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75화 (175/442)

175화 서릉을 뒤흔든 중추절 선물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큰 손이야, 큰 손!

그때, 뒤에서 다른 배가 세 척이나 더 따라오고 있는 게 보였다.

“설마 뒤에 있는 배들도 붉은 계수나무는 아니겠지요?”

사공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건 아니오. 뒤쪽 배에는 경릉성 백성들이 목 소저에게 보낸 선물들을 실었소이다.”

“백성들이 목 소저에게 선물을 보냈다고?”

“그렇소. 이제 막 추수가 끝났잖소? 목 소저를 그리워하는 백성들이 곡식, 과일, 채소 따위를 보내왔소. 배에 다 싣지 못할 정도로 많아 절반만 선별해서 실었지.”

사공의 우직한 얼굴을 보면서 사람들은 혀를 내둘렀다.

일전에 목운요의 짐을 옮겼던 경험이 있기에 제 마마는 특별히 일손을 더 보충해 왔다. 이번에야말로 일손이 남아돌 줄 알았건만, 상황을 보아하니 이번에도 부족한 것 같았다. 어쩌면 가문의 모든 하인을 다 끌고 와야 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제 마마는 곧장 가문에 사람을 보내 대부인께 상황을 알렸다.

* * *

소식을 들은 대부인은 더는 웃음을 유지하지 못했다.

“동원 사람을 다 끌고 갔는데도 부족하다니, 온 경릉성이라도 끌고 왔다더냐?”

말을 전달하던 하인은 내심 두려움이 들었다.

“계수나무 여러 그루가 실려 왔고, 거기에 더해 경릉성 백성들이 보내온 선물이 큰 배로 세 척이라 부두가 이미 가득 찼습니다. 시간을 지체하다 저녁이 되면 거리에 사람이 많아져서 짐을 옮기기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주먹을 그러쥔 대부인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그럼 어서 옮겨야지. 선물이 왔는데 가문에 그것을 옮길 일손이 없다면 그야말로 우스운 꼴이 아니겠느냐?”

“예, 그럼 서원의 하인들도 데려가겠습니다.”

대부인은 성가시다는 듯 팔을 휘휘 저었다.

‘지난번 짐을 운반할 때 일손이 부족하여 사람들 사이에서 우스갯거리가 되었거늘, 그 짓을 또 반복하다니! 오늘이 지나면 서릉에 또 어떤 풍문이 들끓겠는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대부인은 가슴이 답답해져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였다.

‘소청과 목운요가 돌아온 지 보름밖에 안 되었는데, 그 보름이 지난 일 년보다 더 숨이 막히는구나! 무슨 방법이라도 생각해 내야겠다. 돌덩이처럼 눈에 거슬리는 자들을 계속 내버려 둘 순 없어!’

* * *

하인들이 중추절 선물을 가져왔다. 붉은 계수나무는 북쪽까지 오는 동안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듯 꽃들이 활짝 피어 있었다.

나무 아래 서서 고개를 들고 꽃가지를 살포시 끌어당기는 목운요의 눈에 따스한 웃음이 스쳤다.

그녀는 제월각에 심겨 있던 화초를 파내고 붉은 계수나무로 바꾸라고 명했다.

“소저, 경릉성 백성들이 보내온 선물이 실린 배가 세 척 더 있는데, 전부 들일까요?”

목운요은 약간 의아한 표정이 되었다.

“경릉성 백성들이 보내온 선물이라고?”

“네. 흥순 선박 사람의 말에 의하면 경릉성 백성들이 소저와 부인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다나 봐요.”

“모과를 던졌더니 옥패로 보답하는구나. 정말이지, 그때 베푼 선심을 이토록 빨리 보답받을 줄은 몰랐어.”

목운요의 안색이 점점 무거워졌다. 감개무량해하는 것 같으면서도 또 아무 일 아닌 것 같기도 한 그런 얼굴이었다.

“금란, 백성들이 보낸 선물은 잠시 배에 두었다가 오늘 궁중 연회가 끝난 후에 처리하자고 전해요.”

“네, 바로 전하겠습니다.”

목운요는 봄 내음이 나는 계수나무 꽃가지를 몇 대 꺾어 화병에 꽂아서 소청에게로 갔다.

“어머니, 이것 좀 보세요. 경릉성에서 보내온 계수나무예요.”

목운요가 입어야 할 옷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어 밖에 나가 보지 못한 소청은 계화꽃을 보고 의아한 눈을 했다.

“이건…… 붉은 계수나무가 아니니?”

“맞아요. 강남에도 이런 꽃이 피는 계수나무는 드문데, 진 총관이 꽤 신경을 썼나 봐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감사를 표해야겠다. 멀리서 보내온 마음이 얼마나 감사하니? 영 공자께선 세심도 하시지.”

소청은 웃음을 머금으며 목운요를 위아래로 찬찬히 뜯어보았다. 어머니의 그 눈길에 목운요는 다소 불편해졌다.

“진 총관이 보내온 것인데, 영 공자랑은 무슨 상관이에요?”

소청은 목운요가 이런 이야기를 꺼린다는 것을 알기에 작게 미소 지었다.

“알겠다, 알겠어. 그나저나 중추절인데 너도 영 공자께 선물을 보내야 하지 않겠어? 지금껏 바삐 산다고 영 공자가 어디 사는지 알아볼 겨를도 없었구나. 너는 혹시 알고 있니?”

