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67화 (167/442)

167화 소우가 옷을 보내다

* * *

연회 전날, 저녁이 되자 소우가 시녀를 데리고 제월각에 방문했다.

목운요는 금란에게 손님을 안으로 들이라고 말했다.

소우는 목운요의 방 안으로 들어와서 주위를 훑어보다가, 저도 모르게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날 속인 건가요?”

목운요는 무슨 말이냐는 듯 눈을 깜빡였다.

“들어오자마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언니를 속였다니요?”

소우가 눈을 부릅뜨고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분한 것인지 창백한 안색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갈아입을 옷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런데 방에 와 보니 장식들이 모두 진귀한 것이네요? 있는 돈을 전부 집을 꾸미는 데 쓴 건 아니겠죠?”

소우 뒤에 선 시녀의 손 위에는 옷 한 벌이 놓여 있었다.

“저, 정말 제 옷을 가져오신 건가요?”

무심결에 두어 마디 농담을 건넸을 뿐인데, 소우가 이를 진지하게 여겼을 줄은 몰랐다.

그에 소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무언가 말하려다, 갑작스레 두 손으로 가슴을 감싸며 숨을 헐떡였다.

목운요는 놀라 급히 앞으로 가서 소우를 부축했다. 소우가 숨을 고를 수 있게 돕는 한편, 손가락으로 가슴의 혈 자리를 눌렀다.

“조급해할 것 없어요. 천천히 숨을 내쉬면 괜찮아질 거예요.”

소우는 자신을 부축하는 손길이 무척 따스하다고 느꼈다. 목운요의 손가락으로 눌린 혈 자리가 몹시 뻐근하더니, 이내 속에서 올라오던 메스꺼움과 불편한 느낌이 누그러졌다.

금방 기운을 차린 소우는 다급한 표정의 시녀를 제지한 후 꽤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목운요를 보았다.

“방금 놀랐나요?”

목운요는 소우를 부축하며 앉았다. 소우의 눈에 뿌듯한 빛이 스치자 하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정말 놀랐어요.”

소우는 입꼬리를 올리려다가 곧 미소를 숨겼다.

“알아요. 내가 여기서 숨이 멎을까 봐 두려웠겠죠? 그랬다가는 우리 부모님께서 절대 소저를 가만두지 않으실 테니까요. 아마 내 목숨을 대신 갚아야겠죠.”

목운요가 이를 듣고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소우의 이마를 ‘콩’ 하고 때렸다.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보니 한동안은 죽지 않을 것 같으니까요. 게다가 언니가 살아 있을 때 제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 가족들이 모두 모일 것 아니에요? 그때 죽으면 저와는 상관없죠.”

소우 뒤에 있던 시녀는 화를 참지 못해 분노한 얼굴이 그대로 드러냈다.

‘소저께 어떻게 저런 악담을……!’

하지만 소우는 잠시 넋을 놓더니 갑자기 손뼉을 치며 웃었다.

“그게 뭐예요? 정말 어리석네요. 제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절 밖으로 내던져 버려야 일말의 의심도 없이 빨리 정리될 것 아니에요?”

“그것도 좋네요. 다음에 또 병이 도지시면 그땐 가르쳐 주신 대로 할게요.”

“흥, 여기 뭐 볼 게 있다고 또 오겠어요? 다음에 올 일은 없을 거예요. 녹유야, 그 옷을 소저께 드려라.”

소우는 말을 마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살짝 목을 가다듬는 모습이 무언가 맘에 들지 않은 듯했다.

“여기서는 이상한 냄새가 나요. 정말 집을 꾸미는 데에만 돈을 쓴 모양이고, 살림살이가 세심하지 못하군요. 더 있을 수 없으니 그만 가 볼게요.”

소우는 말을 끝내고 정말로 곧장 나가 버렸다.

한쪽에 서서 이 장면을 모두 지켜본 금교의 표정은 좀 얼떨떨해 보였다.

“소우 아가씨께서 나중에 복수하러 오진 않으시겠죠?”

목운요는 탁자 앞으로 가서 옷을 들더니 자세히 훑어보았다.

‘비단 치마가 매우 정교하고 아름다워. 최상급 재질에, 흰 나비와 꽃도 세심하게 수놓았군.’

금란은 목운요 옆에서 의상을 살펴보더니 놀란 표정이 되었다.

“참으로 곱군요. 절대로 짧은 시간 내에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손을 뻗어 옷을 어루만지는 목운요의 눈에 고심하는 눈빛이 스쳤다.

“내일 연회에는 이 옷을 입고 가는 게 좋겠어요.”

“네, 소저.”

금교는 옷을 옷걸이에 잘 걸었고, 금란은 뒤에서 목운요의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소저께서는 그분이 꽤 마음에 드신 것이죠?”

목운요는 구리거울에 얼굴을 비춰 보다가 살며시 웃었다.

“동병상련이겠죠.”

“동병상련이요?”

금란은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목운요가 말을 더하지 않자 재차 묻지 않고 부드럽게 머리를 빗기만 했다.

“내일 연회에 참석하셔야 하니 오늘은 일찍 쉬세요, 소저.”

“네, 두 사람도 그만 물러가 봐요.”

목운요는 침상에 누운 채 살짝 몸을 돌렸다. 이내 시선이 침상 곁에 걸린 옷으로 향했다.

‘만약 내 추측이 맞다면, 저건 둘째 숙모께서 소우의 계례(筓禮, 성인식)를 위해 준비하신 옷일 거야. 하지만 소우의 몸이 좋지 않아 계례를 치르지 못했겠지. 내가 자신과 체형이 비슷하니 수선해서 준 것일 테고.’

