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83화 (183/442)

183화 하룻밤 사이의 소문

“명음은 도움이 되어 드릴 수 있어서 기뻤고,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하는 점이 무척 송구스럽다고 하였습니다.”

목운요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서릉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경릉성이 그립네……. 가서 마저 일을 봐. 혹시라도 서릉에 다른 소문이 나진 않는지 시시각각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네.”

* * *

서릉 사람들이 월궁 선녀를 찾으려고 아무리 애쓴들 소용없었다.

그러던 중 저잣거리에서 월궁 선녀를 그린 미인도 열두 점이 발견되었다. 한눈에 봐도 화폭에 그려진 여인이 종이 위로 걸어 나올 것같이 생동감이 넘쳤다.

그때, 별안간 어떤 소식이 전해졌다.

“월궁 선녀는 소우의야!”

사람들은 그 이름에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소우의가 그 유명한 목운요의 사촌 언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제야 사람들은 단번에 이해하고는 소씨 가문의 행운을 부러워했다. 소씨 가문에 목운요가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하건만, 그 가문의 큰 아가씨도 깜짝 놀랄 만한 재목일 줄이야!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소씨 가문은 이부 상서의 집안이 아닌가? 평범한 사람들은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고관대작 집안의 소저가 기루의 무대에 올라 춤을 췄다고?

* * *

그날 오후, 온 마마가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왔다.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온 마마의 안색을 본 노부인은 긴장했다.

“큰 아가씨의 명성에 큰 흠집이 생긴 것 같습니다.”

“무어라?”

노부인은 침상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냐? 어찌 명성이 떨어져?”

“어제 환채각 앞에 설치된 무대에서 한 무희가 춤을 추어 많은 사람에게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종적을 감추자, 일 벌이기 좋아하는 서생들이 그 무희가 춤추는 미인도까지 그렸답니다. 그런데 하필 그 춤과 외모가 큰 아가씨를 상당히 닮았다고…….”

노부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에는 살벌한 빛이 스쳤다.

“세상에 어찌 그런 우연이! 소문은 얼마나 퍼졌느냐?”

온 마마의 안색이 더욱더 어두워졌다.

“원래는 대부인께서 손을 쓰시어 큰 아가씨의 명성을 널리 퍼뜨릴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아가씨를 배월 선녀라는 별칭으로 소문내고 있던 차에, 그날 채월각 무대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그 무희를 월궁 선녀라 칭송하게 된 겁니다. 그러다 보니 두 가지 소문이 서로 섞여서, 결국 환채각 무대에서 큰 아가씨가 춤을 추셨다는 소문이 되어 버렸습니다…….”

“터무니없는 소리! 우의가 어찌 환채각같이 불결한 곳에 나타날 수 있겠느냐!”

“고정하십시오. 소인들은 당연히 잘 아는 사실입니다만, 뭣도 모르는 백성들이 어디 말이 되냐, 안 되냐를 따지겠습니까? 지금은 소문 먼저 가라앉혀야 합니다. 어쨌거나 큰 아가씨의 명성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속히 맹 씨를 불러오너라!”

“네.”

* * *

연극이 한창인 와중에, 온 마마가 무거운 얼굴로 대부인에게 다가갔다.

“온 마마, 노부인 곁에 안 있고 왜 이곳에 왔습니까?”

“노부인께서 잠시 들르시랍니다.”

“급한 일입니까?”

온 마마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시면 알 겁니다.”

대부인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 표정을 굳히며 옆에 있는 소우의에게 분부했다.

“노부인을 뵙고 올 테니 극을 마저 보고 있으렴.”

대부인은 노부인이 있을 영화원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휘장을 걷자마자 노부인이 찻잔을 세게 집어 던졌다. 찻잔이 대부인을 스쳐 지나갔다.

쨍그랑-!

“네가 무슨 짓거리를 했는지 봐라!”

대부인은 황급히 무릎을 굽히고 예를 갖추었다.

“어머님, 제가 어떤 일을 했기에 갑자기 성을 내십니까? 괜한 화를 내시어 몸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노부인은 마음속에 노기를 담고 있던 터라 그 입에서 거친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소씨 가문을 네게 맡기고 우의를 직접 가르치라 한 것은 우의를 더 빼어나게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데 네가 그 아이를 망쳐 버릴 줄이야!”

대부인은 벌벌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황급히 고개를 들었다.

“어머님,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우의는 제 배로 낳은 딸입니다. 제 손안에 넣어 두고 아껴도 모자라거늘, 어찌 제가 그 아이를 망쳤단 말씀입니까?”

“온 마마, 서릉의 소문을 말해 주어라.”

“오늘 서릉에선 수많은 사람이 월궁 선녀를 찾는다고 떠들썩했습니다…….”

온 마마는 빠르게 오늘 일어난 일을 아뢰었다.

대부인은 절반 정도 들었을 때부터 안색이 하얗게 질리기 시작하더니, 모두 듣고 난 후에는 등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졌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월궁 선녀라니, 대체 어디서 나온 말이죠? 환채각은 또 무슨 일이고요?”

여인에겐 평판이 가장 중요했다. 평소 이름을 떨치더라도, 소문을 통제하지 못하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오랜 시간을 공들여 세상을 놀라게 할 날만 기다리고 있었거늘, 중간에 월궁 선녀 따위가 나타나 버렸다. 그것도 환채각처럼 천박하기 그지없는 곳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사정을 분명하게 설명한다 해도 결국 웃음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소우의의 명성을 널리 퍼뜨리고자 큰 공을 들여 많은 사람을 동원한 탓에, 사태를 단시간 내에 수습하기가 더 어려웠다…….

