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화 하인들을 벌하다
얼굴에 화끈거리는 통증이 전해지자 맹언연은 곧장 일어나서, 눈을 치켜뜨고 죽일 듯이 목운요를 노려보았다. 그 눈빛에 독기가 흘러넘쳤다.
‘저 천한 계집이…… 감히 날 때려?’
그때, 목운요가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걸음으로 원래 자리로 돌아왔다.
“맹 소저께서 그날 제 따귀를 때리셨으니 저도 똑같이 돌려주겠다고 황상께 직접 허락받았습니다. 이렇게 해야 저희 사이의 원한이 깨끗이 정리될 수 있으니까요.”
맹언연의 낯빛이 몹시 사나워졌다. 평소의 수려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운요 사촌, 정말 너그러우십니다. 관계가 깨끗이 정리되었다고 말씀하셨으니, 그럼 절 용서해 주신 거지요?”
“네. 용서했습니다.”
목운요에겐 더 이상 맹언연을 원망하는 눈빛이 남아 있지 않았다. 오늘이 지나면 맹언연은 맹씨 가문에서 반쯤 버려져서 내놓은 자식이 될 터였다. 그러면 목운요에게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았다.
맹언연은 굴욕감과 원한이 한데 엉켜 분노에 몸을 떨었다.
마찬가지로 맹우의 표정도 몹시 일그러져 있었다. 맹우는 상투적인 인사도 하지 않고 그대로 몸을 돌려 맹언연을 데리고 나갔다.
회랑 모퉁이를 도는 순간, 맹언연이 별안간 고개를 돌리고 목운요를 쳐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이 마치 독을 묻힌 비수 같았다.
‘오늘 이후 너와 나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거야!’
* * *
맹우와 맹언연이 떠난 뒤, 하인들은 고개를 푹 숙이고 제대로 숨도 쉬지 못했다. 속으로는 소청 부인과 목 소저에게 밉보인 적이 없는지 과거를 돌아보았다.
목운요는 가볍게 손을 털었다. 아까 맹언연의 뺨을 세게 때려서 아직도 손이 얼얼했기 때문이다.
한편 소문원의 얼굴에는 냉기가 흘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목운요가 황상께 하사품을 받아 시끌벅적했던 분위기가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모두 물러가라.”
“잠시만요.”
목운요의 한마디에 사람들의 머리털이 곤두섰다. 사람들이 잇달아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바라봤다. 특히 대부인의 눈빛은 칼끝보다 뾰족하고 날카로웠다.
“운요야, 무슨 일이니?”
‘맹언연을 때리고, 맹씨 가문의 체면을 깎아내린 것만으로도 부족하단 말인가? 대체 뭘 하려는 속셈이지?’
목운요는 앞으로 나가 살짝 무릎을 굽혔다.
“외숙부님, 외숙모님. 방금 맹 소저가 한 말은 이곳의 모든 이가 들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맹 소저가 그날 일부러 저를 중상모략했다고 했으니, 그날의 일에는 제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뜻이죠. 한마디로 저는 결백하다는 것입니다. 그건 외숙모님께서도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그렇지요?”
대부인은 온화한 모습을 잃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
“그래.”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제 결백이 밝혀졌으니, 이제 다른 것들도 결판을 지어야겠죠?”
‘결판? 도대체 누구와 결판을 낸다는 말인가?’
대부인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목운요를 봤지만, 두 눈에는 경고하는 눈빛이 담겨 있었다.
“운요야, 결판을 짓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니?”
“당연히 절 때린 하인들을 말하는 것이지 않겠어요?”
목운요는 웃으며 대부인을 바라봤다.
대부인은 분노가 하늘까지 치솟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맹씨 가문의 사람들까지 찾아와 목운요에게 사과했다. 상황을 확실히 알기 전까진 함부로 목운요를 건드려선 안 되었다.
“그래. 여봐라, 그날 운요를 때린 두 여인을 데려와라!”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날 목운요에게 곤장을 쳤던 하녀 두 명이 끌려와 무릎을 꿇었다.
“살려 주십시오, 노부인. 살려 주십시오, 대부인……!”
내내 침묵을 지키던 노부인이 손에 든 염주를 돌리기 시작했다.
“아주 시끄럽군. 저들의 입을 막아라.”
“노부인…… 흐윽…….”
두 하녀의 얼굴이 공포에 질렸다. 무언가를 말하고 싶은 듯했지만 말문이 막혀 노부인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기만 할 뿐이었다.
대부인은 얼음장 같은 눈으로 목운요를 바라봤다.
“운요야, 하인들을 데려왔다. 저들을 어찌할 생각이지?”
“저 두 사람은 하인이라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 행동해야 하죠. 그날 저를 때린 것도 맹 소저의 명에 따랐던 거고요. 하여 사실 도리를 따져 보면 벌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두 하녀의 눈에서 조금씩 희망이 차올랐다. 그들은 계속 목운요의 말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하인이라면 근본을 잊으면 안 돼요. 이곳이 어느 가문의 저택인지 잊어선 안 된단 말입니다. 이곳은 소씨 가문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맹 소저의 말에 복종하여 감히 제게 손찌검을 했습니다. 이번 일을 그냥 넘긴다면, 훗날 다른 하인들도 소씨 가문의 주인에게 덤비려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들은 대부인은 목운요를 제지했다.
“운요야, 저들은 일개 하인이다. 그래서 언연이 한두 마디 하며 겁을 주니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따랐을 것이다. 오늘 네가 이렇게 꼬집어 줬으니, 앞으로는 가장 미천한 하인에게도 올바른 규율을 가르치려고 노력하마. 이번 일은 내게도 책임이 있다.”
