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65화 (165/442)

165화 목운요를 이용하라고요?

“요아야, 그런데 너…… 혹시 영 공자를 좋아하는 거니?”

문득 소청은 제대로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달 후면 딸아이는 시집을 갈 나이였기 때문이다.

목운요는 잠시 얼이 빠져서 연거푸 고개를 저었다.

“어찌 그런 생각을 하세요? 저와 영 공자는…… 이어질 리 없는 사이예요.”

소청은 그런 목운요의 손등을 토닥이며 미소 지었다.

“나도 겪어 봐서 안다. 너는 곧 열다섯 살로 성인이 되니 미리 혼인을 생각해 봐도 나쁘진 않을 거야. 마침 우리가 서릉에 왔으니 잘되었구나. 영 공자도 서릉에 계시지 않니? 네가 정말 마음이 있다면…….”

목운요는 급히 해명했다.

“어머니, 터무니없는 생각 마세요. 저와 영 공자는 그저 협력자의 관계일 뿐이에요. 좋게 말하면 친구고, 안 좋게 말하면 그냥 서로를 이용하는 것뿐이라고요.”

“요아야, 과거의 일 때문에 네 마음이 무거운 것은 잘 안다. 그래도 구더기가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면 되겠어? 요아, 너도…….”

“어머니, 지금 맹씨 가문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아니었나요? 어째서 갑자기 영 공자로 주제가 넘어간 거예요? 그리고 영 공자는 올해 스물한 살이세요. 아이가 있을 수도 있다고요.”

“아이는 무슨? 듣기로, 영 공자는 아이는커녕 첩도 없다던데?”

“그건 또 누구에게 들으셨어요?”

소청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했다.

“진 총관과 얘기하다가 들었단다.”

목운요는 얼이 빠졌다. 어머니와 진 총관이 이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니. 어쩌면 월왕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소청은 목운요가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서 화제를 돌렸다.

“다시 맹씨 가문 얘기나 하자. 맹 소저가 소씨 가문을 떠날 때는 기가 죽어 있던데, 나중에 또 찾아와서 꼬투리를 잡거나 하진 않겠지?”

목운요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월왕 때문에 머릿속이 또 혼란해진 것 같았다.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맹언연은 평소에도 자기가 받는 총애만 믿고 종종 가문의 자매들을 괴롭혔죠. 그런데 오늘 일로 갑자기 위세를 잃어버렸으니 평소 그녀에게 괴롭힘을 당한 사람들이 이번 기회를 쉽게 놓지 않을 거예요. 자신의 딸이 총애받기만을 바라던 부인들과 첩들도 그렇고요. 걱정하고 불안해야 할 건 어머니가 아닌 맹언연이죠.”

“그래, 그럼 걱정하지 않으마.”

목운요는 그래도 이번 일이 그리 쉽게 끝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나 맹씨 가문이 목운요에게 앙심을 품을지도 몰랐다. 무엇보다 궐내에 있는 덕비 마마는 도량이 그리 넓진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어머니를 걱정시킬 필요는 없었기에 목운요는 말을 아꼈다.

* * *

한편, 대부인은 화를 삭이지 못해 아무것도 입에 대지 않고 있었다.

소우의가 조심스럽게 그런 대부인의 옆으로 가 앉았다.

“어머니, 뭐라도 좀 드세요.”

하지만 대부인은 목운요가 맹언연의 뺨을 때리던 모습을 생각할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불길처럼 활활 치솟아 올랐다. 결국 그녀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까지 부러뜨렸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다더니, 내가 너무 안일했다.”

촌구석에서 온 계집애 하나가 이렇게까지 요란을 떨며 가문을 뒤집어 놓을 줄이야.

“어머니, 모두 제 잘못이에요. 언연을 부르는 게 아니었어요. 언연이 오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겠죠.”

“널 탓하는 게 아니다. 언연의 일이 없었다고 해도 목운요는 다른 방법으로 가문 내에서 자신의 입지를 다지려고 했을 거야. 소씨 가문의 바닥에 있는 노비부터 꼭대기에 있는 주인까지, 자기들 모녀를 무시하지 못하게 말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어요. 황상은 어째서 목운요가 언연을 때리는 걸 윤허하셨을까요?”