소우를 보니 목운요는 힘들게 살았던 회귀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매일 숨을 붙들려고 애를 썼지만 계속 죽음의 문턱에 닿는 느낌이 사람을 미치게 했다.

그나마 소우는 자신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 소우를 백방으로 아끼는 부모님이 있었으니 말이다. 앞길이 힘들지라도 뒤에서 지탱해 주는 사람이 있으면 훨씬 낫지 않겠는가?

목운요는 눈을 감고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며 살며시 탄식을 뱉었다.

‘옷을 받았으니 내가 한 번 빚진 셈이야.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호의를 갚아야겠어.’

* * *

다음 날, 연회는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연회에 초대한 손님이 적지 않아 장소를 동원의 유람원(流岚院)으로 정했다. 유람원은 비교적 넓고 경치도 좋았다.

목운요는 의상을 입고 치장을 마친 후 소청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소청은 딸의 뺨을 살피더니 한껏 마음이 놓인 눈빛이었다.

“자국이 훨씬 옅어졌구나. 이제 자세히 보지 않으면 티도 잘 안 난다.”

“원래도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요, 뭘.”

목운요는 어머니가 옷매무새를 다듬는 걸 도왔다. 소청의 단정한 모습을 보니 자기도 모르게 입에서 칭찬이 나왔다.

“역시 우리 어머니께서 제일 고우시네요.”

“오늘 달콤한 꿀을 먹었니? 듣기 좋은 말을 잘도 하네.”

“진심으로 하는 말이에요.”

소청은 활짝 웃었지만, 속으로는 아직 근심이 남아 있었다.

“오늘 연회에서 어떤 사람들을 만날지 모르겠구나.”

“너무 걱정 마세요. 금 부인도 오시잖아요.”

그러나 대부인이 이번 연회를 연 목적이 그리 순수하진 않을 터였다. 단순한 호의로 두 모녀가 연회의 주인공이 되었을 리 없었다.

“그래, 알았다.”

* * *

유람원에 도착한 손님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개중 대부인 곁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었다.

“맹 부인, 요즘 서릉에 목 소저의 명성이 자자합니다. 황상께서 특별히 상을 치하하셨다면서요? 집안에 저런 아가씨가 있으니 정말 체면이 서겠습니다.”

“맞습니다. 은자 십만 냥을 스스럼없이 베푸는 도량이라니요. 저희 가문이었으면 그렇게 쉽게 돈을 기부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러니 황제께서 상을 치하하신 것 아니겠습니까?”

대부인은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겉으로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운요, 이 아이가 참으로 지혜롭습니다. 마음씨가 고운 건 또 어떻고요? 여기 온 이후로 자매들끼리도 잘 지내고 있답니다. 우의도 운요를 참 좋아하고요.”

“우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어쩜 그리 딸을 아껴 두십니까? 평소에 연회에도 잘 안 보내시고. 오늘은 얼굴 한번 꼭 봅시다.”

“그래요. 우의의 미모가 그리 완벽하다고 들었습니다. 소씨 가문에서 금지옥엽으로 여기는 보배라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오늘 저희가 그 아름다움에 내기 한번 걸어 보지요.”

“우의가 평소에 조용히 있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공부만 한답니다. 게다가 제가 집안을 관리하는 것을 돕느라 밖에 나가서 잘 놀지 않지요.”

딸 이야기가 나오자 대부인의 얼굴에 활짝 미소가 폈다.

“다만 부인들께서 이리 말씀하시니 오늘 우의에게 인사하러 오라고 말해 놓겠습니다.”

“정말 잘됐습니다. 마침 저희 딸아이도 왔으니 서로 안면도 익히고 좋겠네요.”

장공주가 잃어버린 딸을 대신하여 입적할 소저를 찾는다는 소문이 서릉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오늘 연회에 온 사람들은 그 소식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대부인이 이번에 연회를 연 목적도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체했다.

대부인은 뒤에 선 제 마마에게 분부했다.

“우의를 불러와요.”

“네, 부인.”

부인들은 각자의 자녀를 불러 놓고 소우의가 오길 기다렸다.

요즘 서릉에선 집안 규수들에게 예절을 가르치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황제께서 중추절 연회에 여자 식솔을 데려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숨은 뜻이 무엇이겠는가? 장공주의 마음에 들 만한 여식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 딸아이를 데리고 오라는 뜻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모인 규수들은 하나같이 단정하고 우아했다. 손짓 하나조차 빼어나게 아름다워 마치 꽃들이 서로 미색을 다투는 듯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 마마가 돌아왔다.

“대부인,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분분히 입구를 바라봤다.

소우의는 가히 선녀 같은 빛을 풍기며 들어오고 있었다. 머리는 높이 틀어 올려 가녀린 목선이 드러났고, 눈썹은 가늘고 길었으며, 입술은 붉게 빛났다.

영롱한 벽옥 나비 장식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흔들거리니, 움직일 때마다 금빛 나비가 눈 깜짝할 사이에 팔랑팔랑 날갯짓하여 날아갈 것만 같았다.

“소우의가 어머니와 부인들을 뵙습니다.”

소우의가 천천히 멈춰서니 주변에 만발한 꽃들이 일순간 빛을 잃었다.

소우의가 얼마나 예쁜가 보려던 부인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경직되었다. 일찍이 소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매우 아름답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저 정도로 훌륭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규수들도 점점 고개를 숙였다. 소우의와 경쟁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었다. 경쟁이 가능하다고 해도 차마 소우의 옆엔 서고 싶지 않았다. 다들 서릉에서 내로라하는 미인이었지만, 그래도 하늘의 선녀와는 견줄 수 없는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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