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서릉으로 돌아가다
* * *
날이 조금씩 밝아 오자 소아한이 눈을 떴다. 어깨의 고통이 극심해서 팔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그러다 어제 늑대 무리가 자신을 덮치던 장면이 떠올라 그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느, 늑대!”
금란이 황급히 소아한에게 다가왔다.
“염려 놓으십시오. 막사로 돌아오셨으니 안전합니다.”
소아한은 두려움에 떨며 주변을 둘러보다, 자신의 막사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조금씩 안정을 되찾았다.
소아한이 일어나는 소리를 듣고 목운요가 다가갔다.
“언니, 드디어 일어났네요. 아직 많이 아프죠?”
소아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는…….”
“어깨를 다쳤더라고요. 소독하고 약을 발라 놨어요. 태의 말로는 상처가 다소 깊어서 흉이 질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러니 음식을 가려 먹어야 한다고 했어요. 잘못 먹었다가 괜히 덧나면 안 되니까요.”
소아한은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흉이 지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죽지 않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네요.”
소아한은 어젯밤에 일어난 일을 떠올리니 간담이 서늘해졌다.
“육공주 전하와 장 소저는 어찌 되었나요?”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만 태의들이 옆에서 잘 돌보고 있으니 별일은 없을 거예요.”
목운요는 소아한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그런데 언니, 어쩌다 그 깊은 숲속까지 가서 늑대 떼를 만난 건가요?”
소아한은 일순간 낯빛이 창백해지더니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큰 오라버니를 찾으러 갔다가 어쩌다 보니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고……. 늑대 떼는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목운요는 살짝 눈을 찡그렸다. 소아한이 진실을 감추는 것이 보였지만 딱히 강요하고 싶진 않았다.
“우선 소화가 잘되는 죽을 가져오라고 할 테니 죽을 먹고 푹 쉬세요. 약이 다 달여지면 사람을 보내 가져다드릴게요.”
“어젯밤엔 운요 동생이 내 옆을 지킨 건가요?”
“언니가 심하게 다쳤는데 시녀도 없고, 의녀들은 육공주 전하께 가 있어서 제가 대신 오게 되었어요.”
“고마워요.”
소아한은 복잡한 마음으로 살짝 눈을 내리깔았다.
사실 그녀는 목운요에게 사실을 숨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육공주, 소청오, 장완이 같이 얽힌 사건이기에 말 한마디라도 잘못 꺼내는 날에는 목숨을 잃을지도 몰랐다.
“별거 아니니 몸조리에나 신경 쓰세요. 다시 열이 나면 안 되니까요.”
“그래요.”
마침 소아정과 소아령이 돌아오는 것을 보고 목운요는 막사를 나섰다.
* * *
목운요가 식사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데, 정보를 알아보러 갔던 사서가 돌아왔다.
“장 소저가 아직도 의식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어젯밤에 육공주 전하께서 여우를 잡으러 간 것이 아니라, 새끼 늑대를 보고 활을 쏴 죽이신 거라 합니다. 그래서 늑대 무리가 쫓아온 거고요. 장 소저의 부상은 원래 이렇게까지 심하진 않았는데…… 공주 전하께서 장 소저를 말 아래로 밀어 버리셨답니다.”
목운요의 인상이 구겨졌다.
“어쩐지……. 오늘 아한 언니에게 그 일을 물어봤는데 얼버무리는 눈치였지. 역시 그런 일이 있던 거였어.”
한편 대화를 들은 금란은 매우 놀랐다.
“공주 전하께서도 참 대담하십니다. 장 소저는 대학사 나리의 적녀이신 데다 몇 달 후면 큰 도련님과 혼인까지 올릴 사이인데, 그런 사람을 말에서 밀어 버리시다니…….”
“금란.”
목운요가 금란의 말을 막았다.
“그 일에 관해선 한마디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황상은 분명 장완이 육공주를 구하다 부상당한 것으로 이번 사건을 매듭지을 터였다.
금란은 냉큼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곧 출발할 테니 어서 짐을 챙겨요.”
* * *
약 한 시진 후, 사람들은 각자 서릉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목운요가 마차 옆에 도착하자 소청오가 창백한 얼굴로 걸어왔다. 몸에선 피비린내가 났고, 눈빛은 이전보다 훨씬 깊고 어두웠다.
“운요, 아한은 어떠하오?”
“언니는 몸조리만 잘하면 큰 문제 없을 겁니다. 그보다 언니가 걱정되시면 직접 가 보셔도 되는데, 왜 제게 안부를 물으세요?”
