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32화 (232/442)

232화 금 부인의 근심

때마침 돌아온 서립이 목운요에게 조그만 상자를 전해 주었다.

“목 소저, 이건 황상께서 하사하시는 남해 진주입니다. 올해 공물로 받은 것이지요. 소저께서 복이 많으십니다.”

“성은이 망극합니다. 수고해 주신 서 공공께도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이덕이 출궁을 도와줄 겁니다.”

서립은 속으로 기뻐했다.

‘황상의 마음을 얻은 데다 장공주 전하의 눈에도 들었으니 목 소저의 앞길이 창창하겠어. 목 소저와 일찍이 좋은 인연을 맺어 두어 다행이로구나!’

* * *

목운요가 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씨 가문에 황제의 성지가 하달되었다. 목운요가 바라던 대로 서릉에 자수법을 전파하는 걸 허락한다는 내용이었다.

목운요는 향을 피우고 절을 올린 후 공손하게 성지를 받들었다.

“공공께서 노고가 많으시니 정원에서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목 소저, 괜찮습니다. 성지를 전했으니 얼른 궁으로 돌아가 보고드려야 합니다.”

성지를 전해 준 환관이 한껏 예의를 다해 말했다. 그에 금란이 서둘러 수고비를 전하자 환히 웃은 그가 정중히 인사하고 떠났다.

성지를 받는 자리에 함께한 대부인의 낯빛은 무척 어두웠다.

이틀 전, 월궁 선녀의 소문을 무마하려고 소우의에게 춤을 배운 여인을 내보냈지만 아쉽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그 일을 잊고 지내던 사람들은 다시금 월궁 선녀의 아름다웠던 춤을 기억해 냈고, 많은 사람이 월궁 선녀와 하운방의 개업식 때 본 ‘예상 선녀’를 비교하며 누구의 춤이 더 아름다운지 이야기꽃을 피웠다.

목운요는 성지를 받은 후 대부인을 본 체도 않고 곧장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금란 등을 불러 자수법을 전수하는 일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목운요의 설명에 금란은 놀란 얼굴을 했다.

“소저, 모든 비법을 공개하시겠다고요?”

예전에 가르칠 땐 몇 가지 기법을 숨겨 두었기에 그녀가 놀랄 만도 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명성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키려면 새로운 기법을 전수해야 했다. 당시 몇 가지 자수법을 감춘 이유도 서릉에 전수할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곳이 천자의 발아래니 응당 다른 곳과 차별을 두어야 했다.

“소저, 소인이 할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내일 금 부인을 찾아갈까 해요. 그분의 도움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 * *

금 부인이 거하는 조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꽤 멀어서, 마차로 반 시진 정도 소요되었다.

마차를 세우자 은홍이 빠른 걸음으로 맞이하러 왔다.

“소저를 뵙습니다.”

목운요는 마차에서 내려 은홍을 보고는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은홍 언니, 오랜만이에요. 그동안 잘 지냈죠?”

은홍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과 다름없는 태도의 목운요를 보니 가슴이 찡했다.

“별 탈 없이 잘 지냈습니다.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소저께서 보내신 전갈을 보고 부인께서 내내 기뻐하시며 일찍부터 일어나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들어오세요.”

목운요가 은홍을 따라가려는데, 노인 한 명이 문밖으로 나왔다.

노인은 목운요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깐깐한 눈빛으로 목운요를 훑어보더니 뒷짐을 진 채 코웃음을 쳤다.

“뭐야? 어른을 보고 인사도 안 하느냐?”

순간 낯빛이 변한 은홍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이분은 주인 어르신의 장인, 금 대인이십니다.”

목운요는 앞으로 두 발 천천히 나아가 무릎 꿇고 인사를 올렸다.

“금 대인을 뵙습니다.”

“흥! 온갖 술수로 명예를 얻어 민심을 낚는 사람은 우리 금씨 가문과 어울릴 수 없다!”

순간 목운요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안 그래도 조정에 자신을 고발한 자가 누구인지 알아보려 했는데, 그 목표가 해결된 것 같았다.

“금 대인, 뺨에 홍조가 오르고 미간과 눈썹이 불그레하신 것을 보아 허열이 있으시군요. 노년에는 정신을 가지런히 하고 마음을 가라앉히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래야 백 세까지 장수하실 수 있습니다.”

“지금 저주라도 하는 것이냐? 감히 그런 말을 하다니!”

“좋은 약은 입에 쓰지만 몸에 이롭고, 충언은 귀에 거슬려도 따르면 이로운 법이지요. 대인께선 조정의 관리이시니 응당 그 이치를 더 잘 아실 것입니다. 저는 대인께서 장수하시기를 바라는 것뿐입니다.”

“허튼소리! 나이도 어린 것이 말을 잘하는구나. 무슨 수로 조운년의 환심을 샀는가 했더니, 과연 속이 시꺼멓군!”

목운요는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

“마음에 부처가 있으면 만물에서 부처를 보고, 마음에 더러움이 있으면 만물에서 불결함을 본다는 좋은 말이 있습니다. 대인께서는 얼굴이 무척 상냥하신 것을 보아 분명 매우 인자하신 분 같습니다.”

금 대인은 목운요의 말에 눈을 부릅뜨고 손가락질까지 하며 화를 냈다.

“입발림하긴!”

“달리 분부하실 바가 없으시면 저는 먼저 조씨 가문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목운요는 일부러 ‘조씨 가문’이라고 강조했다. 금 대인은 그녀가 금씨 가문과 섞일 수 없다고 했지만, 이곳은 엄연히 조씨 가문이었다.

