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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58화 (158/442)

158화 책임을 회피하는 노부인

소청오는 대부인에게 목운요를 어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몇 번 만나 본 결과 그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일 년하고도 여섯 달 전의 목운요는 수중에 한 푼도 없는 빈털터리였고, 할머니 때문에 늙은이의 노리개로 팔려 갈 뻔했다.

하지만 지금은 황상의 하사품을 받아 강남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여인이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자수 비법을 전수해 준 목운요에게 감사해했고, 불선루와 하운방의 명성은 날이 갈수록 치솟았다.

그러한 그녀가 결코 잠자코 있을 리 없었다.

아무 말 없이 소청오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대부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청오야, 아무래도 네가 이번 일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구나. 어쨌든 끝난 일이니 너무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인은 분위기를 풀어 보고자 미소를 지으며 온화하게 물었다.

“두 달간 삼황자와 밖에서 지냈는데, 별일 없었니?”

소청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큰 문제 없이 모든 게 순조로웠습니다.”

“우선 돌아가 며칠 쉬렴. 아마 황상께서도 네게 급하게 명하실 일은 없을 거다.”

“네,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이만 쉬어라.”

* * *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소청오는 외투를 벗고 핏자국이 남은 옷을 바라봤다. 이를 본 시종이 급히 약을 가져왔다.

“도련님, 상처가 또 벌어졌습니다. 더 다치지 않게 조심하셔야 합니다.”

“그보다 제월각에 의원이 갔는지 알아봐라. 의원이 갔다면 목운요를 진찰하고 돌아가는 길에 내게 들르라고 하고, 만약 가지 않았다면 의원을 불러다가 나를 진찰한 후에 제월각으로 향하라고 해.”

시종은 소청오가 왜 이렇게 제월각을 신경 쓰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주인이 시키는 일에 참견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알겠다고 답한 후 제월각으로 향했다.

* * *

제월각에서는 목운요가 다친 허리에 연고를 바르고 있었다. 단 두 대를 맞았지만 얼마나 힘껏 내리쳤는지 검푸른 멍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 어혈을 풀지 않으면 내일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지도 몰랐다.

목운요의 얼굴에 식은땀이 가득하자, 소청은 옆에서 손수건으로 땀을 닦아 주었다. 목운요를 바라보는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 차 있었다.

그때, 금란이 들어오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부인, 소저. 큰 도련님의 시종이 와서 제월각에 의원이 왔냐고 묻습니다.”

목운요는 그에 고개를 돌렸다.

“약을 가지고 있으니 의원님이 오실 필요 없다고 해요. 그리고 그 시종에게 홍상약(紅傷藥) 한 병을 주고, 사촌 오라버니를 잘 돌봐 달라고 하고요.”

아까 본 소청오에게서는 피비린내가 나고 있었다. 어디서 상처를 입은 것이 분명했다.

소청오가 먼저 선의를 보였으니 자신도 응해 줘야 했다. 호의를 베풀어 두면 오늘 이후 유용하게 쓰일 곳이 있을 터였다.

“네, 소저.”

* * *

소청오는 시종에게 작은 상처약 한 병을 받았다. 병을 흔들어 보는 그의 눈빛이 깊어졌다.

시종은 금란이 한 말을 그대로 전한 상태였다.

“넌 이만 가 보아라.”

시종이 나가자 소청오는 손에 쥔 약병을 한참 동안 훑어보았다. 무슨 생각을 품었는지 알기 힘든 어두운 눈빛이었다. 이내 소청오가 약병을 서랍에 넣고 침대에 누웠다.

* * *

이튿날, 소청오가 일어나자마자 시종이 허둥지둥 들어왔다.

“도련님, 황궁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소청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하사품을 전하러 온 것이겠지. 향로와 탁자를 준비하여 접대하면 된다.”

“그게 아닙니다! 황상께서 내일 목 소저를 만나고자 하신답니다!”

소청오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이내 그가 다급하게 물었다.

“어머니께선 이 사실을 알고 계시느냐?”

“대부인께서는 지금 사람을 데리고 제월각으로 가고 계십니다.”

그 시각, 소청오뿐만이 아니라 온 집안이 당황하고 있었다.

어제 발생한 일에 대해서는 노부인 손 씨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노부인의 속마음도 대부인과 같아서, 목운요가 어떤 풍파도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한데 하룻밤 만에 갑자기 황상께서 목운요를 보려고 하실 줄이야.

목운요의 뺨에는 아직 상흔이 남아 있었다. 곤장은 두 대만 맞았다고 하지만 연약한 몸이기에 걷기 힘들 수도 있었다. 어찌 그런 상태로 궁궐에 가 용안을 뵙겠는가?

* * *

제월각 안, 목운요는 핼쑥한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등 뒤에 방석 두 개를 깔았지만 여전히 몸이 아파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목운요는 겸연쩍은 낯으로 맞은편에 앉은 이 공공에게 입을 열었다.

“대인,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이 공공은 지난날 경릉성에서 황명을 전했던 이덕으로, 내시 총관 서립의 제자이기도 했다.

“호칭은 그저 이 공공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황상께서 소저의 입궁을 명하셨다고 하시기에 제가 심부름을 맡겠다고 했지요. 그런데…… 낯빛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목운요는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살짝 가로저었다.

“별일 아닙니다. 서릉에 온 지 얼마 안 되어 풍토에 아직 적응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 공공은 목운요의 뺨에 생긴 검푸른 따귀 자국을 보았다. 풍토가 안 맞는다고 어찌 얼굴에 손자국이 생길까. 맞아서 생긴 자국이 분명했다. 이 공공은 따귀 자국을 알아차렸지만 목운요의 말에 맞춰 대답해 주었다.

