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36화 (236/442)

236화 계례

“황상, 약재가…….”

“무슨 문제라도 있나?”

“약에 사용된 재료는 모두 일반적인 것들인데, 몸을 냉하게 하는 약재도 들어 있습니다. 공주 전하의 가슴 통증은 한기가 뭉쳐 발생하는 것이라, 냉기를 돌게 하는 약재를 사용하면 병이 악화할지도 모릅니다.”

황제는 목운요에게 시선을 돌렸다. 위급한 상황에 장공주를 살린 그녀였기에 바로 의심하지는 않았다.

“목운요, 네가 처방한 약이다. 냉기를 돌게 하는 약재를 사용한 이유를 설명해라.”

태의는 달갑지 않은 눈으로 목운요를 봤다.

‘목운요는 자수에 정통한 자가 아니던가? 어찌 의술까지 아는 것이지? 설마 황상과 공주 전하의 눈에 들기 위해 두 분을 속이는 것인가?’

“황상께 아룁니다. 공주 전하의 가슴 통증은 태의님 말씀대로 한기가 뭉쳐 발생한 고질병이 맞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몸을 따뜻하게 만드는 약재를 사용하여 공주 전하의 몸에 열기를 더했을 것입니다. 요즘에는 날씨가 추워져 보양에 큰 효능이 있는 약재들도 같이 복용하셨겠죠. 몸속에서 냉기와 온기가 상충하여 공주 전하의 발병이 유독 사나웠던 겁니다. 그러니 우선 열을 없앤 후 한기를 없애는 편이 공주 전하께는 더 효험이 있을 겁니다.”

태의는 머뭇거렸다. 오랫동안 해 온 몸조리가 장공주의 몸에 부담을 준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괜한 모험을 했다가 장공주의 병이 더 악화되면 큰일인 터라, 약재와 처방을 함부로 바꿀 수가 없었다. 한데 목운요가 내린 처방은 약효는 세겠지만 올바른 방법이었다.

“그건…….”

황제의 눈빛이 냉랭해졌다.

“목운요, 네가 쓴 처방전을 태의가 연구할 수 있도록 넘겨라. 그리고 더는 신경 쓰지 마라.”

황제가 말을 마치자, 시위가 들어와 아뢰었다.

“황상, 마차가 준비되었으니 바로 회궁하시면 됩니다.”

황제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있던 태의에게 말했다.

“누님을 황궁으로 모셔도 되겠는가?”

“몸이 안정을 찾았으니 조심만 한다면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좋아, 그럼 바로 회궁하겠네. 모든 태의를 불러 누님의 치료를 도우라고 하게.”

“황상, 공주 전하, 살펴 가십시오.”

두 사람이 하운방을 떠나자 하운방 사람들은 그제야 숨을 내뱉었다. 방금 전 일어난 일 때문에 다들 몹시 놀란 상태였다. 황제의 기세가 너무 강하여 마치 큰 산의 위엄에 눌려 척추까지 부러지는 것 같았다.

“소저, 어찌 계속 꿇어앉아 계세요?”

목운요가 움직이지 않자 채의가 질문을 던졌다.

목운요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다리가 풀려서 일어나지 못하겠네요.”

채의는 곧장 목운요를 부축했다.

“소저의 용기에 정말 감탄했습니다. 위급한 상황에 망설이지 않고 바로 공주 전하를 도우셨잖아요?”

목운요는 쓰게 웃었다.

“나도 어찌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몹시 놀라셨으니 어서 돌아가서 쉬십시오.”

“그래요.”

* * *

목운요는 소씨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이부인의 부름을 받고 서원으로 향했다.

이부인 척 씨는 그녀를 보고 곧장 손을 붙잡아 왔다.

“운요야, 오늘 받은 소식이 있다. 어서 봐다오.”

이부인이 쪽지 하나를 건넸다. 목운요는 쪽지를 열어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작은외숙모, 이건 누가 준 겁니까?”