“과거 소금세 사건을 조사할 때 이씨 가문이 위험에 빠진 적이 있었다. 한데 그때 누가 부추겼는지 네 외할머니께서 큰 황자께 맞서셨지. 그에 큰 황자는 자신이 얼마나 불쌍한지 아냐며 황상 앞에서 펑펑 우셨어. 아마 그것 때문에 황상께서 맹씨 가문에 불만이 있으셨을지도 몰라. 이번 일을 경고로 삼으신 거지.”

“아무리 그래도 맹씨 가문은 조정에 혁혁한 공을 세웠는데, 이번 황상의 결정엔 실망이에요!”

“입 다물지 못해?!”

대부인은 소우의를 쏘아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집에서도 언제나 말조심하라고 이 어미가 말하지 않았느냐? 네가 실망할 게 뭐가 있어? 말이 좋아 신하지, 나쁘게 말하면 고작 황상께서 아껴 주는 노비에 불과하다. 노비가 감히 주인의 일에 끼어들다니, 손이 잘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해. 네 외할머니는 다 좋으신데 사람들 선동질에 쉽게 넘어가시는 게 문제다.”

“외할머니도 마음이 급해서 그러셨을 거예요. 오랫동안 황상을 모신 덕비 마마가 아직 아이가 없으시다니, 누가 상상이나 했겠어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맹씨 가문도 이런 처지가 아니겠죠.”

“됐다.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니 떠들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대부인은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파여 있었다.

“사람을 보내 네 오라비를 불러오라고 해라. 청오가 내게 목운요를 얕보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땐 왜 그 말을 흘려들었던 건지……. 청오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건 아닌지 알아봐야겠다.”

“네, 바로 오라버니를 모셔 올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소청오가 대부인을 찾아왔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어서 일어나 자리에 앉아라. 그래, 식사는 했고?”

소청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먹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직 식사하지 않으신 겁니까? 음식이 그대로군요.”

대부인이 소청오의 물음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옆에 있던 소우의가 불만을 늘어놓았다.

“오늘 어머니의 체면이 바닥까지 떨어졌어요. 그런 마당에 밥이 넘어가시겠어요?”

“사실 방금 들은 소식이 있습니다. 목운요가 경릉성에 은자 십만 냥을 기부했기에 황상께서 목운요를 황궁으로 부르신 거라고 합니다.”

“방금 얼마라고 했니? 십만 냥이라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대부인의 눈동자가 세차게 흔들렸다.

“목운요가 앞장서서 경릉성에 은자를 기부했다고 유 마마를 통해 들은 적은 있다. 한데 분명 소액이라고 들었는데?”

대부인은 잠깐 생각하다 이내 무언가를 깨달았는지 탁상을 탁 내리쳤다.

“이제야 알겠다. 분명히 목운요 그것이 꿍꿍이를 꾸민 거야! 목운요는 유 마마를 포함한 다른 이들에게 고의로 자기가 적은 돈을 냈다고 믿게 했을 거다. 그래서 그들이 그 소식을 고할 때 나도 한 귀로 듣고 흘려 버렸는데, 사실 목운요는 오늘을 노린 거였어!”

소청오는 겉으론 차분해 보였지만, 사실 그의 마음속에서도 큰 파도가 몰아쳤다.

“어머니, 오늘 황상께서 목운요에게 상을 내리셨으니 내일이면 목운요의 명성이 온 서릉에 퍼져 나갈 겁니다.”

소우의의 얼굴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은자 십만 냥이 아깝지도 않았나 봐요.”

대부인은 곧장 질문을 던졌다.

“하운방과 불선루가 영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그 많은 돈이 어디서 났을까?”

“현재 하운방은 강남에서 단독으로 성업하고 있으며, 그 어떤 자수방도 하운방을 공격하려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불선루도 마찬가지고요.”

그에 대부인은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우의야, 그날은 너도 잘못한 게 있다. 내일 선물을 들고 목운요에게 가서 미안하다고 해라.”

“알겠어요, 어머니.”

소우의는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수긍했다.

손을 들어 소우의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대부인의 눈에는 안타까움이 엿보였다.

