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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52화 (152/442)

152화 악의를 품다

옆에 있던 시녀가 이를 듣고 서둘러 무릎을 꿇고 울면서 빌었다.

“소저, 살려 주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을 겁니다. 소저, 용서해 주시와요. 저는 죽기 싫습니다. 쫓겨나긴 더 싫습니다!”

맹언연이 눈썹을 치켜세우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목운요를 손가락질하며 놀란 얼굴로 말했다.

“어찌 그리 악독할 수가 있습니까!”

목운요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맹 소저께서 방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주인이 되려면 하인처럼 굴지 말고 매사에 아랫사람을 배려하지 말라고요. 주인으로서의 위신이 서려면 잘못을 했을 때 응당 벌을 줘야 하지 않나요?”

“벌을 준다고 해도 말입니다. 이 아이는 배가 아파 잠깐 자리를 비우고 목 소저를 얼마 기다리게 하지도 않았습니다. 한데 어찌 모질게 때려죽이거나 내쫓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럼 맹 소저께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이런 작은 일은 그저 한동안 무릎을 꿇게 하면 됩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시녀를 보았다.

“그럼 일각(一刻) 동안 무릎을 꿇고 있거라. 맹 소저께서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고 하시니.”

큰 화를 면한 시녀가 허둥지둥 이마를 조아리고 감사의 절을 했다.

“아량을 베풀어 주시어 참으로 감사합니다!”

‘일각쯤이야 벌을 받는 것도 아니지!’

맹언연은 속으로 뭔가 찜찜했다. 목운요에게 감사를 표하는 시녀를 쳐다보던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목운요의 기를 꺾으려 했으나 오히려 그녀의 말 몇 마디에 넘어가 괜히 자신만 상대방을 몰아붙이는 오만방자한 사람이 되었다. 반면, 목운요는 자연스럽게 관대하고 아량 넓은 사람이 된 것이다!

맹언연이 화내려는 걸 포착한 소우의는 급히 앞으로 튀어 나가 맹언연의 손을 잡고 저지했다.

“경릉성에서 사 온 찻잎을 준비해 놓으라고 했으니 어서 들어와요. 맛이 일품이라고 하던데 두 사람 모두 차 한잔해요.”

맹언연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고 곧장 대청으로 향했다. 하지만 여전히 분이 가라앉질 않았다. 그래서 목운요가 느릿느릿 걸어오는 걸 보다가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했다.

“우의 언니, 이곳을 꾸밀 때 적지 않은 돈을 들였죠?”

소우의가 웃으며 답했다.

“최대한 아낀다고 아꼈는데 결국 많이 쓰긴 했지요.”

녹의 소전각은 소우의가 팔십만 냥 정도의 돈을 들여 꾸민 건물이었다. 바닥에 깔린 벽돌도 최고급의 자재만 사용했고, 정원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진귀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게 다 고모와 고모부께서 언니를 아끼셔서 그런 거죠. 언니의 계례(笄礼, 여성의 성년식) 때 녹의 소전각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그때 계례에 참석한 소저들이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눈까지 빨갛게 충혈됐었다니까요?”

맹언연은 말을 마치고 목운요에게 눈길을 돌렸다.

“소부로 들어올 때 많은 물건을 가져왔다고 들었어요. 돈이 꽤 들었겠어요?”

“별거 아닙니다.”

“왜 그리 겸손을 떨어요? 모두 가격이 꽤 나가는 값진 것들이었다면서요? 그런데 하운방과 불선루가 문을 연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렇게 많은 이윤을 남겼다니, 신기하네요. 저와 우의 언니가 가문 사람들을 제대로 교육했으니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으면 우리 가문에도 장사꾼들이 활개를 쳤을 거예요. 뭐, 그랬다면 소씨 가문에서도 자수방을 열었을지 모르죠.”

그러면서 맹언연은 목운요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그녀의 말에는 목운요가 정당하지 못한 방법으로 돈을 벌었으리라는 속뜻이 담겨 있었다.

일순간 목운요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목운요가 받아치지 않고 침묵하자 맹언연은 적개심이 더욱 불타올랐다.

“왜 아무 말도 안 해요? 시골 촌구석에서 자랐으니 나와는 신분 차이가 엄청나서 그런 거예요? 그렇게까지 딱딱하게 굴 필요는 없어요. 설마 동생이 말실수를 한다고 해서 내가 벌이라도 주겠어요?”

목운요는 살짝 입술을 깨물며 겸연쩍게 웃었다.

“언니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세상 물정을 모르실 수 있죠. 가문에서 허락한다고 해도 자수방은 쉽게 열 수 있는 곳이 아니랍니다. 옷 하나를 지으려면 옷감과 무늬를 정하고, 천을 재단하고, 자수 실을 정해 수를 놓고, 옷의 틀을 잡는 등의 과정이 필요해요. 한 달에 한 벌을 짓는 것도 대단한 일이죠. 하지만 정말로 자수방을 열 생각이 있으시다면 수를 놓을 여인들을 찾아 드릴게요. 지금 가장 뛰어난 자수법은 우리 하운방에서 나온 기법이니까요.”

‘방금 장사꾼들을 비웃었지? 그런데 당신은 그런 미천한 장사꾼도 될 실력이 없으니, 장사꾼보다 못한 사람 아니야?’

맹언연은 속으로는 불처럼 화가 났지만, 겉으로는 냉소를 보였다.

“운요는 역시 우리와 다르군요. 어쩜 그리 말을 잘할까요? 하긴, 자수방과 다관을 운영하며 우리보다 훨씬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러겠죠.”

‘그래서 혀 놀리는 법을 배웠겠지!’

