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99화 (199/442)

199화 폭풍전야

소청은 침상의 머리맡에 기대어 멍하니 있었는데, 당최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목운요가 들어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소청의 굳은 안색이 풀렸다. 소청은 별것 아니라는 듯 고개를 내저은 뒤 어딜 다녀온 것인지 물었다.

“영 공자를 뵙고 왔어요. 부상이 심하진 않아서 며칠 몸조리만 잘하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고개를 끄덕인 소청은 그제야 한숨을 내쉬었다. 화재 현장에서 빠져나올 때, 소청을 향해 나무 대들보가 떨어졌는데, 영 공자가 몸을 날려 목숨을 구해 주었다. 영 공자가 아니었으면 영영 딸아이를 보지 못할 뻔했다.

목운요는 고민하다 결국 소우의의 일을 소청에게 말하기로 했다.

“어머니, 이번 화재는 소우의와 제 마마가 꾸민 짓이었어요.”

소청은 살짝 놀란 눈을 했으나, 생각해 보니 예상 밖의 일은 아니었다. 다만 아리따운 미모의 소우의가 속내가 시꺼멓고 독하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소씨 가문으로 돌아갔어요. 이제 보화사엔 저와 어머니뿐이에요. 우리는 불경 필사를 마치고 불경을 공주 전하께 전해 드리고 나서 돌아가도록 해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사실은 가능하다면 다시는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알려 드릴 일이 있어요. 제가 소우의의 팔을 부러뜨려 놨어요.”

목운요는 그 얘기를 하며 조심스레 소청의 안색을 살폈다.

목운요의 말을 들은 소청은 잠시 넋을 놓았으나, 곧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딸을 바라봤다.

그에 목운요는 냉큼 소청을 달랬다.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이미 계획을 준비해 놨거든요. 어머니를 걱정시켜 드리려고 알려 드린 건 아니에요. 그냥 상황을 알고 계셔야 나중에 놀라지 않으실 테니 말씀드린 것뿐이죠.”

그래도 소청은 불안에 떨었다.

소우의는 소씨 가문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노부인과 대부인은 소우의를 그 어떤 보물보다 더 애지중지했다. 그런 소우의의 팔을 부러뜨렸으니 소씨 가문에서 큰 파문이 일어날 것이 뻔했다. 자칫 잘못하면…….

“소씨 가문에선 소우의가 살아 돌아와서 행운이라고 말할 거예요. 우리를 찾아와 성가시게 하는 일은 없을 테니 걱정 마세요.”

확신에 찬 딸의 모습을 보니 소청의 불안감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녀는 손을 뻗어 딸의 머리카락을 정돈해 주었다.

보통 집안에서 태어났다면 딸아이는 어떤 근심도 없이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소씨 가문에 들어와 버린 탓에 걸음을 내딛는 곳마다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 * *

목운요와 소청이 마음 놓고 보화사에서 지내는 사이, 소씨 가문에선 난리가 났다.

처음 보화사에 불이 났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때, 대부인 맹 씨는 너무 불안하여 그날 밤 당장 사람을 보내 소식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건 기다리고 기다리던 보화사의 소식이 아닌, 창백하고 초췌한 모습의 소우의였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리해진 소우의의 모습에 대부인은 빠르게 딸을 맞이했다.

“우의야, 어찌 된 일이냐? 어쩌다 이리된 거야?”

그에 소우의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우의는 비틀거리며 대부인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어머니! 반드시 제 복수를 해 주셔야 해요!”

대부인은 미간을 일그러트리며 소우의를 부축해 재빠르게 동원으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소우의는 고개를 들었다. 누구보다 아름답고 곱던 두 눈에 원한과 증오가 가득했다.

“어머니, 목운요 그것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나 봅니다. 목운요가 제 팔을 부러뜨렸어요. 그리고 이불로 저를 눌러 질식시키려고 했고요! 지금 제가 느끼는 이 고통을 목운요 그것에게 그대로 갚아 주세요! 반드시 목운요의 사지를 부러뜨리고 말겠어요!”

대부인의 눈빛이 삽시간에 냉랭하게 변했다.

“그게 다 무슨 말이냐? 목운요가 네 팔을 부러뜨리고, 널 죽이려 했다고?”

“제 목덜미 보이시죠? 이 상처도 그것이 비수를 써서 생긴 상처예요! 오라버니는 그 얘기를 듣고서도 절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목운요를 찾아가 대화로 이 사태를 풀려고 하더군요! 목운요 그것이 보통 여우가 아닙니다. 그 요망한 것이 삼황자 전하를 유혹하고 오라버니까지 유혹한 거예요!”

대부인은 이를 악물며 손바닥으로 탁상을 쾅 내리쳤다.

“목운요가 청오를 꼬드겼다고?”

“잘 생각해 보세요. 전에 오라버니는 목운요를 여러 번 변호했잖아요. 오라버니께서 왜 그랬는지 이제야 알겠어요. 그 여우 같은 것이 오라버니를 꾀지 않았다면 오라버니가 어찌 그것의 편을 들었겠어요? 이번 일도 그래요. 목운요 그것이 제 팔을 부러뜨렸는데, 오라버니는 오히려 저를 책망했어요. 제 복수를 할 생각은 하지도 않고요!”

“목운요, 겁도 없구나!”

소우의는 눈물을 떨구며 더욱 불쌍하게 굴었다.

“어머니! 제 팔이 불구가 되진 않겠죠? 황실에선 몸이 온전치 못한 여인을 며느리로 받지 않을 거예요. 어머니가 반드시 절 살려 주셔야 해요.”

그에 대부인은 정신을 번뜩 차리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시녀를 쏘아봤다.

“멍청히 뭐 하고 있는 것이냐? 어서 가서 의원을 불러오지 못해?”

