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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61화 (161/442)

161화 고발의 서막

“조정의 관리들이 모두 너처럼 생각한다면 짐의 근심도 덜어질 텐데 말이다.”

그저 흘러가는 말이었지만, 목운요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선 천하 만민을 먹여 살리셔야 하니 근심이 많으신 것도 당연하겠지요.”

천하 만민을 먹여 살린다고?

“어린 것이 맹랑하구나. 고개를 들어라.”

황제는 목운요의 얼굴이 궁금해 얼굴을 확인했다. 맑고 또렷한 두 눈에 투명한 속내가 비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는 맑은 두 눈에 빠져 목운요의 생김새도 제대로 관찰하지 못했다.

그간 목운요가 바친 여러 선물은 황제의 마음에 꼭 들었다. 또한 그녀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꽤 기특한 일들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에 경릉성 백성들에게 자선 행사를 베푼 일이 특히 그러했다.

온 경릉성에 백은 이십만 냥을 조달하였으니 앞으로 몇 년간 경릉성은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조정에 손을 벌리지 않고 저희끼리 극복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큰 업적이 아니던가?

“부디 제 얼굴을 보시고 놀라지 마셨으면 좋겠습니다.”

“설마 네 얼굴이 못나기라도…….”

목운요의 말을 들은 황제는 농을 던지려다가,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힐끗 목운요를 살핀 서립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숨을 한 번 들이켰다.

‘어찌…… 목 소저의 얼굴이 저렇게 망가지게 된 것인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런 시퍼런 자국이 남았을까?’

순간 대전에 침묵이 맴돌았다. 목운요는 쭈뼛쭈뼛 고개를 숙이며 황제에게 예를 갖췄다.

“좋지 않은 모습을 보였으니 꾸짖으셔도 됩니다.”

목운요의 말이 귓가에 울리자 황제는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실 황제가 잠시 얼이 빠진 것은 목운요의 얼굴에 난 시퍼런 손자국 때문이 아니라, 목운요가 자신의 누님인 의덕 장공주의 젊은 시절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황제와 그의 누님은 누구보다 우애 깊었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누님을 향한 미안함이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 누님과 닮은 목운요를 보니 자신도 모르게 살갑게 대하게 되었다.

“일어나서 대답해도 좋다. 서립, 목운요를 앉혀라.”

서립은 황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의자를 내왔고, 목운요는 단정한 모습으로 의자에 앉아 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얼굴의 상처는 어찌 된 것이냐?”

“맹씨 가문의 적손녀인 맹언연에게 맞았습니다.”

목운요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 소저가 왜 너를 때린 것이지? 네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게냐?”

황제가 말을 마치자 목운요는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사실을 아뢰는 것이 두렵지도 않은지 태연하게 말을 이어 갔다.

“맹 소저의 말에 따르면 제가 미천한 출신에 하운방과 불선루를 운영하는 천박한 장사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맹 소저는 저를 고깝게 보고 일부러 제게 죄를 덮어씌웠습니다. 그리고 핑계를 대며 저를 벌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서립은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들이켰다. 너무 지나친 직언이 아닌가?

“그렇다면 짐이 네 억울함을 풀어 주길 바라느냐?”

황제는 심오한 눈빛과 위엄을 보이며 목운요에게 물었다. 화가 난 것인지 아닌지 헤아릴 수 없는 얼굴이었다.

목운요는 대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황상께서 제 억울함을 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네 말이 진짜라는 것은 어떻게 믿겠느냐?”

“황상께선 영명하시어 사소한 일도 빈틈없이 살피는 분이십니다. 사건을 아주 조금이라도 살펴보신다면 바로 진상을 알아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진용천자이신 황상께 거짓을 고하면 벌을 받아야 하는데, 제가 어찌 감히 거짓을 고하겠습니까?”

목운요의 순진한 두 눈에는 황제에 대한 경외가 담겨 있었다.

그에 황제는 웃음을 터뜨렸다. 목운요의 눈은 마치 한 인간을 바라본다기보다 진짜 용이라도 보는 것 같은 눈빛이었다. 순해 터진 그 모습에 은근한 뿌듯함이 피어올랐다.

“그럼 맹언연을 벌하여 분을 풀고 싶으냐?”

순간 목운요의 눈이 반짝였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황상은 일국의 군주이니 평소에 황상에게 알랑방귀를 뀌는 사람들은 차고 넘칠 것이었다.

그래서 목운요는 황제에게 호감을 얻으려고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모습을 보인다는 계획이 통한 모양이었다.

목운요가 대답했다.

“큰외숙모는 오히려 저를 때린 맹 소저를 두둔하고, 어떤 벌도 없이 돌려보내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여전히 불만이오니 반드시 되돌려주고 싶습니다.”

이 말을 듣고 서립은 발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휘청할 뻔했다.

‘목 소저가 황상을 너무 쉽게 보는 것이 아닌가? 어찌 감히 저런 말을 하지? 게다가 맹 소저가 대체 누군가? 조정 태사와 청녕 공주의 적손이 아닌가? 덕비 마마의 친조카이기도 하다. 그러니 목 소저가 감히 앙갚음할 만한 인물인가?’

