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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210화 (210/442)

210화 소우를 진찰하다

대부인은 고개를 숙여 소우의를 바라봤다. 딸의 모습을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이 어미는 너희만 곁에 있다면 아무리 고된 인생이라도 달갑게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너희만 곁에 있다면 이 어미의 인생엔 한 줄기 희망이 남아 있는 것과 다름없어. 우의야, 진짜 봉황이 되고 싶으냐? 그렇다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서 열반의 경지에 올라야 한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네게 시련을 주어 널 시험하는 것뿐이다. 흔들리지 않고 넘어간다면, 네가 원하는 것들을 손에 쥘 수 있을 거야.”

소우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세요. 노력할게요.”

“노력만으론 부족하다. 무조건 해내야 해!”

대부인의 눈빛은 확고했다.

“맹씨 가문에 서신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다. 목운요는 제 머리가 클 만큼 컸다고 생각하겠지. 정말로 뾰족한 칼날 앞에선 맥도 못 추리고 나가떨어지리라는 것도 모르고 말이야!”

* * *

제월각으로 돌아온 뒤 기분 좋게 차를 마시는데, 금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부인이 왔다는 보고였다.

목운요는 입꼬리를 올렸다.

“어서 들어오시라고 해라.”

이부인 척 씨가 빠르게 들어왔다. 웃음기 어린 눈을 보니 기분이 매우 유쾌한 듯 보였다.

목운요는 나아가 인사를 올렸다. 허리를 다 굽히기도 전에 이부인이 팔을 잡았다.

“앉아서 쉬지, 뭣하러 그리 예의를 차려? 얼굴은 많이 나았니?”

목운요는 그래도 끝까지 인사를 마친 후에야 옆에 앉았다.

“작은외숙모께서 오셨는데 제대로 예의를 갖추어야지요. 얼굴은 많이 나았습니다.”

목운요의 뺨에 남은 푸르스름한 멍 자국을 보니 이부인은 저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딱 봐도 푸르스름하니 멍이 심해 보이는데 뭐가 많이 나았다는 거야? 내가 이번에 ‘설부고(雪肤膏)’라는 연고를 한 병 얻었는데, 멍 자국을 지우는 데 효과가 좋단다. 이따가 금란에게 발라 달라고 해라.”

“감사합니다, 외숙모.”

“예의는 이쯤 해 두자. 우가 무척이나 너를 걱정했는데, 감기에 들어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네게 찾아갈 수 없었단다.”

“우 언니가 감기에 걸렸다고요? 요즘 너무 바빠서 그런 줄도 몰랐습니다. 병문안을 가도 되나요?”

“좋지. 줄곧 네 염려만 하더라니까. 예전에는 우가 소씨 가문 아이들 중 가장 막내였는데, 이제 네가 오니 언니 노릇에 푹 빠졌더구나.”

목운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저도 언니가 생겨서 너무 좋답니다.”

그에 마주 웃던 이부인이 주위를 살피더니 물었다.

“시누는 어디 계시니? 목 상태는 좀 괜찮아지셨다니?”

“어머니께서 나와 보지 못하시는 걸 부디 너그러이 양해해 주세요. 이제 막 탕약을 드시고 잠드셨거든요. 목이 원래대로 회복되려면 시간이 좀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보화사에서 큰불이 났다는 얘기는 들었다. 소식을 듣고 간담이 다 서늘해지더구나. 불 속에서 목숨을 보전했으니 이건 하늘이 도우신 거야. 목은 시간을 두면 천천히 나아질 게다.”

“네, 정말 천만다행이지요.”

“정말 상상도 못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떤 놈들이 간이 배 밖에 나와서 보화사에 불을 낸단 말이니? 게다가 불을 내고 나서 공교롭게도 절벽에서 떨어져 죽다니…….”

이부인은 말하는 한편 고개를 들어 목운요의 안색을 자세히 살폈다.

목운요는 잔잔히 웃음을 지었다.

“이 세상에 공교로운 일이야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지요. 자세한 정황은 심 대인께서 자세히 조사한 후에 알려 주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이던 이부인이 진중한 얼굴을 했다.

“운요야, 너는 머리가 비상하여 나와는 다르게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집안을 관리할 권한이 지금은 내게 들어왔지만, 이게 얼마나 오래갈지 모르겠구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외할머니께서 작은외숙모께 권한을 맡기셨으니, 영원히 숙모께서 관리하시는 거지요.”

“일이 어디 그리 쉽다더냐? 내가 이 권한을 얻고 나서 보니, 내가 업무에 손을 대려 해도 손을 댈 수 없는 곳이 많더구나.”

목운요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에 거슬리는 데가 있으면 바로 바꾸라고 명하시면 되지요.”

천자가 바뀌면 신하도 바뀐다는 것처럼, 집안의 안주인이 바뀌었으니 응당 아랫사람도 바뀌어야 했다. 이 상태대로라면 사실상 집안은 여전히 대부인의 손 아래에 있는 꼴이 아니겠는가?

이부인은 한숨을 내쉬며 찻잔을 들고 한 입 마셨다.

“보통 하인들 같았으면 그냥 바꿨겠지. 하지만 네 외할머니를 보필하는 노파들은 수가 많은 데다 쉽게 바꿀 수가 없단다.”

