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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34화 (234/442)

234화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다

* * *

방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깊이 생각했다.

이내 그녀는 탁상 앞에 앉아 서신을 쓰기 시작했다. 서신을 다 쓴 후에는 사서를 불렀다.

“이 서신을 월왕께 은밀히 전해야 한다.”

사서는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 놓으십시오.”

그제야 목운요의 얼굴이 편해졌다. 이에 금란이 조심스레 물음을 던졌다.

“소저, 정말로 대부인께 자수법 전수를 돕게 할 생각이세요?”

“내가 원수에게 은혜를 베풀 사람으로 보이나요?”

“소저께선 은혜와 원한에 분명한 분이시니 대부인을 그리 쉽게 용서하지 않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너무 흔쾌히 받아 주신 것 아닌가 해서 여쭈어보았어요.”

목운요가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관대하게 굴수록 저쪽은 마음이 불안할 거예요. 나를 대적하려고 제 딴에는 대단한 방법을 생각해 내겠죠.”

“소저, 그러다가 생각하지 못한 문제라도 생기면…….”

“서릉에 자수법을 전수하는 것은 오래전부터 생각해 온 일이에요.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되었으니 중간에 사소한 일 하나가 터지는 것쯤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돼요. 그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은 소씨 가문에서 나갈 방법이죠.”

“이번 기회를 빌려 소씨 가문에서 떠나실 생각입니까?”

목운요는 미소만 지을 뿐,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단순히 떠나기만 할 작정이 아니었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소씨 가문과 완전히 관계를 끊는 것이었다.

* * *

월왕은 목운요가 보낸 서신을 전해 받았다. 서신을 읽은 그의 눈에 한기가 스쳤다.

“소씨 가문이라…….”

옆에 있던 성 공공이 월왕의 눈치를 살피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요즘 소씨 가문이 참 떠들썩하더군요. 특히 동원의 대부인은 독사 부인이라고 불리잖습니까? 목 소저가 그곳 생활에 익숙해졌는지 모르겠군요.”

월왕은 서신을 상자 안에 조심스럽게 놓고 상자를 잠갔다.

“성 공공, 소 부인과 운요의 진짜 신분을 찾으라고 보냈던 자에게선 별다른 소식이 없었나?”

“몇 가지 정보가 들어오긴 했는데,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이상하다니?”

월왕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예전에 소씨 가문 노부인의 아이를 받은 산파의 온 식솔이 이유 없이 죽어 나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유일하게 살아남은 산파의 아들이 목 소저의 부친인 목성과 접촉한 적이 있답니다.”

“그 외는?”

“더 찾아낸 것은 없습니다.”

월왕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급한 것은 없으니 천천히 찾으면 되지. 산파의 아들이라는 자는 찾을 수 있겠나?”

“목 소저의 부친이 사망한 후로 행방이 묘연해졌습니다. 찾기 위해 최대한 노력 중입니다.”

“알겠다. 아무래도 소씨 가문 사람들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소씨 가문이 목운요와 소청을 대하는 태도를 볼 때마다 월왕은 깊은 위화감을 느꼈다. 어쩌면 소청은 소씨 가문과 아무 사이가 아닐지도 몰랐다.

* * *

목운요가 서릉에서 자수법을 전수한다는 말이 전해지자 행상들이 너도나도 서릉에 찾아왔다. 하운방과 함께 사업을 하고 싶어서 기회를 보러 오는 이도, 하운방 사람을 매수하러 찾아오는 이도, 자수에 필요한 물품을 판매하기 위해 찾아오는 이도 있었다.

삽시간에 온 서릉이 떠들썩해졌다.

이 사실은 빠르게 황궁에도 전해졌다. 황제는 차를 마시며 장공주에게 말했다.

“일개 자수방이 이렇게 큰 파장을 일으킬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했습니다.”

장공주는 손에 쥐고 있던 자수대를 내려놓고 자신이 수놓은 모란꽃을 지그시 바라봤다.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미워했던 것이 자수 선생들이었습니다. 부황께선 제게 자수를 연습하라고 계속 몰아붙이셨죠. 그 생각만 하면 아직도 머리가 아프다니까요.”

황제가 미소 지었다.

“저도 기억합니다. 누님께선 그 일 때문에 부황을 몰래 미워하셨죠.”

“그런데 순식간에 수십 년 전의 일이 되어 버렸군요. 하운방의 자수 솜씨는 천하제일이지요. 이렇게 한가한 날은 많지 않으니 환복하고 함께 밖을 거닐며 구경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황제는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시위는 조금만 데려가야겠군요.”

“그런데 갈아입을 평상복은 있으십니까?”

“서립에게 명하면 찾아올 겁니다.”

“좋네요. 그럼 이따 궁문에서 다시 만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짐도 가서 채비하겠습니다.”

황제는 들떠서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서립에게 갈아입을 옷을 가져오라고 명했다.

* * *

반 시진 후, 마차 한 대가 황궁 문을 나섰다.

마차는 낙하가(落霞街)에서 멈추었다. 곧이어 평상복을 입었지만 기개가 비범한 남녀가 내렸다. 평복으로 갈아입은 황제와 장공주였다.

“최근 몇 년 동안 이렇게 거리를 거닐 기회가 없었는데, 역시 누님의 생각은 옳습니다.”

장공주가 미소 지었다.

“너무 높은 곳에 올라가 있으면 시야가 구름에 가려져 제대로 앞을 보지 못할 때가 있죠. 그러니 이렇게 밖으로 나와 걸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은 걸은 지 얼마 안 되어 길모퉁이에서 노점 찻집을 발견했다. 차를 파는 사람은 다리를 저는 노인이었고, 찻집에는 적지 않은 손님들이 앉아 있었다. 한 손님이 차를 마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서 씨 아저씨. 오늘따라 차가 유독 맛있는 것 같습니다.”

