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71화 (171/442)

171화 원대한 포부

한 부인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때때로 술 취한 눈으로 훔쳐보니 도잠이 원랑으로 보이네.’라는 구절은 자신이 사모하는 사람을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목 소저께선 아직 어리시니 모를 만하지요. 반면 우의 소저께선 혼사를 논할 나이가 되셨지요?”

이 말이 나오자 주변에서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 소우의는 성년이 된 지 벌써 일 년이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줄곧 규방에서 지내며 혼사를 논하지 않으니, 사람들은 소우의가 혼인을 끔찍이 싫어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했다.

순간 소우의의 얼굴이 빨개지자, 대부인이 서둘러 말을 끊었다.

“오늘 연회는 소청 동생과 운요가 돌아온 걸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앞으로 두 사람이 서릉에서 생활할 때 여기 계신 여러분들의 배려가 많이 필요할 겁니다.”

대부인이 화제를 돌리니 시끌벅적하던 사람들의 아쉬움이 커졌다. 그러나 함부로 말을 덧붙여 얼굴을 붉히려 드는 사람은 없었다.

“목 소저, 하운방에서 지은 옷만 입으면 선녀처럼 고와진다는데, 우린 언제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사람을 시켜 가게 자리를 보고 있습니다. 마땅한 장소를 찾아 단장을 마치면 하운방을 개업할 테니, 그때 부인들과 소저들께서 꼭 왕림해 주십시오.”

이에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이 반짝거렸다.

“정말 잘됐습니다. 좋은 소식이에요.”

“그런데 듣자 하니 하운방의 옷은 사고 싶어도 마음대로 살 수 없다던데요? 때때론 두어 달을 기다려도 못 산다면서요? 목 소저, 오늘 인연을 봐서라도 저희에게 두어 벌씩은 꼭 파셔야 합니다?”

“불선루는 서릉에서 문을 열 계획이 없나요? 황상께서 불선루의 차를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시던데, 언제쯤 우리도 그 차를 맛볼 기회가 있을까요?”

“불선루가 서릉에 문을 열면 수많은 다도의 대가들이 불선루의 독특한 다도법을 체험할 수 있겠네요.”

연회에 참석한 손님들이 목운요 주위를 감싸며 활발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 수많은 꽃 속에서 빛나던 소우의는 이미 뒷전이었다.

목운요는 여러 부인과 대화를 나누며 대부인과 소우의의 안색을 살폈다. 두 사람의 얼굴엔 웃음보다 어두움이 짙게 깔려 있었다.

어느새 연회도 끝을 향해 달려갔다. 부인들은 겉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내심 목운요를 칭찬했다.

사실 소청과 목운요는 시골 출신이라 어디에 내놓기 창피할 수준일 줄 알았다. 그런데 오늘 만나서 얘기를 나눠 보니 두 사람은 처음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달랐다.

소청은 대화에 많이 끼어들지 않았지만, 줄곧 웃는 얼굴이었다. 행동거지는 단정하고 예의범절은 깍듯했다. 누가 한두 마디 말을 걸 때면 그때야 분수에 알맞게 대답했다.

목운요는 더욱이 부인들을 경탄하게 했다. 말솜씨가 워낙 뛰어나니 갈수록 많은 사람이 목운요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만약 보통 사람이었으면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허둥지둥했을 것이다. 그러나 목운요는 달랐다. 그녀는 오히려 침착한 태도로 평온함을 유지했고,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모든 사람을 헤아리며 각자에 맞춰 대화했다.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연회가 끝나길 기다렸던 사람들도 결국 목운요의 청아한 목소리에 매료되었다. 목운요가 들려주는 하운방의 옷 이야기, 자신을 치장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 옷과 함께 곁들이면 좋은 장신구 이야기를 듣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였다.

이내 연회가 끝나고 손님들이 하나둘 소씨 가문에서 떠나가자, 목운요의 명성도 널리 퍼져 나갔다.

* * *

소우의는 손님들을 배웅한 후 곧장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손을 들어 탁상 위에 놓여 있던 유리잔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쨍그랑-!

뒤따라오던 대부인은 바닥에 흩어진 유리 조각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소우의는 억울함이 가득한 얼굴로 울먹이기 시작했다.

“어머니, 오늘은 저를 알리기 위한 자리 아니었나요? 결국 목운요에게 모든 기회를 빼앗기고 말았어요!”

대부인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사실 그녀도 기분이 나쁘긴 마찬가지였다.

“나도 이럴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목운요가 그렇게 말재주가 뛰어날 줄이야. 역시 장사꾼이라 그런지 말로 사람을 홀리는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더구나.”

소우의의 마음속에 미움이 서서히 피어올랐다.

“이게 다 맹언연 때문이에요. 괜히 목운요를 도발해서는……. 어머니, 아무래도 불안해요. 서릉에 제 소문이 퍼지지 않으면 중추절 연회에서 어찌 장공주의 눈에 들겠어요?”