그는 자신이 조운년의 장인이니 이곳을 금씨 가문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듯했지만, 조운년도 거기에 동의할지는 미지수였다.

“흥! 네게 따져서 무엇하겠느냐?”

목운요의 미소가 더 짙어졌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

후원 쪽을 향해 걷던 중, 은홍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걱정되어 죽는 줄 알았습니다. 금 부인께서 서릉에 오신 후로 금씨 가문 사람들이 한두 번 소란을 피운 게 아니어야 말이죠. 특히 저 금 대인은 주인 어르신의 장인이라는 이유로 조씨 가문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시니, 금 부인께서 얼마나 우셨는지 모릅니다.”

그때, 아이를 안은 금 부인이 목운요를 발견하고 활짝 웃었다.

“요아야,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른다.”

목운요가 마주 미소 지으며 다가갔다.

“의모님을 뵙습니다. 요즘 일이 많아서 계속 문안드리러 오지 못한 저를 용서해 주세요.”

금 부인은 옆에 있던 유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목운요와 팔짱을 꼈다.

“그리 예를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에 목운요는 금란에게 나무 상자를 받아서 순금 자물쇠가 달린 목걸이를 꺼냈다. 자물쇠 한 면에는 기린 무늬가, 다른 면에는 ‘장수’와 ‘부귀’라는 말이 새겨져 있었다.

“원래 질문이가 백일이 되면 드리려 했던 건데, 급히 서릉으로 떠나시는 바람에 이제야 드리게 되었네요.”

금 부인은 금목걸이를 아이의 목에 걸어 주었다.

“참 좋구나. 마음 써 줘서 고맙다.”

금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목운요는 옛 생각이 나서 절로 한숨이 났다. 금 부인은 경릉성에 있을 때보다 훨씬 힘들게 지내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는 목의 힘이 약하니 잠깐만 채워 두셨다 빼세요. 계속 걸어 두면 안 됩니다.”

유모가 서둘러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금 부인은 아이를 유모에게 맡긴 후 목운요를 방으로 데리고 갔다.

“의모님, 얼굴이 좀 야위신 것 같습니다. 요즘 집안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금 부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말도 말아라. 어떤 가족은 남보다도 못하단 걸 이제야 알았구나. 그보다 혹시 이번에 조정에서 널 고발한 사람 때문에 왔니?”

“의모님께서도 그 소식을 들으셨습니까? 소식이 이렇게 빠른 줄은 몰랐습니다.”

금 부인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너무 부끄럽지만, 황상께 너를 고발한 사람이 바로 내 부친이시다. 아까 네 의부와 이 일로 실랑이를 하시던데, 지금은 가셨나 모르겠구나.”

은홍이 차를 가지고 오다가 금 부인의 말에 재빨리 대답했다.

“소인이 아까 소저를 모셔 오는 길에 대문에서 금 대인과 딱 마주쳤습니다.”

금 부인은 얼른 물었다.

“아버지께서 널 곤란하게 하진 않으셨니?”

“곤란한 일은 전혀 없었어요. 그저 몇 마디 말만 나누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금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머리를 눌렀다.

“그럼 다행이구나. 요즘 걱정이 크단다. 네게 비웃음을 살 수도 있겠지만 집안과의 관계를 단절할 생각도 있어.”

금 부인이 서릉에 온 뒤로 금씨 가문 사람들이 수시로 조씨 가문에 찾아와 그녀를 들볶았다. 그에 몇 번이나 고생하고 나니 별로 남아 있지 않던 정마저 싹 사라졌다. 지금은 생각하기만 해도 가슴이 냉랭해졌다.

“병을 핑계로 방문을 사절하는 건 어떨까요?”

“그게 어디 그리 쉽니? 매번 아버지나 어머니께서 찾아오시는데,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문밖에 내친다면 남들의 손가락질을 받을까 걱정되어서 그렇지. 이럴 줄 알았다면 경릉성에서 자유롭게 살았을 텐데…….”

목운요가 빙긋 웃었다.

“자식이 부모님을 내칠 수 없다면 하인이 부모님을 정중히 모시게 하면 되지요.”

잠시 얼떨떨해하던 금 부인의 눈에 곧 화색이 돌았다.

“이리 간단한 방법도 생각해 내지 못하다니! 앞으로 우리 가족이 오면 네가 말한 대로 해야겠다.”

다른 이들 앞에서는 깍듯이 대하면서 집 안에서는 직접 뵙지 않고 하인을 시켜 모시게 한다면, 금씨 가문 사람들이 아무리 금 부인과 조운년에게 효심이 없다고 말해도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을 터였다.

금 부인의 근심이 해결되자 목운요는 이곳에 온 목적에 대해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온 건 의모님께 도움을 청할 일이 있기 때문이에요.”

“말해 보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열심히 돕겠다.”

금 부인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부터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으나 소씨 가문이라는 장벽이 너무 높았다. 안 그래도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초조해할 수밖에 없는 자신을 자책하던 차였다.

“이번 고발로 황상께 불려 갔지만, 다행히 황상께서 제 억울함을 알아주셨습니다. 더불어 제가 서릉에 자수법을 전파하는 것도 허락해 주셨지요. 하지만 저 혼자 힘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래서 바로 떠오른 분이 의모님이었어요. 이 일을 끝까지 도와주십사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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