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화 오만방자한 목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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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운요가 방에 놓인 살면미인에 기분 좋게 물을 주고 있는데, 금교가 잰걸음으로 다가왔다.
“소저, 오늘 심 대인이 소씨 가문에서 뭘 찾았는지 아십니까?”
목운요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설마 큰외숙모와 관련 있는 일인가요?”
“맞습니다! 심 대인이 소씨 가문의 목패를 갖고 계셨는데, 바로 순오가 가지고 나갔던 목패였습니다. 순오는 마을에 추수를 확인하러 갔다가 여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심 대인이 사람을 보내 순오를 찾는 중이라고 해요!”
“순오라……. 재미있는 이름이네요. 순일, 순이는 없나요?”
금교는 목운요에게 존경의 눈빛을 보냈다.
“소저는 역시 지혜로우셔요. 순오는 다섯째로 태어났대요. 위로 형이 네 명이나 있고요.”
목운요는 소리 내어 웃었다.
“큰외숙모께서 요 며칠 조용하시네요. 선물을 준비해 줘요. 우의 언니에게 문안을 드려야겠어요. 이틀 후면 사냥터에 나가야 하니 떠나기 전에 선물로 성의를 표시해야죠.”
“약재를 준비할까 하는데, 어떠세요?”
“큰외숙모의 사람에게 약재를 갖다줄 용기는 없으니 장식품과 도자기를 준비해 줘요. 언니가 정신이 돌아온 후에 방에 있던 장식품을 모조리 던져서 깨트렸다죠? 큰외숙모는 팔만 냥을 갚느라 우의 언니에게 새 물건을 사 줄 형편도 안 될 테니 우리가 선물을 보내 주기로 해요.”
“네, 소저.”
목운요는 옷을 갈아입은 뒤 금란, 금교를 데리고 동원으로 향했다.
소우의의 처소 앞에 도착하자마자 소우의가 시녀를 꾸중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대로 꿇어라. 어디 누가 배짱 좋게 일어나나 보자. 움직이면 매질하고 소씨 가문 밖으로 쫓아낼 것이다!”
목운요는 그 소리를 듣고 살짝 미소를 지었으나, 온화한 미소와는 다르게 눈가는 냉랭했다.
‘회귀 전 소우의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소씨 가문의 전폭적인 사랑과 보호를 받아 시련을 겪어 본 적이 없었고, 못된 성격도 잘 숨겼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승승장구하기 전에 팔이 부러지고 가문이 망가졌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오만방자한 소우의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그때, 소우의가 문어귀에 서 있는 목운요를 발견하곤 바로 날카로운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목운요가 증오스러웠지만 동시에 공포가 몰려와 저절로 말이 더듬거리며 나왔다.
“목운요……. 여긴 무슨 일이냐?”
목운요는 바닥에 엎어져 바들바들 떠는 시녀를 보며 차가운 시선을 거뒀다.
“언니께 문안을 드리러 왔어요. 요 며칠 언니의 기분이 좋지 않아 도자기와 장식품이 깨지는 소리가 빈번하게 들려온다고 들었거든요. 그래서 언니에게 드릴 물건을 직접 골라 왔어요.”
“날 놀리는 거냐?”
소우의가 온 미간을 찌푸렸다.
“목운요, 지금 상황이 좋다고 하여 콧대 세우지 마라. 세상사는 돌고 도는 법. 네가 과연 언제까지 웃을 수 있을까?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그에 목운요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한참 후에야 웃음을 멈췄다.
“세상사는 돌고 돈다니……. 언니가 이런 말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네요.”
“목운요, 너……!”
소우의는 세게 입술을 물었다. 분노가 차오르며 창백한 얼굴이 점점 달아올랐다. 병든 모습으로도 소우의는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은 증오로 일그러져 있었다.
“얼른 꺼져! 내 처소를 더럽히지 말란 말이야!”
목운요는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머지않아 동원에 발을 들이는 사람이 없어질 텐데, 그때 가서 제발 와 달라고 사정하지나 마세요.”
