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82화 (182/442)

182화 명성

“네.”

“맹 씨한테는 조심스럽게 언질을 주어야 한다. 목운요는 황상의 눈에 든 데다가, 하운방과 불선루를 뒷배로 두고 있다. 고작 두 가지 사업이라고는 해도 점점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으니 잘 이용만 한다면…….”

갑자기 소문원이 눈빛이 흔들렸다.

“어머니 계획은 설마……?”

노부인이 쥐고 있던 염주를 한쪽에 놓았다.

“춘수방이 무너졌을 때 입은 손해는 지금 생각해도 막심하지. 하지만 하운방과 불선루를 얻는다면 분명 손해 보지 않을 장사가 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습니다. 안심하십시오, 어머니.”

“그래, 문원아. 그리고 내가 저번에 말한 일에는 절대 개입하지 말아라. 만에 하나…….”

노부인 손 씨는 그런 일만은 피하고 싶다는 듯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만에 하나라도 목운요의 운수가 너무 좋으면 맹 씨를 다른 데 피신시켜서 너만은 연루되지 않도록 할 거다. 그래야 우리 소씨 가문의 뼈대가 무너지지 않을 테니까.”

소문원은 조금 멍해졌다. 살짝 걱정되는 것처럼도 보였다.

“하지만, 어머니……. 안사람은 저와 지낸 지도 오래되었고, 청오와 우의까지 낳아 주었는데…….”

“네가 정이 많은 건 안다. 하지만 사람 간의 정이 더 중하냐, 아니면 장래가 더 중하냐?”

노부인이 눈썹을 찌푸리자 평소의 인자한 표정은 사라지고, 냉정하고 날카로운 인상이 드러났다.

“게다가 맹씨 집안이 지금은 대단하다지만, 자식들이 하나같이 출세를 못 하지 않았느냐? 맹 태사 혼자 이끄는 집안이 과연 얼마나 갈까?”

“맹씨 집안에 인재가 부족하긴 하지만, 궁중의 덕비 마마도 계시고…….”

노부인의 눈에 어두운 빛이 스쳤다.

“자식 하나 못 낳은 비에게 무얼 기대하느냐? 이제야 회임을 한다 해도, 아이가 다 자랄 때까지 버틸 수나 있겠느냐? 애초에 선황후께서 그 일을 해내지 않으셨다면 지금 황자들은 권력을 다툴 기회조차 없었을 거다. 그랬다면 황위는…… 됐다. 옛날이야기는 여기까지 해 두자. 그저 지금이 천 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절대 놓쳐선 안 되는 기회라는 것만 기억해라.”

“알겠습니다, 어머니.”

소문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선황후가 황자 여럿을 죽이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삼황자도 물 만난 고기처럼 편하게 지내지 못했을 터였다. 현 황제는 죽어 나간 황자들 중에서도 재능이 뛰어난 수재였다.

노부인은 표정을 약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렇게 하자. 아깐 그저 예시를 든 거였다. 네 처의 수완이라면 목운요와 소청을 상대하는 건 일도 아니겠지. 맹 씨는 수년 동안 집안의 대소사를 관장해 왔다. 혹시나 정말로 일이 틀어진다면 친정에 배상을 좀 해 주면 그만이고.”

“네, 알겠습니다…….”

소문원은 잠깐 생각이 깊어졌다. 하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

노부인은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미간이 풀어지자 평소의 인자한 모습을 되찾았다.

“어제 궁궐 연회에서 우의가 훌륭한 춤을 선보였다니, 명성이 퍼지는 것도 순식간이겠지. 아비로서 네가 옆에서 많이 도와줘라. 다른 건 몰라도 이부 상서 직책은 서릉에서 아주 쓸모가 많으니까.”

“걱정 마십시오. 제 딸 우의가 이리 어여쁜 데다 재능까지 훌륭하니, 제가 앞길을 잘 닦아 주어야죠.”

“그래.”

* * *

월춘원(月春园)은 소씨 가문 사람들이 오락을 즐기는 전용 공간으로, 정원에 무대를 설치하고 주변에 회랑과 정자를 만들어 두어 편안하게 극을 관람할 수 있었다.

목운요가 소청과 함께 자리에 앉자마자 어디선가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드니 소우가 차가운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어머니, 잠깐 앉아 계세요. 우 언니한테 인사하러 갔다 올게요.”

“그래, 갔다 오렴.”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번에 딸아이는 둘째 부인이 자신을 신뢰한다면 손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둘째 부부는 소씨 가문 내에서 지위가 애매했다. 소지원의 벼슬이 소문원의 벼슬에 한참 못 미쳤을 뿐만 아니라, 소지원의 부인 척 씨는 대부인 맹 씨와 달리 집안일에 일절 개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척 씨는 아들 없이 외동딸만 두었고, 그 딸마저 몸이 병약하니 조건이 더 좋지 못했다. 그러니 이부인에게 마음만 있다면 운요와 서로 돕는 사이가 될 수 있으리라.

“언니,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네요.”

목운요는 소우의 곁으로 가서 웃음기가 짙은 눈빛을 보냈다.

반면 소우는 기분이 언짢아 보였다.

“차분히 앉아서 극이 시작하길 기다리지 않고, 이쪽엔 왜 왔어요? 할머니께서 관대하시기는 하지만, 이렇게 왔다 갔다 하면 교양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고요.”

“확실히 예전에 살던 곳에 비하면 이곳이 자유롭진 않지요. 그래도 외할머니께선 저를 무척 예뻐하시니까 조금 오가는 것 가지고 나무라진 않으실 거예요. 오늘따라 예쁘게 차려입은 언니를 칭찬해 주고 싶어서 왔답니다.”

