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54화 (154/442)

154화 암암리에 뻗친 검은 손

소청오의 표정이 곧장 근엄해졌다.

“맹 소저, 소란을 피우는 것도 정도껏 하시오.”

맹언연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청오 오라버니, 제가 언제 소란을 피웠다고 그러십니까? 목운요는 제게 화상을 입혔습니다. 공정하게 벌을 주어야 해요!”

“계속 황당한 소리를 할 거요? 찻주전자의 수온은 따뜻할 뿐이오. 화상을 입게 할 정도가 아니라!”

“그럴 리가요! 저는 지금도 다리가 아파서 제대로 서지도 못하겠는걸요. 시간이 지났으니 당연히 주전자의 물이 식었겠지요.”

맹언연 앞에 선 목운요가 분한 목소리를 냈다.

“맹 소저, 방금 저와 오라버니의 말을 듣지 못했습니까? 이 주전자는 수온이 유지되도록 특별히 제작된 거라고요. 만약 못 믿으시겠다면 다시 물을 담아서 반 시진을 기다려 보시지요.”

“너…… 네가 감히 수작을 부리는 게지!”

맹언연이 손을 뻗어 목운요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분노에 찬 가슴이 계속 오르락내리락했다.

“어찌하여 차를 우릴 때 미지근한 물을 쓴단 말이냐!”

“이건 우전용정(雨前龙井)인지라 원래 온도가 높지 않은 찻물을 씁니다. 그러니 사람이 델 만한 찻물이 아니라고요. 모르시면 함부로 말씀하지 마십시오.”

목운요가 무시하는 듯이 상대를 쳐다보았다.

“그리 무례하게 굴지는 마시오.”

소청오는 피상적으로만 한마디 나무라더니 고개를 돌려 소우의를 보았다.

“우의야, 맹 소저를 배웅해 드려라.”

“아니요. 전 가지 않을 겁니다. 오늘 반드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맹언연이 원한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 다리의 통증이 점점 격렬해지는 것이, 화상이 분명했다.

“남몰래 어떤 술수를 썼는지는 몰라도, 내 다리에 난 상처가 절대 거짓일 리 없지. 네 음흉한 속을 오늘 반드시 폭로할 것이다!”

“그리 소란을 피우시겠다면, 좋습니다. 오늘 모두 소저의 그 악독한 마음을 알게 되겠지요.”

맹언연은 제 분을 못 이겨 미치기 직전이었다.

“뭐, 뭐라고? 악독?”

“네, 맞습니다. 저더러 옷 장사하는 사람이라고 하질 않나, 천박한 장사꾼이라고 하질 않나. 그리고 제가 뿌리부터 상했다고요? 외할머니께선 오랫동안 저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얼마나 자애로우신 분인데, 무엇이 상했다는 겁니까? 어디 한번 분명히 말해 보십시오!”

“내가 언제 노부인을 말했단 말이냐?”

맹언연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까 한 말은 분명 목운요 아버지의 신분을 조롱하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목운요가 그 말을 억지로 노부인에게 끼워 맞춘 것이다. 맹언연이 아무리 지체 높다 해도 소씨 가문의 노부인을 함부로 말할 수는 없었다.

“그 말은 청오 오라버니와 우의 언니도 다 들었습니다. 두 분께선 매우 공정하시니 맹 소저의 죄를 그냥 숨겨 주지 않으실 겁니다. 변명할 생각은 마십시오.”

소우의가 맹언연을 부축하던 팔을 천천히 놓았다. 눈에는 고요한 빛이 스치고 있었다. 목운요는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냉소했다.

‘여태 상황을 파악하다가 맹언연이 불리해지니 자연히 선을 긋는 것이지.’

그때, 문 앞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의원님께서 오셨습니다.”

맹언연이 날카롭게 목운요를 훑어보았다. 시리도록 차가운 눈이었다.

“말은 거짓으로 꾸밀 수 있으나 상처는 절대로 거짓말을 할 수 없죠. 스스로 입을 잘 놀린다고 생각하지 말아요. 시시비비는 곧 뒤집힐 수 있으니까.”