쪽지의 내용은 ‘아가씨를 잘 돌보십시오.’뿐이었다.

“모르겠구나.”

이부인도 이를 이상하게 여겼다.

“차를 마시려고 보니 찻잔 아래에 이 쪽지가 있지 뭐니? 아주 잘도 숨겨 놨더구나.”

목운요는 쪽지의 필체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손가락으로 글씨를 문질렀다.

“일반 먹으로 쓴 것이 아니군요. 눈썹을 그릴 때 쓰는 먹을 이용했습니다. 외숙모의 찻잔 아래 감쪽같이 쪽지를 가져다 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보통 하인이 아닐 텐데…….”

“쪽지를 보내온 사람이 누구든 이것 하나는 확실한 것 같구나. 우리 예상이 맞았다. 노부인이 계례 날에 우에게 무슨 짓을 하시려나 봐.”

목운요는 쪽지를 이부인에게 돌려줬다.

“외숙모, 혹시 집안을 완전히 손에 쥐고 싶다고 생각해 보신 적은 없나요?”

“완전히……? 그게 무슨 뜻이니……?”

“외할머니도 이제는 장수를 빌어야 할 연세시니, 손아랫사람들이 효를 행하는 거죠. 어떠세요?”

“네 말이 맞다.”

노부인이 왜 우에게 모질게 구는 것인지 그 이유는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노부인이 혈육의 정을 버리고 소우를 해하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 속내를 알게 된 후, 이부인은 쓸모없는 선심을 버리기로 다짐했다. 소씨 가문의 후원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래야 했다.

묵운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함께 준비해야겠군요.”

한 시진이 넘도록 논의한 후에야 목운요는 서원을 떠나 제월각으로 돌아갔다.

식사를 준비하던 소청은 목운요의 안색이 좋지 않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니? 하운방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니?”

목운요는 소청의 팔을 붙잡고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오늘 하마터면 목이 날아갈 뻔했어요.”

“뭐? 무슨 일이길래 그렇게 심각해?”

그녀는 오늘 장공주를 구한 일을 이야기하며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너무 섣불렀죠……?”

“무슨 일인가 했다. 전혀 섣부르지 않았어. 오히려 옳은 일을 한 거지. 누군가를 구할 생각이거든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맞다.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면 우선 음식부터 먹으렴. 배가 부르면 괜찮아질 거다.”

“네, 그럼 많이 먹어야겠네요.”

소청은 웃으며 목운요에게 반찬을 집어 주었다. 맛있게 밥을 먹는 딸을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 * *

어느덧 시월 중순으로 접어들어 날씨가 제법 쌀쌀했다. 정원의 붉은 계수나무도 앙상한 가지만 남아 왠지 모를 적막함이 느껴졌다.

목운요가 창가에 기댄 채 밖을 바라보는데, 금란과 금교가 옷을 들고 왔다.

“소저, 계례 때 입으실 옷이 준비되었습니다. 만약 몸에 맞지 않으면 얼른 고치라고 하겠습니다.”

목운요는 몸을 일으켜 두 사람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소청은 계례에 쓸 장신구들을 보더니 만족한 듯 웃었다.

“요아야, 이거 보렴. 장신구들이 얼마나 화려하고 정교한지 몰라.”

목운요는 잠시 넋을 놓고 쟁반 위에 올려진 장신구들을 관찰했다.

“모두 작은외숙모께서 준비해 주신 건가요?”

“그래, 정말 많이 신경을 썼더구나.”

“음? 장신구에 문양이 있네요. 고양이 같은데요?”

작고 정교한 장신구에는 작은 동물이 앉아 있었다. 크기가 작은데도 굉장히 정밀했다. 게다가 눈에는 푸른색 보석까지 박혀 있어 아주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이었다.

목운요는 고양이를 살살 어루만지다, 그것이 작은외숙모가 준비한 게 아님을 깨달았다.

이건 아무리 봐도 월왕의 취향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기러기라는 이름을 지어 준 사람이 아닌가?

