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93화 (193/442)

193화 위험에 처하다

월왕은 걸음을 재촉하며 목운요를 바라봤다. 괴로워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제 심장도 누군가가 꽉 움켜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월왕은 기복전에 가까워질 때쯤에야 목운요를 놓아주었다.

급히 뒤따라온 사금이 목운요를 부축하여 기복전으로 들어갔다. 대전 안에는 소우의와 소청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머니는요?”

자리에서 일어선 소청오는 뒤따라온 월왕을 보고 다소 놀라는 눈치였다.

‘운요 동생이 왜 월왕과 함께 있는 거지?’

“불경을 베끼러 간 것 아니었소? 어찌 이리 급히 온 거요?”

불안함이 극에 달한 목운요는 소청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어머니는 어디 계시냐고요!”

“방으로 돌아가셨소.”

소청오는 인상을 썼다. 어딘가 이상한 목운요의 표정을 보니 걱정이 밀려왔다.

“무슨 일이 있는 거요?”

목운요는 대꾸도 하지 않고 바깥으로 나갔다. 그녀가 막 대전 문을 나섰을 때, 별안간 징이 울렸다. 그리고 사람들이 소란스럽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불이야!”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쓰러지려는 목운요를 사금이 빠르게 부축했다.

“소저!”

목운요는 곁채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다리 힘이 풀려 마음대로 뛸 수 없었다. 조급해할수록 걸음만 꼬일 뿐이었다.

‘침착하자, 침착해야 해. 아무 일 없을 거야.’

목운요는 그렇게 몇 번이나 자신을 다독인 후, 고개를 들어 월왕을 찾았다. 그는 이미 곁채 쪽으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사금! 어서…….”

소청오는 다급해하는 목운요를 보고 재빨리 상황을 파악했다.

“내가 가서 보고 오겠소. 고모님이 계신 쪽이 아닐 수도 있소.”

사금은 목운요를 부축하고 걸음을 빨리하면서 자기 자신을 몹시 책망했다.

“다 제 탓입니다. 소저께 무슨 일이 생겼다는 소리를 듣고 너무 당황해서 그만……. 사기가 남아 있으니 큰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함정일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지금 목운요에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오직 속히 곁채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괜한 소란일지도 몰라. 어머니는 곁채에서 무사히 기다리고 계실지도 몰라.’

그때, 화염이 하늘로 솟구치면서 밤하늘 절반을 붉게 물들였다.

요즘 날씨가 건조한 데다, 보화사는 바람이 많이 부는 자리에 위치해 있었다. 바람에 불길이 퍼져 불꽃이 사방으로 튀었다.

주위는 소식을 듣고 불을 끄러 온 승려들과 참배객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불길이 너무 세서 물을 뿌려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솟구치는 큰불에 둘러싸인 곁채를 보자 목운요의 두 눈이 커졌다.

“어머니!”

목운요는 몸을 사시나무 떨듯 하면서도, 사금을 밀치고 불이 붙은 곁채로 달려갔다.

소청오가 황급히 목운요를 잡아 세웠다.

“사람을 불러 불을 끄라고 할 테니 진정하시오. 고모님은 곁채에 안 계실지도 모르오.”

목운요가 홱 고개를 돌렸다. 두 눈에 증오가 용솟음쳤다.

“이거 놔요!”

소청오는 목운요의 눈에 가득한 짙은 원망을 보고 놀랐다. 목운요는 자신을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처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운요, 진정하래도!”

목운요는 소청오의 손을 밀쳤으나 힘이 모자랐다. 이미 이성이 사라진 지 오래라 그녀는 곧장 소청오의 손등을 세게 물었다. 피비린내가 났다. 목운요는 그 냄새를 참지 못하고 헛구역질을 했다.

소청오는 자신이 다친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내가 들어가서 찾아볼 테니 제발 가만히 있으시오.”

그러나 목운요는 그에게서 벗어나 곁채로 달려들었다.

“소저!”

사금이 목운요를 바짝 뒤따랐다. 두 사람이 곁채의 입구에 이르렀을 때, 대들보가 불에 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건물이 무너졌으니 더는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수 없을 터.

사금이 얼른 목운요를 가로막았다.

“소저, 무너졌어요. 못 들어갑니다!”

목운요는 눈을 크게 떴다. 새까만 두 눈 속에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있었다.

목운요를 재빨리 잡아당긴 사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소저, 부인이 다른 곳에서 소저를 찾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목운요는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귀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얼음처럼 차가운 연못에 빠져 끊임없이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눈 속에 슬픔이 휘몰아쳤다. 비록 눈물을 흘리진 않았으나 목운요를 보는 사람들은 ‘소리 없는 슬픔’이라는 말을 떠올렸으리라.

“소저, 제발요.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사금은 제 뺨을 여러 번 내리쳤다. 소저께서 무슨 일이 있어도 부인의 곁을 떠나지 말라고 경고했거늘, 방심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빠른 걸음으로 목운요의 곁으로 다가간 소청오가 막 입을 열려는데, 제 마마에게 부축을 받으며 걸어오는 소우의가 보였다. 창백한 얼굴에 눈물 자국까지 달고 있는 것을 보니 함께 화를 당한 것 같았다.

“오라버니…….”

“우의야, 다친 곳은 없느냐?”

소우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몸이 좋지 않아 방에서 잠깐 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불길이 크게 번지기 전에 탈출했어요. 안 그랬으면 영영 오라버니를 보지 못했을지도 몰라요.”

