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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60화 (160/442)

160화 입궁

“황상께선 일국의 군주시다. 매일 나랏일을 처리하기에도 바쁘신 분이신데, 집안에서 일어난 다툼에 신경이나 쓰시겠어?”

목운요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사실 저도 황상께서 제 일에 관심을 두실지 확신하지는 못하겠어요. 하지만, 신경을 쓰시든 안 쓰시든 황상 앞에서 제 억울함을 토로하면 소씨 가문은 앞으로 안녕한 삶을 살지 못하겠죠. 조정의 신하들이 가장 신경 쓰는 것은 자신이 황상의 눈 밖에 나느냐, 나지 않느냐니까요. 그리고 황상께서 이번 일에 신경을 쓰지 않으신다면, 다음에 또 말하면 돼요.”

그에 소청은 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평생을 살며 황상을 한 번 뵙는 것만으로도 이미 큰 복을 누리는 거야. 억울한 일을 당할 때마다 고자질하다니, 황궁이 어디 들어가고 싶다고 해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

“어머니, 저도 제 분수는 지켜요. 하지만 제겐 궁에 들어갈 방법이 있답니다.”

정말 목운요에게는 큰돈을 들이지 않고 입궁할 수 있는 수단이 있었다. 바로 월왕이었다.

소청은 목운요의 고운 머릿결을 쓰다듬으며 뼈 있는 말을 했다.

“네가 괴롭길 바라서 이러는 게 아니다. 그저 네가 일의 경중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야. 궐내에서 말 한마디라도 실수하면 머리가 날아가니까.”

목운요는 소청의 품에 다가갔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백 살까지 장수할 거예요. 어머니께 효도해야 하는데 어찌 세상을 떠나겠어요?”

소청은 흐르려는 눈물을 애써 참았다.

“그래, 어미한테 효도 좀 해 봐라.”

* * *

다음 날 아침, 목운요는 새벽처럼 일어나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입궁할 때 입을 옷은 전날 미리 골라 두었다. 억울함을 호소하러 입궁하는 거였지만 처연하게 보인답시고 너무 단정하게 옷을 입어선 안 되었다.

목운요는 그것까지 고려하며 은색 테두리의 복숭아색 비단 치마와 난초 모양 비녀를 골랐다. 그리고 작은 난초꽃 모양 귀걸이를 걸었다. 그 모습은 유난히 청초해 보여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일 만했다.

목운요는 옷을 갈아입고 장신구를 걸친 후, 거울을 보고 연지와 분을 얼굴에 톡톡 두들겼다.

소청은 목운요의 뒤에 서서 거울을 통해 딸의 보드라운 뺨과 다섯 손가락 자국이 확연히 난 반대쪽 뺨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모습을 보면 누구든 놀랄 터였다.

“요아야,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까?”

목운요는 두 볼을 요리조리 자세히 살펴보다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그에 소청은 마음속에 가득한 걱정을 참고 딸아이를 배웅할 수밖에 없었다.

방을 나선 지 얼마 안 되어, 목운요는 문어귀에서 제 마마를 만났다. 밖에서 얼마나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신발 끝에 이슬이 맺혀 있는 것으로 보아 꽤 오래 기다린 것 같았다.

“목 소저를 뵙습니다. 대부인께서 소저가 타고 가실 마차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목운요는 금란과 금교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를 향해 걸어갔다. 제 마마의 두 눈에는 피곤함이 가득했다.

“제 마마가 고생이 많으세요.”

“소저, 그런 말씀 마십시오.”

마차 안에는 방석이 놓여 있어 마차를 준비한 자의 세심함이 돋보였다. 방석에 앉으니 구름 위에 앉은 듯 편했다.

목운요는 마차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고 마음을 다잡았다. 옆에 앉은 금란과 금교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침묵했다.

약 반 시진 후, 마차가 천천히 속도를 낮추더니 멈춰 섰다.

“소저, 도착했습니다.”

목운요가 감았던 눈을 떴다. 푸른 하늘을 닮은 목운요의 눈빛은 어떤 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맑고 깨끗했다.

금란, 금교는 그런 목운요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따라 목운요가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풍겼기 때문이다. 지금 눈앞에 있는 목운요는 모든 잡념을 지운 사람처럼 보였다.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서 내려온 그녀는 옷매무새를 정돈하곤 궁문을 향해 걸어갔다.

궁 입구에 가니 이미 어린 환관 한 명이 목운요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관은 목운요를 보자 냉큼 무릎을 굽혀 예를 갖췄다.

“혹시 목 소저 맞으신지요?”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예를 갖췄다.

“민녀 목운요가 공공을 뵙습니다.”

“제겐 예를 차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소귀(小贵)라고 합니다. 이 공공의 명을 받아 입구에서 소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황상께선 대신들과의 접견이 있어 조금 기다리셔야 할 듯합니다.”

“네, 알려 주셔서 감사해요.”

목운요의 태도는 부드러웠고, 모든 말과 행동은 궁중의 규율을 지키고 있었다. 다만 올바르고 단정한 언행과 다르게 뺨에 난 선명한 멍 자국 때문에 길을 안내하는 소 공공은 몇 차례 그녀를 곁눈질했다.

목운요는 시선을 느꼈지만, 모른 척 황궁의 경치를 살폈다.

그녀는 길게 이어진 궐내를 걸으며 온 힘을 다해 아픈 몸을 참았다. 소 공공이 일부러 사람들을 피해 걸어서 마주치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한 궁전 앞에 다다르자, 소 공공이 발걸음을 멈췄다.