“어머님, 소문이 더는 퍼져 나가지 않게 상황을 통제해 주세요. 우의의 명성을 이런 식으로 망가뜨릴 순 없습니다!”

노부인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이게 통제한다고 될 일이냐? 우리가 상황을 늦게 파악했으니 그사이에 이미 소식이 다 퍼져 나갔을 거다.”

“그렇다고 해서 말도 안 되는 소문을 듣고만 있을 순 없습니다. 어머님도 우의를 아끼시잖습니까? 우의는 소씨 가문의 적녀입니다. 상서부의 체면이 달린 일이니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노부인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물은 깨끗이 씻을수록 더러워지고, 먹도 칠할수록 더 검게 변하는 법. 우리가 조급해할수록 일은 더 커질 테니 차라리 신경 쓰지 말고 내버려 두어야 한다.”

“하지만 해명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계속해서 우의가 한낱 기루의 무희라고 의심할 겁니다.”

“다들 월궁 선녀를 찾는다고 하지 않았더냐? 그 무희를 찾아서 우의가 아니라는 걸 확인시키면 소문은 저절로 사라질 거다.”

대부인은 그제야 수긍의 빛을 보였다.

“어머님 말씀이 맞습니다.”

진짜 월궁 선녀만 찾아낸다면 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소우의에게서 멀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소우의의 명성을 위해 노력했던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소우의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노부인은 대부인의 언짢은 심사를 알아차리고 입을 열어 경고했다.

“우선 우의를 불결한 소문에서 빼내는 게 가장 중요하다. 명성은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 보자.”

대부인은 얼른 생각의 갈피를 거두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님. 어찌해야 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다행이구나.”

빠르게 영화원을 나온 대부인은 서둘러서 인력을 동원했다.

그러던 중 제 마마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 모습을 보자 대부인의 화가 치밀었다.

“발등에 불이라도 떨어졌습니까? 왜 이리 야단이에요?”

대부인이 이토록 거칠게 말하는 일은 드물었다. 평소엔 언제나 너그럽기 그지없던 대부인이 거친 언행을 보이자, 제 마마는 깜짝 놀라 그대로 꿇어앉았다.

“대부인, 사람들이 대문 앞에서 왕 노파와 유 노파가 죽었다고 소란을 부리고 있습니다…….”

“뭐라고요? 왕 노파와 유 노파는 또 누굽니까? 그들이 죽든 말든 우리 가문과 무슨 상관이죠?”

“왕 노파와 유 노파는 일전에 녹의 소전각에서 맹 소저의 명으로 목 소저를 때렸다가, 목 소저에게 처벌받고 소씨 가문에서 쫓겨난 하녀들입니다.”

대부인의 눈이 커다래졌다.

“그 노파들이 어찌……? 그때 가볍게 열 대를 때리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꽤 오래된 일인데 왜 이제 와서 난리를 치는 거죠?”

“소란을 피우는 자들은 두 노파의 식솔입니다. 꿇어앉아서 울고불고 난리를 피우는데, 두 사람이 어쩌다 죽었는지가 문제가 아닌 것 같습니다. 집이 빈곤하여 돈 생길 곳이 없다고 생떼를 부리는 것이죠.”

“애초에 두 노파를 때리라고 명을 내린 장본인은 목운요입니다. 사람이 죽었다면 응당 그 아이가 나서서 해명해야겠죠. 제월각으로 가서 목운요에게 자신이 저지른 문제를 직접 해결하라고 전하세요.”

안 그래도 소우의의 일로 심장이 새까맣게 탈 지경인데, 별것도 아닌 것들이 소란을 떤다는 얘기를 듣자 화가 더 치밀어 올랐다. 대부인은 말을 마친 후 바로 자리를 떠 버렸다.

* * *

목운요와 소청이 식사를 마칠 무렵, 제 마마가 대부인의 말을 전하러 찾아왔다. 소식을 들은 목운요는 무의식중에 입꼬리를 올렸다.

“큰외숙모 말씀은 대문 앞에서 벌어진 소란을 제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제 마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어쨌거나 유 노파와 왕 노파를 때리라고 명한 사람은 목 소저셨으니까요.”

목운요는 빙그레 웃더니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제가 직접 가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대부인께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마마가 고생이 많으십니다.”

“별말씀을요.”

제 마마가 돌아가자 소청은 바로 미간을 찌푸렸다.

“요아야, 그 노파들에게는 곤장을 열 대 정도 때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게다가 매를 때린 것도 연약한 사금과 사기였어. 소씨 가문의 수많은 사람이 그 장면을 봤는데, 혹시 일부러 네게 이번 일을 떠넘기는 게 아닐까 싶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미 일어난 일인걸요. 제가 가서 보고 올게요.”

“그래, 조심하거라.”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옆에 서 있는 사금과 사기를 바라보았다.

“그때 너희가 두 노파의 곤장을 쳤으니, 나와 같이 가서 보자꾸나. 그리고 외할머니께서 나에게 붙여 주신 묵옥도 불러오도록 해.”

“네, 아가씨.”

사금과 사기는 전혀 당황하지 않고 목운요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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