순간 목운요의 눈빛이 흔들렸다. 여태 대부인과 소우의를 상대하는 것에 신경 쓰느라 노부인 손 씨에겐 소홀했다. 그런데 이제까지 소씨 가문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생각해 보니 어렵지 않게 노부인의 그림자를 엿볼 수 있었다.

겉으로는 온화해 보이는 노부인이야말로 소씨 가문에서 진정 가늠하기 힘든 인물이었다.

“운요야, 왜 그러느냐?”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서 그만 민망한 꼴을 보였네요. 어쨌든 손쓰기 어려운 노파들이 있다고 해도, 지금 손쓸 수 있는 부분부터 바꿔 나가시면 되지요. 중요해 보이지 않는 곁가지들도 모아 놓으면 뿌리를 흔들 수 있는 법이거든요.”

이부인이 활짝 웃었다.

“그래. 천천히 해 보자. 아이고, 나 좀 봐라. 속상한 일만 골라서 얘기하느라 네 기분을 상하게 했구나.”

“그럴 리가요. 작은외숙모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데요. 그보다 우 언니의 문안을 가 보고 싶은데, 지금 가도 괜찮을까요?”

“안 될 거 어디 있겠느냐? 마침 새로 만들어 둔 다과가 있는데, 너도 좋아했으면 좋겠구나.”

* * *

소우의 방문 앞에 도착하니 쓰디쓴 차향이 코를 찔렀다.

목운요가 이부인과 함께 방 안으로 들어가자, 고통스럽게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부인은 서둘러 다가가 초조한 얼굴로 소우를 부축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어찌 더 위중해진 거야?”

시녀들은 방 안을 정리하느라 분주했다.

이부인의 품에 반쯤 안긴 소우의 호흡은 느리고 미약했다. 온몸이 앙상하게 뼈만 남은 채 야위어서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이부인은 소우의 숨소리가 차분해질 때까지 기다린 후 천천히 침대에 눕혀 두꺼운 이불을 덮어 주었다.

“운요야, 아무래도 우는 건강이 더 나빠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것 같구나. 냄새가 안 좋으니 우선 먼저 돌아가거라. 다음에 우가 좀 더 나으면…….”

그때, 목운요가 눈썹을 찌푸리더니 손을 뻗어 꽁꽁 덮인 이불을 살짝 젖혔다.

“이불을 이렇게 두껍게 덮어 놓으면 언니가 덥지 않을까요?”

그에 이부인은 서둘러 이불을 다시 덮었다.

“태의께서 절대 춥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감기에 들었으니 땀을 내야 빨리 나을 수 있대.”

그러나 목운요는 완고하게 이부인의 손목을 떼어 냈다.

“작은외숙모께서 저와 어머니를 진심으로 대해 주셨으니 저도 이를 어찌 보답하면 좋을까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만약 진심으로 우 언니가 낫길 원하신다면, 이불을 얇은 것으로 바꾸세요.”

이부인은 의아한 얼굴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태의께서 말씀하시길, 땀을 쫙 빼야 우에게 좋을 거라고…….”

“태의께서 그리 오랫동안 치료하셨는데, 언니 건강이 좀 나아졌습니까?”

순간 이부인의 눈빛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내가 진찰을 부탁한 의원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모두 똑같이 말했어…….”

“총명한 자라면 위험할 것 같은 일에는 몸을 사리는 법입니다. 이미 태의께서 진찰을 내리셨는데 일반 의원들이 이상한 점을 눈치챈들 어찌 함부로 반박할 수 있었겠습니까?”

“운, 운요야…….”

이부인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만약 운요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부인은 한참 동안이나 굳어 있다가 급히 발걸음을 떼었다.

“나, 난 가서 얇은 이불을 가져오마.”

이부인이 자신을 믿는 것 같자 목운요는 나아가 소우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뜨거운 물도 준비해 주십시오. 언니가 땀을 많이 흘려 옷이 다 젖었습니다. 몸을 닦아 주고 잘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부인은 금세 이불과 새 옷을 들고 왔다. 방금 전보다는 훨씬 진정된 모습이었지만, 울었는지 눈가가 붉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녀들이 뜨거운 물도 대령했다. 이부인은 시녀들을 물리고 직접 소우의 몸을 닦았고, 목운요는 옆에서 도왔다.

두 사람은 소우의 몸을 다 닦은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다. 이부인은 한시름 놓으며 이불을 가볍게 덮어 주었다.

“운요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네가 어찌 의술을 알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하지만 내 맹세하마. 우리 딸을 낫게만 해 준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은혜를 갚겠다!”

“숙모,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니가 워낙 제게 잘 대해 주셨으니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수수방관할 수 없지요. 다만…….”

목운요가 살짝 주저하자 이부인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 말렴. 네가 우를 진찰해 준 것은 비밀로 할 테니까. 이번 가을 사냥도 시누를 집에 두고 가는 게 안심되지 않지? 내가 보증하건대, 네가 돌아올 때까지 시누가 털끝만큼도 다치게 하지 않겠다.”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그걸 부탁드리려 한 건 아니지만 숙모께서 어머니를 살펴 주신다니 그저 감개무량할 따름입니다.”

“그럼 혹 무엇이 걱정되는 것이니?”

이부인은 소우와 관련한 일은 항상 나쁜 쪽으로 생각하는 게 버릇이 되어서 목운요가 부인하자 무척 다급해졌다.

“작은외숙모께선 우 언니의 건강이 왜 지금처럼 나빠졌는지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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