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94화 (194/442)

194화 자초지종

목운요의 말을 들은 소우의는 머리끝까지 한기를 느꼈다.

“오라버니, 저는 이곳에 남겠어요!”

“제 마마, 보화사에서 또 다른 거처를 마련해 주었으니 큰 아가씨를 모셔 가시죠.”

목운요를 바라보는 소청오의 눈빛에 의문이 담겼다.

“운요 동생, 고모님도 동생도 많이 놀랐을 테니 일단 돌아가서 쉬시오.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겠소.”

“감사합니다. 언니도 같이 가실 거죠?”

목운요의 시선이 소우의에게 떨어졌다. 입꼬리로 호선을 그렸지만, 눈에서는 살을 에는 듯한 한기를 뿜고 있었다.

소청오는 소우의를 집으로 보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목운요의 모습을 보니 도저히 강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가 분노를 못 이기고 가는 길에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소우의는 목운요의 말 안팎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절로 당황했다.

“제 걱정은 안 해도 돼요. 우선 고모부터 잘 돌보시지요.”

“그럼 전 안심하고 어머니를 모시러 가 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목운요는 이내 보화사의 스님을 따라서 새로 배정된 장소로 향했다.

새로 배정된 방에 도착하자 목운요는 소청이 앉는 것을 도운 뒤, 옆에 있던 사서에게 말했다.

“넌 가서 오라버니가 언니를 어디로 데려가시는지 살피고 오너라.”

그에 소청이 서둘러 목운요의 손을 붙잡았다.

“요아야?”

목운요는 고개를 들더니 미소를 지었다. 다만 평소의 천진무구함은 온데간데없이 형용하기 힘든 살기가 드러났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처신은 잘할게요.”

사서는 재빨리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소청은 생각보다 심하게 다친 상태는 아니었다. 며칠 쉬고 나면 다 나을 것이었다. 다만 큰 문제는 목이었다. 짙은 연기로 목 안에 화상을 입어 제대로 보양을 하지 않으면 고생을 할 수도 있었다.

진왕이 의원을 보내 주고 하인을 통해 위로의 말을 전했다. 목운요는 굳이 의원의 진찰을 마다하지 않았다. 그저 의원이 준 처방전에 몇 가지 약재를 더 적어 사금에게 그대로 약을 달이라고 분부했다.

소청이 탕약을 마시고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하자 목운요는 일어나서 옆방으로 갔다. 사금과 사기가 황급히 와서 무릎을 꿇더니 송구함이 가득한 얼굴로 벌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렸다.

한참이 지난 뒤, 목운요가 입을 열었다.

“오늘 일어난 일을 토씨 하나도 틀리지 말고 사실대로 말해.”

“네, 소저.”

사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소저께서 공주 전하께 드릴 불경을 쓰러 가신 후, 소인은 부인과 곁채에서 다과를 함께했습니다. 그 뒤 어제와 같은 시간에 기복전으로 가서 염불하고 참배를 드렸지요.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아가씨께서 다리가 아프다고 말씀하시자, 큰 도련님께서 큰 아가씨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소인은 사기와 함께 밖을 지키고 있는데, 갑자기 스님 한 분이 오시더니 소저께서 책장에 깔리셨으니 저더러 어서 가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인은 바로 초경각으로 향했습니다. 그 뒷일은 소저께서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기, 너는?”

“사금이 떠나고 소인은 마음이 너무 조급해졌습니다. 일단 부인께 알려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에, 아까 그 스님이 다시 오셔서 사금이 소저를 곁채로 모시고 갔으니 바로 곁채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소인은 곧장 이 소식을 부인께 알려 드리고 함께 곁채로 향했지요. 방 안 침대에는 사람이 누워 있었습니다. 한데 막상 가까이 가 보니 사람이 아니라 짚더미였습니다. 곧이어 큰불이 활활 타올랐고 불길이 급격하게 치솟았습니다.”

목운요의 눈동자는 서늘한 눈빛으로 일렁였다.

“육냥은? 육냥이 계속 숨어 다니며 호위했잖아?”

“소인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목운요가 잠자코 있으니 방 안에는 정적이 흘렀다. 길지 않은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문 앞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방문을 열어 보니 육냥이었다.

“육냥, 어딜 갔다 온 거야?”

육냥이 방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소인, 어떤 놈을 따라가다가 매복한 무리에 기습을 당했……. 쿨럭쿨럭……!”

그의 입가에서 피가 배어났다.

“얼마나 많이 매복해 있었길래 네 실력으로 이리 심하게 다친 거야?”

“평범한 놈이 십여 명, 내가권(内家拳) 고수가 두 명 있었습니다.”

“그자들은 어떻게 됐어?”

“죽었습니다.”

목운요의 눈빛이 흔들렸다.

“시체는 깔끔하게 묻었고? 단서는 좀 발견했어?”

“어떤 자에게 매수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자에 관해서는 눈썹에 점이 하나 있었다는 사실밖에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내가권 고수 두 명은 저랑 싸우다 크게 다치자 바로 자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무런 자백도 받아 내지 못했습니다. 몸에 뚜렷한 표식도 없었고요.”

육냥은 말하다가 참지 못하고 기침을 다시 했다. 얼굴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부디 벌을 내려 주십시오.”

“내가권 고수 두 명이라…….”

목운요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십여 명은 대부인이 부른 놈들일 거다. 하지만 내가권 고수 두 명은 누구지? 그들도 대부인이 부리는 자들인가? 아니면 또 다른 사람이 개입한 건가?’

