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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79화 (179/442)

179화 경릉성 백성의 선물

장공주가 눈에 웃음을 띠더니 황제를 향하여 축하의 말을 올렸다.

“황상께서 어진 덕으로 백성을 사랑하시니 백성 또한 진심을 다하여 보답하는군요. 풍성한 오곡 한 말과 만민의 마음을 담은 우산이라, 실로 미담이 되기에 족합니다.”

“좋구나!”

황제는 옥좌 아래로 내려가 벼 이삭을 손에 쥐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백성의 마음이 실로 짐을 감동하게 하는구나. 만민 우산은 보물고에 소중히 보관하고, 오곡은 어선방에 보내 밥을 지어 오너라. 짐이 친히 맛보겠다.”

대전에 있던 모든 이가 얼른 일어서서 절했다.

“폐하께선 어진 덕으로 만민을 사랑하십니다. 만세, 만세, 만만세!”

“모두 일어나라.”

안 그래도 올해 조정에 끊임없이 많은 일이 일어나고, 크고 작은 자연재해도 몇 번이나 터져 마음이 무겁던 차였다. 그나마 경릉성에서 온 소식들만이 모두 좋은 것이었는데, 오늘 경릉성 백성들이 보내온 감사 선물까지 보자 더 기쁠 수밖에 없었다.

목운요는 조용히 눈을 내리깐 채 담담히 웃었다. 이목년의 계책인지, 진 총관의 계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무척 잘된 일이었다. 경릉성은 하운방이 발붙인 토대였으니, 경릉성의 영향력이 커질수록 하운방 또한 견고해질 터였다.

깜짝 선물에 기분이 좋아진 황제는 절로 목운요가 떠올랐다. 경릉성이 이러한 변화를 맞이한 데에는 목운요의 절대적인 공이 있었다. 목운요 같은 사람이 조금 더 있었더라면 황제인 자신은 정말로 근심과 염려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을 터였다.

“목운요.”

황제가 부르자, 목운요가 얼른 일어서서 예를 올렸다.

“네, 폐하.”

“다가오는 구월에 가을 사냥이 있으니, 너도 함께 간 후 그 모습을 그려 병풍으로 수놓는 건 어떠하냐?”

목운요는 얼른 감사의 예를 표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소녀, 반드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다. 수를 제대로 놓지 못하면 벌할 것이다.”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미소 지었다.

“소녀는 학식이 짧으나, 자수에만큼은 자신이 있습니다. 하오나 그림과 문장에는 뛰어나지 못합니다. 혹시 폐하께서 친히 사냥도를 그려 주시고, 소녀가 도안에 따라 수를 놓는 건 어떨는지요?”

황제는 이를 듣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짐이 친히 그림을 그린다면 네가 놓은 자수가 어떠하든 감히 별로라고 말하지 못할 텐데.”

그에 장공주는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은 감히 말할 수 없겠지만, 저는 두려울 게 없으니 제가 평가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황제는 더욱 흡족해졌다.

“물론입니다. 누님보다 더 자격을 갖춘 이는 없을 겁니다.”

대화가 끝나고 목운요가 원래 자리로 돌아갔으나, 그녀에게 향하는 사람들의 시선은 변함이 없었다.

이부인은 옆에서 찻잔을 들고 입을 가리며 살며시 웃었다.

‘대부인과 소우의의 안색이 실로 재밌구나. 이번에 소우의는 거의 하늘로 날아오를 뻔했는데, 애석하게도 목운요가 무참하게 훼방을 놓았어.’

소우의는 확실히 기함할 정도로 아리따웠다. 보통 사람에게라면 대부인의 계획이 성공했겠으나, 그들이 잘 보이려는 대상은 황상과 장공주였다.

두 사람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그들 앞에서 미색은 실로 하찮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목운요는 십만 냥으로 평생의 명성을 얻었다. 자선보다 가치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어지는 시간에는 몇몇 소녀들이 나와 재주와 기예를 선보였다. 하지만 소우의가 먼저 아름다운 모습을 보였기에, 사람들은 소녀들이 출중하다고 느끼지 못했다.

* * *

황제와 장공주는 의복을 갈아입을 겸 잠시 내려가서 휴식을 취했고, 관료들은 대전에서 자유롭게 연회를 즐겼다.

부인들과 여식들은 바깥으로 나가거나 화원에서 경치를 구경했다. 연회는 저녁까지 계속 이어지기에, 계속 대전에만 앉아 있는다면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장완은 목운요와 함께 화원에서 맑은 공기를 쐬었다. 천고마비의 계절인 가을이라 숨을 들이쉼에 따라 들어오는 서늘한 기운에 정신이 들었다.

“폐하를 따라 가을 사냥에 가게 되다니, 운요 동생은 참으로 복이 있군요.”

“어쩌면 언니도 갈 수 있을지도 모르지 않나요?”

장완은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가을 사냥이 어찌 평범한 일인가요? 대대로 황자들과 고귀한 신분의 소저들이 아니면 갈 기회가 없는걸요.”

“그건 이전이고, 지금은 장공주께서 계시잖아요?”

장공주가 딸아이를 고른다면 당연히 몇 번은 더 만나 보고 성정을 간파한 후에 엄선할 것이었다. 그러니 황제가 또다시 각 가문의 여식들을 데려오라고 할 가능성이 지극히 컸다.

장완은 눈을 반짝였다.

“정말 그럴까요?”

사실 장완은 장공주의 눈에 들기보단, 가을 사냥에서 소청오의 모습을 볼 수 있기만을 바랐다.

“저를 믿으신다면 돌아가서 승마복을 준비하세요.”

“좋아요.”

