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73화 (173/442)

173화 진왕의 초대

“성격이 시원시원하시더라. 물론 한 번 본 걸로 사람의 속을 알 수는 없지만, 헤아리기도 힘든 대부인과는 다르더구나. 소우를 진정으로 아끼는 모습에 감동했다. 모든 걸 내걸어서라도 딸을 사랑하려는 모습이 나빠 보이진 않았지.”

목운요는 눈을 깜빡거렸다.

“어머니가 좋다고 하시면 저도 신중하게 지켜볼게요.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다고 해도, 손을 잡아야 할 때는 잡는 게 좋죠. 단둘이서 끙끙 앓으며 고군분투하는 것보다는요.”

“요아, 넌 이부인과 잘 지내고 싶은 거니?”

“그보다는 우 언니 때문에요. 우 언니에겐 동병상련의 느낌이 들어서요.”

“동병상련?”

소청은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아야, 예전에 네가 소씨 가문에 관해 얘기할 땐 한 번도 소우에 대해 말하지 않았잖니? 설마?”

목운요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우 언니는 제가 계례를 올릴 때까지 버티지 못할 거예요.”

순간 소청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여태껏 소우와 말 한마디 나눈 적 없었지만, 멀찍이서 지켜보아도 그 아이는 목운요보다 훨씬 가냘프고 허약해 보였다.

“살릴 방법은 없는 거니?”

그에 목운요의 눈에 깊고 어두운 빛이 스쳤다.

“우 언니의 맥을 짚어 보았더니 칠 할 정도는 살 가능성이 있었어요. 또, 아주 재밌는 점을 발견했지요.”

“응?”

“우 언니의 몸에 독이 많이 누적되어 있었어요. 원래 약재란 삼 할 정도가 독성이니, 약을 오래 복용하면 그 독성이 체내에 잔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 언니의 몸에 축적된 독은 그보다 훨씬 강했어요. 어떤 작자가 배후에서 손을 쓴 게 분명해요.”

소청은 등 뒤가 으스스했다. 소씨 가문 전체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이빨을 드러낸 괴수 같았다. 언제 어디서 괴수에게 물려 형체도 없이 사라질지 몰랐다.

“우가 둘째 부인의 적녀이긴 하지만 여자아이가 크게 방해될 일은 없을 텐데, 왜 이렇게까지 심한 수를 두었을까?”

“저희가 알지 못하는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곰곰이 생각할수록 곳곳에서 섬뜩한 냄새가 풍겼다.

비록 소우가 여식이긴 하지만 관료 집안의 딸은 예로부터 귀한 대접을 받았다. 특히나 소우는 적녀이기 때문에 소씨 가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런데도 많은 독이 쌓여 있다니……? 태의 여러 사람이 하나같이 독을 발견하지 못했을 리는 없었다. 하지만 왜 독을 발견했다는 얘기를 꺼내지 않았을까?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배후는 분명 둘째 부인보다 높은 자였다.

‘삼촌과 숙모의 눈까지 가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대체 어떤 신분인 거지?’

목운요는 눈을 살짝 깜빡였다. 궁금증이 점차 커졌다. 회귀 전에는 의혹이 들어도 자신의 신분에 한계가 있어 일일이 검증할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생에서는 천천히 사건을 따져 볼 수 있었다. 단언컨대 소씨 가문을 끝없는 구렁텅이에 빠뜨릴 수 있는 비밀이 분명했다.

* * *

다음 날.

중추절 연회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던 목운요는 삼황자 진왕이 초대장과 선물을 보내오자 크게 놀랐다.

초대장은 중추절 연회에 목운요를 초대한다는 내용이었고, 선물은 그저 활짝 핀 국화 화분 두 개였다.

금란은 초대장과 선물을 전해 준 궁인을 예의 바르게 배웅한 후 돌아왔다.

“소저, 어쩐 일로 진왕 전하께서 선물을 보내신 걸까요?”

목운요는 새하얀 손끝으로 국화 꽃잎을 몇 개 떼어 냈다.