“이 공공을 뵙습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들자 웃는 모습의 이 공공이 보였다. 목운요는 이 공공에게 인사를 올렸다.

“이 공공을 뵙습니다.”

“목 소저, 부디 용서하십시오. 지금 황상께선 대신들과 접견 중이신데, 논할 것이 많아 아마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습니다. 그러니 우선 편전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공공은 목운요에게 유독 살갑게 대했다.

첫째 이유는 서립과의 친분 때문이고, 둘째 이유는 목운요가 어제 보낸 주머니에 수천 냥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일부러라도 목운요를 더 챙기는 것이 맞았다.

편전에 들어선 이 공공은 목운요에게 앉으라고 손짓했다. 그리고 소 공공에게 다과를 내오라고 했다.

“목 소저, 잠깐 앉아 계십시오.”

“감사해요, 이 공공.”

빠른 걸음으로 걸어온 터라 목운요의 이마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계속 밖에 서 있었다면 쓰러졌을 것이 분명했다.

“별말씀을요. 전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이만 떠나야 하니 부디 양해 부탁드립니다.”

“공공을 방해할 순 없죠.”

목운요는 조용히 편전에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약 반 시진이 지나니 이 공공이 편전에 돌아왔다. 그런데 아까보다 안색이 좋지 않았다. 그는 목운요에게 예를 갖춘 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목 소저, 황상께서 들라 하셨습니다. 한데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목운요의 눈이 흔들렸다.

“감사해요.”

이심전(怡心殿) 입구에 도착한 목운요는 머리를 숙이고 황상의 명을 기다렸다. 한참 후에 황상의 부름이 들려왔다.

“목운요는 들라.”

목운요는 살짝 고개를 숙인 채 정중하기 그지없는 자세로 대전에 들어갔다. 그녀는 용이 수놓인 금빛 옷을 입은 제왕을 힐끔 쳐다본 후 냉큼 무릎을 꿇어 예를 갖췄다.

“민녀 목운요, 황상을 뵙습니다.”

낭랑한 목운요의 목소리가 고요한 대전에 듣기 좋게 울려 퍼졌다. 맑은 목소리의 인사에 제왕의 찌푸려져 있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일어나라. 네가 목운요냐?”

황제의 목소리에는 지배자의 위엄이 가득했다. 목운요는 용안을 보지 않아도 이미 목소리에 기가 눌려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황상께 아룁니다. 그렇습니다.”

황제는 목운요를 관찰했다. 눈앞에 있는 소녀는 몸집이 작았고, 머리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곱게 치장하고 조용히 서 있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편안함을 느끼게 했다. 또한 대전에 들어설 때 완벽한 인사를 올린 것으로 보아 예의범절을 아는 아이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던 황제는 돌연 호기심이 가득한 목운요의 두 눈을 마주하게 되자 당황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예의를 아는 아이라고 칭찬할 마음이 들었는데, 어찌 지금은 겁도 없이 용안을 쳐다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목운요, 입궁하기 전 용안을 쳐다보지 말라고 가르쳐 준 사람이 없었느냐?”

그에 목운요는 곧장 고개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황제의 질문에 대답했다.

“황상께 아룁니다. 마마가 알려 주었으나 진용천자는 어찌 생기셨는지 궁금하여 참지 못하고 용안을 보았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진용천자? 그럼 말해 봐라. 짐을 보고 실망했느냐?”

황제는 목운요가 겁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딱히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어쨌든 목운요의 눈빛은 투명하고 순수하여 다른 목적을 이루려는 마음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외려 그 모습에 웃음이 났다.

한편 옆에 있던 서립은 긴장했다. 예전에 본 목운요는 똑 부러진 소녀였기에, 서립은 그녀를 좋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황상 앞에서 왜 저리 어리석게 구는지 모를 일이었다.

“진용천자의 용안이 가장 황상다우신 모습이 아닐까요?”

목운요는 물음에 대답하며 또 한 번 황제를 쳐다봤다가, 황제와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며 무릎을 꿇었다.

“무례한 소인을 부디 용서해 주세요.”

황제는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일어나라. 짐을 두 번 쳐다봤다는 죄로 경릉성에서 명성이 자자한 너를 질책한다면, 나는 폭군이라고 욕을 먹을 것이다.”

목운요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제가 자신을 부드럽게 대한다는 걸 느끼자 몸을 감쌌던 긴장감이 조금은 덜어진 듯했다. 그래서 조금 전과 다르게 약간의 소심함과 긴장감을 버리고 황제에게 말했다.

“우선 황상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말을 마친 목운요는 다시 한번 무릎을 꿇고 궁중 예법에 맞게 큰절을 올렸다.

황제는 흥미로운 듯 목운요의 행동을 바라봤다.

“까닭 없이 큰절을 올리는 이유는 무엇이냐?”

“황상의 하사품에 감사 인사를 올린 것입니다. 황상께선 민녀인 제게 많은 것을 하사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운방과 불선루에 보물을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감사 인사를 올리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네게 상을 내린 건 네가 전수한 자수법이 경릉성에 큰 공을 세웠기 때문이다. 마땅히 받아야 할 상이었다.”

목운요는 생각하지 못했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마땅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사람들에게 자수법을 알려 준 것은 제가 원해서 한 일입니다. 그리고 황상께서 제게 상을 내리신 건 저를 인정하신다는 뜻일진대, 일국의 황제께 인정받는다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인 줄을 알기에 줄곧 감사한 마음뿐이었습니다.”

순진한 얼굴을 한 목운요가 내뱉는 말은 전혀 거슬리지 않았고 진심만이 느껴졌다.

황제는 생각지도 못한 반응에 좋지 않던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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