소청도 이를 이상하게 생각하며 물었다.

“작은외숙모에게 물어보겠니?”

목운요는 장신구를 손에 꼭 쥐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작은외숙모께서 요즘 너무 바쁘셔서 물건을 잘못 보내셨나 봐요. 게다가 이게 마음에 쏙 드는걸요.”

“마음에 들었다니 됐다. 모레면 네 계례가 열리는 날이구나. 귀빈은 네 작은외숙모가 초청하셨는데, 민 각로(闵阁老)의 부인 초 씨라고 들었다. 민 각로는 선대 황제를 모신 원로이고, 초 부인도 인품이 좋기로 유명하셔서 초대하기 힘든 분이라고 해.”

“초 부인의 명성은 저도 들은 적이 있어요. 확실히 고귀한 인품을 지니신 분이죠.”

“그래, 모든 것이 순조로우면 좋으련만…….”

소청은 합장하며 부처님께 딸을 잘 보살펴 달라고 빌었다. 그 모습에 목운요의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다.

* * *

계례 날.

목운요는 새벽같이 일어나 창밖의 날씨를 확인했다. 이른 아침부터 하늘이 어둡자 그녀의 미간에 작게 주름이 잡혔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금란과 금교도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소저, 오늘 비가 오는 건 아니겠죠? 날씨가 이리도 안 좋을 줄이야…….”

“어쩔 수 없죠, 뭐.”

만약 노부인이 자신을 해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오늘의 계례는 반드시 쑥대밭이 될 것이었다. 그럼 소씨 가문을 떠난 후에 다시 계례를 치르면 되었다.

날씨가 좋지 않았지만, 초청장을 받은 많은 부인과 소저들은 시간에 맞춰 소씨 가문에 도착했다.

황상께서 목운요를 눈여겨보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바였다. 자수법 전수를 마치면 목운요는 장공주의 수양딸이 될지도 몰랐다. 미리 그녀에게 잘 보여 나쁠 건 없었다.

예식을 성대하게 치르라는 노부인의 분부에 따라 앞마당에 마련된 연회장은 무척 화려했다. 소청은 소지원, 이부인과 함께 앞마당으로 가서 손님들을 맞이했다.

한편 방 안에서 준비 중이던 소우의 뺨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한껏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운요 동생, 신나지 않나요?”

목운요는 들뜬 소우를 보고 미소 지었다.

“당연히 기쁘죠. 오늘 계례가 끝나면 우리는 성인이 되는걸요.”

소우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감격한 눈을 했다.

“예전에 아플 때는 멋지게 계례를 치러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린 뒤 죽자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생을 만나서 운이 좋았네요.”

“제가 없었어도 작은외숙부와 작은외숙모가 언니를 잘 지켜 주셨을 거예요.”

그때, 밖에서 시끌벅적한 사람들의 소리가 들려왔다. 금란과 금교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들어와 소우와 목운요에게 예를 갖췄다.

“손님이 모두 도착했습니다. 어서 옷을 갈아입고 신을 신으세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계례를 치러야 하기에 큰 병풍을 놓아 방을 반으로 나누었다. 소우와 목운요는 옷을 갈아입은 후 각자 양쪽에 서서 조용히 계례를 기다렸다.

금란과 금교가 물러가자 방엔 고요함이 찾아왔다.

“운요 동생, 이따 계례에서 내가 실수하진 않겠죠?”

소우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방이 넓고 조용해서 이유 없이 긴장되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별일 없을 거예요.”

목운요는 미소 지으며 소우의 긴장을 풀어 주었다.

“저와 계례 순서를 연습한 적 있죠? 그때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었잖아요. 만약 제가 까먹으면 언니가 알려 줘야 해요.”

한데 반대편에서 아무 말도 들려오지 않았다. 목운요는 곧장 미소를 거두고 병풍을 향해 걸어갔다.

“언니?”

병풍 앞에 다다르자 날카로운 칼이 병풍에 구멍을 내고 목운요의 목을 덮쳐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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