과연 황제도 미간을 찌푸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보통 사람 같았더라면 벌써 불쾌한 마음이 들었을 테지만, 목운요의 말은 꽤 흥미로웠다. 게다가 목운요가 친누님과 매우 비슷한 용모인지라 인내심을 좀 더 가질 수 있었다.

“그 소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궁에 오기 전에 큰외숙모가 맹씨 가문은 지위가 매우 높아 맹 소저는 제가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인물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 알고 있는데도 감히 똑같이 보복하려는 것이냐?”

“감히 그러하옵니다.”

목운요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분이 어떠하든 간에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요. 일전에 책을 읽어 주는 선생의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황상께서는 잘못을 하시더라도 스스로 처벌을 내리시며, 관리가 잘못을 저지르면 관직을 빼앗고 죄를 물으며, 백성이 잘못을 하면 관아에 가서 심문과 처벌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맹 소저는 고의로 저를 모함하고 때렸습니다. 그러니 저도 앙갚음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짐이 처벌해 주길 바라느냐?”

목운요가 고개를 저었다.

“황제의 신분이 존엄할진대 직접 명령을 내려 한 사람을 처벌하시다니요. 황상께서는 불만스러운 눈짓 한 번으로도 사람의 일생에 영향을 끼치실 수 있습니다. 맹 소저는 제 큰외숙모의 친조카입니다. 맹 소저가 절 때렸으니 저도 똑같이 때려 준다면 그걸로 사건을 일단락할 수 있으며, 제 마음의 화는 사라질 것입니다. 만약 황상께서 나서신다면 맹 소저의 일생이 망가질 수도 있습니다. 제 의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황제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시선에 모호한 감정이 드러났다.

“짐이 허락한다면 감히 직접 찾아가 때릴 수 있겠느냐?”

“왜 못 하겠습니까? 황상의 허락만 있다면 무엇도 무서울 게 없습니다.”

목운요의 눈빛이 밝게 빛났다. 그녀의 미소는 달콤하고 아름다워, 보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황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목운요를 잠시 훑어보다 이내 목소리를 냈다.

“짐이 듣기로 네가 차를 잘 우린다고 하던데, 모처럼 오늘 기분이 좋으니 한 잔 우려 보겠느냐?”

목운요는 즉각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서립이 서둘러 아랫사람을 불러 다구를 가져온 뒤, 목운요 앞에 놓았다.

목운요는 잠시 자리를 비우고 손을 씻으러 갔다. 황제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이내 몸이 휘청였다. 등은 어느새 축축하게 땀에 젖어 있었다. 허리의 상처에서는 얼얼한 통증이 느껴졌다.

목운요는 자신이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자칫하면 황상을 농락한다고 여겨질 수도 있었다. 심지어 황상께서는 몇 번이나 자신을 유심히 관찰하는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목운요는 스스로 황제를 믿고 경외한다고 계속 암시했고, 거울을 보며 표정과 눈빛 하나하나를 연습했다. 한 치의 허점도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다만 황제는 황제인지라 자신의 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알 수 없었다.

목운요는 천천히 손을 씻었다. 동작이 유달리 진지하여 마음속에 남아 있는 잡념과 두려움까지 깨끗이 씻어 내는 듯했다.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끝이 가까워질수록 더 침착을 지켜야 했다.

잠시 후, 옆에 선 환관이 수건을 주었다. 목운요는 가볍게 물기를 닦아 냈다.

“공공, 저는 준비되었습니다.”

“목 소저, 이리 오시지요.”

다기는 황제 전용으로 특별히 제작된 꽃무늬 백자 도자기였다. 한쪽에는 연못 위의 연꽃이 그려져 있었고 다른 쪽에는 시구가 새겨져 있었다.

‘이따금 하얀 새가 오르내리며 날고, 연꽃 향기 물에 비쳐 은은하네.’

아름다운 다구를 보니 목운요의 얼굴빛이 밝아지고 동작까지 유쾌해졌다.

황제는 오늘 조정 일을 생각하다가, 이내 목운요가 차를 우리는 모습에 매료되고 말았다. 일찍이 서립이 이 소녀의 다도 솜씨가 훌륭하다고 칭찬한 바 있었는데, 정말로 과장된 것 없이 솜씨가 훌륭했다.

긴장이 완전히 사라진 목운요에게서는 떠다니는 구름과 흐르는 물 같은 우아함이 흘렀다. 손짓 하나하나가 마치 하늘이 만들어 낸 움직임 같았다. 이따금 울리는 물소리는 계곡에 온 것처럼 듣기 좋았다. 눈 깜짝할 사이에 온 방 안에 향기가 가득해졌다.

황제는 가슴속 번민이 점차 사라지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사이 목운요가 두 손을 배 앞에 모으고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상, 차를 다 우렸습니다.”

옆에 있던 서립이 조심스럽게 찻잔을 받아 황제의 탁자 옆에 놓았다.

목운요가 우린 차는 하명향로(荷茗香露)였다. 원래 향기가 은은하게 퍼지는 차인데, 목운요의 손을 거치니 유달리 향기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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