“네, 부인. 바로 의원을 부르겠습니다.”

대부인은 소우의가 안정을 찾도록 토닥였다.

“걱정하지 마라. 팔은 큰 문제 없을 거다. 그리고 목운요의 일도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목운요가 우리 소씨 가문에 돌아오는 날엔 죽은 목숨일 테니!”

소우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제야 증오가 진정된 모양이었다.

“목운요를 혼쭐내 줄 때 할머니가 가만히 계실까요?”

“내게 생각이 있으니 넌 우선 누워서 쉬고 있으렴. 나는 청오에게 다녀와야겠다.”

소우의는 ‘흥!’ 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불난 데 기름을 끼얹은 것처럼 다시 활활 타올랐다.

“오라버니는 아직도 목운요를 도울 생각뿐일 거예요!”

* * *

소청오는 대부인이 오셨다는 하인의 말을 듣고 마중을 나갔다.

“소자, 어머니를 뵙습니다.”

대부인은 소청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고 나서야 소청오를 노려보았다. 대부인의 눈길은 추궁하는 듯이 보였다.

“청오, 네 동생이 다친 게 목운요의 짓이라던데 알고 있었느냐?”

“네.”

“그 사실을 알면서 어찌 그냥 왔느냐?”

“어머니. 우의가 어머니께 어떤 말을 했는지 모르겠사오나, 지금은 목운요를 건드릴 최적의 시기가 아닙니다.”

그에 대부인은 탁상 위에 놓인 찻잔을 들더니 소청오의 발 옆으로 던졌다.

쨍그랑!

찻잔이 큰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났다.

“무릎을 꿇어라!”

소청오는 미간에 주름을 잡더니 무릎을 꿇었다. 꿇어앉은 자리에 선홍빛 피가 흘렀다.

소청오에게서 피가 흘러도 대부인의 낯빛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말해 봐라. 목운요를 좋아하는 거냐?”

“아닙니다!”

“청오, 이 어미는 널 이십 년간 키웠다. 그러니 사실대로 말해라. 목운요를 좋아하는 것이냐?”

대부인이 소청오를 몰아붙이며 추궁했지만, 소청오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대답했다.

“좋아하지 않습니다.”

대부인은 냉소를 흘렸다.

“알겠다. 좋아하지 않는다니 그것을 없앨 방법을 강구해야겠다.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해 보거라.”

그 순간, 소청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번 일에 있어서 경솔하게 행동해선 안 됩니다!”

“하, 내가 촌구석 출신의 계집아이 하나 멋대로 못 한다는 것이냐?”

“목운요가 평범한 시골 출신의 계집이라면 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목운요는 보통 아이가 아닙니다. 하운방과 불선루의 영향력은 점점 강해지는 추세입니다. 특히 강남에선 목운요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죠. 그런 목운요가 죽는다면, 큰 파문이 일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되면…….”

“이렇게까지 예민하게 반응하는데 목운요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소청오는 눈을 치켜떴다.

“어머니, 전 그저 사실대로 시비를 논한 것뿐입니다. 게다가 사실 보화사에서 일어난 화재 사건은 우의가 계획한 것입니다. 그리고 소청 고모님은 곁채에서 불에 타 돌아가실 뻔…….”

“시끄럽다! 네 동생은 태어나길 선하게 태어난 아이다. 그렇게 독한 일을 꾸밀 아이가 아니야!”

소청오가 사실을 말해도 대부인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았다. 그에 소청오는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어떻게 해야 어머니께서 사실을 깨달으신단 말인가?’

“어머니, 지금은 목운요를 주시하는 눈이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를 쓴다면 어차피 누군가는 목운요를 구해 줄 것입니다. 목운요의 충성을 얻는 자는 하운방과 불선루를 손에 넣는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여러 황자께서 강남을 손아귀에 쥘 방법을 찾고 계신 상황이니, 반드시 목운요와 접점을 만들려고 하실 겁니다.”

“그래 봤자 한낱 자수방과 찻집이 아니더냐. 황자들이 어찌 그런 가게에 눈독을 들인단 말이지?”

“현재 하운방은 열 개가 넘는 지점을 세웠습니다. 불선루는 하운방만큼 번창하진 못했지만, 그래도 각지에서 명성이 높아 위탁 판매까지 이뤄지고 있죠.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목운요가 백성들 사이에서 평판이 아주 좋다는…….”

“됐다!”

대부인은 소청오의 말을 끊어 버렸다. 명색이 상서부의 대부인인데, 그깟 촌뜨기 계집 하나 처리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됐다.

“사람들이 목운요 그것에게 얼마나 많은 관심을 주든, 잘못을 저질렀으니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 우의의 팔을 부러뜨렸으니 절대로 그냥 넘어갈 순 없어!”

대놓고 목운요를 건드릴 수 없다면, 남들이 모르게 손을 쓰면 될 일이다. 서릉에 있는 모든 저택들은 수많은 후원을 갖고 있었다. 그곳에선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갔다. 목운요 따위 어찌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다.

“어머니…….”

소청오는 다시 한번 제 어미를 저지하려고 했으나, 대부인은 단호했다.

“청오, 넌 우리 소씨 가문의 적장자다. 그러니 절대로 네 앞날을 해치는 일을 해선 안 돼. 이 어미가 손을 쓰지 않아도 네 부친께서 먼저 목운요라는 화근을 뿌리 뽑으실 거다!”

대부인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말투와 눈빛으로 소청오에게 경고했다.

소청오는 할 수 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하지만 마음속엔 냉기가 가득했다.

대부인은 대답하지 않는 소청오를 뒤로한 채 밖으로 나섰다. 그녀의 안색이 더욱 어둡게 가라앉았다.

‘목운요를 살려 둬선 안 돼.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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