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화 모함을 당하다
월왕의 말하는 기세가 범상치 않자 황제의 눈에 복잡한 심경이 스쳤다.
“누군가 모함했다고?”
“그렇습니다. 황자인 저에게 맹한동을 괴롭히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는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그를 죽이려 했겠습니까?”
맹습은 다소 얼떨떨한 얼굴이었다. 월왕의 떳떳한 주장에 말문이 막혔다.
“황상, 이건 근거 없이 꾸며 낸 말에 불과합니다. 한동의 몸에 박힌 화살이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증거입니다! 사건의 판결에는 근거 없는 말보다 증거가 우선시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황제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갑자기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황상, 소인이 할 말이 있습니다.”
“네가?”
황제의 깊은 두 눈에 알 수 없는 감정이 스쳤다.
“소인은 현장에 있었던 유일한 증인이지요.”
“그럼 말해 보아라. 무엇을 증명할 수 있느냐?”
“소인이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월왕 전하의 결백함입니다.”
막사 안의 분위기가 점점 더 무거워졌다. 그러나 목운요는 전혀 당황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증거는?”
“증거는 맹한동의 몸에 있습니다.”
목운요가 손을 들어 맹한동의 시체를 가리켰다.
“가슴에 박혀 맹한동을 죽인 저 화살은 등 뒤에서 날아온 것입니다. 단 한 발로 깔끔하게 죽였지요. 다른 두 곳은 모두 정면에서 쏜 화살로 생긴 상처입니다. 태의가 보면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맹습이 반박했다.
“한동은 월왕 전하의 살의를 느끼고 몸을 돌려 달아났을 겁니다. 설마 월왕께서 죽이려고 하시는데 멀뚱히 제자리에 서 있었겠습니까? 가슴에 꽂힌 화살은 도망칠 때 쏜 게 분명합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하시는 걸 듣자 하니, 맹 대인께서 직접 보신 것 같습니다?”
“그저 추측한 것이지, 직접 본 건 아니오.”
“대인께선 방금, 사건의 판결은 증거가 우선이며 근거 없이 꾸민 말은 무의미하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목운요는 맹습의 말을 그대로 인용해 돌려주었다.
“저는 현장에 있었던 증인입니다. 제 말은 직접 본 것에 근거한 것이지요.”
맹습이 화가 나 이를 악물었다.
“네, 네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어찌 아느냐?”
그 순간, 이황자 유왕이 서둘러 걸어왔다.
“부황을 뵙습니다. 사황자의 결백함을 밝혀 줄 증거를 찾았습니다.”
황제가 고개를 들었다.
“그게 무엇이냐?”
이황자 유왕은 황급히 손에 든 상투관을 서립에게 전했다.
“부황, 이 상투관은 맹한동의 것으로, 화살에 맞아 조각났습니다. 순금으로 만들어져 화살 자국이 남아 있지요. 하오니 부황께선 부디 이 화살과 맹한동을 쏴 죽인 화살이 같은 것인지 확인해 주십시오.”
목운요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당시 월왕은 총 세 발의 화살을 쐈다. 첫 번째 화살은 맹한동의 상투관에 꽂혀 그를 다치게 하진 않았다. 그런데 가슴에 꽂힌 화살이 하나 더 나오다니? 분명히 상투관을 망가뜨린 화살을 가져다 꾸민 것이 틀림없었다.
황제는 상투관의 화살 자국과 맹한동의 몸을 쏜 화살을 대조하라고 명했다. 얼마 안 가 바로 결과가 나왔다.
“황상께 아룁니다. 상투관의 화살 자국이 맹한동의 가슴에 꽂힌 화살과 일치합니다.”
맹습은 그래도 믿지 않았다.
“황상, 화살은 거기서 거깁니다. 어찌 자국 하나로 진상을 밝힌단 말입니까?”
그에 유왕이 맹습을 비웃었다.
“맹 대인은 문신이라 화살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구려. 화살촉은 철로 만들어져 끝이 날카롭지만 그만큼 약하기도 하오. 순금으로 만들어진 상투관을 맞혔다면 반드시 부러지거나 망가지게 돼 있소. 조사해 보니 맹한동의 가슴에 꽂힌 화살촉은 망가진 상태였고, 어딘가에 꽂혔던 자국이 남아 있었소. 이래도 사황자가 맹한동을 죽였다고 말한다면 맹 대인은 지금 황자를 모함하는 대역죄를 저지르는 거요.”
“소신이 어찌 그러겠습니까? 전 그저 제 아들이 누군가의 손에 죽어 당황스러울 뿐입니다. 부디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다만 저는 상투관을 부순 화살을 전하께서 다시 주워다 제 아들에게 쏘셨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맹습은 여전히 단념하지 않았다. 그는 제 아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낼 수 없었다.
그때,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맹 대인, 월왕 전하의 화살통엔 수많은 화살이 들어 있습니다. 전하께서 아드님의 상투관을 맞힌 뒤 굳이 아드님께 달려가 떨어진 화살을 주워 왔다가, 다시 먼 곳까지 달려가 아드님께 활을 겨눴다는 겁니까?
유왕이 차갑게 웃었다.
“분명히 누군가가 넷째의 표식이 있는 화살로 넷째를 모함에 빠뜨린 것이오. 화살촉에 실마리가 남아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겠지. 맹 대인은 자꾸 월왕을 걸고넘어지는데, 대체 누구의 명을 받든 것이오?”