소우의는 너무 화가 나 온몸을 떨었다. 제 앞에서 웃고 있는 목운요의 얼굴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금란, 금교. 가져온 장식품들을 언니께 보여 드려요.”
“네, 소저.”
금란과 금교는 명이 떨어지자마자 소우의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물건을 옮겼다.
“목운요, 정도껏 해!”
소우의가 손을 휘저어 탁상 위에 놓인 도자기를 바닥으로 던졌다.
챙그랑-!
목운요는 아쉽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언니가 던진 그 도자기, 아마 오십 냥은 될 거예요. 큰외숙모께서 요즘 은자를 마련하시느라 혼수로 가져온 집도 저당 잡혔다고 들었는데, 언니가 값비싼 물건을 함부로 다루는 모습을 보면 노하실 거예요. 하긴, 집안일을 해 보지 않으면 쌀값이 얼마인지도 모른다죠? 그나저나 명색이 상서부인 가문이 이 정도로 가난하다고는 아무도 상상도 못 했을 거예요.”
그때, 소식을 듣고 빠르게 걸음 한 대부인은 목운요의 말을 듣고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여긴 왜 온 것이냐?”
목운요는 일어나 평소처럼 예의 바른 모습으로 대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큰외숙모를 뵙습니다. 우의 언니가 요 며칠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하여 문안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오는 김에 도자기와 장식품을 좀 가져왔죠. 비싼 물건들이 아니니 마음껏 던지고 깨뜨리셔도 돼요.”
대부인은 화가 치밀어 올라 심장까지 벌벌 떨리는 기분이었다. 대부인은 몇 번 심호흡을 하며 분노를 삭였다.
“그럼 내가 우의를 대신해 고맙게 받으마.”
“식구끼리 고맙긴요. 큰외숙모께서는 팔만 냥을 구하려고 혼수로 가져오신 집 두 채를 담보 잡히셨다고 들었습니다. 돈은 좀 모으셨나요?”
“걱정하지 마라. 고작 팔만 냥을 준비하는 것이 어려울 리 없으니. 그나저나 내가 좋은 마음으로 주는 돈이 아닌데 편히 쓸 수나 있겠어?”
목운요는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 팔만 냥은 원래 제 돈입니다. 제 돈을 제가 쓰는데, 마음 불편할 것이 있을까요?
대부인은 몹시 기분이 상해 이를 갈았다.
“물건을 줬으니 용건도 끝난 것 아니더냐? 이만 가 봐야 하지 않겠어?”
그에 목운요는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갈 때가 되긴 했죠. 이틀 뒤에 사냥터에 나갈 채비를 해야 하거든요. 마음 놓고 집에서 푹 쉴 수 있는 우의 언니가 부럽네요. 참, 사냥터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돈을 받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괜찮으시죠?”
대부인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지금은 목운요와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되었다.
“그래……. 걱정하지 마라. 조만간 돈을 보내마.”
“잘됐네요. 그럼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목운요가 동원에서 벗어나자마자, 소우의는 그녀가 가져온 물건들을 있는 대로 집어 던져 깨뜨렸다.
“어머니, 목운요 그것이 제 머리 위에 앉아 저를 갖고 노는데, 왜 가만히 계셨어요?”
대부인은 명치를 위아래로 들썩이며 소우의를 호되게 혼냈다.
“만약 이 어미가 정말로 가만히 있었다면 집안을 관리할 권한을 빼앗기지도 않고, 외출 금지를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대부인이 노하는 모습을 본 소우의는 입술을 깨물다가 탁상에 엎드린 채 울음을 터뜨렸다.
“상서부의 적녀인 제가 시골 촌뜨기에게 짓밟히다니요……. 그것이 싸구려 도자기와 장식물을 선물로 가져와 저를 깔봤어요! 이렇게 살 거면 차라리 죽는 게 낫겠어요!”
“허튼소리 하지 마라!”
대부인이 소우의를 끌어당겼다.
“네 인생을 포기하라고 널 힘들게 키운 줄 알아?”