다리를 저는 노인은 몸을 돌려 순박하게 웃어 보였다.

“차가 맛있긴. 기분이 좋으면 원래 냉수를 내줘도 따뜻하고 달다 느끼는 법이야.”

옆에 있던 사람이 크게 웃었다.

“누가 아니랍니까? 이 씨네는 손재주가 좋다고 소문이 났고, 딸아이도 자수에 능하잖습니까? 이제는 자수법을 배울 기회까지 생겼으니, 분명히 하운방에 뽑혀 들어가겠지요. 거기서 일하면 한 달에 다섯 냥을 준답니다. 하운방에 뽑히지 않더라도 데려가려는 자수방이 많을 테니 이 씨네는 밥 굶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어요.”

이 씨라고 불린 사내가 기분 좋게 미소 지었다.

“모두 황상께서 현명하신 덕분 아니겠습니까? 황상께서 목 소저가 자수법을 전수하는 걸 윤허하셨으니까요. 나는 요즘 외출할 때마다 황궁을 향해 머리를 조아립니다. 황상께서 오래오래 장수하시고 행복을 누리셔서, 우리 백성에게도 큰 복을 내려 주시라고요.”

“맞습니다. 요 며칠 성지의 기운을 받겠다며 하운방 입구에서 향을 피운 사람도 있었죠.”

“황궁 입구의 경비가 삼엄하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그곳에서 향을 피우는 사람이 나왔을 겁니다.”

“황상께 물건을 바치려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황상께선 용궁에 사는 용과 같은 천자이시니, 하다못해 마시는 물도 신선이 마시는 미주와 같은 것일 테죠.”

“에이, 그건 아니죠. 황상께서도 오곡과 잡곡을 드시는 분입니다. 매년 봄에 밭갈이도 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드시는 양식도 어쩌면 직접 기르실지 모릅니다.”

어째 대화 주제가 점점 이상해졌다.

어떤 이는 황상이 밭갈이를 하여 지은 곡식은 황금색이고, 보리가 무르익으면 일 척은 넘을 것이라고 했다. 또 어떤 이는 황상은 땅을 갈 때 황금 쟁기를 사용하고, 쟁기를 끄는 동물은 기린일 것이라고 했다. 씨를 심으면 하루 만에 싹이 트고, 사흘이 지나면 이삭이 맺히고 닷새가 지나면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했다.

장공주는 백성들의 얘기를 듣더니 웃음을 터뜨렸다.

“황상이 땅을 갈 때 기린을 사용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았네요.”

황제도 꽤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장공주를 당겨 옆에 있던 의자에 앉혔다.

사람들은 시끄럽게 떠들다가, 분위기가 남다른 황제와 장공주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낮췄다.

“나리, 부인. 혹시 저희가 너무 시끄럽게 굴었습니까?”

황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식솔을 만나러 서릉에 왔습니다. 그간 서릉을 잘 알지 못했는데,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아주 흥미로워서 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서릉에 온 지 얼마 안 되셨군요.”

“아이고, 저런. 아쉽군요.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하셨다면 하운방의 성대한 개업식을 보실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래요, 정말 아쉽습니다.”

다리를 저는 노인은 꼼꼼하게 사발을 씻더니 사발 두 잔에 따뜻한 차를 내왔다.

“자, 드십시오.”

황제는 노인을 보다 입을 열었다.

“어르신께선 다리도 불편하신데 어찌 밖에 나와서 찻집을 여신 겁니까?”

노인은 거짓 없는 미소를 보였다.

“걸어 다닐 때나 절뚝거리지, 사실 큰 불편함은 없어요.”

황제와 절름발이 노인이 대화를 나누는 도중, 수레가 찻집을 향해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노인은 얼굴에 웃음꽃이 피더니, 절뚝이는 다리로 재빨리 마중 나갔다. 노인의 다리가 불편하여 불선루에서 일부러 물과 땔감 등을 실은 수레를 보내 준 것이었다. 그야말로 대단한 선행이었다.

노인이 물을 받는 모습을 보던 옆자리의 사내가 낮은 목소리로 황제에게 말했다.

“서 어르신은 팔자가 안 좋아 혼자 된 지 꽤 오래되셨답니다. 딸은 시집간 후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났고, 아들은 병상에 누워 있다가 세상을 떴죠. 어르신은 땔나무를 하는 것으로 먹고사셨는데, 엄동설한에 산에 올랐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딱 굶어 죽게 될 상황이었는데 운 좋게 마음씨 고운 목 소저를 만난 것이죠.”

“목 소저의 심성이 곱군요.”

“맞습니다. 그리고 황상도 마찬가지십니다. 이번 일로 목 소저에게 상을 내리셨으니 얼마나 현명하신 분인지요!”

“하운방과 불선루의 편액도 모두 황상께서 하사하신 것 아닙니까? 분명 높으신 안목으로 목 소저의 선량함을 미리 아시고 편액을 하사하셨을 겁니다. 목 소저가 여러 곳에 하운방과 불선루를 열어 더 많은 사람을 도우라고요.”

“혹시 그거 들었습니까? 부두 일꾼들의 품삯이 오른다더군요.”

“그게 어찌 된 일입니까?”

“이게 모두 불선루의 개업 덕분 아닙니까! 찻잎을 사려는 행상들 때문에 부두를 오가는 배가 너무 많아서 일꾼들의 품삯도 올라간 것이죠.”

“잘됐군요!”

“그러게나 말입니다. 이 얼마나 좋은 일인지……!”

잘됐다는 말로 대화를 끝낸 사람들은 괜히 코끝이 찡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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