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89화 (189/442)

189화 재회

* * *

기도를 시작할 시간이 되자 목운요와 소청은 보호대를 무릎 위에 대고 묶었다. 미리 준비해 둔 방석도 있으니 두 시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사실 기도를 드리는 것은 형식적인 관습이라, 보통은 오랫동안 무릎을 꿇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대부인은 일부러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았다. 심지어 제 마마까지 보내 이를 지켜보게 하였다.

소아한 등을 보니 목운요는 다소 미안해졌다.

‘괜히 나 때문에 저 사람들까지 힘들게 됐네. 나중에 좀 도와줘야겠어. 대부인에게는 오늘의 빚을 반드시 갚아야지.’

기복전 안에 촛불이 밝게 빛났다. 목탁 소리가 맑고 그윽해서 듣기 좋았고, 단향 냄새가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목운요는 필사한 불경을 향단 위에 바쳤다. 다른 이들도 그 옆에 자신들이 필사한 불경을 두었다. 다들 두 권씩만 베껴 썼는데, 목운요의 스무 권이 나란히 놓이니 심히 비교되었다.

소청오는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응시했다. 그녀는 평소와 같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다. 불평이나 원망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에 한숨을 내쉰 소청오가 가문을 대표하여 향을 피운 후,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목운요와 가족들도 그를 따라 절을 올리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마음을 가라앉히며 기다리니 곧 스님이 염불을 외고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대전 안은 순식간에 고요해져 오직 목탁 소리만이 들렸다.

목운요는 높은 보좌 위의 석가모니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이 유달리 평온해 보였다. 그녀는 절을 올리며 기도했다.

‘이번 생에는 어머니께서 장수하게 해 주세요.’

앞으로의 일이야 다 계획이 있으니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기만 하면 되었다. 그것은 부처님의 연민에 기댈 필요가 없었다.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어머니께서 오래 사시는 것이었다. 이 소원이 이뤄질 수만 있다면 보화사 전체를 개축할 돈이라도 헌납할 수 있었다.

한편, 옆에 있던 소청도 부처님께 절을 올렸다. 그녀의 바람은 딸이 다시는 이전의 고난을 겪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첫날 기도는 평화롭게 지나갔다. 시간을 보내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준비를 잘해 두었기 때문에 큰 고생은 하지 않았다.

두 시간이 지나자 목운요는 소청과 함께 곁채로 돌아왔다.

방에서 족욕을 하며 한기를 풀고 있는데, 책상 위에 작은 쪽지가 하나 놓여 있는 게 보였다. 쪽지를 펼쳐 보자 월왕의 필적으로 단 두 글자만이 쓰여 있었다.

[냇가]

목운요는 눈썹을 찌푸리며 종이를 촛불에 태웠다.

‘월왕도 보화사에 온 건가?’

그녀는 곧장 일어서서 외투를 들었다가, 잠시 생각하더니 다시 침상에 앉았다.

‘이곳은 보화사야. 월왕을 만나러 갔다가 반갑지 않은 사람을 맞닥뜨릴 수도 있고, 위험한 일을 당할 수도 있어. 그러니…….’

그때, 사금이 문을 두드리며 물어 왔다.

“소저, 주무세요?”

“아니, 아직. 무슨 일이야?”

“보화사 서쪽에 있는 냇가에 별안간 연등이 흘러 내려와서 참배객들이 모두 구경하러 갔습니다. 부인께서도 가 보고 싶으시다면서 소저가 주무시는지 보고 오라 하셨어요.”

“연등이?”

목운요는 월왕이 보낸 쪽지에 쓰여 있던 ‘냇가’라는 말이 떠올라 손을 급히 말아쥐었다. 설마 연등을 함께 보자는 뜻이었던 걸까?

“그, 그래……. 어머니와 함께 보러 가자.”

* * *

소청과 함께 냇가에 도착한 목운요는 냇물을 따라 내려오는 정교한 연등들을 보았다.

졸졸 흐르는 시냇물과 아리따운 연등들은 온 하늘을 수놓은 별빛을 받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구경하던 사람들은 작은 소리로 수군거렸다.

“보화사에서 마련한 연등인가?”

“보화사에서 준비했다면 사전에 참배객들에게 통지했겠지.”

다른 사람들이 연등의 출처로 의견이 분분할 때, 목운요는 연등 꽃잎 위의 그림을 살펴봤다. 월왕이 자신에게 줬던 빙등을 그린 그림이었다. 왠지 모르게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월왕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는 게 두렵지도 않나……?’

“참으로 아름답다…….”

소청은 감탄의 한마디를 내뱉고는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바라봤다. 딸아이는 양 뺨이 살짝 달아오른 채 입술을 질끈 깨물고 있었다.

“요아야, 왜 그러니?”

“네? 아, 저도 모르게 눈앞의 아름다운 모습에 홀렸나 봐요. 연등이 아래로 흘러가는데, 계속 따라가서 구경할까요?”

“괜찮다. 여기서 보면 되지. 그보다 내일은 아침부터 경을 읊어야 하니 일찍 들어가서 쉬자꾸나.”

“네.”

목운요는 소청의 팔을 부축하며 뒤편에 있는 곁채로 걸어갔다.

그러다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인파 속에 조용히 서 있는 월왕이 보였다. 반짝이는 두 눈과 시선을 마주치니, 까닭 없이 가슴이 떨려 왔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

“무슨 일이니?”

“저…… 시냇가를 좀 더 구경하고 싶어요. 어머니는 먼저 돌아가세요.”