“조급해하지 마라. 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 비록 이번 연회에선 목운요에게 이목을 빼앗겼지만, 조금만 수를 쓰면 온 서릉에 이름을 떨치는 건 우의 네가 될 거다. 내게 다 생각이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

“어머니, 아무리 생각해도 목운요는 아주 독한 아이인 것 같습니다. 그 애는 분명히 시골 촌구석 출신인데, 어떻게 자수에도 능숙하고 다도에도 빠삭한 걸까요? 그리고 오늘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만 봐도 그래요. 행동 하나하나에 부족함이 없고 완벽할 정도로 치밀했어요. 그런 아이가 정말로 시골에서 온 게 맞을까요?”

대부인은 다시 한번 미간을 모았다.

“두 모녀의 신분은 확실하다. 그리고 노부인께선 그 누구보다 신중한 분이시지. 만약 소청과 목운요의 신분이 확실하지 않았으면 두 사람을 소씨 가문에 들이지 않으셨을 거야.”

“그런데 말이에요, 할머니께선 어쩌다 딸을 잃어버리셨을까요?”

“조상의 묘에 분향하러 외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도를 만나셨다고 해. 순식간에 아이를 강도 놈들에게 빼앗긴 거지. 나도 네 아버지께 두세 마디 들은 게 전부여서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단다.”

대부인은 조용히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사실 우리 소씨 가문이 소청의 덕을 보긴 했어.”

“고모의 덕을 봤다고요?”

“그래. 과거에 조정에 난이 일어났단다. 그때 장공주님의 궁이 가장 먼저 공격받았고, 장공주의 부마는 목숨을 잃으셨어. 사실 장공주께서는 딸을 데리고 서릉에서 도망칠 수 있었지만, 황상께 난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알리려고 어쩔 수 없이 딸을 잠시 궁 밖에 두셨지. 결국 장공주님의 딸이 실종됐고, 장공주께서도 황상께 소식을 전하러 가는 길에 크게 다치셨어. 황상께선 그것에 크게 죄책감을 느끼셔서 즉위한 후에도 온갖 곳을 뒤져 누님의 아이를 찾으려 하셨다고 해. 한데 이 세상이 어디 좀 넓으니? 사람을 찾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예전부터 아이를 찾아다니셨지만 여태 찾지 못하셨단다.”

“그게 우리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소우의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했다.

“나도 노부인께 들었는데, 소씨 가문은 원래 황상께서 크게 관심 둔 가문은 아니었다고 하더구나. 그런데 장공주께서 아이를 잃어버리신 후, 같은 처지인 노부인께 측은지심이 드셨던 게지. 그걸 시작으로 소씨 가문이 점차 황상의 눈에 들었던 거다. 그러니 소청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지 않겠어?”

“그야말로 ‘인생사 새옹지마’네요. 고모를 잃어버리지 않았다면 우리 가문은 쉽게 이 자리까지 오를 수 없었겠어요.”

하지만 소우의는 눈을 깜빡이며 제 뜻을 굽히지 않고 말을 이었다.

“물론 고모 덕분에 가문이 빛을 보긴 했지만,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실 아버지의 능력 때문이 아닐까요? 아버지께서 능력이 모자라셨다면 이부 상서라는 요직을 오랫동안 지키지 못하셨을 테니까요.”

“그건 당연하지.”

대부인은 웃음을 띠었지만, 말에는 무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황상께서는 연로하시고, 황자 전하들은 장성하셨으니 조정의 형세를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야. 우리 소씨 가문이 앞으로도 지금처럼 순탄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니 우의 너와 네 오라버니가 힘을 합쳐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오라버니는 이미 황상의 신임을 받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그나저나 저는 가문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대부인은 소우의를 끌어당겼다. 대부인의 눈에는 소우의를 향한 애정이 가득했다.

“당연히 너도 가문을 도울 방법이 있단다. 내가 왜 네 이름을 ‘우의’라고 지었는지 아니?”

“어머니께선 제 이름을 ‘봉귀운(凤归云)’이라는 시에서 따왔다고 하셨죠. ‘금빛 우물가에서 만난 우의(羽仪, 아리따운 깃털)가 오동나무의 추위를 없애고 나뭇가지를 모아 둥지를 트네.’ 이는 저를 향한 어머니의 기대겠지요.”

“그렇단다. 이 어미는 네가 봉황처럼 존귀하고 아름답길 바라. 아름다움은 이미 갖추어 감히 아무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네게는 존귀함이 부족하지.”

대부인은 깊은 뜻을 담은 눈으로 말을 이어 나갔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충분히 존귀하다만, 진정한 귀인들 눈엔 신분이 조금 높은 노비에 불과해. 어미는 네가 주인이 되길 바란단다. 더할 나위 없이 존귀한 주인 말이다!”

“어머니…….”

소우의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흥분이 일었다. 등줄기가 홧홧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저를 진정한 봉황으로 만드시고 싶으신 거죠?”

“그래, 진정한 봉황, 일국의 국모 말이다!”

마지막 말을 내뱉는 순간, 대부인의 두 눈에 감동의 빛이 벅차올랐다.

“우의야, 너는 그 누구보다도 멀리 나아갈 수 있어. 그러니 목운요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높은 자리에 오르고 나면, 목운요쯤은 언제든 눌러 죽일 수 있는 개미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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