“네가 촌구석에서 온 미천한 신분의 계집을 찾아가야 해서 억울하다는 것은 이 어미도 알고 있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선 반드시 그리해야 해! 내일 목운요가 널 난처하게 해도 참아 내야 한다. 우리 딸은 너그럽고 인자한 아이니까. 무슨 말인지 알겠지?”

“목운요를 이용해 제 명성을 세우라는 뜻인가요?”

소우의는 슬쩍 대부인을 떠봤다.

“맞다. 방금 네 오라버니가 내일이 되면 목운요의 명성이 온 서릉에 퍼질 거라고 했잖니? 그 바람에 올라타면 너도 날아오를 수 있을 거야.”

대부인은 줄곧 어두운 눈빛이었지만 그래도 웃어 보였다. 우선 목운요를 이용하다가, 이용 가치가 다 떨어지면 그때 손봐 줘도 늦지 않을 터였다.

소우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달갑지 않아 보였던 기색은 점차 사라지고, 그 자리를 채운 건 부드러운 미소였다.

“어머니, 마음 놓으세요.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으니까요.”

대부인은 입꼬리를 올렸다.

“내키지 않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중추절에 열리는 황궁 연회에서 돋보일 수 있다면 더한 것도 할 수 있어야 해. 그리고 또 한 가지 명심해라. 목운요의 명성은 서릉에 퍼지겠지만, 반면 맹언연의 명성은 점점 추락할 거다. 그러니 앞으론 맹언연과 왕래하지 마.”

“네, 명심할게요.”

“청오야.”

대부인은 소청오를 향해서도 입을 열었다.

“너와 삼황자의 사이가 특별히 좋지 않니? 다가오는 중추절 연회에 네 도움이 필요하다.”

“어머니, 장공주께선 보통이 아니십니다. 진심으로 우의를 장공주 앞에 세우고 싶으시다면 너무 많은 것에 힘을 쏟아도 안 됩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날지도 모르니까요.”

“그 정도는 나도 안다. 하지만 서릉의 수많은 규수 사이에서 눈에 띄지 않으면 장공주께서 어찌 우의에게 관심을 가지시겠니?”

“우의의 외모라면 연회장에 앉아만 있어도 많은 이의 이목을 끌 수 있을 겁니다.”

소청오의 칭찬에 소우의의 미소가 짙게 퍼져 나갔다.

“그런데 오라버니, 삼황자는 어떤 분이세요?”

“성정이 굳세고 결단력 있는 분이시다. 식견도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넓지. 예전에 장공주께 교육을 받으셔서 본인의 생각을 말할 때면 모든 이가 우러러볼 정도야.”

소우의는 감탄했다.

“오라버니께서 칭찬하실 정도면 삼황자는 대단하신 분인가 봐요. 언젠가 뵐 기회가 생기면 좋겠네요.”

대부인은 고개를 돌려 소우의를 질책했다.

“감히 그런 말을 입에 올리지 마라.”

“어머니…….”

소우의는 냉큼 앞으로 나가 대부인의 팔뚝을 붙잡았다.

“그냥 해 본 말이에요. 오라버니가 칭찬하시니 궁금해할 수밖에요.”

그에 대부인은 더 이상 꾸짖진 않고 가볍게 웃어넘겼다가, 소우의의 손등을 찰싹 내리쳤다.

“네 부친께서도 삼황자 전하를 무척 좋게 보시나 보더라. 다만 황상께서 아직 건강하시니 괜히 말을 함부로 해선 안 되지. 이 어미가 널 오랫동안 꼭꼭 숨기느라 고생했는데, 이제 사람들을 놀라게 할 때가 된 듯하구나.”

소우의는 흥분한 기색이었다.

“어머니 말씀은, 때가 되었다는 건가요?”

서릉 사람들은 소씨 가문의 적녀인 소우의의 미모가 대단하다는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대부인이 딸아이를 감추어, 소우의를 실제로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인이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조만간 널 내보일 생각이었다. 다만 사람의 계획이 하늘의 뜻에 미치지 못한다고, 장공주께서 갑자기 잃어버린 딸을 대신할 여자아이를 입양하겠다고 하실 줄 누가 알았겠느냐? 이런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칠 수야 없지.”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절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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