“그럼 다른 방법이라도 있답니까? 제 팔을 진료해 준 의원 말로는, 팔이 두 번이나 부러졌으니 뼈가 다 붙은 후에도 움직이기 불편할 거래요. 목운요가 제 미래를 다 망쳐 버린 셈이에요.”
“황상께선 선황의 자식 중 가장 사랑받지 못하셨고 출신도 가장 낮으셨지만, 모든 치욕을 이겨 내고 황위에 앉으셨다. 황상께서 고생 끝에 성공하신 것처럼 네게도 새바람이 불어와 막힌 것이 뚫릴 날이 올 거야.”
“제 꼴을 보세요. 바람이 불어온다 해도, 날개가 부러져 버렸는데 어찌 하늘로 훨훨 날아가겠어요?”
그에 대부인은 손을 들어 소우의의 얼굴을 짝 내리쳤다.
“내가 그동안 너를 너무 감싸고만 돌았구나. 이렇게 별것 아닌 일에도 발발 떨다니. 앞으로도 지금처럼 나약하게 군다면 정말 목운요의 발밑에서 살아갈지도 몰라!”
뺨을 맞자 소우의의 머리가 휙 하고 돌아갔다. 얼굴이 불이라도 난 것처럼 홧홧했다. 소우의는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어머니…….”
대부인은 소우의의 턱을 잡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겨우 팔이 부러진 것 가지고 뭘 그러니? 네겐 이렇게나 고운 얼굴이 있잖아? 나락으로 떨어져도 널 구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있을 거다. 그간 널 고고하고 아름다운 존재로만 만드느라 후원의 어두운 부분을 보여 주지 못했는데, 오늘부터 후원의 냉정함을 가르쳐 주마.”
“어머니, 늦은 건 아닐까요……?”
“늦기는. 걱정하지 마라. 네가 원하는 때가 가장 좋은 때야.”
대부인이 소우의의 머리칼을 다정히 정리해 주었다.
“가을 사냥엔 여러 관료 집안의 소저들끼리 싸우라고 둬라. 우리는 닥친 바람부터 피하고 때를 기다리자.”
“저는…… 그래도 자신이 없습니다.”
대부인은 미간을 구기며 소우의의 손을 꽉 잡았다.
“우의야, 이번 일은 작은 실패에 불과하다.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만 리야. 그러니 절대 이번 일로 큰 것을 포기해선 안 돼. 앞으로 이 어미가 네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마!”
소우의는 재차 눈물을 흘렸다.
“어머니, 전 목운요 그 빌어먹을 계집에게 이딴 식으로 지고 싶지도,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살고 싶지도 않아요. 그러니 부디 저를 도와주세요.”
소우의는 높은 자리에 앉고 싶었다. 고고한 자리에 앉아서 오늘날 겪은 모욕을 백 배, 천 배, 만 배로 갚아 주고 싶었다!
대부인은 천천히 소우의의 머리칼을 쓰다듬었다. 대부인의 눈은 독기가 든 것처럼 깊고 어두웠다.
“넌 내 하나뿐인 딸이다. 이 어미는 네게 많은 희망을 걸고 있어. 지금은 목운요가 기세등등하지만, 평생 그렇게 살 순 없을 거다. 그것은 노부인께서 자기를 돕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더구나. 왕 노파와 유 노파의 죽음이 이상하다고는 생각하지도 못하고 말이다.”
소우의가 고개를 들었다.
“왕 노파와 유 노파에게 목운요를 해치라고 한 사람이…… 할머니셨나요?”
“그럼 누가 있겠어?”
대부인은 차갑게 웃었다. 두 눈에 증오가 가득했다.
“이번 일로 이 어미는 똑똑히 깨달았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부부? 웃기지 말라고 해라. 네 조모와 부친께선 나를 대놓고 내치셨다. 나는 그동안 소씨 가문을 위해 전심전력을 다했는데도 말이다.”
소우의는 입술을 깨물었다.
“저는 절대로 어머니를 배신하지 않아요. 영원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