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33화 (233/442)

233화 소씨 가문의 잔꾀

금 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아야……. 네, 네 말이 사실이냐?”

“네, 이미 성지를 받았어요.”

“이게 어찌 부탁이니? 큰 공적을 거저 주는 것이지. 정말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금 부인은 경릉성에서부터 여러 차례 목운요의 도움을 받으며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다. 한데 서릉에서까지 이런 큰 기회를 받을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운요가 활짝 웃었다.

“오히려 제가 부탁드리는 입장인걸요. 그리고 저희는 한 가족이잖아요.”

“그래, 그렇지. 네 말이 맞다. 하인에게 식사를 거하게 준비하라고 했으니, 오늘은 꼭 나와 밥을 먹고 가야 한다?”

“물론이죠, 의모님. 저도 여기 밥맛이 그리웠거든요.”

* * *

목운요가 조씨 가문에 방문한 뒤, 하운방이 서릉에 자수법을 전수한다는 소식이 공공연히 퍼졌다. 사람들은 분분히 하운방 앞으로 모여서 그 일의 진위를 물었다.

그에 채의는 하운방 문 앞에 열 폭짜리 병풍을 놓았다.

“여러분, 하운방의 주인께서 서릉에 자수법을 가르치신다는 건 사실입니다. 이번에 전수하실 자수법에는 다른 지방에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기법들도 있지요. 이 병풍 열 폭에 앞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자수법이 담겨 있습니다. 자수법을 잘만 배우면 여기서 일할 수도 있습니다.”

이 소식은 자수법을 전수한다는 소문보다 더 파급력이 컸다. 특히 여인들은 이 소식에 몹시 기뻐했다. 자수법을 잘 배워서 하운방에만 들어가면 여생을 안정적으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은 기뻐서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지만 반면 귀족 가문들은 착잡한 심정이었다.

가장 부러움을 산 이는 단연 조운년이었다. 애초에 조운년은 금 부인이 목운요와 함께 경릉성에서 자수법을 전수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릉에 진입할 수 있었다.

한데 또 이렇게 큰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관리들은 아내를 맞이할 때 현명함을 중시하는데, 금 부인이야말로 어질게 내조를 잘하여 남편이 이십 년 노력할 일을 줄여 준 셈이었다.

자수법으로 서릉이 시끌벅적하자, 온 마마가 목운요를 찾아왔다.

“노부인께서 상의할 것이 있다고 찾으십니다. 영화원에 가 보시지요.”

목운요는 그 이유가 바로 짐작이 갔다.

‘소씨 가문도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을 얹겠다는 것이겠지.’

“알겠습니다. 바로 가죠.”

영화원에서는 노부인 손 씨가 미간에 주름을 잡고 있었다. 그 옆에는 소문원과 대부인 맹 씨, 그리고 소지원과 이부인 척 씨가 함께였다.

목운요는 웃으며 영화원에 들어섰다. 온 가문의 사람이 모두 모인 것 같았다.

“외할머니, 두 외숙부, 두 외숙모를 뵙습니다.”

노부인은 얼굴을 누그러뜨리며 목운요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어서 이 할미 옆에 와 앉아라. 최근 의모를 만나고 왔다고 들었다. 의모와 아이는 건강하더냐?”

“네, 할머니. 걱정해 주신 덕분에 괜찮습니다.”

“그래, 앞으로도 종종 왕래하도록 해라.”

노부인은 가늘게 뜬 눈으로 목운요를 살폈다. 그녀는 그저 웃기만 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운요야, 오늘은 네게 해명할 것이 있어서 널 불렀다.”

“분부하실 것이 있으면 편하게 말씀하세요.”

목운요는 노부인의 곁에 서서 부드럽게 말했다. 고요하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노부인은 목운요의 손을 토닥이며 고개를 돌려 대부인 맹 씨에게 말했다.

“맹 씨는 어서 목운요에게 사죄하지 못할까?”

대부인은 억지로 웃어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목운요에게 말을 건넸다.

“운요야, 예전에는 내가 잠시 무엇에 홀렸는지 네게 미안한 짓을 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네게 사과하려 해. 우리가 한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하여 과거의 나쁜 감정은 모두 잊고 나를 용서해 주길 바란다.”

대부인이 목운요를 향해 무릎을 굽히며 인사했다.

상황이 어찌 되었든 대부인 맹 씨는 목운요의 손윗사람이었다. 손윗사람이 목운요에게 무릎을 굽혀 인사한다면, 그녀는 도리를 모르는 사람이 되는 셈이었다.

목운요는 앞으로 나아가 대부인을 말리려 했지만, 노부인이 손에 힘을 주고 끌어당기는 바람에 대부인이 인사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자신의 손을 잡은 노부인을 보며 속으로 비소를 지었다. 자신이 아무래도 소씨 가문 사람들을 과소평가한 듯했다. 가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체면까지 갈기갈기 찢어 바닥에서 짓밟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니.

“큰외숙모,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저는 큰외숙모를 원망한 적이 없는걸요.”

노부인은 꽉 쥐고 있던 목운요의 손을 놓고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우리 운요는 세상에서 가장 마음씨가 고운 아이이니 절대 예전 일로 가족들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목운요는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외할머니 말씀대로 저흰 한 가족이 아닙니까? 가족끼리 재고 따지며 언쟁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 맞다. 그나저나 네가 의모를 찾아가 자수법 전수를 도와 달라고 했다지? 우리 가문에도 한가한 사람이 많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거라.”

