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소청의 분노
금란과 금교는 발만 동동 구르며 녹의 소전각의 문 앞을 지켰다. 안에서 다투는 듯한 말소리가 들려와 정원으로 들어가려고도 해 봤지만, 나이 지긋한 문지기들에게 쫓겨나야만 했다.
금란과 금교가 육냥을 데려와서라도 목운요를 구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바로 그 순간, 목운요가 느릿한 걸음으로 정원에서 걸어 나왔다.
두 사람은 얼른 양옆에서 그녀를 부축했다.
“소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금란은 목운요의 고운 얼굴에 난 상처와 부자연스러운 걸음걸이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전 괜찮아요. 우선 제월각으로 돌아가죠.”
소청은 문 어귀에서 목운요를 기다리다, 금란과 금교에게 부축받으며 들어오는 딸을 보고는 곧장 달려갔다. 엉망이 된 딸의 모습에 마음이 미어졌다.
“요아야, 이게…… 무슨…….”
목운요는 소청의 품에 기대어 천진난만한 말투로 말했다.
“어머니, 제 잘못이에요. 잘 다녀오겠다고 했는데 이렇게 다쳐 버렸네요. 많이 걱정하셨죠? 죄송해요.”
소청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그녀는 목운요를 부축하여 방에 들어가 딸을 끌어안았다.
“가여운 우리 아가! 차라리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왜 평온하던 삶을 어지럽히면서까지 이곳으로 불러들였을까?”
목운요는 울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견뎠다. 하지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음소리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약해져서 억울함이 한껏 치밀었다. 결국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러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어머니, 얼굴도 너무 아프고, 허리도 너무 아파요.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 온몸이 너무 아파요.”
소청이 목운요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상처 좀 보자꾸나…….”
한쪽 뺨에 남은 푸른 손자국은 보기에 몹시 처참했다.
소청은 다시 한번 억장이 무너져서,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며 분노했다.
“요아야, 아무래도 이곳을 나가야겠다.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어!”
‘소씨 가문은 얼어 죽을. 가족? 웃기지 마! 정말 가족으로 여겼다면 이렇게 악랄하게 굴진 않았겠지. 언제 목숨을 잃어도 이상하지 않아!’
가족이란 사람들이 있는 곳은 이런 곳이었다. 소청 자신은 어찌 돼도 괜찮았지만, 금쪽같은 딸아이만큼은 이 불구덩이에 빠지게 만들 수 없었다.
그에 목운요는 눈물을 흘리며 소청의 손을 잡았다.
“우리가 소씨 가문에 들어왔다는 걸 온 천하가 다 아는데, 갈 곳이 어디 있겠어요.”
그랬다. 그들에겐 애초에 돌아갈 곳이 없었다.
아이처럼 우는 목운요와 달리 소청은 어떤 결심이라도 한 듯 벌떡 일어섰다.
“사람을 잡아먹는 이곳만 떠날 수 있다면 어디로 가든 상관없어. 하운방과 불선루도 있잖니.”
“경릉성에 돌아가면 소씨 가문이 가만히 있겠어요? 어디로 떠나든지 그들이 우리를 해치려고 쫓아온다면 고통받는 삶은 똑같을 거예요.”
소청의 눈에 분노와 증오가 스쳐 지나갔다.
“그럼 어떻게 해야 좋겠니?”
“어머니, 소씨 가문엔 우리를 진정한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우리도 그 사람들을 걱정할 필요가 없죠. 그래서 저는 복수를 할 생각이에요. 오늘 받았던 치욕을 반드시 갚고 말 거예요.”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뭘 하든 나도 도울 방법이 하나쯤은 있겠지.”
사실 목운요가 상처들을 달고 돌아온 것은 어머니에게서 소씨 가문에 대한 헛된 희망을 완전히 끊어 내기 위함이었다.
처음부터 그녀는 회귀 전 자신을 괴롭혔던 이들을 깡그리 몰락시킬 생각이었다.
한데 어머니가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소씨 가문 사람들을 미워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그들을 마음 밖에 내어놓아야 훗날 자신이 손을 써도 어머니가 소씨 가문 사람들을 감싸는 난처한 일이 생기지 않을 터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동안 많이 준비했잖아요. 이제 준비했던 것들을 사용하면 돼요.”
* * *
한편, 대부인은 어두운 얼굴로 소우의와 함께 방으로 돌아왔다.
“우의야, 오늘 네가 뭘 잘못했는지 알고 있니?”
소우의는 영리하게 바로 대부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제가 조급하게 언연을 불러오는 게 아니었어요. 그렇게 주제 파악을 못 하고 날뛸 줄이야……. 큰일이 날 뻔했죠.”
공손한 딸의 모습에 대부인의 안색이 부드러워졌다. 대부인은 소우의를 자기 곁에 끌어 앉혔다.
“오늘은 소씨 가문 내부, 그것도 네가 지내는 녹의 소전각에서 소란이 난 덕분에 덮고 넘어갈 수 있던 것이다. 하지만 다른 곳에서 같은 사건이 일어났다면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았을지도 모른다.”
소우의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께서는 전부터 항상 행동과 말을 조심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죠.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소란이 일어나기 마련인데, 오늘은 제 마음이 너무 조급했어요.”
대부인은 만족했다.