오 의원은 맹언연이 화상을 입었다는 소리에 난처한 기색이었다.

“도련님, 제가 감히 맹 소저의 상처를 살피기는 어렵습니다. 노부인 곁에 의녀가 있는데, 수고스럽겠지만 그 의녀를 부르는 게 어떻겠습니까?”

소우의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제가 세심하지 못한 탓입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시켜 의녀를 부르겠습니다.”

이내 얼마 지나지 않아 하얀 의복을 차려입은 임 의녀가 걸어 들어왔다.

“큰 도련님과 큰 아가씨를 뵙습니다.”

“임 의녀, 예의는 그만하면 됐고, 맹 소저 다리의 상처가 심한지 좀 봐주게나.”

임 의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이며, 시녀에게 맹언연을 방까지 부축하라고 눈짓했다.

임 의녀를 보며 목운요는 눈을 가늘게 떴다. 차가운 살기가 눈에서 스쳐 지나갔다.

‘임우함(林雨涵). 한때 이름을 날렸던 임 태의(太醫)의 손녀지. 훗날 임 태의가 궁중 일에 연루되어 임씨 가문 사내들은 모조리 몰살당하고, 부녀자들은 전부 관노로 끌려갔어. 임 태의가 소씨 가문의 큰 어르신과 오랜 친분이 있는지라 노부인 손 씨가 임우함만 구해 주어서 지금까지 곁에서 의녀로 쓰고 있지.’

훗날 소우의가 삼황자와 혼인하자 노부인은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임우함을 소우의의 혼수 시녀로 따라가게 했다. 이때 목운요는 임우함의 계략에 숱한 피해를 받았었다.

잠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옆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임우함이 진료를 마치고 방에서 나오고 있었다.

“도련님과 아가씨께 아룁니다. 맹 소저의 상처는 분명 화상입니다. 그 상처가 심하여 세심하게 치료받지 않으면 흉터가 남으실 수도 있습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투명하게 맑은 두 눈동자에 서리가 맺힌 듯했다.

‘지금 날 모함하려는 거야?’

마음속으로 여러 생각이 끊임없이 소용돌이쳤다.

‘혼자 수를 썼다기엔 임우함의 담이 그리 크진 못할 테고, 갑자기 터진 일이니 소우의와 대부인의 술수도 아니겠지. 가장 유력한 것은 노부인 손 씨인데…….’

눈을 깜빡이던 소청오는 이내 침착함을 되찾았다.

“그럼 몸조리를 잘해야겠소. 임 의녀, 맹 소저의 다리에 절대 흉터가 안 남도록 하게.”

“네.”

“우의야, 어서 하인을 시켜 맹 소저를 집까지 잘 모셔다드려라. 그리고…….”

“잠깐!”

시녀 두 명의 부축을 받으며 나온 맹언연이 득의양양한 눈빛으로 목운요의 목전까지 천천히 걸어왔다. 그리고 곧장 팔을 치켜들더니 목운요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찰싹!

희고 여린 얼굴이 붉게 부어올라 몹시 살벌해 보였다.

맹언연이 입꼬리를 끌어 올리며 다시 손을 들려는데, 목운요가 눈을 치켜떴다. 순진하던 눈빛은 온데간데없고 끝없이 차갑고 잔혹한 눈빛이었다.

맹언연은 목운요의 눈빛에 겁을 먹고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가슴의 두근거림이 멈추지 않았다.

“가, 감히 날 그렇게 쳐다봐? 악독한 계집! 사람을 다치게 만들고도 거짓말을 하더니. 네 죄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지금 말해 주지!”

목운요는 손을 들어 붉게 부은 볼을 쓸었다. 화끈거리는 통증에 잔혹한 마음이 점점 짙어졌다.

“서릉은 천자의 발아래라 가장 공명정대한 곳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서릉에 온 지 이틀 만에 이렇게 경우 없는 일을 겪는군요.”

그에 맹언연은 의기양양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속으로 냉소를 금치 못했다.

‘아까 임 의녀와 함께 방에 들어가서 봤을 때 내 두 다리는 분명 멀쩡했다. 화상은 고사하고 붉은 자국도 없었지. 내가 큰 실수를 한 것은 아닌가 생각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임 의녀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두 다리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 주었지. 심지어 옷을 갈아입는 것까지 도와주었어!’