“그러시다면 저도 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랫동안 가문을 관리하신 큰외숙모에게 도움을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대부인 맹 씨가 고개를 들었다. 두 눈에 놀라움과 의아함이 가득했다.

“내게…… 도움을 청한 것이냐?”

요즘 이부인과 목운요의 관계는 매우 좋았다. 그래서 대부인은 목운요가 이 좋은 기회를 당연히 이부인에게 주리라고 생각했다. 한데 예상과는 다르게 자신을 선택한 것이었다.

“네. 작은외숙모는 요즘 가문의 일을 관리하시잖습니까? 외할머니도 모셔야 하고, 우 언니도 보살펴야 해서 저까지 도우시기에는 힘에 부치실 겁니다. 그리고 큰외숙모께서는 자수방 몇 개를 소유하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를 도와주시기에 적합한 분이라고 생각되는데, 혹시 달갑지 않으신가요?”

목운요는 과거의 일을 말끔히 잊고 도움을 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대부인은 아무래도 불안했다.

생각에 빠진 것도 잠시, 대부인은 노부인의 뾰족한 눈빛을 느끼고 얼른 정신을 차렸다. 목운요가 어떤 조건을 걸든 반드시 자수법 전수에 참여해야만 했다.

“달갑지 않다니? 당연히 널 도와야지.”

목운요가 웃었다.

“감사합니다. 다행히도 서릉 하운방에 제가 직접 자수법을 가르친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솜씨가 제 솜씨 못지않으니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노부인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제자가 있어? 네가 직접 가르쳤다고?”

“네. 신중히 고른 자들로,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천부적인 재능을 지녔습니다. 그중 두 명의 솜씨는 제가 따라가지 못할 정도입니다.”

노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네가 잘 가르친 덕이 아니겠느냐? 돌아가서 잘 준비해 보거라. 모자란 것이 있으면 바로 내게 알리고. 사람을 보내 도우라고 하마.”

“네, 전 그럼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목운요는 웃으며 영화원에서 나왔다. 노부인의 잔꾀는 아주 그럴듯했지만, 그녀는 소씨 가문 사람들의 꾀에 쉽게 넘어가 줄 생각이 없었다.

목운요가 떠난 후, 노부인은 소문원 등에게 물러가라며 손짓했다. 얼굴이 굳은 대부인만 노부인의 앞에 남았다.

“혹시 내가 매정하다며 속으로 원망하진 않느냐?”

맹 씨는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가문을 위해 그런 결정을 내리신 어머님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노부인은 차갑게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난 네가 정말 내 마음을 이해했든, 아니면 이해했다며 입만 나불거리는 것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그보다 앞으로 절대 목운요와 충돌하지 마라. 네가 큰외숙모 되는 사람이니 그 아이를 너그럽게 봐줘야지. 두 번 다시 목운요와 대적해서 웃음거리가 되면 안 된다.”

“네, 어머님. 명심하겠습니다.”

대부인은 목구멍이 막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너무 분하고 억울했지만 차마 드러내지 못하니 갑갑할 뿐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넌 우리 집안에 시집왔으니 당연히 우리 집안의 사람이지. 집안일을 외부 사람에게 떠벌리면 안 되는 법이다. 말 안 해도 이 정도는 알아듣겠지?”

대부인은 원래 자신의 모친인 청녕 공주에게 목운요를 혼쭐내 달라고 할 심산이었다. 한데 노부인으로 인해 그럴 수 없게 되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명심하겠습니다. 다만 목운요는 속마음이 보통 사람들과 다릅니다. 목운요가 이번 기회에 소씨 가문을 해하려 하는 것이라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입니다…….”

노부인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도 같은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늘 목운요는 지나칠 정도로 빠르게 대부인의 사과를 받고 노부인의 도움을 승낙했다. 평소의 목운요와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노부인의 안색을 살핀 대부인이 빠르게 말을 이었다.

“어머님, 아까 목운요는 하운방 제자들의 솜씨가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그 자수법을 알아낸 후에 외부에 퍼뜨린다면 더 이상 특별한 비법이 아니겠지요. 어찌 생각하십니까?”

노부인은 크게 화가 났는지 사납게 탁자를 내리쳤다.

“못된 심보를 거두라고 방금 경고하지 않았느냐?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것이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다만 어머님도 목운요가 평소와 다른 것은 느끼셨을 겁니다. 목운요가 어디 쉽게 손해 보는 아이던가요? 어머님, 저는 우리 가문이 자수법 전수에 발을 담그는 것이 걱정됩니다. 그야말로 호랑이에게 가죽을 벗겨 달라는 격이지요. 결국 이용만 당하다 공도 세우지 못하고 남 좋은 일만 할 수도…….”

“헛소리를 늘어놓으려면 입 다물거라!”

노부인이 노성을 지르며 대부인의 말을 막았다. 깊게 팬 미간의 주름은 좀처럼 펴질 기미가 보지 않았다.

물론 그동안 지켜봐 온 목운요는 절대로 손해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정말로 가문을 망가트리려는 속셈일지도 몰랐다.

“우선 돌아가서 우의를 돌보는 데 힘써라. 나머지는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노부인은 깊게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네, 어머님.”

대부인의 두 눈이 반짝였다. 노부인의 마음이 흔들린 것이 분명했다. 이제 자신은 마음 놓고 노부인의 부름을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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