“그래, 조금만 구경하고 방에 돌아가 쉬렴.”

“네.”

목운요는 소청이 떠나는 모습을 눈으로 배웅한 후에야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다시 자리를 뜬다면 마음을 감추려는 것이 더 티가 날 테니, 결국 느린 걸음으로 다가갈 수밖에 없었다.

“연등은 마음에 드느냐?”

“사야의 취향이 참으로 고고하시군요.”

월왕은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렸다. 그저 목운요를 기쁘게 하고 싶었을 뿐, 딱히 감사 인사를 바라고 한 건 아니었다.

“한 가지 더. 동쪽을 보아라.”

그에 목운요는 동쪽을 바라봤다. 그곳에선 장공주가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보화사에 조용히 방문했기 때문인지 대동한 사람은 곡 마마뿐이었다. 궁궐에서 느꼈던 위엄과 거리감이 사라져 그때보다는 조금 더 친근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목운요는 시선을 피하려 했으나 장공주와 눈이 마주치는 바람에 황급히 다가가 예를 갖추어야 했다.

“부…… 인께 인사 올립니다.”

장공주는 이곳에서 목운요와 마주치리라 예상치 못했기에 놀란 눈을 했다.

“참 공교롭구나. 너도 연등을 보러 온 것이냐?”

“네. 내일이 외조부의 기일이라 요 며칠 보화사에서 경을 읊고 복을 기원할 예정입니다.”

장공주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효심이 갸륵한 아이로구나.”

그때, 월왕이 다가와 드물게도 감정이 섞인 음성으로 말했다.

“고모님, 날이 찬데 어찌 외투를 걸치지 않으셨습니까?”

“괜찮다. 귀찮기만 하다.”

월왕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곡 마마, 고모님은 내가 모시고 있을 테니 외투를 가져오게.”

“네, 전하.”

장공주는 말없이 서 있는 목운요를 바라보았다.

“경치가 괜찮으니 천천히 구경하렴.”

말을 마친 그녀는 월왕과 함께 기복전으로 걸어갔다.

“조심히 가십시오.”

장공주와 월왕이 멀어지자, 목운요도 곧장 곁채로 향했다.

월왕은 자신을 장공주와 만나게 해 주려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목운요는 장공주의 신분과 지위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그녀와는 개인적으로 쌓인 정도 있고, 관계를 따지자면 복잡했다. 한번 얽히면 빠져나오기 쉽지 않을 관계였다.

* * *

하늘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기복전 앞에는 보화사의 주지인 원광대사(远光大师)가 서 있었다.

“아미타불……. 오셨습니까?”

장공주는 원광대사를 향해 두 손을 모아 합장했다.

“네, 대사님. 향을 올리러 왔습니다.”

원광대사는 미소를 지으며 장공주에게 대전 안으로 들라고 청했다.

장공주는 자비로운 얼굴을 한 금빛 석가모니 불상을 올려다보았다.

“대사님, 서른 해가 넘도록 매년 소원을 빌었으나 지금껏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젠 제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이번 생에 제 소원이 이루어질 기회가 있을까요?”

장공주는 매년 보화사에 와서 잃어버린 딸을 되찾게 해 달라고 빌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이는 여태껏 소식 하나 없어서 살았는지 죽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미타불……. 공주께선 좋은 일을 많이 하셨잖습니까? 하늘은 착한 사람을 박대하지 않습니다.”

빙그레 웃는 장공주의 눈 속에 빛이 가물거렸다.

“대사님, 부처님은 믿을 만합니까?”

“아미타불……. 부처님은 자비로우시어 믿으면 존재하고, 믿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존재도 공주께 달려 있습니다.”

장공주는 살짝 눈을 감고 양손으로 향을 쥔 채 불상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이 순간만큼은 공주가 아니라 오랜 세월 잃어버린 아이의 소식을 듣지 못한 어머니였다.

“미약한 희망이지만, 온 마음을 다하여 부처님을 믿고자 합니다. 설령 아이를 찾아내지 못한다 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 아이가 평안하고 근심 없길 빕니다.”

월왕은 앞으로 다가가 향을 향로에 끼운 후, 장공주와 함께 복을 기원하는 경문을 읊었다.

“고모님, 늦었으니 이만 돌아가시지요.”

장공주는 나직이 숨을 들이마셨다가 다시 불상에 예를 갖춘 후 일어섰다.

“매년 이곳에서 기다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사님.”

원광 대사는 말없이 웃으며 인사를 올렸다.

뒤돌아 떠나려던 장공주의 시선 끝자락이 향단 위의 불경에 닿았다. 그중 살짝 펼쳐진 한 권이 유달리 수려한 잠화소해체(簪花小楷, 해서체의 일종)로 되어 있었다. 보는 사람의 기분이 새로워질 만한 날카로움이 있는 서체였다.

장공주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저건 불경인가?”

월왕은 한 권을 가져와 장공주의 앞에 놓았다. 그의 행동에는 다른 사람이라면 알아차리기 힘든 따뜻함이 깃들어 있었다.

“목 소저가 외조부의 명복을 기원하기 위해 필사한 것입니다.”

장공주는 필사본을 한번 훑어보고는, 탁자에 높게 쌓인 스무 권을 보며 입가에 웃음을 띠었다.

“효심이 남다르구나. 불경을 베낀 서체가 유독 마음에 드는데, 이건 내가 가져가야겠다. 내일 적절한 때를 봐서 목운요에게 일러 주렴.”

“네, 고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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