소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지난번 일로 목운요가 다시는 자신을 상대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렇게 갑자기 먼저 인사를 건넬 줄이야. 게다가 그때 일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그럼 여기 앉아요. 그리고 과일을 좀 받았는데 너무 많아서 다 못 먹겠으니 이따가 제월각으로 좀 보내 줄게요.”

“좋아요. 언니를 도와서 좀 먹어 드릴게요.”

“그…… 그럼 좀 도와주든가요.”

목운요는 소우의 새침한 모습에 작게 웃다가, 그녀가 들고 있는 찻잔을 보고 무심결에 말했다.

“언니는 몸이 허약하니 육안차(六安茶, 녹차의 일종)를 마시면 좋지 않아요. 제가 경릉성에서 가져온 화과차(花果茶)가 좀 있는데, 맛이 일품이랍니다. 이건 언니가 저를 도와서 좀 마셔 주시는 게 어때요?”

소우는 불편한 마음으로 목운요를 마주 보았다. 마치 목운요가 자신을 여동생처럼 여기며 그 일을 눈감아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이내 소우는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화과차를 주면 곧장 의원들을 불러서 검사할 거예요. 차에 문제가 없는 게 확인되면 그때 맛을 보도록 하지요.”

“좋아요. 언니가 원하는 대로 하세요.”

목운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소우의 생각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우는 화과차를 의심하는 게 아니라 뒷일을 걱정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워낙 병약해서 환절기에 바람만 살짝 불어도 끙끙 앓았다. 그러니 조사를 철저히 해 두어야 오히려 다른 사람이 목운요를 모함할 가능성을 없앨 수 있었다.

소우는 빙긋 미소 짓는 목운요를 힐끗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소우도 자신의 성질이 고약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걸핏하면 화를 내니 곁에 있는 시종들도 성질이 괴팍하다고 몰래 수군대곤 했다.

게다가 그녀는 자매들과도 거의 왕래하지 않았다. 사실 자신도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자신이 가까이 다가가려 하면 사람들은 병이라도 옮을까 봐 피하고 싶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반면 목운요는…….

생각을 이어 가는 소우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 * *

환채각 월궁 선녀의 명성은 하룻밤 사이에 서릉을 휩쓸었다.

가장 먼저 퍼진 것은 이런 시구였다.

“하늘하늘 맴도는 눈송이같이, 승천하는 용같이 아름답구나. 늘어뜨린 두 손이 버드나무 같고, 나부끼는 옷자락에 구름도 약동하네.”

단 몇 구만으로도 춤추는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을 생동감 있게 묘사하니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어제 운 좋게 환채각에서 아름다운 무용을 본 사람들은 이 시구를 듣자마자 월궁 선녀를 떠올렸다.

한편, 소씨 가문 동원에서는 대부인이 하인의 보고를 듣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우의야, 오늘 이후로 네 이름을 모르는 자가 없을 것 같구나.”

소우의의 뺨이 발그레해지고 눈빛이 유달리 반짝였다. 하늘이 자신을 세상 그 누구보다 존귀한 자리에 올려놓기 위해 일부러 이런 미모를 내리신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 어머니께서 수고해 주신 덕이에요. 어머니 덕을 못 보았다면 제가 이렇게까지 유명해질 수는 없었을 거예요.”

“너는 내 하나뿐인 딸이다. 우리 딸을 위하지 않으면 내가 누굴 위하겠니?”

대부인은 어제 장공주로부터 하사받은 옥비녀를 우의의 머리에 직접 꽂아 주고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연극 무대가 지금쯤 준비되었을 거다. 오늘은 편안하게 즐기자꾸나.”

“네.”

* * *

목운요는 전통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옆에 앉은 소우는 더욱더 극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은 극에 집중하기보단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큰언니가 월궁 선녀라는 별명을 얻었다면서요?”

목운요는 백설기 하나를 집으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맞아요. 달에 기도하는 초선을 본뜬 춤을 추셨는데 그 자태가 아주 아름다우셨죠.”

소우가 목운요의 안색을 살폈다.

“어머니께서 내게 교양을 익히라며 마마 몇 분을 붙여 주셨는데, 나는 몸이 안 좋으니 운요 동생이나 며칠 배워 보는 게 어때요?”

목운요는 떡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저었다. 춤으로 소우의와 경쟁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었다.

그에 소우는 조금 퉁명스러운 눈빛을 보냈지만 강권하진 않았다. 사실 멋진 춤을 배워도 소우의의 용모가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저 흉내 내는 꼴이라며 비웃을지도 몰랐다.

그사이 노부인이 낮잠을 자러 가자, 목운요도 핑계를 대고 소청과 함께 제월각으로 돌아왔다.

곧 소청의 시녀인 사서가 들어와 목운요에게 아뢰었다.

“소저, 밖에 벌써 소문이 자자합니다. 사람들이 월궁 선녀를 찾느라 난리입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리 준비해 둔 그림을 챙기도록 해. 큰외숙모께선 유명세를 타고 소우의를 한 단계 더 높이 올리고 싶으시겠지. 이때 우리는 소우의를 밀어 버릴 거야. 명음이는 떠났니?”

“네, 경릉성으로 떠나셨습니다. 호위가 붙었으니 무슨 일은 없을 겁니다.”

“그래. 명음이 실력도 수준급이니 그리 걱정되진 않네. 다만 멀리서 여기까지 온다고 고생이 많았을 테니, 나중에 꼭 사례해야겠다.”

어젯밤 환채각에서 춤을 춘 여인은 다름 아닌 명음이었다. 명음은 어려서부터 암살술을 배운 덕에 동작의 기초가 탄탄해서, 달에 기도하는 모양의 춤을 배우는 건 일도 아니었다.

목운요가 경릉성에서 명음에게 그 춤을 가르친 것은 모두 소우의를 방해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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