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6화 황제의 분노
“대체 어디 있다는 것이냐?”
‘이것이 우리 맹씨 가문을 망치려고 작정을 했나! 감히 황상 앞에서 소란을 피워? 혹 첩자나 자객으로 몰려 버리면 맹씨 가문 전체가 연루될 것이다!’
그 와중에도 맹언연은 뱀을 털어 내겠다며 쉴 새 없이 몸을 흔들었다. 심지어 체면도 내팽개치고 제 옷을 갈기갈기 찢기 시작했다.
“뱀이 제 몸에 올라왔다고요! 아버지, 살려 주세요! 빨리요!”
차갑고 미끌거리는 감촉이 온몸을 뒤덮자, 맹언연은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너……! 어서 체통을 지키지 못해?”
맹우가 냉큼 맹언연을 끌어당겼지만, 그녀는 자신을 도우려는 부친을 힘차게 뿌리쳤다.
수군거리는 주위의 소리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맹언연의 추태를 구경했다.
황제의 얼굴에는 불쾌함이 보였다. 그는 말도 섞고 싶지 않아 곧장 맹언연을 끌고 가라 명했다. 그러나 맹언연이 옷을 찢어 단정하지 못한 상태라 시위들도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그사이 맹언연은 등으로 기어가던 뱀을 흔들어 떼어 냈다. 땅에 떨어진 새끼 뱀이 계속해서 맹렬한 기세로 자신에게 붙으려고 하자, 맹언연은 고성을 지으며 뱀의 머리를 짓밟아 죽였다.
맹우의 난처한 얼굴이 최고조에 달했다. 맹우는 앞으로 나가 그녀의 뺨을 내리쳤다.
짝-!
“제정신이냐? 어서 황상께 고개 숙여 사죄하지 못해? 황상, 이게 다 딸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소신의 잘못입니다. 부디 벌하여 주십시오.”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불쾌함을 참으려 애썼다.
“그대의 관직을 한 등급 내리겠소. 어서 여식을 데리고 가시오.”
사냥터에 누님이 있었기에 더 이상 저녁 연회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맹언연이 홱 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뱀에 대한 공포심에서 벗어나자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것이었다.
오만함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지만, 자신이 그럴 수 있는 건 모두 가문 덕분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지금 이렇게 끌려간다면 앞으로 서릉에 발붙이고 살기 쉽지 않을 터였다.
“황상, 부디 소상한 조사를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저를 위험에 빠뜨리려고 고의로 제 옷에 뱀을 넣었습니다.”
황제는 손을 내저으며 금위군에게 말했다.
“데려가라.”
“황상, 목운요의 짓입니다! 오늘 목운요의 막사에 독사 두 마리가 기어오르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뱀 모으는 걸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목운요가 세 치 혀로 제게 겁을 줬습니다. 공교롭게도 제 옷에서 뱀이 나타났으니 목운요가 한 짓임이 틀림없습니다!”
맹언연의 말이 끝나자 많은 이의 시선이 목운요에게 향했다.
“맹 소저, 왜 또 저를 괴롭히시는 건가요?”
시선을 한 몸에 받았지만 목운요는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이 평온하기만 했다.
황제는 기분이 좋지 않았으나, 꽤 맹랑하게 구는 목운요를 보니 이상하게도 짜증이 줄어들었다.
“목운요, 맹언연이 너를 괴롭혔다고 하였느냐?”
“네, 폐하. 저는 오늘 오후 내내 막사 안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그러다 연회가 시작하기 바로 전에 맹 소저를 만났죠. 그사이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 맹 소저의 옷에 뱀을 넣었겠습니까?”
주위 사람들이 하나둘 입을 열었다.
“그건 저도 증명할 수 있습니다. 목 소저는 오후 내내 막사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죽은 뱀도 아니고……. 목 소저가 정말 뱀을 풀었다면 맹 소저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단 게 말이 됩니까?”
“맞는 말입니다. 설마 맹 소저가 따귀 맞은 것을 마음에 담아 뒀다가 복수하려는 걸까요?”