“그럼 고모님은? 고모님은 보았느냐?”

“고모님은 방에서 탈출하지 못하신 거예요?”

목운요는 서릿발이 휘날리는 것 같은 냉랭한 눈빛으로 소우의를 바라보았다. 그 속에 느껴지는 살기는 마치 날카로운 칼날 같아서, 시선만으로 상대방을 피로 물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런 목운요의 시선을 마주한 소우의는 저도 모르게 두어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곧 정신을 차렸다.

“동생, 너무 상심하지 말아요.”

“기복전에선 언제 나왔죠?”

목운요는 쉰 목소리로 느릿느릿 말을 내뱉었다. 한 음절, 한 음절 쥐어 짜내 힘들게 말하는 느낌이었다.

“온종일 꿇어앉아서 불경을 읊다 보니 버티기 힘들더라고요. 오라버니가 마음 써 주신 덕에 일찍 돌아왔어요.”

“돌아온 지는 얼마나 됐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건가요?”

소우의는 인상을 찌푸렸다.

목운요의 온몸을 감싼 살기가 더욱 무겁게 내려앉았다.

“대답해요. 돌아온 지 얼마나 되었어요?”

소우의는 대답하고 싶지 않았으나 목운요의 살벌한 눈빛에 간담이 서늘해져 절로 대답이 나왔다.

“한 시진 조금 넘었을 거예요. 뭐 잘못됐나요?”

목운요는 주먹을 꽉 쥐었다. 너무 세게 쥐어 손톱이 손바닥을 찔렀다. 피가 번지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소저!”

그때, 사금이 크게 소리쳤다. 사금은 목운요를 이끌어 서쪽을 보게 했다.

“부인이세요!”

그에 목운요는 입술을 달달 떨며 사금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리고는 뚝뚝 눈물을 떨궜다.

‘어머니…… 어머니야!’

몸을 감싸던 살기가 걷혔다. 소청을 본 순간, 목운요는 그제야 자신이 살아 있음을 실감했다.

사금은 얼른 목운요를 부축하여 걸음을 옮겼다.

“다행이에요! 부인께서 무사하셔요!”

목운요는 빠르게 달려가 소청을 껴안았다. 몇 번이나 입을 달싹이다 잔뜩 잠긴 목소리로 겨우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머니…….”

“요아야, 콜록콜록……. 이 어미는 괜찮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마. 콜록…….”

목운요는 소청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다친 덴 없으세요?”

사실 소청의 상태는 다소 처참했다. 팔 이곳저곳에 상처가 가득했고, 발도 다쳐 제대로 서지도 못했다.

“염려하지 마라. 콜록콜록……. 이 어미는 정말 괜찮아. 실수로 발을 접질렸고, 연기를 조금 마셨을 뿐이다.”

“부축해 드릴 테니 우선 앉아서 쉬세요.”

“나는 괜찮다만, 영 공자가, 콜록, 다쳤는데…….”

목운요의 눈빛이 일렁였다.

“월……. 영 공자가 어머니를 구했나요?”

“콜록……. 나와 사기는 큰불 속에 갇혀 있었어. 주위는 연기로 가득 차 앞도 보이지 않았고, 불길이 너무 세서 나갈 수가 없었다. 건물이 무너지려는데 영 공자가 달려 들어와 우리를 구해 냈어. 곁채에서 나오다 공자가 다쳤는데……. 콜록…….”

소청은 연기를 심하게 마신 탓에 마지막 말을 내뱉을 땐 거의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걱정하지 마시고 우선 쉬고 계세요. 영 공자는 사람을 불러 찾아볼게요.”

한편 소청이 무탈한 걸 확인한 소우의는 두 눈을 번뜩이며 분노와 원망을 속으로 삼켰다.

‘저렇게 큰불이 났는데 살아 돌아오다니, 대체 무슨 운을 타고난 거야?’

소우의의 표정을 보고 있던 소청오는 차가운 목소리를 냈다.

“우의, 너…….”

황급히 정신을 차린 소우의가 소청오의 눈빛을 확인하고는 제 발 저린 듯 행동했다.

“왜 그런 눈빛으로 보세요?”

“몸이 불편하면 억지로 기도드리지 않아도 된다. 마차를 준비할 테니 집으로 돌아가거라.”

“왜요? 내일이 마지막인걸요. 버틸 수 있어요.”

소우의는 황급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공주가 이곳에 있고, 아직 만나 뵙지도 못했는데 어찌 이대로 돌아간단 말인가?

“더 묻지 말고 일단 집으로 돌아가.”

소청오는 아까 목운요의 표정이 너무 섬뜩했던 것이 마음에 걸렸기에 일단 소우의를 먼저 보내려 했다.

하지만 소우의는 그런 마음도 모르고 가문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위험한데, 돌아가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요? 제가 걱정되지 않나요?”

“사람을 붙일 것이니 별일 없을 거다.”

소청오는 단호했다.

“왜 그리 언니를 급하게 보내시나요?”

그때, 언제 온 것인지 목운요가 불길을 담은 까만 눈동자를 빛냈다. 어둠이 짙게 깔린 눈은 왠지 모르게 괴이하기도 했다. 입꼬리를 슬쩍 들어 올려 웃는 목운요의 속내를 전혀 헤아릴 수 없었다.

“날이 어두워요. 온 서릉에 언니의 명성을 모르는 자가 없는데, 혹 누군가가 길에서 못된 마음이라도 먹으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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