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66화 (166/442)

166화 소우와의 첫 만남

* * *

다음 날, 아침 식사가 마무리되자 금란이 들어와 아뢰었다.

“부인, 소저. 큰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두 모녀의 눈이 마주쳤다. 곧 목운요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제가 직접 가서 큰언니를 맞이하겠습니다.”

“그래.”

목운요가 자신을 오래 세워 둘 줄 알았던 소우의는 그녀가 머지않아 활짝 웃으며 나오자 조금 당황했다.

“큰언니를 뵙습니다.”

“동생, 어서 일어나요.”

소우의는 관심 가득히 목운요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의 상처가 어제보다는 나아진 것 같네요. 몸은 좀 어떤가요? 아직도 많이 아픈가요?”

“곤장 두 대밖에 맞지 않았는걸요. 어려서부터 몸이 좀 약하여 유독 심해 보이는 것뿐이에요. 보통 사람이 맞았으면 아마 상처 하나 나지 않았을걸요.”

“몸이 약하다니, 앞으로 몸조리를 잘해야겠네요. 마침 동생에게 선물할 약재를 좀 준비해 왔어요.”

소우의는 속상한 눈빛이었다. 가늘고 긴 속눈썹에 햇빛이 내려앉으니 그 미색이 구천현녀(九天玄女, 중국 신화의 여신) 못지않았다.

“이게 다 그때 제가 제대로 나서지 못한 탓이에요. 언연의 말을 너무 믿은 바람에 동생을 오해하고 말았어요. 정말 미안해요…….”

목운요는 환하게 웃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언니를 탓할 수는 없지요. 맹 소저 같은 규수께서 그런 수준 낮고 악랄한 방법으로 절 모함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마워요.”

소우의가 활짝 웃으니 순간 모란이 활짝 핀 것처럼 아름다웠다.

목운요에게 사과했으니 이제 연회에 초대하고 싶은 손님이 있는지 물어봐야 했다.

“저와 어머니는 서릉에 처음 와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조 대인 내외만 초대해 주시면 그 밖의 일은 알아서 진행하셔도 될 것 같네요.”

“좋아요. 어머니께서 초대장을 거의 마무리하셨으니 얼른 전달만 하면 된답니다. 동생이 서릉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아 아는 사람이 많이 없겠지만, 연회에 몇 번 참석하다 보면 점차 익숙해질 거예요.”

소우의가 허물없이 팔짱을 끼며 웃자 마치 새벽에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 같았다.

목운요는 순간 감정이 올라왔다.

소우의는 회귀 전에도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다가왔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걸어와선 친밀하게 두 손을 잡으며 자매간의 우애에 대해 따뜻하게 말했다.

그런데 누가 알았겠는가? 말로는 ‘우애 좋은 자매’라면서, 등 뒤에선 독이 묻은 칼을 들고 있었을 줄이야.

목운요가 의도치 않게 삼황자의 칭찬 한마디를 듣자, 소우의는 위선적인 얼굴을 싹 바꾸고 곧장 그 칼을 꽂아 버렸다. 그로 인해 목운요는 목숨을 거의 잃을 뻔했다.

‘우애 좋은 자매’라는 입에 발린 말은 동전 한 푼의 가치도 없는 것이었다.

“정말 감사해요, 언니.”

소우의는 선의를 표하곤 하인과 함께 당당히 물러갔다.

소우의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목운요의 입가엔 조소가 걸려 있었다.

이내 흐트러진 심사를 바로잡는데, 눈여우가 뛰어와서 살며시 몸을 숙이더니 귀를 쫑긋거렸다.

목운요는 가볍게 하하 웃으며 눈여우와 장난을 쳤다.

한데 그때였다. 돌연 귓가에 거만한 목소리가 들렸다.

“뭘 하고 있는 거죠?”

목운요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성질이 고약해 보이는 소녀 하나가 그곳에 서 있었다.

소녀의 작은 키에 굉장히 마른 몸이었다. 목운요보다도 훨씬 허약해 보였다. 전체적으로 빼빼 마른 탓에 두 눈이 유독 커 보였다.

목운요는 고개를 약간 갸우뚱거리며 소녀를 쳐다봤다. 눈여우도 목운요처럼 눈을 똑바로 뜨고 소녀를 응시했다.