사람들의 분분한 의견을 듣던 목운요는 고개를 돌려 정말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맹언연을 바라봤다.
“예전에 맹 소저를 때리라고 허락하신 분은 황상이십니다. 그때 따귀 맞은 것을 아직도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다니……. 그건 황상께 불만을 품었다는 뜻 아닌가요? 정말 겁도 없군요.”
맹언연은 화가 나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그녀는 목운요를 향해 달려가 손을 휘둘렀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치는 사이, 한 인영이 빠르게 다가와 맹언연을 걷어찼다.
맹언연은 그대로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공중에 떴다 땅으로 떨어진 맹언연은 피를 토해 냈다.
사람들은 물론, 황제 역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눈을 크게 떴다.
목운요도 제 앞을 가로막은 커다란 그림자를 넋 놓고 바라봤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진정이 되지 않았다. 가슴속에 토끼 한 마리가 있는 것 같았다. 콩콩콩콩,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맹언연을 걷어찬 사람은 다름 아닌 월왕이었다. 월왕은 목운요의 앞을 가로막고 서서 살을 엘 것 같은 차가운 눈빛으로 맹우를 쏘아봤다.
“여식이 황상의 앞에서 포악하게 구는 것을 그냥 두다니, 맹씨 가문은 간덩이가 부은 겁니까?”
맹우는 냉큼 바닥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황상, 소신이 죄를 지었습니다. 언연은 예전부터 종종 광증을 보였습니다. 기분 전환이라도 하라며 사냥터로 데리고 나온 것이었는데, 병이 더 심해질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부디 소신을 벌하여 주십시오.”
이런 상황에선 차라리 딸인 맹언연을 희생시키는 게 나았다. 월왕이 맹씨 가문에 죄를 묻게 해선 안 됐다.
발버둥 치다 몸을 일으킨 맹언연은 아버지 맹우의 말을 듣고 미치광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제가 어디가 아픕니까? 전 아주 멀쩡합니다! 왜 다들 저 빌어먹을 목운요를 감싸고 도나요?! 저 계집은 그냥 촌년일 뿐입니다! 맹씨 가문의 여식인 제가, 목운요 하나도 건드리지 못한답니까?”
이번에는 월왕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무릎 꿇고 있던 맹우가 빠르게 일어나 맹언연의 가슴께를 발로 걷어찼다.
“이런 불효자식! 어서 목 소저에게 사과하지 못해?!”
맹언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맹우를 바라봤다. 계속 차이다 보니 누구에게든 화를 풀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왜요! 왜 사과해야 합니까? 제가 틀린 말을 했나요? 목운요는 대체 뭐가 그리 잘나 사냥터에서 남자를 홀린답니까? 아버지! 뭐가 두려우세요! 월왕이 두려우세요? 월왕은 황상께 버림받은 황자에 불과합니다. 비천한 시골 출신 촌년과 버림받은 황자가 눈이 맞다니, 아주 끼리끼리 잘 만났습니다!”
“그 입 다물라!”
황제가 돌연 손에 든 술잔을 던졌다. 황제의 눈에서 높은 산과 같은 위용이 뿜어져 나왔다.
순간 사냥터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황제 폐하, 고정하소서!’를 외쳤다.
그제야 맹언연은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황제는 자리에서 성큼성큼 걸어 내려와, 맹언연의 눈을 노려보았다.
“황실을 모욕한 죄로 맹언연에게 사약을 내린다! 맹우는 관직을 파면하고 오 년 동안 채용을 금할 것이다. 자녀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자에게 어찌 안심하고 조정 대사를 맡기겠느냐? 너희는…….”
“황상.”
장공주가 격노한 황제를 말렸다.
“즐거운 저녁 연회에서 그리 화를 내실 필요가 있습니까? 오늘은 군신이 함께하는 자리인 데다 신하들의 여식들까지 모였는데 서로 그 기쁨을 나누어야지요.”
