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211화 (211/442)

211화 살고 싶어요!

“내가 우를 임신했을 때부터 태아의 상태가 불안정했단다. 출산까지 정말 쉽지 않았어. 낳고 나서도 우는 몸이 허약하고 병치레가 많았지. 그래서 지금껏 마음을 졸이지 않은 날이 없었단다…….”

돌연 이부인은 말을 삼켰다. 말을 이어 가다 보니 갑작스레 짙은 안개가 걷히고 검은 진창이 드러난 것 같았다.

“운요야, 무슨 의중으로 한 말이냐?”

목운요는 소우의 손목을 가볍게 짚어서 자세히 진맥했다.

“사실 연약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밭농사를 짓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린 모종을 심을 때 가뭄과 홍수를 겪으면 누렇게 마르지요. 하지만 정성껏 돌보다 보면 튼튼하게 자라기 마련입니다.”

“그럼 왜……? 왜 우리 소우는……?”

이부인은 점점 몸을 떨며 말을 잇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추측되는 바가 너무 끔찍해서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경련이 일어났다.

“운요야, 어서 말해 보거라. 대체 뭘 알아냈느냐?”

목운요는 소우의 손목을 내려놓더니 이부인에게 눈짓했다. 두 사람은 함께 건넛방으로 향했다.

“일전에 소우 언니와 만났을 때 무심결에 언니의 맥을 짚은 적이 있습니다. 진맥해 보니 몸이 허약한 것은 선천적으로 기력이 약한 탓도 있지만, 잘 치료하지 못한 원인이 더욱 컸습니다. 오히려 약을 너무 많이 먹어서 약의 독성이 체내에 많이 축적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언니의 허약한 체질이 감당하지 못한 것입니다.”

“약의 독성?”

이부인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목운요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 말이 다 사실이냐?”

“제가 의술을 안다는 게 모두 드러났으니 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부디 제 말을 믿으시고 제 당부대로 언니를 보살피셨으면 해요.”

이부인은 이를 악물며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널 믿으마. 오늘 이후로 네가 말하는 대로 따르겠다!”

“오늘부터는 언니가 마시던 탕약을 끊게 하셔야 합니다. 약에서 반하(半夏, 천남성과의 여러해살이풀) 냄새가 났는데, 가공을 거치지 않은 향이었습니다. 날것 그대로의 반하는 독성이 있어 보통 사람도 견디지 못하는데 소우 언니에겐 어땠겠습니까?”

“반하…….”

병을 오래 겪으면 의원이 다 된다는 말이 있듯, 이부인도 반하를 알고 있었다. 의원은 소우의 기침과 가래가 심해서 약에 가공한 반하를 넣어 치료한다고 했다.

“운요야……. 정말 틀림없는 것이냐? 내, 내가 못 믿는 것이 아니라, 가공하지 않은 반하에 독이 있다는 것은 의원도 아는 사실인데…….”

“분명히 약에 생반하가 들어 있었습니다. 약을 달인 찌꺼기를 약방에 들고 가서 모른 척 물어보시면 알 수 있을 거예요.”

“어찌……! 모두 최고급 약재들로 샀는데, 어찌 생반하를 섞었단 말이냐?”

이부인의 눈에서 원한의 빛이 스쳤다.

“우는 여자아이에다 건강하지도 못한데…… 어찌 집안에 이런 우를 견제하는 사람이 있단 말이냐?”

목운요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다.

“저도 그 점이 정말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이부인은 넋이 나간 채로 의자에 앉았다. 창백해진 안색이 어두운 분위기를 뿜었다.

그때, 옆방에서 소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부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우의 방으로 향했다.

소우는 정신을 차리고 깨어나 있었다. 이부인을 보는 소우의 눈에서 슬픔이 묻어났다.

“어머니, 걱정시켜 드려 죄송해요…….”

“금방 일어나서 목이 불편할 텐데, 어서 따뜻한 물을 마시거라.”

소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옆에 있는 목운요를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동생도 오니 참 좋네요…….”

목운요는 조심스레 소우의 맥을 짚었다.

“약에 반하가 들어 있었지만, 많이 먹지 않고 토해 내서 이젠 괜찮을 거예요.”

“운요야, 잠시 나 좀 보자꾸나.”

이부인이 급히 목운요에게 눈짓했다. 소우가 이번 일을 모르길 바라서였다.

하지만 목운요의 생각은 달랐다.

“언니를 걱정하시는 마음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언니도 알아야 할 일은 알아야죠. 언니는 언제나 자기 몸이 너무 약한 탓에 외숙모와 외숙부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했고, 자신은 늘 귀찮고 성가신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을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도 약했어요. 살고자 하는 생각이 없으면 신선이 와도 살리지 못합니다.”

그에 이부인은 입을 틀어막으며 울음을 터트렸다. 이부인의 품에 안긴 소우는 끔뻑끔뻑 느리게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소우가 손을 뻗어 목운요를 당겼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이부인은 목운요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을 알려 줘도 좋다는 신호를 보냈다.

목운요는 침상 주변에 앉아 고요한 눈빛으로 소우를 바라봤다.

“언니의 몸이 이렇게 안 좋은 건, 누군가가 계략을 꾸몄기 때문이에요. 원래 아무리 약한 몸을 타고났어도 오랜 시간 몸조리를 했다면 평범한 여인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게 정상이에요. 지금의 언니처럼 생명이 위험할 정도로 약한 건 말도 안 돼요.”

