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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28화 (228/442)

228화 독사 부인

* * *

한편 정자에 앉은 심병괴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목 소저와 연관된 사건을 꽤 오랫동안 조사했지만, 아직도 쓸 만한 단서를 찾지 못했소.”

“심 대인께서 전력을 다하셨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심병괴는 작게 미소 짓는 목운요를 보고 의문이 들었다.

“목 소저는 예전 일을 신경 쓰지 않는 거요?”

목운요는 살짝 눈을 내리깔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어찌 신경 쓰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심 대인께서 아무것도 찾지 못하셨다고 하니 단념하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지요.”

심병괴가 고개를 저었다.

“순천부는 매일 크고 작은 사건들로 가득하오. 그중에는 딱 보면 어떤 상황인지 알지만, 증거가 부족하여 해결할 수 없는 사건들도 있소. 결국 내가 무능한 탓이지.”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서릉의 백성들은 대인을 ‘심 청렴’이라고 부르는걸요. 평소에 억울한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고, 오늘도 이렇게 저를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 이야기를 나눠 주신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목운요는 감사함을 담아 말을 이어 갔다.

“사실 사건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가족 간의 정을 우선하여 넘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요.”

“목 소저는 참 마음씨가 곱구려. 난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봐야겠소.”

사실 심병괴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목운요와 독대하여 사건에 대한 말을 해선 안 됐다. 하지만 목운요가 가여워 오지랖을 부릴 수밖에 없었다.

목운요는 무릎을 굽히며 예를 차렸다.

“살펴 가세요, 심 대인.”

그녀는 제월각에 돌아오자마자 곧장 사서를 불렀다.

“육냥에게 작전을 개시하라고 전해.”

* * *

고작 이틀 만에 소씨 가문에 또다시 파도가 몰아쳤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았다.

어느 날, 한 도둑이 순천부의 감옥에 잡혀 들어갔다. 도둑은 심문을 받다가, 순오가 건달을 매수하여 목운요를 공격하려 한다는 계획을 엿들었다고 밝혔다.

도둑은 당시의 상황을 굉장히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왕주를 괴롭힌 사람도 순오가 매수한 건달이라고 말했다.

왕주가 갖고 있던 소씨 가문의 목패는 순오가 잠시 한눈을 판 사이 그 도둑이 몰래 훔쳐 온 것이었다. 값나가는 물건이라 생각하고 훔쳤으나, 별 가치가 없다는 걸 확인하자 분노하여 왕주의 집에 버렸던 것이다.

목패가 집으로 굴러들어오자 왕주가 그것을 들고 순천부로 향하게 된 게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심병괴는 도둑을 데리고 소씨 가문으로 향했다.

당연히도 대부인은 순오에게 그런 명을 내린 적이 없다고 답했다. 심병괴도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다른 사람들부터 조사해야 했다.

사건은 해결되지 않았지만, 백성들의 마음속에선 이미 결론이 정해져 있었다.

대놓고 상서부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야기할 순 없었기에, 백성들은 맹 씨를 독사 부인이라고 불렀다.

“독사 부인도 참 보통내기가 아니지요. 건달을 매수해서 사람을 죽이려 했으니까요. 게다가 그 집 외손녀의 은자까지 탐했다죠? 만약 심 대인이 예리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십만 냥을 그냥 빼앗겼을지도 몰라요.”

“그보다 보화사에 불을 지른 건달들의 죽음이 어딘가 석연찮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져서 죽다니, 수상하기 짝이 없죠…….”

“확실한 증거가 없어서 독사 부인을 처벌할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네요. 얼마 전에 길에서 심 대인을 봤는데, 어찌나 고생하셨는지 머리가 하얗게 세셨더라고요.”

“심 대인도 참 곤란하시겠어요.”

“뭐, 어쨌든 가장 불쌍한 건 그 댁 외손녀 아니겠어요? 목숨도 잃을 뻔하고, 돈도 빼앗길 뻔하고. 가족이라는 작자들은 온통 자신의 사업에만 눈독 들이고 있으니……. 또 언제 누가 죽이려 들지 모르죠.”

“맞아요. 가엽더라고요. 그렇게 마음씨 착한 아가씨가…….”

“이건 아마 여러분이 모를 것 같은데, 하운방과 불선루가 곧 개업한답니다. 우리 서릉 백성들의 좋은 날도 머지않았어요!”

도둑의 자백만으로는 대부인을 단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신 하운방과 불선루가 조만간 개업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모든 이들이 기대감에 부풀었다.

* * *

동원에서 소우의가 탕약을 마시는데, 대부인이 손짓하여 시녀를 물렸다.

“우의야, 저번에 네 오라비가 찾아낸 여인은 잘 가르치고 있느냐?”

소우의는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다.

“이렇게 다쳤는데 그 여인을 가르칠 정신이 있겠습니까?”

대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네가 힘들다는 건 알지만, 명성이 더 중요하다. 이리 시간이 오래되었는데 월궁 선녀의 조사에 아무런 진척이 없으니 서둘러야 하지 않겠니?”

“목운요가 저리 우쭐대고 있는데 누가 저에게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이 일이 제대로 밝혀지지 않으면 중추절이 올 때마다 사람들은 그 일을 얘기할 거다. 평생 그 얘기가 따라다닐 텐데, 정말 그러길 바라느냐?”

소우의는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거의 저와 비슷해졌습니다. 조금만 더 손봐 주면 될 것 같아요.”

“그럼 조금만 더 수고해라. 머지않아 너와 월궁 선녀의 관계를 철저히 끊어 낼 수 있을 테니까.”