그때, 사서가 다급히 안으로 들어왔다.

“보고드립니다. 큰 아가씨께서 어디 계시는지 알아 왔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릎을 꿇고 있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들은 이만 일어나거라.”

그러나 사금과 사기는 입술을 깨문 채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육냥은 더욱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저 계속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목운요가 세 사람을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너희 세 사람이 어머니와 내게 충성을 다한다고 믿고 있어. 이번 일은 갑작스레 일어난 사건이야. 무고한 사람을 기습한 그놈들이 비열한 거지.”

“소저, 부디 벌해 주십시오. 그냥 넘어가시면 소인의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목운요는 한숨을 내쉬더니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석 달 치 봉급을 삭감하겠어.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아 다음엔 절대로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육냥, 넌 부상이 심하니 어서 가서 좀 쉬고.”

고개를 든 육냥은 마음이 편치 않은지 안절부절못하는 눈빛이었다.

“분명 벌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어째서 내가 벌을 내리지 않으니 다들 되레 불안해하는 거야?”

목운요가 재차 한숨을 쉬며 육냥에게 말했다.

“석 달 치 봉급을 삭감하는 것만으로 충분해. 게다가 네가 끝까지 쫓아가 그자들을 죽이지 않았다면 분명 그놈들은 어머니께 더 독한 수를 썼을 거다. 네가 잘못한 건 없어. 이 일의 옳고 그름은 확실히 구별할 수 있어.”

“정말…… 감사합니다.”

“일어나. 몸에서 피 냄새가 진동하니 어서 가서 상처를 치료하도록 해. 약을 보내 줄 테니.”

“감사합니다.”

그제야 육냥은 두려웠던 마음이 서서히 사라졌다.

보화사에서 갑자기 큰불이 났고 그 진원지가 목운요의 방이라는 사실을 안 뒤 육냥은 몹시 초조해졌다. 한데 그녀가 무탈한 걸 확인하고서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졌다.

그놈들의 이번 목표는 소청 부인이었다. 다행히 도와준 사람이 있었기에 부인의 목숨을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만약 다음번에 목운요를 노렸을 때 아무도 구해 줄 사람이 없다면……? 육냥은 그 결과를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마치 옛날의 공허한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육냥은 남몰래 이를 악물고 속에서 들끓는 감정을 몇 번이나 억눌러야 했다.

‘오늘과 같은 일은 한 번만으로 족하다. 절대로 같은 실수는 하지 않겠어!’

* * *

어둠이 점차 옅어지더니 하늘 끝에 새벽빛이 비쳤다.

목운요는 일어나서 치마를 가볍게 정돈했다. 식은땀에 흠뻑 젖었던 옷이 이제는 말라 있었다. 목운요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곧장 문을 향해 걸어갔다.

“사서, 사화. 너희들은 나를 따라서 우의 언니께 가자.”

육냥이 한 발짝 다가왔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다친 건 어쩌고?”

“지금은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해.”

목운요는 육냥의 완강한 태도에 차마 거절하지 못했다.

곁채에 있던 물건들이 다 타 버렸지만, 다행히 만일에 대비해 목운요가 지니고 다니던 몇 가지가 남아 있었다.

한편 소우의는 좀처럼 편하게 잘 수 없었다. 악랄한 눈으로 노려보던 목운요가 자꾸 꿈에 나와 잠에서 깨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순간, 인영 하나가 침대맡에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소우의는 놀라 비명을 지르려다가, 보석이 박힌 비수가 목에 닿자 비명을 다시 삼켰다.

창가에서 빛이 들어오자 소우의는 그제야 인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목운요?”

“절 보니 이상해요?”

목운요는 고개를 살짝 갸우뚱하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따스함이라고는 전혀 없어서 오히려 가슴이 서늘해지는 웃음이었다.

“뭐 하는 거예요?”

소우의는 덜덜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했다. 밖을 보며 밤새 곁을 지키는 제 마마를 찾았지만, 그녀는 이미 포승줄에 묶여 있었다.

목운요가 더욱 미소를 지었다.

“언니 말이 좀 이상하네요. 이런 밤중에 제가 뭘 하러 언니한테 왔겠어요? 당연히 저희 어머니에 대한 복수를 하러 왔죠.”

“무슨 복수요? 왜 나한테 온 거죠? 난 고모께 잘못한 적 없어요.”

“아직도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언니가 저희 어머니를 해쳤잖아요? 불을 낸 것도 언니고요. 스스로 저지른 일을 참 빨리도 잊는군요.”

소우의는 재빨리 부정했다.

“그게 무슨 소리……! 나는 계속 방에서 쉬고 있었어요. 자고 있느라 아무것도 몰랐단 말이에요. 깨어나 보니 불은 이미 나 있었죠. 이번 일은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목운요가 낮게 웃었다.

“죽어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니 정말 가증스럽네요. 청오 오라버니께서 언니에게 저희 어머니를 봤냐고 물어보았을 때,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나요?”

“뭐라고요?”

소우의는 재빨리 머리를 굴리더니 순간 얼굴이 새하얘졌다.

“기억났어요?”

목운요가 비수를 움켜잡더니 한 치 더 앞으로 내밀었다. 예리한 칼날이 오싹한 한기를 풍기며 소우의의 목덜미를 가늘게 그었다.

“깊게 생각하지 못했는지, 고모님은 탈출하지 못하셨냐고 물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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