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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14화 (214/442)

214화 막사 배정

“맹 공자님 말이 맞습니다. 때때로 짐승과는 합리적인 말이 통하지 않지요.”

맹한동이 고개를 끄덕이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녀의 말을 곱씹어 보던 맹한동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짐승과는 합리적인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지금 내가 짐승이라는 것인가?’

순간 유왕이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목운요를 바라보는 눈빛에 호기심이 스쳤다.

“목 소저, 마차에서 내릴 수 있겠소?”

말의 피가 땅에 흥건해서 마차에서 내리면 목운요의 신발과 치맛자락이 더러워질 게 뻔했다. 게다가 옷을 갈아입을 시간도 없기에 난감한 일이었다.

그때, 목운요가 사서를 향해 고개를 살며시 끄덕여 보였다.

이에 사서가 마차에서 기다란 발판을 들고나와 바닥에 내려놓았다. 목운요는 발판 위를 가볍게 걸어 깨끗한 바닥 위로 사뿐히 착지했다.

착지할 때 치맛자락이 휘감기는 모습에 사람들은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유왕도 내심 놀라는 기색이었다.

목운요에 대한 호감이 올라가자 자연스레 맹한동은 밉살스럽게 보였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여인이 탄 마차의 말을 죽이고 땅에 피칠을 하다니, 실로 도량이 좁아 보였다.

“맹한동, 감히 황궁 앞에서 무기를 휘둘러 주위를 피바다로 만든 것이오? 서둘러 바닥을 깨끗이 치우고 정돈하시오. 만약 그대 때문에 시간이 지체된다면 필시 죄를 묻겠소.”

맹한동은 순간 멍해졌다가 황급히 두 손을 모아 용서를 구했다.

“소인이 잠시 경솔했습니다. 전하,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제가 사람을 시켜 깨끗이 정리해 놓겠습니다.”

유왕은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그 눈엔 호감이 엿보였다.

“목 소저, 혹시 다른 도움은 필요 없소?”

“감사하지만 이미 하인을 시켜 방법을 강구해 놓았습니다.”

목운요의 거절에 유왕은 아쉬움을 표했다.

“알았소. 여기서 사냥터까지 하루 정도 걸리니 만약 도움이 필요하면 사람을 보내시오.”

맑은 눈빛을 가진 유왕의 얼굴을 보니 목운요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전하, 감사합니다.”

“그럼 나는 다른 일이 있어서 먼저 가 보겠소.”

“안녕히 가십시오.”

맹한동은 그런 두 사람을 이글거리는 눈으로 노려보다, 하인들을 시켜 바닥의 핏자국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그가 별안간 말을 죽인 것은 목운요에게 망신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목적을 달성하기는커녕 외려 유왕의 화를 사게 되었다.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꼴이었다.

만약 맹 태사가 오늘 일을 알게 된다면 당장 맹한동을 끌고 가서 사당에 무릎을 꿇릴 터였다.

목운요가 조소를 머금는 사이, 좀 전과 똑같은 마차가 도착했다.

육냥이 마차에서 뛰어내려 목운요에게 인사를 올렸다.

“주인님,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

그때, 나팔 소리가 울렸다. 떠들썩하던 사람들이 분분히 마차에 오르더니 사냥터로 갈 채비를 했다.

목운요도 마차에 타려다가 불현듯 고개를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월왕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살짝 실망감이 들었다.

* * *

사냥터는 서릉과 기주(冀州)의 접경지에 있었다. 숲이 우거져서 산수가 수려했고 규모가 매우 컸다.

온종일 이동하느라 사람들은 다소 지쳐 있었다. 날도 이미 어둑해져서 다들 배정된 막사 안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목운요의 막사는 가장자리에 배정되어 있었다. 마구간과 가까워서 수시로 말 울음소리가 들렸고 냄새도 무척 고약했다.

금란과 사서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소저, 여기는…….”

