인이 차가운 눈빛을 했다.
“형님, 저놈은 계속 입을 다물고 있을 것 같습니다. 여봐라, 저놈을 매달아서 쳐라! 오늘 사실을 고하지 않으면 내가 때려죽여 주마!”
신책의 몸이 점점 더 격하게 떨려 왔다. 시위들이 정말로 나무에 매달자 신책은 몸부림을 치며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목 소저, 절 좀 구해 주십시오!”
이부인이 고개를 돌리더니 칼날 같은 눈빛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목운요, 저놈이 왜 네게 구해 달라고 하는 거지?”
목운요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알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저는 저자를 모릅니다. 왜 제월각에 숨었는지도 모르고, 왜 저더러 자길 구해 달라는 건지는 더더욱 모르겠습니다.”
신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목운요를 보았다. 상심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소저, 어찌 저를 모른다고 하실 수 있습니까?”
목운요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나는 너를 모른다.”
“소저…… 어찌 그리 매정하십니까?”
이부인이 매섭게 명령을 내렸다.
“쳐라! 아주 세게 쳐라! 저놈이 숨긴 사실을 반드시 알아낼 것이다!”
시위들이 채찍을 꺼내더니 신책을 향해 힘껏 휘둘렀다. 몇 번 치지도 않았는데 금세 피가 배어났다.
계례에 초대된 부인과 소저들은 손수건을 꺼내 입과 코를 가리며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대부인은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신책, 네 아버지는 소씨 가문에서 십 년이 넘도록 총관으로 일했다. 평소에 유순한 성격에 행실도 바르던 네가 우를 죽였다니, 정말 믿기 힘들구나. 사실대로 고하면 목숨만은 살려 주겠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신 총관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신 총관은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머리를 조아렸다.
“노부인, 한 번만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절대 아가씨를 해칠 놈이 아닙니다. 무슨 오해가 생긴 게 분명합니다. 신책, 이 못난 놈아! 왜 가만히 있는 것이냐? 대체 무슨 일인지 빨리 말 좀 해 보아라. 소씨 가문에서 우리에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네놈이 배은망덕하게 굴어서야 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