“때가 되면 자연히 알게 될 테니 굳이 알아볼 필요 없어요, 어머니. 그보다 옷은 다 준비되었나요?”

“그럼, 어서 갈아입으렴. 벌써 시간이 많이 흘렀다. 조금 있으면 작은외숙모가 너를 데리러 오실 것 같구나.”

“적적하면 사금이랑 같이 계셔요…….”

입궐을 앞두고 어머니를 혼자 소씨 가문에 남겨 두려니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은 기분에 목운요는 사금을 비롯한 하녀들을 불러 모았다.

“내가 입궐하면 너희는 어머니 곁에서 조금도 떨어져선 안 된다. 알겠니?”

사금과 그 무리가 냉큼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부인의 곁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지지 않겠습니다.”

“그래.”

목운요는 미간을 한껏 찡그린 채 소청의 손을 꽉 쥐었다.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손바닥에서 땀이 약간 배어났다.

“어머니, 만일 대처하기 힘든 일이 생기면 제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처리해요. 어머니가 편히 계실 수 있도록 육냥도 은밀히 지키고 있을 거예요.”

소청은 웃음을 터뜨렸다.

“여기가 위험한 곳도 아닌데 무슨 일이 일어나겠어? 걱정하지 마라. 이 어미는 제월각에서 기다리고 있으마.”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약병을 꺼내 사금 등에게 건넸다.

“매사에 꼼꼼히 신경 써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때, 입구에서 아뢰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부인이 당도했다. 목운요는 일어서서 옷매무새를 정돈하고 문으로 걸어갔다.

사실 이부인은 오늘 궁중 연회에 별다른 흥미가 없었다. 친딸인 소우가 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목운요와 함께 가게 되었으니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 나오는 목운요의 고운 자태를 보며 이부인은 눈이 커다래졌다.

“운요야, 오늘 유난히도 곱구나.”

목운요는 은빛 꽃을 수놓은 겉옷을 걸치고 짙은 색 치마를 입은 상태였는데, 곳곳에 정교한 난초 자수가 들어가 있어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운방을 운영하는 사람이니 남들보다 옷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지요. 조만간 서릉에도 하운방이 개업하니, 둘러보시고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 보세요.”

“그럼, 가고말고. 그런데 하운방의 옷은 한 벌, 한 벌이 귀중하다고 들어서 걱정이구나. 혹시라도 은자가 모자라면 조금 저렴하게 팔아 줄 수 있겠니?”

“마음에 드시면 그냥 가져가셔도 돼요. 감히 누가 안 된다고 하겠어요?”

목운요는 웃으며 대꾸했다.

“하하, 사양하지 않으마.”

두 사람이 문 앞에 이르자 소아한, 소아정, 소아령 세 자매가 다가와 인사를 올렸다.

“둘째 숙모께 인사 올립니다.”

“늦었으니 인사치레는 생략하고, 어서 마차에 올라 입궐하자꾸나.”

“네.”

목운요는 살짝 무릎을 굽혔다.

“언니들께 인사 올립니다.”

소아한은 다가가 목운요의 팔을 부축했다.

“동생, 인사는 됐습니다. 어서 마차에 올라요.”

소아한 무리는 이부인이 오늘 자신들을 데리고 입궐하는 이유가 노부인의 당부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가는 내내 유독 고분고분하고 조용했다.

이내 한참을 달리던 마차가 머지않아 멈춰 섰다.

황궁 입구는 상당히 시끌시끌했다. 금위군이 황궁 문을 지키고 있었고, 환관들이 오가며 마차에서 내리는 이들을 이끌었다.

마차에서 내린 목운요는 잰걸음으로 다가오는 소 공공을 보았다.

“소귀가 목 소저께 인사 올립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주 인사했다.

“그리 예의를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도 저희를 안내해 주러 오신 겁니까?”

“네, 이 공공께서 목 소저를 잘 모시라고 분부하셨습니다. 궁 안까지 소인이 잘 안내하겠습니다.”

이부인은 목운요가 소 공공과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고 의아한 눈을 떴다.

“운요야, 이분은……?”

“길을 안내해 주러 오신 소귀 공공이십니다.”

이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반갑습니다, 부인. 그럼 다들 소인을 따라오시지요.”

소귀가 일행을 궁 안으로 안내했다.

장공주가 궁으로 돌아왔기에 중추절 연회는 정전(正殿, 황제가 조회를 여는 궁전)인 태화전에서 열렸다. 태화전은 무척이나 넓고, 좌우로 화원들이 있어 경치도 즐길 수 있었다.

많은 사람이 이미 도착해 있었다. 한쪽에는 관리들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여인들이 앉을 수 있도록 자리가 따로 배정되어 있었다.

이부인 척 씨가 자리에 앉자마자 옆에 있는 부인이 고개를 돌렸다.

“어머, 척 부인. 따님은 어디에 두고 오셨습니까?”

“조 부인, 안녕하셨지요? 저희 우가 몸이 좋지 않아 같이 올 수 없었습니다.”

목운요는 조 부인을 살펴보았다. 자신의 기억이 맞다면 조 부인은 분명 장완의 의붓어머니이자, 대학사 장중(章仲)의 후처(後妻)였다.

조 부인은 소아한과 나머지 사람들을 보더니 얼굴에 한껏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한이는 더 예뻐졌구나.”

소아한이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부인께서 칭찬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 부인은 소아정과 소아영도 칭찬하다가 목운요에게 시선을 돌렸다.

“서릉에서 명성이 자자한 목 소저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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