“그쪽은 누구신가요? 한 번도 뵌 적 없는데.”

그에 소녀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왔고 눈빛은 더욱 사나워졌다.

“저보고 언니라고 불러야죠!”

“무슨 소립니까? 저보다 키도 작고 훨씬 마르셨는데. 그쪽이 저더러 언니라고 해야 맞죠.”

목운요는 가볍게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눈여우가 발톱을 내밀고 목운요의 옷을 붙잡았다. 정교한 꽃무늬를 수놓은 옷감에 긁힌 자국이 생겼다.

목운요는 팔을 뻗어 여우의 뒷덜미를 잡았다.

“내 옷을 망가뜨렸으니 어떻게 갚을지 잘 생각해 봐. 제대로 갚지 못하면 네 가죽을 벗겨서 털목도리로 만들겠어!”

“어, 어떻게 그런 심한 말을! 고작 옷 한 벌 가지고 그래요? 그 옷 얼만데요? 제가 대신 물어 드릴게요.”

목운요는 눈여우를 보며 ‘흥’ 하고 작게 웃었다.

“만약 소저가 저한테 ‘언니’라고 한마디만 하시면 이 여우를 용서하지요. 어떻습니까?”

“제가 왜 목 소저를 언니라고 불러야 하죠? 목 소저야말로 저를 언니라고 부르셔야죠. 전 소우입니다. 목 소저보다 석 달이나 더 일찍 태어났어요!”

말을 마친 소우는 목운요를 계속해서 훑어보았다.

“동생이면 동생답게 언니를 공경해야지요. 그러니 그 여우를 괴롭히지 마세요.”

목운요는 소우의 반응을 보고 놀리고 싶은 마음이 더욱 커져서, 일부러 우는 시늉을 했다.

“언니라면서 동생을 이리 곤란하게 하셔도 되는 건가요? 제 옷이 이 여우 때문에 망가졌어요. 나중에 입을 옷도 없는데, 저더러 여우를 용서하라는 건가요?”

“그런…….”

소우는 깜짝 놀란 듯 반 발짝 물러나더니 다시금 앞으로 걸어왔다.

“울긴 왜 울어요! 우는 여인이 제일 골치 아픈 법인데……. 나중에 옷 좀 여러 벌 보내라고 할 테니, 그만 울어요.”

순간 목운요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소우는 정신이 멍해졌다가, 이내 자신이 속았다는 걸 깨닫고 저도 모르게 목운요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이내 말도 없이 뒤돌아 나갔다.

목운요는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그때, 밖의 소란을 듣고 나온 소청이 놀란 눈을 했다.

“방금 누구였느냐?”

“둘째 숙모의 딸인 소우 언니입니다.”

“소우? 저번에 몸이 안 좋다고 들은 것 같은데. 병치레가 잦아 좀처럼 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했었지. 그런데 무슨 일로 왔다니? 왜 더 있다 가라고 하지 않고.”

“오늘 날씨가 맑긴 하지만 바람이 불어 몸에 좋지 않아요. 만약 소우 언니가 여기에서 더 머물다가 열이라도 나면 둘째 숙모께서 걱정하실 거예요.”

소청이 이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

“참 딱하기도 하지. 요아야, 네가 의술을 잘 알지 않니? 그 아이의 병을 치료할 수는 없겠어?”

그러자 목운요의 얼굴에서 순간 웃음기가 가셨다. 사실 회귀 전에는 소우와 딱히 접촉이 없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소우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번 생에도 소우와는 만날 일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제월각에 직접 찾아올 줄이야.’

“아까 잠깐 봤을 땐 큰 문제 없어 보였어요. 의술이 뛰어난 태의님이 평소 곁에 붙어 계시니 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예요.”

“그렇구나.”

사실 소청도 소우로 인해 딸아이의 의술이 들통나는 것은 원치 않았다. 게다가 태의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딸아이라고 해서 특별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그때, 금교가 기쁨이 가득한 얼굴로 걸어왔다.

“소저! 소인이 오늘 밖에 나갔다 왔는데, 소저께서 경릉성 백성들에게 자선을 베푸신 일에 대해 서릉에 소문이 자자하더라고요. 사람들이 소저의 선한 마음씨를 칭찬해 마지않습니다!”