순간 소우가 몸을 둥그렇게 말았다.

놀란 이부인은 빠르게 소우를 끌어안았다.

“우야, 왜 그래? 어디가 아프니?”

그러나 목운요는 소우를 이부인의 품에서 빼내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생하며 살아온 날이 얼마인데, 이깟 일도 못 견뎌요? 언니가 나약하게 굴면 세상 그 누구도 언니를 살리지 못해요!”

소우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몸은 덜덜 떨고 있었다.

“난 죽을 거예요…….”

“저를 믿으세요. 제가 반드시 살려 드릴게요!”

목운요는 침구통에서 은침 두 개를 꺼내 곧바로 소우의 명치에 있는 혈을 찔렀다.

소우는 가슴의 답답함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소우의 눈에 조금씩 빛이 돌기 시작했다.

“정말로, 날 살릴 수 있어요?”

“방금도 말씀드렸잖아요. 언니에게 살 의지만 있다면, 살 수 있게 돕겠다고요.”

그에 소우는 필사적으로 목운요의 팔을 붙잡았다. 얼마나 세게 붙들었던지 목운요의 팔에 손톱자국이 남고 피가 맺혔다.

“죽기 싫어요. 살고 싶어요! 계속 어머니와 아버지 곁에 있고 싶어요!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싶어요. 매일 나 때문에 인상 쓰시는 모습을 보기 싫어요. 혼인해서 가정을 꾸리고, 손자 재롱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죽기 싫어요. 살고 싶어요!”

목운요는 소우의 손을 잡았다.

“그럼 오늘 제게 한 말을 잊지 말아요. 어떤 상황이 와도 절대로 포기하지 말아요. 그럼 제가 언니를 살릴게요!”

소우의 두 눈에서 어두움이 걷히고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마치 깊고 어두운 밤중에 밝게 빛나는 등불 같았다.

목운요는 그제야 한시름 놓으며 은침을 빼냈다.

“언니의 몸 보양을 도울 약을 처방할게요. 하지만 그간 먹은 약의 독이 너무 많이 쌓인 상황이라, 우선 그 독부터 제거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고생할 거예요.”

소우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건 두렵지 않아요.”

“알겠어요. 이틀 후가 가을 사냥이니, 우선 사냥을 떠나기 전까지 체내의 독을 깨끗하게 없앨게요. 그리고 떠나기 전에는 성질이 약한 약을 몇 개 준비해 두고 갈게요. 그동안 몸이 너무 많이 상해 버려서 다시 되돌릴 때까지 시간이 꽤 걸릴 거예요.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마시고요.”

이부인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천천히 해 보자. 우의 몸을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몇 년이 걸린다고 해도 조급해하지 않으마. 운요, 네게 어떻게 감사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저도 도움받은 게 있어서 언니를 돕는 것입니다.”

“그것과는 별개의 일 아니겠니? 우의 목숨을 살려 준 생명의 은인과 다름없으니, 네게 정말 고마운 마음뿐이다.”

작게 미소 지은 목운요는 처방전을 쓰고 이부인에게 건넸다.

“약재는 반드시 세심하게 신경 써야 합니다. 절대로 예전과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돼요. 저를 믿으신다면 몰래 사람을 보내 약을 지어 오세요. 물론 의원이 처방한 약도 지금처럼 계속 달여 오시면 됩니다. 그리고 언니의 방에 화분 몇 개를 준비해 주세요.”

이부인은 연이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에 따르마.”

그동안 먹은 약에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으니 계속 먹일 순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따르던 처방을 돌연 바꿔 버리면 의심을 살지도 몰랐다. 그러니 우선 약을 달인 후 화분에 버리는 수밖에 없었다.

추가로 목운요는 이부인에게 혈 자리를 안마하는 몇 가지 방법을 알려 준 후에야 제월각으로 돌아갔다.

* * *

시들어 잎이 떨어지고 있는 계수나무를 바라보는 목운요에게 사서가 다가왔다.

“소저, 이틀 후면 사냥터로 가셔야 하니 오늘 하운방과 불선루를 둘러보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만약 마음에 드시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즉시 재정비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지금 준비 중인 하운방과 불선루의 분점은 목운요의 근거지가 될 곳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과 같은 수준의 하운방과 불선루를 준비해선 안 됐다.

“마차를 준비하도록 해.”

“네, 소저.”

목운요는 사금과 사기에게 어머니를 잘 돌보라고 신신당부한 뒤, 금란과 금교, 사서, 사화를 데리고 소씨 가문을 나섰다.

* * *

하운방은 서릉 중심가에 위치한 곳에 입주하기로 결정했다. 목운요가 마차에서 내리자, 턱수염을 짧게 기른 중년 남성이 빠른 걸음으로 마중 나왔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목운요는 눈가에 웃음을 띠었다.

“강남에 있던 것 아니었나? 서릉에는 언제 온 거야?”

“할 일이 없어 서릉에나 가 보자고 생각하고 왔습니다.”

남자가 진중한 미소를 지었다. 꽤 우직한 사람처럼 보였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목운요는 가게를 둘러보며 자리에 앉았다.

“강남에서 또 한 번 많은 식량을 거뒀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남자는 목운요에게 예를 갖춘 후 인피면구를 뜯어내 본래 얼굴을 드러냈다. 소금 사건 때 큰 도움을 준 제명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