목운요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외숙모께서는 매일 가문의 크고 작은 일을 돌보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텐데, 어찌 모든 일을 보살피시겠어요? 두 사람은 명령에 따랐을 뿐이니 저도 크게 벌할 생각은 없습니다. 사금, 사기. 지금 당장 두 사람에게 곤장 열 대를 치렴. 외할머니, 큰외숙모. 저들에게 벌을 주고 가문에서 내쫓아도 괜찮을까요?”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곤장 열 대도 너무 관대하다. 한데 네 마음이 여리니 그 정도도 나쁘지 않지. 운요, 네 말대로 하자꾸나.”
목운요는 소청 뒤에 서 있는 사금과 사기에게 미소를 보였다. 두 사람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명을 따르겠다는 뜻을 보였다.
곤장을 맞기 위해 두 명의 하녀가 바닥에 눕는 동안 노부인과 대부인은 차가운 시선을 거뒀다. 사금과 사기는 체구가 가녀린 편이라 온 힘을 짜내 곤장 열 대를 때려도 맞는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두 하녀는 곤장을 맞고도 그다지 아프지 않다고 느꼈다. 저도 모르게 마음이 놓이자 목운요에 대한 원망이 생겼다. 애초에 맹언연이 난리를 피우지 않았어도 노부인과 대부인은 언젠간 목운요를 내쳤을 테고, 그랬더라면 목운요가 이렇게 위세를 떨치지도 못했을 터였다.
곤장 열 대는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사금과 사기는 일어나 소청의 곁으로 돌아갔다.
노부인은 손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저 두 사람을 소씨 가문에서 쫓아내라.”
대부인은 노부인의 안색을 살피다 황급히 팔을 잡아 부축했다.
“어머님, 또 두통이 도지셨습니까? 태의를 불러 진료를 부탁하겠습니다.”
“별거 아니다. 조금 쉬면 괜찮아지겠지. 모두 물러가라.”
하지만 목운요는 여기서 끝낼 생각이 없었다. 맹씨 가문과 대부인의 체면을 깎아내렸으니, 이제는 노부인도 대가를 치르는 게 맞았다.
“외할머니. 지난번 맹 소저를 도와 저를 모함했던 임 의녀는 외할머니를 모시는 사람으로 알고 있어요. 음흉한 여인이라 걱정이 됩니다. 맹 소저를 도와 저를 모함했는데, 나중에도 또 남몰래 잔꾀를 부릴지도 모릅니다.”
노부인 손 씨는 고개를 돌렸다.
“임 의녀의 조부는 네 외조부와 오랜 벗이었다. 비록 의녀 출신이지만 보통 하인들과 똑같이 대할 순 없지. 벌은 내가 이미 내렸다. 그래도 운요 네 마음이 아직 풀리지 않았다면 더 벌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우리 소씨 가문은 예로부터 하인들에게 관대하게 대했으니 밖으로 좋지 않은 소리가 나가게 해선 안 된다.”
“저는 그저 상황을 알려 드리려 했을 뿐입니다. 이미 벌을 내리셨다고 하니 이번 일은 당연히 더 따지지 않아도 됩니다. 저와 어머니는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 * *
소씨 가문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저녁이 되자 금란과 금교는 부엌에 음식을 가지러 갔는데, 모든 사람이 두 사람에게 유독 친절히 대했다. 이틀 전과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
수라간에서 돌아온 금교는 감개무량해했다.
“소저, 하인들은 정말 강자에게 약한 것 같아요. 오늘 소저께서 위엄을 보여 주시니 태도가 확 바뀌었어요.”
목운요는 구리거울을 들고 얼굴에 연고를 문지르며 말했다.
“아직 멀었어요. 보여 줄 게 많이 남았거든요.”
식사가 끝나자 금란과 금교가 향이 나는 차를 내왔다. 모녀는 차를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요아야, 궁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맹씨 가문과 소씨 가문의 태도가 이렇게나 바뀐 거니?”
소청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유독 콧대가 높았던 맹언연이 직접 딸아이를 찾아와 미안하다며 사과한 것이 특히 그랬다. 그뿐만 아니라 맹언연이 뺨을 얻어맞고도 이제 자신을 용서했냐고 묻다니, 실감이 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오늘 궁에서 있었던 일을 말씀드리자면, 우선 황상께선 별말씀을 안 하셨어요. 다만 맹언연이 절 때렸으니 똑같이 때려 주라고 한마디 하시더라고요. 아무래도 맹씨 가문에서 뭔가 황상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기도 해요.”
“그렇구나. 황궁의 덕비 마마가 맹 태사의 적녀라고 들었어. 비록 마마께 대를 이을 아들이 없어 궐내에서의 힘이 미미한 것 같아 보이지만, 황상께서 내리시는 은총으로 그 기세가 등등하다고 하더구나.”
목운요는 신기하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사금이 알려 줬단다.”
“사금이요?”
소청은 목운요를 나무라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이 어미가 시골에서 자랐다 해서 바보는 아니야. 사금과 같은 아이들을 은자 몇 푼을 주고 매매업자에게 사 왔을 리가 없지. 오랫동안 생각해 봤는데, 아무래도 영 공자께 교육받은 아이들이 아닐까 싶다.”
목운요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결국 들켰네요. 어머니가 알게 되시면 그들을 부릴 때 불편해하실까 봐 비밀로 한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