목운요가 대답하려는 찰나, 뒤에서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동생의 막사가…….”

고개를 돌려보니 장완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장완 언니를 뵙습니다.”

장완은 목운요에게 다가와서 손을 잡았다.

“동생과 자주 보진 못했지만, 우린 벗과 같은 사이잖아요? 모처럼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으니 오늘 같이 자는 게 어때요?”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한데 그때였다. 맹언연이 시녀를 데리고 득의양양한 얼굴로 걸어왔다.

“이번 사냥에 참여하는 여인들이 많아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멋대로 막사를 바꾸는 건 금지되어 있습니다. 각자 신분에 맞게 위치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목 소저의 포부가 높은 건 좋지만 터무니없이 높기만 하면 운명이 박한 법입니다. 나쁜 일이 생길 수도 있다고요.”

장완이 뭔가 말하려 했지만 목운요가 손을 뻗어 막았다.

“조언 감사드립니다. 장완 언니, 호의는 감사하지만 마음대로 막사를 바꿀 수 없다고 하니 저는 그냥 여기서 자도록 할게요.”

맹언연은 손수건을 꺼내 코와 입을 막았다.

“이곳 냄새가 참으로 지독하네요. 장완 언니, 계속 이런 사람과 같이 다닌다면 고약한 냄새가 언니한테까지 옮을 겁니다.”

“맹 소저, 말씀 다 하셨으면 이만 가시지요. 지독한 이곳 냄새가 소저의 몸에 배면 안 되지 않습니까?”

장완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 유순한 성격의 장완이 이런 말을 했다는 건 정말로 화가 났다는 뜻이었다.

맹언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장완의 앞으로 걸어갔다.

“다른 사람도 언니와 성격이 비슷할 거라는 어리석은 생각은 마십시오. 실은 언니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려는 것뿐이니까요. 예를 들면, 청오 오라버니처럼 말이죠.”

장완이 의아해서 고개를 들었으나 맹언연은 훗, 하고 웃으며 몸을 돌리고 떠날 뿐이었다.

장완은 목운요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맹 소저의 말은 한 귀로 흘리세요. 분명 예전 일로 원한을 품은 거예요. 막사를 바꾸면 안 된다는 말은 들어 본 적도 없습니다. 어서 가요.”

목운요가 빙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언니께는 감사하지만 전 여기에 머무를게요. 맹 소저가 다시 성가신 소란을 피우는 건 싫으니까요. 밤이 늦었습니다. 어서 돌아가 보세요.”

“그렇지만…… 알겠어요.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시녀를 보내 알려 주세요.”

장완이 떠나자 목운요의 입가에 걸린 웃음기가 다소 옅어졌다.

그사이 금란은 막사의 냄새를 없애려 향을 꺼내 들었고 사서는 짐을 풀고 침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막사를 이런 곳에 배정하다니, 소저를 일부러 못살게 굴려는 게 분명합니다.”

“난 여기보다 더한 곳에서도 살아 봤어요. 그러니 불평할 게 뭐가 있겠어요? 다들 어서 쉬어요. 내일 새벽부터 일어나야 하니까.”

밤이 깊어지고, 금란과 사서는 푹 잠들었다.

반면 목운요는 쉬이 잠들지 못했다. 감각이 남들보다 예민한 편이라 냄새 때문에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게다가 아까 마차에 부딪혀 다친 손등도 화끈거려서 자신도 모르게 눈썹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날이 밝고 나서야 겨우 얕은 잠에 들 수 있었다.

* * *

“소저,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어젯밤에 제대로 주무시지 못하신 거죠?”

금란이 목운요의 머리카락을 빗으며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목운요는 미간을 어루만지더니 쓴웃음을 지었다.

“검소한 사람이 사치하기는 쉽지만, 사치하는 사람이 검소해지기는 어렵다죠. 난 이런 곳에 익숙한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봐요.”