맹언연은 그 즉시 임 의녀의 뜻을 알아채고 안도했다. 노부인이 그 아이를 좋아하지 않아 본때를 보여 주려는 모양이었다.

‘참으로 일이 간단하게 되었어.’

“내 몸에 상처 하나라도 냈다간 두 다리를 부러뜨려서 배상해야 할 거라고 말했지. 잡아떼려는 생각은 하지도 마.”

그러자 소우의가 맹언연의 옆에 서서 팔을 붙들었다.

“언연 동생, 이번 일로 몹시 억울하다는 것 압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사촌지간이 아닌가요? 정말 운요의 두 다리를 부러뜨리면 사람들이 뭐라고 수군대겠어요?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요.”

“원래는 가볍게 봐주려고 했어요. 시골에서 나고 자란 아이니까 예절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지만 해도 해도 너무하지 않습니까! 저를 해친 후에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기세등등하게 죄 없는 척을 했잖아요? 임 의녀가 아니었다면 모두가 속을 뻔했지요. 저렇게 마음이 악독한 아이를 어찌 그냥 용서하겠어요?”

“그건…….”

소우의는 난처한 표정을 지은 채 목운요를 흘긋 보았다. 더 이상 돕기 힘들다는 눈치였다.

그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던 소청오가 말했다.

“운요 동생, 맹 소저에게 사죄하시오. 관대하게 벌해 달라고 비시오.”

맹언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오라버니 체면을 봐서라도 엄중히 다스리진 않겠어요. 만약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하면 두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고 곤장 이십 대로 끝내죠.”

하지만 목운요는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한번 말씀하신 바는 지키셔야지요. 제 두 다리를 부러뜨리십시오.”

“소란은 그만하면 되었소!”

소청오가 고개를 돌리고 엄숙하게 목운요를 보았다.

“맹 소저에게 잘못했다고 말하시오!”

목운요는 단호하게 딱 한마디를 했다.

“싫습니다.”

‘그래, 소씨 가문의 악귀들아. 날 어떻게 해치는지 어디 한번 보자. 소란을 키우고 싶은 쪽은 너희잖아? 그럼 힘껏 어울려 주마. 결국 나를 감당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보자고!’

“왜 그리 고집을 피우시오?”

소청오가 눈썹을 찌푸리며 언짢은 기색을 보였다.

“저는 원래 솔직하고 융통성이 모자랍니다. 제가 애초에 말했듯이, 상처를 발견했다면 응당 제 다리를 부러뜨려서 배상해야 마땅해요. 맹 소저의 다리 부상이 심각하다니 제 말을 안 지킬 수 있겠습니까?”

소우의는 미간을 움찔거렸다. 목운요가 경릉성에서 베푼 일들을 볼 때, 그녀의 두 다리를 부러뜨린다면 소씨 가문에까지 나쁜 영향이 미칠 수 있었다.

그 순간, 맹언연이 돌연 손으로 탁자를 내리쳤다.

“좋아, 언제까지 그렇게 허풍을 떨지 두고 보자. 여봐라, 목운요에게 곤장 이십 대를 쳐라!”

그에 문 앞에서 대기 중이던 늙은 하녀들이 서둘러 들어와, 목운요를 묶고 바닥에 눌러 앉혔다.

소청오가 그런 하녀들을 제지했다.

“운요 동생,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잘못을 시인하시오.”

목운요는 피식하고 웃었다.

“세상은 참 이상하지요. 검은 속내로 남을 모함한 사람은 윗자리에 편히 앉아 있고, 무고하게 모함을 당한 저는 잘못을 시인하라고 강요받고 말이에요.”

맹언연이 매섭게 소리쳤다.

“쳐라!”

목운요는 눈을 내리깔았다. 별안간 첫 곤장이 떨어졌다. 골반 쪽을 맞아 극심한 통증이 온몸에 몰려왔다. 앓는 소리를 내기도 전, 두 대째 곤장이 이전과 같은 곳을 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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