소우의는 대부인의 피곤한 안색을 보더니 의문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보다 지금 서릉에서 어머니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돈다던데요. 목운요를 데려온 게 애초에 혈연 때문이 아니라 목숨을 빼앗고 재산을 탐하려는 거라고…….”

“그런 헛소문은 귀담아듣지 마라!”

대부인은 서늘하게 소리쳤다가, 소우의의 안색이 어두워지자 이내 말투를 부드럽게 고쳤다.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넌 걱정할 필요 없다. 소문이란 게 원래 근본이 없잖니? 아무 근거가 없는 일조차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 진짜가 되는 법이다.”

소우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리고 할머니께서 소우와 목운요의 계례를 크게 치르신다고 하던데…….”

대부인이 침상 곁에 앉아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네 포부가 커서 목운요를 두고 보기가 답답하다는 건 안다. 하지만 지금은 잠시 칼끝을 숨길 수밖에 없어. 그저 생일잔치일 뿐이다. 나중에 네가 성공하면 어떤 연회든 열지 못하겠니?”

“요즘 계속 목운요가 저를 죽이는 악몽을 꿔요. 목운요는 꼭 저를 못살게 굴려고 온 것 같아요. 그것이 소씨 가문에 온 후로 무엇 하나 순탄하게 풀린 일이 없지 않습니까?”

대부인이 이를 악물었다.

“걱정하지 마라. 목운요의 득의양양한 얼굴도 얼마 가지 못할 테니까. 이 어미가 반드시 처리하마. 내가 손쓰지 않아도 네 할머니께서 어련히 손쓰실 게야.”

* * *

하운방과 불선루의 개업을 앞두고 목운요는 점점 더 바빠졌다.

불선루도 경치 재정비가 필요했지만, 특히나 하운방에서 새로 낼 미인책이 고칠 부분이 많았다.

경릉성에서 미인책을 낼 땐 각 가문 귀부인들의 용모를 근거로 했다. 그때는 참고할 인물이 있어서 제작하기 어렵지 않았지만, 서릉에선 그럴 수 없었다. 명예를 중시하는 이들이 많아 자칫하면 문제가 될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미인책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했고 옷도 서릉의 복식에 맞춰야 했다.

목운요가 새로 수놓은 미인책을 살펴보았다. 하운방 직원들은 목운요가 침묵을 유지하자 긴장해서 심장이 목구멍까지 튀어나올 것 같았다.

“소저, 더 개선할 부분이 있을까요?”

목운요는 고개를 들더니 사람들의 긴장한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좋아요.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보이지 않네요.”

순간 사람들의 만면에 기쁨이 가득해졌다. 십여 차례의 수정을 거듭한 끝에 결국 목운요를 만족시킨 것이었다.

목운요가 따라 웃으며 말했다.

“다들 며칠 동안 무척 수고가 많았어요. 이따 한 사람당 오십 냥씩 은자를 받아 가도록 해요. 나중에 하운방이 번창하면 더 챙겨 줄게요.”

“소저, 걱정 마세요. 전심전력을 다하겠습니다.”

“그래요. 채의(彩衣)는 잘 준비하고 있고?”

“지금 후원에서 연습 중입니다. 몰래 구경하러 갔는데 과연 소저께서 직접 지도하셔서 그런지 무척 아름다워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들으니 좀 안심이 되네요. 이번 사업은 꼭 크게 성공해서 널리 명성을 떨쳐야 하니까.”

“네, 소저.”

* * *

월왕부에서 우항이 하운방의 움직임을 보고했다.

“전하, 목 소저께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불선루도 슬슬 준비를 해야 할까요?”

월왕이 붓을 놓더니 고개를 들었다.

“어찌 준비해야 할지는 알고?”

“소인이 무식한지라 그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그럼 방해하지 말고 그냥 가만히 있어라.”

그럼에도 우항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

“전하, 벌써 붓을 잡은 지 한참 되셨습니다. 어찌하면 불선루가 성공할 수 있을지 생각하시는 것 아닙니까?”

월왕이 서늘한 눈으로 우항을 훑어보았다. 우항은 고개를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곧 성 공공이 차를 가지고 들어오자, 우항은 반짝이는 눈으로 성 공공을 곁눈질했다.

그에 성 공공이 코웃음을 쳤다.

‘우항은 어찌 저리 둔할까? 전하께서 방해받기 싫으시다는데 옆에서 저리 시끄럽게 굴다니.’

“전하, 최상품 찻잎이 한 상자 왔는데 집중력을 높이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한번 드셔 보시고 괜찮으시면 목 소저에게 이 찻잎을 선물하시지요.”

그제야 월왕이 붓질을 멈추더니 서신을 조심스레 봉투에 담았다.

우항은 서신 봉투를 보더니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봉투가 이렇게 화려합니까?”

서신 봉투에는 매화나무와 그 아래 웅크린 고양이가 그려져 있었다. 고양이의 귓가에 나비도 그려져 있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재치 있었다.

월왕의 눈빛이 더 싸늘해졌다.

“그래서 문제 있나?”

우항은 자신도 모르게 지적하는 듯 말했다.

“전하께선 그림이 있는 것을 싫어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봉투는……?”

성 공공이 최대한 세게 우항의 발을 밟았다.

“윽!”

“보는 눈이 나쁘면 물고기 눈이나 먹게나. 전하, 제가 보기엔 무척 아름답습니다. 서신을 다 쓰셨으면 소신이 전달할까요?”

그동안 진 총관이 목 소저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아서 성 공공은 목운요가 무척 궁금했다. 월서에 있을 땐 멀어서 만날 기회가 없었으나 서릉으로 온 김에 직접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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