목운요는 더욱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저는 천성이 겁이 많아서 어렸을 때도 밖에 나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운방과 불선루는 모두 좋은 점주들이 가게를 잘 돌봐 주고 있죠. 저는 그저 수놓는 여인들에게 자수법이나 알려 주고 찻잎을 음미해 보는 게 전부예요.”

맹언연은 목운요의 말에 말문이 막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목운요를 쏘아보기만 했다.

맹언연이 기선 제압에 실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우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목운요는 절대로 어머니 말씀처럼 손가락 하나 휘둘러서 해치울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말싸움에서 우위를 점한 목운요는 기쁘게 옆에 놓여 있는 다구(茶具)들을 바라봤다.

“방금 차를 마시라고 하셨죠? 어떤 차가 준비되어 있나요?”

“상등품인 우전용정차(雨前龍井, 녹차의 한 종류)랍니다. 우려 줄 테니 두 사람 모두 마셔 봐요.”

그에 맹언연은 손을 뻗어 소우의를 막았다.

“언니, 여기 다도의 고수가 있다는 걸 잊은 거예요? 운요가 불선루를 열었잖아요. 차를 우려내는 기술은 따라올 자가 없다더라고요. 이참에 운요의 실력을 보는 건 어떨까요?”

“어디 보여 줄 만한 실력은 아니지만, 언니들이 원하시니 보여 드릴게요.”

목운요가 자신의 도발을 받아들이자 맹언연은 냉소를 띠었다.

소우의는 목운요가 선뜻 차를 내려 주겠다고 하자 미안해하며 입을 뗐다.

“그럼 수고스럽겠지만 운요가 고생 좀 해요.”

목운요는 탁자 앞에 나긋나긋 걸어가 앉은 후에, 다구들을 하나둘씩 질서 있게 진열했다. 그리고 물을 끓여 찻잔을 따뜻하게 데웠다.

맹언연은 그 모습을 보고 ‘흥’ 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목운요를 향한 적의가 빤히 들여다보이는 행동이었다.

반면 소우의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다도를 연습해서 한눈에 목운요의 실력을 알아볼 수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손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만 사실은 무척이나 능수능란한 움직임이었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있자니 마음속의 잡념이 사라지고 평온이 찾아올 정도였다.

차를 우리는 목운요의 모습을 보니 눈과 마음이 즐거웠다. 목운요를 거들떠보지도 않던 맹언연의 낯빛까지 변할 정도였다.

이내 목운요는 소우의에게 먼저 찻잔을 건넸다.

소우의는 찻잔을 받아 들고 가느다란 목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고마워요, 운요 동생.”

목운요는 웃으며 대답했다.

“별말씀을요.”

뒤이어 맹언연에게도 찻잔을 건네려던 순간, 맹언연이 손의 힘을 푸는 것이 목운요의 눈에 들어왔다. 찻잔은 그대로 목운요에게로 기울었다.

일순간 목운요의 눈에 한기가 돌았다. 때마침 손에 쟁반을 들고 있던 터라 찻잔을 곧바로 막을 수 있었다.

맹언연은 찻잔이 목운요에게 기우는 것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쨍’ 하는 소리가 나며 찻잔이 되돌아왔다. 곧 차가 다리에 쏟아졌다. 맹언연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본 소우의는 놀라서 얼이 빠졌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맹언연을 일으켜 세웠다.

“언연, 괜찮아요?”

목운요도 다급히 앞으로 튀어 나갔다.

“언연 언니, 괜찮으세요?”

그렇지 않아도 괴팍한 성격인 맹언연은 다리에 뜨거운 차가 쏟아지자 그대로 목운요에게 달려들어 뺨을 후려치려 했다. 하지만 목운요가 놀라 두 걸음 뒤로 물러나 버리는 바람에 허공에 손만 휘둘러야 했다. 맹언연은 분노하며 목운요를 비난했다.

“운요 동생이 이렇게나 음험한 애일 줄은 몰랐네요. 어찌 뜨거운 차로 내게 화상 입힐 생각을 할 수가 있어요? 대체 무슨 심보죠?”

그러나 목운요는 당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분명히 언니가 찻잔을 제대로 잡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데, 왜 제게 잘못을 떠넘기세요?”

맹언연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롭게 변했다.

“내가 일부러 내 다리에 화상을 입혔다는 말인가요? 주제를 알아야지요. 나를 해치면서까지 운요 동생을 함정에 빠뜨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목운요는 낭랑한 목소리로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대답했다.

“언니, 설령 제가 노부인의 외손녀가 아니라 보잘것없는 일개 평민이었어도, 결백한 이름 세 글자를 더럽히고 싶지는 않았을 거예요. 국법에 따르면 천자가 죄를 지어도 서민과 똑같이 벌을 받아야 해요. 제가 언니에 비하면 미천한 신분이라고 해도, 언니가 함부로 저를 핍박하실 수는 없어요.”

얘기를 듣는 순간에도 다리의 고통이 계속되자 목운요를 향한 맹언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여인의 몸에 상처가 생기다니! 뜨거운 차가 다리로 쏟아졌으니 흉한 상처가 남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맹언연의 창창한 앞날에도 문제가 생길 터였다. 이 사고의 결과로 생길 일들을 떠올리니 목운요가 죽도록 미웠다.

“이렇게 언니에게 지지 않으려고 말대꾸하는 애일 줄은 몰랐네요. 규율이라는 게 뭔지 알려 주죠!”

“설령 제가 규율을 모른다고 해도 어르신들께서 가르쳐 주실 테니 헛수고 안 하셔도 돼요.”

“허, 여봐라! 목운요의 따귀를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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