“금란, 이 두 국화의 이름이 뭔지 아나요?”

“아뇨, 그저 예쁘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 하얀 국화는 가는 꽃잎이 길게 곡선을 그리고, 연보라색 줄무늬가 있어 ‘백구축파(白鸥逐波, 파도를 뒤쫓는 흰 기러기)’라고 불려요. 옆의 이 국화는 대비되는 두 색깔로 되어 있어 꽃잎을 오므리고 있을 때는 순백색으로, 만개하면 안쪽의 검은빛이 보이죠. 그래서 ‘살면미인(煞面美人, 얼굴을 오므린 미인)’이라고 불려요.”

목운요는 말하는 한편 살면미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에 금란은 눈썹을 찌푸리며 의문스럽다는 듯 물었다.

“두 국화 다 이름이 조금 이상하지 않나요?”

가볍게 웃는 목운요의 눈에 어떤 빛이 스쳐 지나갔다.

이것이 진왕의 뛰어난 점이었다. 그는 평소 자신의 오 할 정도밖에 드러내지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 눈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황상께서도 유독 진왕을 좋아하셨다.

목운요는 가볍게 손을 거두더니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 두 국화를 내 방 창가에 둬요. 무척 마음에 드니 금교에게 꽃을 잘 돌보라고 일러두고.”

“네, 소저.”

때마침 소청이 목운요의 방에 방문했다.

“요아야, 저건 무슨 꽃이니?”

목운요는 소청의 팔짱을 끼고 창가로 다가갔다.

“어머니, 두 국화가 참 예쁘지요?”

“정말 아름답구나. 특히 이 국화는 두 색깔이 함께 있어 더욱 신기하네.”

살면미인은 하얀 색깔이 흠 없이 순결했지만, 꽃잎 안쪽은 은은하게 검은빛이 돌았다.

“저도 이 살면미인이 유독 좋더라고요.”

목운요가 눈웃음을 지었다.

“어머니, 삼황자께서 초대장을 보내셨어요. 그래서 이번 중추절엔 어머니와 함께하지 못할 것 같아요.”

“우리 모녀야 언제나 함께 있으니 명절 같은 건 상관없단다.”

“그럼 오늘 저녁에 월병 만들어 주세요!”

“만드는 거야 어렵지 않지만, 여기 부엌을 쓰기가…….”

“부뚜막 한두 개만 비워 달라고 하면 되죠.”

그러나 소청은 바로 수긍하지 못했다. 하인들이 부엌에서 만들어야 할 음식이 적지 않을 텐데, 부뚜막 한두 개를 사용하면 다른 이들이 밥을 늦게 먹진 않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니, 너무 깊게 생각지 마세요. 조그만 부엌 하나 사용하는 것뿐인데요, 뭐. 여기서 만들어 주는 음식을 먹는 것도 괜찮지만 계속 그것만 먹긴 싫다고요.”

목운요는 사실 음식을 항상 남의 손에만 맡기는 게 탐탁지 않았다.

“그래. 그럼 좀 이따 금란이한테 말을 전해 달라고 하자.”

* * *

목운요가 부뚜막 두어 개를 따로 쓰겠다고 하자 하인들은 난처해졌다.

노부인 전용의 작은 부엌을 제외하면 중앙 부엌 한곳에서 온 집안 식구들의 음식을 관리하다 보니, 목운요의 요구에 맞추려면 다른 식구들의 식사가 상대적으로 소홀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인의 귀에 이 말이 전해졌다.

옆에서 이를 같이 들은 소우의는 울화가 치밀어 미간이 꿈틀거렸다.

“여기선 위아래 할 것 없이 부엌에서 내오는 대로 먹는데, 목운요는 낯가죽도 참 두껍네요! 혼자서 부뚜막 두어 개를 차지해 버리면 어떡하나요? 사람의 도량은 작고 탐욕만 크군요!”

“우의야.”

대부인이 침착하게 소우의를 부르자, 그녀가 화를 내다가 이내 말을 멈추었다.

