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7화 수를 쓰다
목운요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외할머니께서 계례를 함께 열라고 하신 저의가 무엇일까요?”
이부인은 잠시 넋을 놓았다. 딸아이의 계례를 치르라는 말을 듣고 그저 기뻐하기만 했지, 자세히 생각해 보진 않았던 것이다.
“난 그저 딸아이 생각에 기뻐하기만 했어……. 구체적인 뜻은 나도 잘 모르겠구나.”
“외할머니께선 언니의 몸이 좋아진 걸 어떻게 아셨을까요?”
이부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건……! 어디선가 소식을 들으신 것이 아닐까? 소씨 가문에는 보는 눈도 많고 듣는 귀도 많으니 말이다.”
“언니의 몸이 왜 이렇게까지 안 좋아졌는지 아시면서 방심하셨어요? 설마 지금까지의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생각은 아니시죠?”
목운요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이부인이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얼굴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운요야, 내가 요 며칠 가문을 관리하며 너무 자만했던 것 같아. 대부인을 이기고 싶어서 욕심내느라 우를 지키는 데 소홀했어. 다 내 잘못이다.”
목운요는 이부인의 마음을 이해했다.
오랫동안 병을 앓던 소우가 드디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고, 소씨 가문을 관리할 권한도 이부인의 손에 들어왔다. 모든 일이 잘 풀리다 보면 빈틈도 발생하는 법.
“언제나 방심하시면 안 됩니다. 작은 실수로 언니가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그래, 운요야. 내 꼭 명심하마.”
“우선 외할머니께서 저와 소우 언니의 계례를 함께 치르라고 하셨으니 정해 주신 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보름이 남았으니 열심히 준비하면 될 거예요.”
“혹시 노부인께서 계례 때 소우를 건드린 후에 그걸 네게 뒤집어씌우시려는 건 아닐까……?”
그 말을 하면서도 이부인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상상만 해도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목운요의 눈빛이 착 가라앉았다. 확실히 회귀 전의 소우는 자신의 계례를 앞두고 세상을 떠났다. 이번에는 노부인이 소우를 이용해 자신을 모함할지도 몰랐다.
“아직 확실한 건 아니니 벌써 초조해하지는 마세요.”
이부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게 좋지. 미리 대비해서 나쁠 건 없잖니?”
“네. 저는 우선 언니를 회복시키는 데 집중할게요. 계례와 관련한 것들은 외숙모께서 맡아 주세요. 만약 외숙모의 추측대로 언니의 건강이 노부인과 관련 있다면, 우리도 그 상황을 역이용해야 합니다.”
“내 딸이 위험에 빠지지만 않는다면 전력을 다해 널 도우마.”
“저도 곰곰이 생각해 봐야겠어요. 생각이 끝나면 다시 외숙모와 상의할게요.”
“그래.”
그때, 모피 구경을 마친 소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운요 동생, 어떡하죠? 내가 모피를 여러 장 골라 버렸지 뭐예요?”
“괜찮아요. 어차피 외숙모께서 집안을 관리하고 계시니, 나중에 도움이 필요할 때 외숙모께 붙으면 되니까요.”
소우는 혀를 쏙 내밀었다. 그 모습이 퍽 짓궂고 사랑스러웠다.
“아무튼 똑똑하다니까요.”
이부인과 소우를 배웅한 후, 소청이 걱정 어린 목소리를 냈다.
“호랑이도 제 자식은 잡아먹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노부인께서는 정말로 우를 죽일 생각이실까?”
“저도 확신하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우리도 노부인의 혈육인데, 노부인께서 우리에게 너그럽게 구신 적이 있었나요?”
소청은 한숨을 쉬었다.
“하긴, 소씨 가문 사람들에겐 혈육 간의 정이랄 것도 없지.”
그때, 밖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에 목운요가 미간을 찌푸렸다.
“금란, 밖에 무슨 일이죠?”
잰걸음으로 들어온 금란은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소저, 순천부의 심 대인이 대부인께 물을 것이 있다며 찾아왔습니다.”
대부인이 매수한 건달 무리의 진상이 곧 밝혀질 것이라고 월왕과 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서릉에 돌아오자마자 심병괴가 찾아올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목운요는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걸쳤다.
“어머니, 우리도 나가 봐요.”
* * *
목운요가 동원에 도착했다는 소식에 대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
“큰외숙모를 뵙습니다. 심 대인이 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유 노파와 왕 노파의 사인 조사에 진전이 있는지 물으러 왔습니다. 예전에 제가 곤장을 내리라고 했으니 마음이 영 불편해서요.”
대부인이 서늘한 눈으로 그런 목운요를 보는데, 심병괴가 직접적으로 질문을 던졌다.