맹습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황상, 부디 소상히 살펴 주십시오. 소신이 어찌 월왕 전하를 모함하겠습니까? 정말 당치도 않은 말입니다. 무엇보다 제 아들을 이렇게 허망하게 잃을 순 없습니다.”
“잊을 뻔했군요, 부황. 최근 맹한동은 황궁 앞에서 목 소저의 말을 죽이며 아주 건방을 떨었습니다. 그때는 속히 사냥터로 가야 해서 맹한동에게 죄를 묻지 않았으나, 그 속이 얼마나 지독하던지 환관을 매수하여 고의로 목 소저의 막사를 가장 외진 곳에 배정하고, 그것도 모자라 맹언연과 결탁하여 목 소저의 막사에 독사를 풀었습니다. 대체 그런 버르장머리는 누구에게 배운 것인지 모르겠군요! 게다가 까닭 없이 월왕을 향해 화살을 날리기까지 했으니, 내일은 부황과 고모님을 모함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입니다.”
유왕의 말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맹습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황상, 한동은 원래 제 분수를 알고 행동하던 놈이었습니다…….”
“허?”
유왕의 두 눈은 비웃음을 띠고 있었다.
“맹 대인은 그렇게 말하는 게 찔리지도 않소? 맹 태사의 손자들이 제멋대로 군다는 사실은 온 조정에 모르는 사람이 없소. 그런데 맹한동이 분수를 알고 행동했다고? 정말 지나가던 개가 웃을 얘기군.”
“군유, 무례하다.”
황제가 입을 열었다.
그러나 유왕의 분노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부황, 너무 화가 납니다. 맹씨 가문은 정말 해도 너무하는 것 아닙니까? 어제는 맹언연이 넷째를 버림받은 황자라며 조롱했고, 목 소저에게는 악담을 퍼부었습니다. 어찌 되었든 목 소저는 십만 냥을 경릉성의 백성에게 기부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맹씨 가문 사람들은 입을 열었다 하면 아주 천박한 말만 내뱉으며 더러운 악행을 저질렀습니다. 그렇게 고귀하고 잘난 사람들이 어찌 백성의 이익을 생각하진 않는 겁니까?”
목운요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는 옅은 웃음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유왕에게 이런 말솜씨가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예전에 들은 바로 유왕은 격식에 구애받지 않고 가식 없이 행동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데 목운요가 보기에는 그뿐만 아니라 어떤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빈틈없는 사람이었다.
월왕은 황제에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부황, 부디 소자의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황제는 잠시 침묵하더니 명을 내렸다.
“이번 일은 형부로 넘겨 책임지고 조사하라 명하겠다. 맹습, 다른 의견이 있소?”
“소신, 황상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더 입을 놀렸다간 온 맹씨 가문이 이번 일에 휘말릴 것이 뻔했다. 그저 황상의 뜻에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물러가시오.”
많은 이가 자리에서 떠나자, 황제는 그제야 참지 못하고 미간을 구겼다. 극심히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옆을 지키던 서립이 조심히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
“황상, 장공주 전하께서 오늘 점심을 함께 들자고 하셨습니다.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 * *
식사 준비를 마친 장공주는 황제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안 그래도 황상을 모셔 오라고 사람을 보내려던 참이었어요. 밖이 떠들썩한 것 보니 무슨 일이 생긴 것 같군요.”
황제가 탁상 근처에 자리 잡자 시녀가 손 씻을 물을 내왔다. 그는 간단히 손을 씻은 뒤, 손을 휘휘 저으며 궁인들을 모두 물렸다. 누이인 장공주와 둘이 남게 된 후에야 황제는 입을 열었다.
“맹씨 가문의 손자 맹한동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월왕에게 누명을 씌웠습니다.”
“넷째가 황상의 총애를 받지 않으니 몇몇 사람들의 눈에 만만한 존재가 되었나 보군요.”
장공주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군월은 과묵할 뿐이지, 마음씨 좋고 통찰력도 있는 아이잖습니까? 요 며칠 누군가가 조용히 움직이고 있는 걸 보면 꽤 마음이 조급한 모양이군요.”
“누님, 그 말은…….”
황제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고, 두 눈에는 온갖 감정이 얽히고설켰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맹습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월왕이 이런 방법으로 맹한동을 죽일 리 없기 때문이다. 다만 뒤에서 움직이는 누군가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답답했다.
장공주는 젓가락을 들어 황제에게 반찬을 올려 주며 한탄했다.
“아이들이 다 컸으니 황상도 생각을 넓게 가지세요. 황상은 황실 싸움을 직접 겪어 보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의좋은 형제라도, 보위를 앞에 두고는 서로를 죽이려 드는 법입니다.”
“누님, 저는 제가 직접 골육상잔(骨肉相殘, 가까운 혈족끼리 서로 해치고 죽임)을 겪었기에, 아이들의 사이가 좋길 바랍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줬죠. 모두 똑같이 대하고 있으니 서로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각자의 도리만 잘하면 그중에서 보위에 가장 적합한 자식을 후계자로 삼을 생각입니다.”
장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어디 세상사가 마음대로 된답니까? 언제나 악한 마음을 가진 자가 있지요. 다행히 이번에는 큰일이 없었으나 항상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황제의 눈빛이 단호하게 변했다.
“맞습니다. 이번 일로 혈육에게 칼을 들이밀 조짐이 보이니 즉시 그릇된 행동을 잡아야 합니다. 짐의 아들들에게도 골육상잔이 일어나선 안 됩니다.”
바로잡아야겠다는 결정을 내리자 황제의 심사는 금세 안정을 되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