“내가 소홀한 탓이다. 그 두 사람은 여태 경릉성에서 지냈지 않니? 생각해 보면 입맛이 우리와 다를 수 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제월각에 따로 작은 부엌을 마련해 주어야겠구나.”

소우의가 눈썹을 찌푸렸다.

“어머니, 건방진 목운요를 왜 봐주시는 겁니까?”

“한산(寒山, 당나라 시대의 고승)이 ‘세상 사람들이 나를 헐뜯고, 괴롭히고, 욕하고, 비웃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고, 미워하고, 속일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습득(拾得, 당나라 시대의 고승)은 ‘그저 참고, 양보하고, 따르고, 피하고, 견디고, 존중하여 따지려 들지 않는다면 몇 해 후에는 그들이 저절로 당신을 따르게 됩니다.’라고 답했다는 고사가 있지. 당장 너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궁에서 있을 중추절 연회를 잘 준비하는 것이니 다른 일은 괘념치 말아라. 알겠니?”

소우의는 미간에 근심이 어리더니, 가볍게 대부인의 팔짱을 꼈다.

“예전 같았으면 마음속 모든 것이 질서정연했을 텐데, 요즘은 어찌 된 일인지 목운요만 보면 저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목운요가 저를 꺾으려고 온 것 같아요.”

순간 대부인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쳤다.

“우의야, 걱정하지 마라. 이 어미가 반드시 너를 편하게 해 줄 테니까.”

‘그 많은 풍파를 겪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얕은 도랑에 배가 뒤집힐 순 없지.’

하지만 소우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했다.

“진왕 전하께서는 왜 목운요에게 선물을 보내신 걸까요?”

“그걸 신경 쓰고 있었니? 전하께서 선물을 보내셨단 것만 알고 뭘 보냈는진 아직 모르지?”

“진귀한 국화를 보내지 않았습니까?”

“하나는 살면미인, 하나는 백구축파를 보내셨단다.”

“살면미인과 백구축파요? 무슨 의미가 숨어 있는 걸까요?”

소우의는 선물에 담긴 의미를 곰곰이 헤아려 보았다.

그에 대부인 맹 씨의 입꼬리에 웃음이 걸렸다.

“찬찬히 생각해 보면 그 의미를 깨달을 거야. 그럼 더는 신경 쓰이지 않을 거다. 나중에 어떤 일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오늘처럼 화를 참지 못하면 안 된다. 기억하렴. 주인인 자는 기쁨과 노여움을 함부로 얼굴에 드러내지 않는 법이다. 주위 사람이 네 진짜 생각을 읽을 수 없어야 해.”

“네, 명심할게요.”

* * *

중추절 전날 저녁 무렵, 조용한 거리에 별안간 징 소리가 울렸다. 그와 함께 백 명이 넘는 호위를 앞세우고 위용이 넘치는 황실 가마가 서릉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문 앞엔 예부(禮部)의 관리들이 마중 나와, 예를 다해 고개를 숙였다.

장공주는 역대 황가에서 가장 기이하다고 볼 수 있는 여인이었다. 한때 가장 총애를 받던 공주였고, 피 튀기는 전투를 겪으며 용맹한 군대를 지휘하기도 했으며, 그 결과 광활하고 비옥한 땅을 다스리게 되었다.

많은 신하들은 공주가 황위를 찬탈할까 우려할 정도였다. 당시 공주가 지닌 권력이 엄청났기에 모든 황자를 다 죽이고 스스로 천하에 군림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주는 진심으로 현 황제를 지지했다. 그녀는 손안의 병권을 모두 넘기고 제 발로 속세에서 물러났다. 잃어버린 딸이 아니었다면 행궁에서 나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황궁 안까지 진입한 가마는 위풍당당하고 지엄한 자태로 태화문을 지나, 곧장 태화전 앞까지 당도하더니 차분히 멈춰 섰다.

황제는 계단 위에 서 있다가 체통도 없이 서둘러 태화전 계단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흥분한 눈빛을 감추지 못한 채 가마 앞으로 나아갔다.

“누님, 드디어 오셨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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