황제는 가슴에 들끓는 분노를 억누르며 금위군에게 맹언연과 맹우를 데리고 가라 손짓했다.
“황상, 저자들은 신경 쓰지 말고 연회를 계속합시다.”
장공주는 월왕과 목운요를 흘긋 바라본 뒤, 손짓으로 그들도 물러가도록 했다.
비록 장공주가 황제를 말렸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전전긍긍했다. 혹시라도 입을 잘못 놀려 황상의 분노를 살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신하들이 땀을 뻘뻘 흘리며 사냥감 이야기를 이어 가자, 황제는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래, 소청오가 이등을 했다고?”
소청오가 황급히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다.
“대인들께서 모두 양보해 주신 덕택입니다.”
“짐의 기억으론 네 검술도 훌륭했지. 오늘 모처럼 그 솜씨를 좀 보여 다오.”
이에 소문원과 대부인의 눈빛이 동시에 반짝였다. 근래 소씨 가문에 냉담했던 황제가 여전히 소청오를 신임하는 모습을 보니 크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소청오는 옆에 있던 금위군에게서 장검을 받아 들고 황제와 장공주에게 인사를 올렸다.
“그럼 부끄러운 솜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검술에 조예가 깊은 소청오는 한 동작, 한 동작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검을 다뤘다. 밤의 불빛 아래에서 마치 용이 헤엄치듯, 손안의 장검이 닿는 곳마다 은빛이 번쩍거렸다.
사람들은 감탄사를 연발하며 으뜸이라고 칭찬했다.
황제 역시 무척 흡족한 얼굴이었다. 조금 전 불쾌했던 기억은 잠시 잊은 듯했다.
“훌륭하구나.”
그때, 육공주 영회양(宁淮阳)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눈을 반짝였다.
“부황, 저도 요즘 무예를 가르쳐 주시는 스승님이 계셔서 몇 수 배우고 있는데, 소 대인과 겨뤄 보고 싶습니다.”
“네가?”
황제는 웃음을 머금으며 고개를 저었다.
“네 어설픈 솜씨를 가지고 소청오를 난처하게 하지 말거라.”
“저는 황상의 딸 아닙니까? 왜 소 대인의 편만 드시는 겁니까? 제가 겉만 번지르르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부황께 보여 드리겠습니다.”
황제는 육공주를 매우 총애했기에, 그녀가 이렇게 완강히 고집을 피우니 어쩔 수 없었다.
“소청오, 육공주와 검술 두 수만 겨뤄 보아라.”
“네.”
중앙 공터에 선 소청오는 수비만 하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육공주가 장검을 멋대로 휘두르는 바람에, 억지로 맞춰 주기 귀찮았던 그는 간단히 육공주의 장검을 옆으로 떨어뜨리곤 인사를 올렸다.
“소신이 실례를 범했습니다. 공주께서 용서해 주십시오.”
그러나 육공주는 되레 볼이 발그레해진 채 윗자리로 쿵쿵 올라가더니 황제의 곁에 섰다.
“부황, 앞으로 소 대인께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소청오는 일등 호위이다. 네게 장단을 맞춰 줄 사람이 아니야.”
육공주는 황제의 강건한 말투에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사냥터에 있는 동안만 검술을 배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요 며칠은 처리할 공무도 없지 않습니까.”
황제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건…….”
“부황께선 저를 제일 예뻐하지 않으십니까? 제가 무예를 잘 연마한 다음, 솜씨를 발휘해서 셋째 오라버니를 이기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황제는 웃음이 나왔다.
“아주 열정이 대단하구나. 좋다, 허락하마. 가을 사냥이 끝날 때까지 토끼 한두 마리를 잡을 수 있다면 네 노력을 인정하겠다.”
육공주의 볼에 띤 홍조가 더 짙어졌다.
“지켜봐 주십시오. 반드시 열심히 배워서 부황께서 저를 우습게 보지 않도록 할 테니까요!”
연회는 평온하게 마무리되었다. 그 누구도 맹언연과 맹우를 언급하는 자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