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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98화 (198/442)

198화 시작된 마음

“허락하겠다. 누구를 죽이고 싶으냐?”

월왕의 차가운 목소리가 방 안에 울리자 목운요는 불쑥 고개를 들었다.

“괜찮으신 겁니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는 없는 법. 누굴 죽이고 싶으냐?”

그가 아는 목운요는 절대로 무고한 자를 함부로 죽일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자는 분명 용서할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른 것이 틀림없었다. 상식적으로 목운요가 자신의 부하와 엮일 일은 없었지만 월왕은 목운요의 말을 믿고 싶었다.

목운요는 마음속에서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활시위가 탁 하고 끊기는 소리를 들었다. 짙은 먹구름 사이로 작은 구멍이 나서 그 사이로 눈부신 햇살이 비치는 듯했다.

“몇 사람이 있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그려 낼 수 있습니다. 총 다섯 명인데…….”

“운요야, 왜 그러느냐?”

목운요의 얼굴이 급격하게 창백해지자 월왕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생각만으로도 이리 힘들어하는가?’

“아닙니다. 사야, 붓과 먹이 있다면 좀 빌려주시겠습니까?”

목운요는 이를 악물고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모두 회귀 전에 일어난 일이고, 이번 생에는 분명 만회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두려움은 조금이라도 마음을 놓으면 순간순간 그림자처럼 따라왔다.

그녀는 자신이 왜 이렇게 충동적으로 말을 꺼냈는지 알 수 없었다. 하나 이미 꺼낸 말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정말 월왕이 다섯 놈을 죽여 준다면 이 변수가 일을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도 있었다…….

목운요는 붓을 들고 마음을 진정시킨 후, 신속히 종이 위에 그림을 그렸다. 하운방을 열기 위해 부단히 꽃 그림을 연습하다 보니 실력이 늘어, 첫 번째 인물의 초상화를 빠르게 그려 낼 수 있었다.

월왕은 미간에 힘을 주고 그림 속의 인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입을 떼지 않은 채 목운요에게 계속 그리라고 손짓했다.

반 시진 남짓이 지나자 목운요는 붓을 내려놓고 초상화 다섯 장을 내려다보았다. 눈에 어린 원한과 살기가 매우 생생하여 그대로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바로 이 다섯 사람입니다. 죽여 주실 수 있겠습니까?”

월왕은 중간에 놓인 한 장을 꺼내어 들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 다섯 중 내가 아는 사람은 이자뿐이다. 다른 이들은 모두 모르는 사람이야.”

목운요는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월왕을 보았다.

“그게 정말입니까?”

월왕은 회피하려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왜 거짓을 말하겠느냐? 이자는 내 부하가 맞다. 이름은 유남(刘南). 최근에 발탁한 부대장이지. 월서에서 여러 차례 공을 세웠는데 실력이 좋고 똑똑한 놈이야. 이번에 서릉에 데려왔고, 지금은 월왕부에 있다.”

목운요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책상 위에 놓인 초상화를 노려보았다.

“이 사람들이 전하의 부하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사람이란 말이죠?”

회귀 전, 목운요는 진왕의 선물로 월왕부에 바쳐졌다. 회귀한 후로는 죽을 때의 끔찍했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싫어서 당시의 수상한 점을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한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확실히 당시 이 다섯 놈의 행적이 묘연했다. 마치 누구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봐 겁이 난 듯…….

목운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월왕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만약 월왕부에서 한 여인이 첩자로 발견된다면 어떻게 처리하시겠습니까?”

월왕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부하 중 고문을 잘하는 놈을 시켜 첩자의 정보를 정확히 알아내겠지.”

목운요는 불쑥 한숨을 내쉬었다. 흉곽이 불안정하게 오르락내리락했다.

“첩자에게 굴욕을 가해 죽이지는 않으실 겁니까?”

“내가 왜 그러겠느냐?”

월왕이 미간에 힘을 주었다.

“운요야, 대체 무슨 일인 거냐?”

목운요는 두 손으로 책상을 꽉 잡았다. 원한이 가득한 눈에서 일순간 눈물이 떨어졌다.

“전하가 아니시라면 대체 누구였답니까?”

마차가 별안간 뒤집어진 그날, 목운요는 월왕의 발 앞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후 몽롱한 상태로 정신을 차려 보니 월왕부에 와 있었다.

방 안에서 만난 월왕은 목운요를 흘긋 보았을 뿐이었다. 그가 무슨 일을 저지르진 않았지만 목운요는 스스로 겁에 질려 다시 혼절했다. 그 뒤 깨어나 보니 이미 첩자로 몰려 있었다.

오랫동안 목운요는 월왕이 자신을 죽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월왕의 소행이 아니었다면, 답은 오직 하나였다…….

‘진왕, 바로 진왕이다!’

진왕은 일찍이 월왕을 끌어내릴 온갖 방법을 강구했지만 아쉽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래서 결국 이런 비열하고 파렴치한 계책으로 목운요를 월왕부에 보내 죽이고, 그 혐의를 월왕에게 덮어씌운 것이다!