마음이 들뜬 장완은 말을 내뱉고 나서야 자신이 너무 급하게 대답했다는 걸 깨닫고 얼른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때 입을 수 없게 된다고 해도 앞으로 기회는 있겠죠. 옷 한 벌 짓는다고 해서 낭비는 아닐 거예요…….”

목운요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주우농이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장완을 찾아오자, 목운요는 눈치껏 조금 떨어진 곳으로 걸어가 꽃구경을 즐겼다.

자염(紫焰, 다육식물) 사이에 과꽃 한 송이가 피어 있어서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목 소저의 얼굴을 보니 자염이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인데, 혹 내가 선물한 살면미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소?”

익숙하면서도 낯선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목운요의 입꼬리가 올라가고 눈에는 서늘한 빛이 스쳤다.

“진왕 전하께서 하사하신 꽃은 방의 창가에 두고 매일같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그럼 목 소저는 백구축파가 좋소, 살면미인이 좋소?”

고개를 돌리자 활짝 웃는 진왕이 보였다.

“전하께서는 어느 꽃이 더 좋으십니까?”

“내가 볼 땐 두 꽃 모두 훌륭한 것 같소.”

진왕은 온화한 얼굴이었지만 두 눈에 깊은 의미를 담고 있었다. 차분한 시선이 목운요의 무언가를 들여다보고 있는 듯했다.

목운요는 맑고 또렷한 눈빛으로 더욱 짙게 웃음 지었다.

“저는 살면미인이 유독 좋습니다. 백구축파는 조금 평범해 보였거든요.”

순간 진왕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애초에 두 국화를 보낸 것은 목운요가 보이는 것처럼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상황 판단을 잘해서 대세의 흐름에 순응하기를 바란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목운요는 백구축파(白鸥逐波, 파도를 뒤쫓는 흰 기러기)는 평범하니, 흐름에 따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도 살면미인이 좋소. 겉으로 봤을 때는 티 없는 백옥처럼 새하얘서 지극히 평온해 보이지만, 그런 순수한 외양으로 짙은 흑색을 품고 있을 줄 누가 예상했겠소?”

목운요가 가볍게 웃었다.

“진왕 전하께서는 새하얀 꽃잎이 못된 흑심을 품은 것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맑지만 서늘한 눈빛이 목운요를 직시했다.

“부황의 생신 때 목 소저가 보낸 선물을 기억하시오?”

“어떤 선물을 말씀하시는 건지……?”

“그 강산도 말이오.”

진왕은 빈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목운요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

“강산도라니요?”

목운요는 눈썹을 살짝 움직이며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목 소저는 건망증이 있나 보오. 춘수방이 소저로 인해 비극을 맞았잖소.”

진왕은 속으로 의문이 들었다.

‘전혀 당황하지 않는 것 같은데, 정말 목운요와는 관계가 없는 건가?’

“전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분명히 산수화를 수놓아 춘수방에 판 적은 있지요. 하지만 그게 어디로 갔는지는 전혀 모릅니다.”

목운요는 일부러 숨기려 들지 않았다. 당시 하언촌 사람들이 강산도를 수놓는 모습을 많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만약 진왕이 조사하고자 한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으니 숨겨 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대담하구려. 감히 부황께 드리는 선물에 손을 쓰다니, 그건 참수를 당할 대역죄요!”

진왕이 엄한 목소리로 말하자 목운요는 가볍게 웃었다.

“저는 그리 간이 크지 못합니다. 무슨 일인지 전혀 모르겠으니 부디 소인을 겁주지 마세요. 제가 언제 황상께 드릴 선물에 손을 썼다는 겁니까? 당시 춘수방의 주인이 저를 찾아와 자수를 부탁했지요. 천부터 실, 심지어 바늘까지 모두 춘수방이 제공한 것입니다. 제가 한 것이라고는 그저 바느질뿐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어찌 손을 썼겠습니까?”

목운요는 진왕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자 진왕이 활짝 웃었다.

“그저 장난친 것이니 너무 마음에 담아 두지 마시오. 그 사건은 진작 조사를 끝냈소. 춘수방 사람이 술수를 부린 것이니 목 소저와는 관계없는 일이오.”

목운요는 그제야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럼 한시름 놓았네요. 방금 진왕 전하의 말씀에 심장이 목구멍을 타고 눈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습니다.”

애초에 금수강산도 일은 춘수방 선에서 끝난 것이었다. 게다가 목운요의 뒤에는 하운방과 불선루까지 버티고 있으니 진왕도 굳이 밑지는 장사를 하진 않을 터였다.

“요즘 듣자 하니 서릉에도 하운방이 열린다더군. 소저의 장사 수완이 좋으니 참으로 부럽소.”

“다 힘들게 고생해서 버는 돈인걸요. 가난한 집안 출신이라 저희 두 모녀가 살아남을 방법으로 이것밖에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소저는 너무 겸손하구려. 요즘 하운방과 불선루의 성과는 역사에 유례없이 대단하오. 가게 문을 연 후로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지 않소?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십만 냥을 쾌척할 수 있었겠소?”

진왕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가벼운 이야기처럼 말했지만, 목운요는 은근히 압박감을 느꼈다.

예전에 춘수방이 벌어들인 돈은 소씨 가문이 모두 삼황자에게 헌납했다. 그런데 춘수방이 사라졌으니 삼황자 수중의 사업만으로는 그의 야심을 만족시키기 어려웠다.

많은 사람이 장사꾼을 저급하게 여기지만, 그건 한참 좁은 생각이었다.

몇몇 황자들이 강남의 소금에 집착한 이유가 무엇이었겠는가? 바로 큰 돈줄이기 때문이다. 강남의 소금 운영을 좌우할 수 있으면 세력을 편하게 발전시킬 수 있으니 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진왕은 사업이 번창하고 있는 하운방과 불선루를 넌지시 떠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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