그때, 사서가 무심결에 목운요의 손등을 보더니 찬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손의 상처가 어찌 이리 심하십니까?”

목운요는 제 손등을 쳐다봤다. 손등이 온통 벌겋게 부어올랐고, 시퍼런 멍까지 남아 있었다.

“보는 것처럼 아프진 않아. 다만 멍이 빠지는 데 며칠이 걸리겠구나.”

금란은 점점 마음이 아파졌다.

“소저께서 이런 푸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잖습니까!”

목운요는 작게 미소 지었다.

“괜찮아요. 오늘은 가을 사냥이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날이니 어서 가죠.”

* * *

황제는 갑옷을 입고 큰 활을 든 채 위엄 넘치는 모습으로 단상에 서 있었다. 나이가 지긋했지만, 행동 하나하나에도 짙은 위압감이 느껴졌다.

“이번 가을 사냥에서 우승하는 자에겐 짐이 큰 상을 내리겠소!”

“황상 만세, 만세, 만만세!”

하늘을 뒤흔들 듯한 소리를 들은 황제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단상에서 내려와 손에 쥔 활을 하늘 높이 들며 장공주에게 소리 높여 말했다.

“누님, 사슴을 잡아 와 사슴 고기를 대접하겠습니다!”

장공주는 웃으며 황제에게 손을 흔들었다.

“이제 나이도 있으니 이기려고만 하지 마시고, 아랫사람들에게도 기회를 좀 주세요. 언제나 조심하시고, 시위들에게 바싹 따라붙으라 하시고요.”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상대방이 자신에게 저주를 퍼붓는다고 생각했을 터였다. 하지만 그 말을 한 사람이 장공주인 터라 황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적당히 즐기다 오겠습니다.”

장공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황제는 몸을 돌려 말 위에 올라타며 황자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너희 중 누가 짐과 겨뤄 보겠느냐?”

“부황, 저와 넷째가 가겠습니다!”

유왕이 말을 타고 앞으로 나가며 황자 무리 중 가장 끝에 있는 월왕을 돌아보았다.

“넷째야, 어서 와라. 오늘 사냥에서 우승하면 부황께서 상을 주신다고 하시잖느냐?”

“저는 사냥에 영 소질이 없으니 형님만 가십시오.”

월왕은 고개를 저었다. 부황께선 자신이 사냥에 참여하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었다.

황제는 그런 월왕을 한번 쳐다보더니, 힘차게 말고삐를 당겼다.

“이랴!”

천둥 같은 말발굽 소리, 검이 부딪히는 소리와 화살이 날아다니는 소리, 함성이 울려 퍼졌다. 그 소리에 숲속에 있던 새들이 놀라서 푸드덕거리며 하늘로 날아올랐다.

목운요는 먼발치에서 월왕을 바라봤다. 그는 정신없고 떠들썩한 사냥터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 같았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 보였다.

이내 한참 흥이 난 황제가 말을 타고 돌아왔다. 뒤따르는 시위의 손에는 수사슴 한 마리가 들려 있었다. 사슴은 눈에 화살을 맞고 죽은 듯했다.

장공주는 만면에 웃음을 띠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먹을 복이 있나 보군.”

황제의 사슴 사냥이 끝나자, 사냥터의 분위기는 부드럽게 변했다. 기마에 소질이 있는 몇몇 소저는 온순한 암말을 골라 사냥터 주위를 유유히 맴돌았다.

목운요도 외진 곳으로 걸어가 자리를 잡았다.

금란과 사서는 얼른 모포를 가져와 바닥에 깔았다.

“소인들이 지키고 있을 테니 푹 쉬십시오.”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자 목운요는 입을 가리고 작게 하품했다. 그녀는 눈을 감고 잠시 쉬기로 했다.

그렇게 목운요가 잠에 빠질 무렵, 갑자기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다. 살며시 눈을 뜨니, 늘씬한 인영이 후광을 등진 채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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