“평소의 네가 선을 넘지 않는 아이라는 것은 이 어미도 잘 안다. 하지만 아직 배움이 필요한 것 같구나. 사람을 부리는 방법을 잘 배워 놓도록 해라.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마음을 잘 주물러야 해. 그리고 오늘은 조급하게 군 것 말고도 네가 잘못한 점이 또 있다.”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바로 사람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야. 첫째, 너는 언연의 더 깊은 천성을 파악하지 못했다. 언연은 그간 네 앞에서 무척 자중하고 있었을 뿐이야. 오늘 일만 해도 정도를 모르고 날뛰었잖니? 정말 큰일이 날 뻔했지. 둘째, 너는 목운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경솔하게도 그 애가 약해 보이니 언제든 기를 꺾을 수 있다고만 생각한 거지. 오늘 임 의녀가 없었다면 불똥이 너한테 튀었을 거야.”
소우의는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제가 제대로 사람을 파악하지 못했어요.”
대부인이 그제야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잘못을 알았으면 고치려 노력하면 된다. 아직 늦지 않았어.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마음속 깊이 새겨 두렴.”
대부인은 미소 띤 얼굴로 소우의의 손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보다 오늘 일로 노부인의 마음은 확실하게 알게 되었구나. 노부인께선 외손녀를 아끼시는 게 아니라 미워하고 계신 거다. 목운요는 훗날 멀리 내쫓아 버리자. 그런 아이 하나 때문에 우리 손을 더럽힐 순 없지.”
대부인의 노기가 완전히 풀리자 소우의는 줄곧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입 밖으로 꺼냈다.
“어머니, 아직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어요. 어머니께서는 전부터 임우함이 교활하다고 하셨는데, 그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요?”
“정말로 임우함이 언연의 억지에 못 이겨서 다리에 화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 것 같니? 그 의녀는 노부인의 발밑에서 자란 개야. 노부인께서는 임우함을 평소엔 곁에 두며 기분 맞추는 용으로 부리다가,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물어뜯으라고 보내시지. 어차피 임우함은 관노의 신분이니 노부인의 명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따라야 하지. 임우함처럼 좋은 개도 없어.”
소우의는 놀라 동공이 흔들렸다.
“그럼 정말 오늘 일에 할머님의 뜻도 있었다는 말씀인가요?”
대부인은 웃으며 되물었다.
“네 생각은 어떻지?”
소우의는 대부인과 눈을 마주치자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아주 옅은 웃음이었다.
“할머님께서 티를 내지 않으시니 몰랐지요. 어머니는 할머님께서 목운요를 미워한다고 어떻게 그리 확신하게 되신 거예요?”
“노부인께서는 젊었을 적 네 할아버지와 산전수전 다 겪으셔서 나이 드신 후로는 가문의 일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시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은 모두 파악하고 계신단다.”
소우의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엊그제 남양(南洋)에서 온 진주 몇 알을 손에 넣었어요. 빛을 받으면 영롱한 광채를 띠는 진귀한 자줏빛 진주예요. 외할머니의 말액(抹額, 앞이마에 묶는 부녀자들의 장식)으로 만들어서 내일 보내 드리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역시 소씨 가문에서 네 효심을 따라갈 사람은 없을 거다.”
“네.”
소우의가 돌아가자 대부인의 미소가 옅어졌다. 대부인은 곁에 있던 늙은 하녀를 불러 물었다.
“나리께선 어디 계시느냐?”
“부인께 아룁니다. 나리께서 오늘은 육 이랑(姨娘, 첩을 일컫는 말)의 생일이라 향하원(香河苑)에 머무신다고 전하라 하셨습니다.”
대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에는 나리께서 좋아하시는 음식을 올리고, 육 이랑에게 비단 두 필을 보내라. 요즘 육 이랑이 나리를 잘 보필했지.”
“네, 부인.”
“그리고 큰 도련님을 모셔오너라.”
머지않아 소청오가 대부인 앞에 섰다.
“어머니를 뵙습니다.”
대부인은 차가운 눈빛으로 한동안 소청오를 바라보다 말을 꺼냈다.
“청오야, 어미는 네가 언제나 분수를 알고 일을 처리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은 어찌 그리 어리석게 굴었지?”
대부인은 소청오가 물러가라는 자신의 명을 거역하고 녹의 소전각에 남아 있던 일을 마음에 두고 있었다.
“오늘 어머니께서 하신 행동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대부인은 눈썹을 높이 쳐들었다.
“그럼 그 사건을 그냥 뒀어야 한다는 거냐? 시골 촌구석 출신인 목운요 그 계집을 위해 언연을 난처하게 만들고 맹씨 가문과 적을 지라는 거야?”
“오늘 사건은 명백히 맹 소저가 지나치게 소란을 피운 겁니다. 어머니께서 공평하게 시비를 가리신 일이 맹씨 가문에 전해졌다 해도, 맹 태사는 시시비비를 분별할 줄 아는 분이시니 어머니께 항의하지 않으셨을 겁니다. 어머니를 탓할 수는 없습니다만, 이렇게 무리하게 해결하려 하신다면 사건을 수습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대부인은 더는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쳤다.
“내가 일을 수습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고? 보잘것없는 목운요 따위가 하늘이라도 뒤집는다니? 청오, 네가 경릉성에서 목운요를 좋게 봤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딴 것이 조운년의 수양딸이라 봤자 뭘 어쩌겠느냐? 결국 미천한 출신의 계집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