형의 첩을 빼앗고 잔인하게 유린하여 죽였다는 오명은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죄였다. 게다가 이를 통해 언론을 쉽게 장악할 수 있었다. 붓이 칼보다 무섭기에, 그 음모는 월왕에게 치명적이었다.

진왕은 자신을 이용하여 월왕을 더러운 물속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기어이 진왕이!’

목운요는 거친 호흡을 내쉬며 굵은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아랫입술을 세게 무는 바람에 피가 배어났다.

월왕은 놀라서 목운요에게 손을 뻗고 싶었지만, 실례일까 걱정되어 목소리를 내어 정신을 차리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운요야, 왜 그러는 것이냐?”

목운요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깨끗이 닦아 냈다.

“일단은 유남을 죽이지 마시고 자세히 살펴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겉으로는 충직해 보여도 그 속내는 아무도 모르는 법이거든요. 다른 네 사람은 사야의 부하가 아니니 한번 그 신분을 조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알았다. 이 네 사람의 행방을 알게 되면 반드시 꽁꽁 묶어서 네 앞에 갖다 놓으마.”

“아닙니다. 그저 조사가 다 되면 언질만 해 주시면 됩니다.”

월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걱정스러운 눈길로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운요야, 대체 무슨 일이냐?”

눈물은 깨끗이 닦아 냈지만, 눈시울은 여전히 붉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어떤 일을 정확히 이해하게 되었고, 어떤 사람을 뚜렷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되었어.’

“운요야…….”

목운요는 고개를 들고 월왕을 바라보았다. 가슴속 응어리가 가신 뒤 그를 보니 투명하고 선명한 느낌만 들 뿐이었다. 가볍게 입술 끝을 올리자 눈꼬리까지 미소가 번졌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목운요가 맑고 투명한 눈을 구부리며 미소 지으니 월왕은 심장 박동이 다시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그러느냐?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전력을 다해 널 도우마.”

“그렇게까지 신경 쓰실 일은 아닙니다. 나머지 네 사람의 행방만 알아봐 주시면 되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군요. 그럼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월왕은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가 봐라.”

목운요는 예를 갖춘 후 밖으로 나가다 문어귀에서 발걸음을 멈춰 뒤돌아봤다.

“몸조리 잘하고 계세요. 내일 와서 확인할 겁니다.”

월왕은 멍청히 목운요만 쳐다봤다. 입을 떼어 무슨 말이라도 하려 했지만, 그녀는 이미 떠난 후였다.

목운요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항이 안으로 들어왔다.

“소씨 가문의 소청오 공자와 소우의 소저가 소씨 가문으로 돌아갔습니다. 소저는 팔이 부러졌고, 소저의 시중을 드는 제 마마도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운요가 이미 갚아 주긴 했군. 소우의가 소 부인께 허튼수작을 부린 거라면 팔이 부러졌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일이다.’

“소청오의 반응은?”

“목 소저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으나 괜한 감정만 상한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나눈 뒤 즉시 마차를 준비해 소씨 가문으로 돌아가더군요.”

“소청오는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자다. 단지 소문원과 맹 씨에게 나쁜 것을 보고 배웠을 뿐이지…….”

월왕은 의자에 앉은 채 손가락으로 탁상을 톡톡 두드렸다. 문득 목운요가 남기고 간 초상화가 눈에 들어왔다.

“참, 사람을 보내 유남이 이상한 행동을 보이진 않는지 예의주시하라고 해라. 그리고, 초상화에 그려진 이 네 놈들을 찾아 사람을 붙여라. 대신 들키지 않게 움직여야 한다.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보고하도록 해라.”

“네, 전하.”

우항이 물러가자, 월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두 바퀴 정도 거닐며 목운요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녀가 보인 태도는 분명히 예전과 달랐다. 그 점을 깨닫자 기분이 좋아져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월왕은 기분 좋은 웃음을 지었다. 마음속에 솜털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운 구름이 동동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게다가 목운요는 내일 다시 찾아와 몸 상태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녀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나, 그는 벌써 내일을 기다리게 되었다.

* * *

사서는 목운요의 곁에서 몇 번이고 주인의 안색을 살피다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소저, 기분이 안 좋으세요? 눈가가 붉으신데…… 울기라도 하신 거예요? 혹시 사황자께서 소저를 괴롭히셨나요?”

목운요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아꼈다.

“별일 아니야.”

곁채로 돌아가니 사금이 보고를 올렸다.

“소저, 초상화를 들고 계율 스님을 찾아가 여쭤봤는데, 사찰에는 초상화 속 얼굴을 한 사람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어젯밤 사금과 사기를 꾀어낸 초상화의 주인공은 역시나 가짜 승려였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일이기에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초상화는 잘 보관하도록 해. 나중에 그런 얼굴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참, 어머니는 일어나셨어?”

“일어나신 지 좀 되셨습니다. 죽도 반 그릇 정도 드셨어요.”

목운요는 곧장 어머니가 계신 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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