소청오는 무언가 말하려다 대부인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육공주 전하 곁에 있어야 할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어머니, 공주 전하를 돌보는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하지만 공주 전하께서 몹시 놀라시지 않았느냐. 어서 가서 전하 곁을 지키도록 해.”
대부인은 말을 끝낸 후 목운요를 무섭게 노려봤다.
‘저 빌어먹을 것이 청오의 앞날까지 망치게 둬선 안 돼!’
목운요는 조소했다.
“두 분이 따로 할 말이 있으신 것 같으니 저 먼저 마차에 오르겠습니다.”
그녀가 금란의 손을 잡고 마차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던 대부인은 소청오에게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넌 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해라. 장완의 일은 나와 네 부친이 알아서 처리할 테니.”
소청오는 반항하는 눈빛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었지만, 결국 한 발짝 물러섰다. 그가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린 후 육공주가 있는 마차로 걸어갔다.
목운요는 마차 휘장 사이로 소청오가 떠나는 것을 보며 짙게 비소 지었다.
‘여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세가 최고의 공자지만, 결국 대부인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 이용당하는 장기짝에 불과하구나. 대부인에게 조종당하고 놀아나기만 하다니, 아주 가엾기 그지없어.’
* * *
서릉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있었다.
피곤해진 목운요는 가볍게 하품했다. 어젯밤에 제대로 자지 못했고, 오늘은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먼 길을 왔으니 피곤한 것이 당연했다.
소씨 가문의 대문이 열렸다. 이부인이 입구에서 초조하게 일행을 기다리다가, 재빨리 마중 나왔다.
“아주버님, 형님, 오셨습니까? 우의가 얼마나 고집이 세던지, 두 분이 나가신 이후로 약을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팔의 상처에도 무리가 가 열이 난 상태예요. 지금은 온 마마가 돌보고 있습니다. 어서 들여다보시죠.”
“뭐라고?”
제 보배 같은 딸이 크게 아프다는 말에 대부인은 빠르게 동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부인은 소문원과 대부인이 자리를 뜨고 나서야 목운요에게 시선을 옮겼다. 목운요는 눈에 옅은 웃음을 띠고 있었다.
“다녀왔구나. 그간 별일은 없었고?”
“별일 없었습니다. 괜한 걱정을 끼쳐 드렸네요.”
“사실 시누를 걱정했지. 요 며칠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했으니 어서 가서 살펴봐라.”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부인의 안색을 보아하니 어머니에게 큰일은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를 돌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부인이 목운요의 손을 토닥였다.
“그게 무슨 말이니? 서로 돕는 건 당연한 거지.”
목운요는 미소 지으며 이부인에게 인사를 올린 후 제월각으로 향했다.
소청은 이미 제월각 입구에 나와 있었다. 목운요가 오는 것을 보자 그녀가 잰걸음으로 다가와 딸을 살폈다.
“이리 야윈 것을 보니 사냥터에서 제대로 밥도 못 먹었나 보다.”
목운요는 소청의 팔을 붙잡으며 애교 섞인 말투로 이야기했다.
“맞아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음식을 먹지 못하니 살이 빠져 버렸지 뭐예요? 앞으로는 어머니 곁에 꼭 붙어 있어야겠어요.”
“네가 가장 좋아하는 팔보반을 만들어 놨다. 어서 밥 먹고 푹 쉬자꾸나.”
“네, 어머니.”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숨 쉬기가 한결 편해진 것을 느꼈다.
밥을 먹고 쉬려고 하는데 금교가 와서 동원에서 소란이 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지금 이 시각에 무슨 소란? 무슨 연유로?”
“큰 아가씨가 아프신 걸 보고 대부인께서 속상하셨는지, 이부인께서 일부러 큰 아가씨를 각박하게 대했다고 나무라셨습니다. 이부인께선 당연히 이에 동의하지 않으셨고, 노부인을 찾아가서 공정한 판단을 요구하셨죠. 그래서 영화원까지 일이 번지고 말았습니다.”
목운요가 빙긋 웃었다.
“우리가 관여할 필요 없으니 대문을 닫아요. 난 좀 쉬어야겠어요.”
“네, 소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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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목운요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소청과 함께 노부인에게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하지만 어제 늦은 밤까지 언쟁이 이어진 탓에 노부인은 두통 때문에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목운요는 영화원 대문 앞에서 걱정스럽게 말했다.
“온 마마, 외할머니를 잘 보살펴 주세요. 두통이 계속되면 태의를 부르는 게 나을 겁니다.”
“노부인께 그리 전하겠습니다.”
온 마마는 방 안으로 돌아가서 노부인에게 목운요의 말을 전했다.
노부인은 줄곧 눈을 감은 채 마음을 진정시키다가 노기 띤 눈을 떴다.
“문원을 불러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