“경릉성과 서릉의 기후가 크게 다르지요. 풍토가 맞지 않을 수 있으니 며칠 더 쉬시면 될 것입니다. 그보다 내일 황상을 뵈러 입궁하실 수 있겠습니까?”

“황상께서 저를 잘 봐주시어 상을 내려 주셨지요. 몸이 조금 불편할지언정 궁에 가서 황상께 감사를 표해야 마땅합니다.”

그녀의 말에서 진실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 공공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었다.

“일단 푹 쉬십시오. 저는 황명을 전하였으니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목운요가 금란을 보자, 그녀가 서둘러 주머니 하나를 이 공공에게 전했다.

“바쁘신 와중에 시간을 내어 누추한 곳까지 와 주셨으니 제 작은 성의를 받아 주시지요. 찻잎입니다.”

“소저,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이 공공은 말을 마치고 주머니를 옷소매 안에 넣었다. 손을 돌리니 흔적 하나 남지 않았다.

목운요는 금교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이 공공을 배웅했다.

그때, 대부인이 하인을 데리고 급하게 오는 것이 보였다.

“큰외숙모를 뵙습니다.”

“맹 부인을 뵙습니다.”

이 공공이 살짝 공수하며 인사했다.

대부인은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내시 총관의 제자를 알아보는 듯했다.

“이 공공, 어찌 그리 발길을 재촉하십니까. 제가 연회석을 차려 놓으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음식이라도 좀 드시고 가십시오. 운요야, 이 공공께서 황명을 전하러 일부러 오셨는데 어찌 그냥 가시라 했느냐?”

목운요가 옅은 미소를 띤 채 답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그에 옆에 있던 이 공공이 서둘러 입을 열었다.

“궁중에 일이 많아 오늘은 지체할 시간이 없습니다. 괜히 맹 부인께서 수고만 하시도록 했네요. 나중에 꼭 다시 와서 제대로 사죄드리겠습니다.”

“그 무슨 말씀을. 궁중 일이 바쁘시면 저희도 붙잡을 수 없지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이 공공께 술을 대접하겠습니다.”

이 공공은 미소를 지으며 재차 공수했다.

“그럼 저는 먼저 가 보겠습니다.”

이 공공이 물러가자 이내 목운요의 두 다리가 휘청거렸다. 목운요는 금교에게 기대어 몸을 겨우 세웠다.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금교가 놀라 말했다.

“소저, 조금만 버티세요. 소인이 빨리 모셔다드릴게요.”

그에 조금 전까지 웃고 있던 대부인의 얼굴이 한순간 굳어졌다. 대부인은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금교를 따라갔다.

금교가 목운요를 눕히자 소청이 침상 곁에서 남몰래 눈물을 훔쳤다.

“대부인, 운요 이 아이는 조산한 아이라 몸이 약합니다. 지금은 별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네요.”

대부인의 얼굴이 더욱 딱딱하게 굳었다.

“운요의 몸이 이렇게 된 건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어제 언연을 제때 막지 못하고 벌도 주지 못했습니다. 자매끼리 어울리는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큰일이었을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나중에 언연에게 잘 말하여 꼭 운요에게 사과하라고 시키겠습니다.”

대부인은 이 말을 꺼내면서 속으로 천불이 났다. 하지만 지금 위로하지 않으면 목운요가 황상께 어떤 헛소리를 할지 모르니 속마음을 그대로 말할 수 없었다. 만일 그렇게 되면 일이 더 꼬일 터였다.

목운요는 침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이미 기절하듯 잠들었는지 대부인이 뭐라 말하든 답하지 않았다.

‘낯짝도 없는 계집애 같으니!’

결국 대부인은 조용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노부인을 찾아가 방법을 모색해야 했다.

한편 마음이 편치 않은 건 노부인 손 씨도 마찬가지였다. 대부인의 방문에 노부인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어머님을 뵙습니다.”

대부인이 예의 바르게 절했다. 그런데 노부인이 일어나란 말을 하지 않았다. 계속 엎드려 절한 채 대부인의 마음은 점점 타들어 갔다.

차 반 잔을 마실 시간이 지나서야 노부인이 입을 열었다.

“요 며칠간 기운이 없어서 늘 멍하게 있다 보니 네게 일어나라고 말하는 것도 잊었구나. 얼른 앉거라.”

대부인은 애써 표정 관리를 했다.

“모두 이 며느리가 불효한 탓입니다. 요즘 소청 동생의 일을 살핀다고 어머님을 잘 보살펴 드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노부인은 차가운 얼굴로 살며시 고개 저었다.

“평소에 일이 바쁜 네가 어찌 다 직접 챙길 수 있겠느냐? 난 너를 믿는단다. 다만 누구나 좀 더 편애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지. 손바닥과 손등이 비슷해 보여도 손등의 살이 손바닥보다 더 얇기 마련이듯이.”

‘어제 맹언연을 편애했다고 나무라시는 건가?’

대부인은 서둘러 나아가 예를 올렸다.

“혹시 제가 어머님께 노여움을 산 일이 있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노부인 손 씨는 잠시 망설이더니 입을 열었다.

“어제 운요가 다친 것은 알고 있지?”

“네, 자매끼리 다투다 그랬답니다. 언연이 그 아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 밑에서 응석받이로 자라다 보니 가끔 언행에 분별이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넌 언연이를 두둔하고 운요를 억울하게 두었느냐?”

대부인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노부인의 말인즉슨…….

‘지금 다 내 탓으로 돌리시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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