“외람되지만 맹 부인께 여쭐 것이 있어 오늘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편히 말씀하세요. 아는 것은 빠짐없이 다 말하겠습니다.”
“좋습니다. 맹 부인은 혹시 순오라는 하인을 아십니까?”
“압니다. 동원의 하인이죠. 얼마 전 제가 식량을 거두어 오라고 보냈습니다. 다만 시간이 꽤 지났는데 별다른 소식이 없는 것이 이상합니다. 요즘 가문에 이런저런 일이 많아 물어보지도 못했네요.”
심병괴가 대부인의 얼굴을 자세히 관찰했다.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순오는 이미 죽었습니다.”
대부인이 놀라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죽었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사인은 알아냈나요?”
“사인은 조사 중이나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다만 순오에게 순삼이라는 형제가 있는데, 그자의 진술에 따르면 순오의 사인이 부인과 관련 있다고 합니다.”
대부인은 미간을 세게 찌푸렸다.
“저와 관련이 있다고요? 그자는 무슨 연유로 제가 연루되어 있다고 말한 겁니까?”
“순삼의 말에 의하면, 부인께서 순오를 보낸 목적은 식량을 거둬 오라는 것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순오는 동네 건달들을 돈으로 매수하러 나갔다고 하더군요. 보화사에 간 목 낭자를 납치할 사람을 구하고 있었답니다.”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운요가 저를 오해하고 있지만, 저는 운요를 제 조카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잘해 줬습니다.”
목운요는 속으로 냉소했다. 친조카라니, 정말이지 지나가던 개도 비웃을 말이었다.
심병괴는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예전에 대부인이 시위에게 목운요를 죽이라고 했던 장면이 떠오른 탓이다. 만약 그때 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소청과 목운요에게 큰일이 났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확실한 증거가 없으니 무턱대고 추궁할 순 없었다.
“그렇다면 맹 부인은 순오가 무슨 일을 했는지 전혀 모르신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식량을 거두기 위해 제가 순오를 내보냈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방금 대인께서는 순오가 건달들을 매수하여 운요를 괴롭히려 했다고 말씀하셨지만, 지금 운요는 이렇게 아무 탈 없이 무사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어떤 오해가 있던 건 아닐는지요?”
심병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 사건은 제가 돌아가서 조금 더 자세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맹 부인,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요.”
“그보다 목 소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잠깐 이야기 나눌 수 있겠소?”
심병괴가 목운요에게 물었다.
목운요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깥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이야기 나누시죠.”
목운요와 심병괴가 나가는 것을 본 소문원은 대부인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순오의 일은 얼마나 알고 있소?”
대부인이 황급하게 부인했다.
“순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정말 모릅니다.”
“그럼 순오가 매수했다는 건달들은?”
“그건…….”
대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대부인의 그런 모습을 본 소문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외부인만 없었다면 대부인을 끌고 가 상황을 자세히 따지고 싶었다.
‘대체 왜 이리도 어리석단 말인가! 목운요를 죽이고 싶다고 건달을 매수해? 하찮은 건달 놈들을 어떻게 믿고 일을 맡겼단 말인가! 이 사실이 발각되면 소씨 가문의 체면은 어찌 되며, 이부 상서의 자리는 어찌 된단 말인가?’
대부인은 감히 입을 뗄 수 없었다. 당시엔 목운요를 얕봐 조금만 손쓰면 알아서 덫에 걸릴 줄 알았다. 심지어 사건이 탄로 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순오의 입을 어떻게 막을지도 모두 계획해 두었다.
하지만 계획과는 다르게 목운요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사건에 연루되어 버렸으니 혀를 깨물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사실을 인정하면 안 됐다.
소문원은 냉랭한 눈빛으로 대부인을 바라봤다.
“당분간 다른 일은 신경 쓰지 말고 우의를 돌보는 것에만 전념하시오. 청오의 일도 어머니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끼어들지 마시오.”
“나리, 요 며칠 척 씨가 우의를 괴롭혔습니다. 조금만 더 늦게 돌아왔으면 우의를 죽였을지도 모를 일이죠. 아무래도 제 손에 소씨 가문의 권한이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습니다.”
소문원은 코웃음 쳤다.
“우선 그대 일이나 잘 챙기시구려.”
때가 어느 때인데 권력을 휘두를 생각이나 하는 건지 소문원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말을 마친 그는 바로 자리를 떴다.
대부인은 이를 악물고 바깥 정자에 있는 목운요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녀가 너무 미워서 살점을 베어 내고 싶을 정도였다.
한참 동안 목운요를 노려보던 대부인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시선을 거뒀다. 너무 성급하게 굴어 얼마 전에 큰 손해를 봤으니, 두 번 다시 같은 실수를 해선 안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