목운요는 살짝 웃었다.

“신경을 많이 썼던 것이 드디어 좀 보답받는 듯하네요. 그보다 육냥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육냥이 좋은 자리를 찾아냈습니다. 예전에도 자수방이었던 곳인데, 상권이 괜찮아요. 다만 부르는 가격이 좀 비싸서 아직 얘기를 나누는 중입니다. 그래도 얼마 안 가서 좋은 소식이 있을 것 같습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었네요. 어서 서릉에도 하운방을 열면 좋겠어요. 다른 건 제쳐 놓더라도 일단 내 옷을 지어 입기 편하니까.”

그에 소청이 손을 들어 미간을 눌렀다.

“지금 네 옷이 얼마나 많은데 옷을 더 지을 생각을 해? 아직 건드리지도 않은 옷이 태반이면서.”

“알겠어요, 어머니.”

목운요는 장난스레 웃다가, 소우의가 가져온 약재들을 흘깃 쳐다봤다.

“금교, 나중에 쓸 일이 있을지 모르니 상자에 잘 보관해 둬요.”

“네, 소저.”

* * *

소우가 방으로 돌아온 후 줄곧 뾰로통해 있자 둘째 부인 척 씨는 그 이유가 궁금해졌다.

“잠깐 걷고 온다고 하지 않았니? 어째서 이렇게 빨리 온 거야?”

“한 바퀴 돌다가 화만 잔뜩 났으니 밖에서 뭘 더 하겠어요?”

이를 듣고 척 씨가 매섭게 변한 눈으로 물었다.

“누가 널 화나게 했니? 이 어미한테 말해 보아라. 지금 당장 잡아 올 테니!”

그에 소우가 입술을 삐죽이더니 차갑게 말했다.

“어머니, 나중에 비단 몇 필 좀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 옷을 짓고 싶어요.”

평소 소우는 먼저 무얼 달라고 나선 적이 없었다.

이런 탓에 척 씨는 종종 속이 상하곤 했다. 그런데 오늘 소우가 무언가 부탁을 하다니, 척 씨는 의아하면서도 기뻤다.

“어떤 옷을 만들고 싶니? 정해 둔 무늬나 색깔은 있고? 네 피부가 희니 내 생각엔 붉은색이 잘 어울릴 것 같구나.”

소우는 여전히 뾰로통하게 토라진 말투였다.

“담청색, 물색, 연자색으로요. 너무 붉거나 푸른색은 안 돼요. 그 쪼끄만 계집애가 아직 그런 화려한 색을 입을 순 없으니까요.”

척 씨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그 계집애라니, 누구 말이니?”

어머니가 골칫거리라도 건드린 듯 소우의 목소리가 절로 높아졌다.

“그 목운요 말이에요! 저보다 어리니까 쪼끄만 계집애 맞잖아요? 콜록콜록…….”

급히 말해서인지 기침이 멈추지 않았다. 척 씨는 서둘러 나아가 딸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그래그래. 쪼끄만 계집애가 맞지, 맞아. 걔가 네 화를 돋웠니?”

소우는 잠시 콜록대더니 콧방귀를 뀌며 설명했다.

“제가 그 애보다 언니니까 먼저 양보하는 수밖에요. 입을 옷이 충분하지 않은지 키우는 여우 한 마리가 옷을 좀 망가뜨렸다고 너무나 아까워하면서 여우를 죽이려 들더라고요. 여우가 불쌍해서 그 아이에게 옷을 몇 벌 선물하려던 것뿐이에요.”

척 씨는 주먹을 불끈 쥐더니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운요 그 녀석, 참 불쌍하기도 하지. 밖에서 오래 고생하다가 여기 오자마자 오만방자한 맹언연에게 모함을 당해 뺨과 곤장을 맞지 않았니? 뺨이 아직도 푸르딩딩하던데!”

소우가 미간을 찌푸렸다.

“아직 미숙한 아이예요. 나중에 제가 예절을 잘 가르칠 거예요.”

‘영리하게 입을 잘 놀리는 것 같더니, 남에게 괴롭힘이나 당하고. 자신을 보호할 줄도 모르나?’

그렇게 목운요에 대한 생각은 소우의 머릿속에서 한참 동안이나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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