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1화 오만방자한 맹언연
* * *
다음 날 깨어 보니 정신이 아주 맑았다. 하지만 소청은 밤잠을 설친 듯했다. 아침을 먹는데 꽤나 기운이 없어 보였다.
“요아야, 아침을 먹고 나서 노부인께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가야겠지?”
“보통은 첫날과 보름날에 문안을 드려요. 규율에 따르면 오늘은 굳이 가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저희가 어제 막 이사 왔으니 오늘은 가 보아도 좋을 거 같아요. 만약 노부인께서 원하시면 곁에서 담소도 좀 나누고요. 혹 뵙기를 거부하셔도 저희는 성의를 보인 셈이지요.”
“그래, 그럼 지금 가 보자.”
목운요가 옅은 미소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노부인이 만나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과연, 노부인의 저택에 도착하니 온 마마가 공손히 손을 모은 채 나왔다.
“노부인께서 어제 신경을 많이 쓰셨는지 오늘 두통이 있으시다 합니다. 부인과 소저께서 오시면 돌려보내 쉬게 하시라 이르셨습니다. 모두 한 가족이니 이렇게 예절을 차릴 필요 없으십니다.”
소청이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 머리가 아프시다고요? 의원님께 진찰은 받으셨습니까?”
“이미 의원님께서 다녀가셨습니다. 큰 문제는 없다고 합니다. 탕약을 두 번 지어 먹고 잘 쉬면 된다고 합니다.”
온 마마의 말에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입니다.”
직접 문안을 드리진 못했지만 목운요는 소청과 함께 마당 밖에서 절을 올린 후에야 제월각으로 돌아갔다.
* * *
정자에서 소청과 함께 차를 마시던 목운요가 금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금란, 주 마마를 불러와 줘요.”
“네, 소저.”
신속히 주 마마가 건너왔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이에 목운요가 고개를 들었다
“주 마마, 이 댁의 사정은 저희보다 마마께서 더 잘 아시니 좀 가르쳐 주실 사안이 있습니다. 금란, 어머니께서 준비하신 선물을 가지고 와요.”
머지않아 일련의 상자들이 마당 앞에 놓였다. 목운요는 자리에서 일어나 주 마마에게 손짓했다.
“마마, 보십시오. 이건 노부인을 위해 준비한 선물입니다. 혹시 부적절한 점이 있을까요?”
진주와 보석이 눈이 부시도록 반짝이자 주 마마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대부인을 따라 좋다는 물건을 여태껏 많이도 보았지만 지금 이 상자들을 보니 자신의 견식이 아직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인과 소저께서 준비하신 선물은 지극히 온당합니다. 노부인께서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겁니다.”
“주 마마의 식견이 넓으시니 말씀하신 바가 틀림없겠죠. 금란, 금교. 외할머니께 선물을 보내세요.”
목운요가 말을 마치자마자 다른 물건을 가리켰다.
“이것들은 첫째 숙모와 둘째 숙모에게 드릴 것입니다. 나머지는 이 댁 형제자매분들께 드리는 거고요. 마마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주 마마는 그 선물들을 살펴보며 속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이 선물들은 정말 흠잡을 곳이 없었다. 하나같이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보물들이었다.
“준비하신 것들은 이 이상 완벽할 수 없습니다.”
“금란과 금교가 외할머니 저택으로 갔으니 다른 곳은 주 마마께서 맡아 선물을 보내 주세요.”
하지만 주 마마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며 난처한 표정이 되었다.
“그게…….”
목운요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나요?”
“잘못된 건 없습니다. 다만 부인과 소저께서 준비하신 선물이 매우 진귀한지라 흠집이라도 생길까 염려되어 그럽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제 마마께 들었는데, 주 마마께서도 일전에 큰외숙모의 신임을 크게 받았다고 그러던데요.”
주 마마가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소인이 지금 바로 일을 처리하겠습니다.”
“네.”
그녀가 떠나자 목운요의 안색이 그제야 편해졌다. 소청과 목운요는 조금 쌀쌀한 정자에 앉아 함께 차를 음미했다.
한데 그때, 사금이 급히 와서 아뢰었다.
“부인, 소저. 방금 큰 아가씨께서 말씀을 전하시길, 태사부(太师府)의 맹 소저께서 손님으로 오셨다 합니다. 소저의 존함을 오랫동안 익히 들었다면서 동원(東院)에서 뵙길 청하십니다.”
목운요가 눈을 살짝 치켜떴다.
“태사부의 맹 소저?”
‘맹언연?’
소청이 조금 긴장했다.
“요아야, 맹 소저란 사람이 누군지 아니?”
“이름은 맹언연, 대부인의 조카딸입니다. 부친은 예부(禮部)의 상서입니다. 조부는 조정의 일품 태사, 조모는 청녕(清宁) 공주이십니다. 수도 최고의 귀족 자제라고 할 수 있죠. 소우의도 맹언연에게는 최대한 예의를 갖춘답니다.”
상대방의 신분이 혁혁하다는 말에 소청은 더욱 걱정이 되었다.
“혹 그분의 성정이 선하지 못하시니?”
‘당연히 선하지 않죠!’
하지만 목운요는 공연히 이 말을 내뱉어 어머니를 염려시키긴 싫었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별일 없을 거예요. 설마 사람을 잡아먹기라도 하겠어요? 언젠가는 만날 사람이니 지금 만나는 것도 나쁘지 않죠.”
경릉성에서도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모두 잘 헤쳐 나갔다. 그러나 소청은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발에 못이 박힐까 조심스러웠다.
“그래도 조심하거라. 괜히 화를 돋웠다간 널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그땐 아무도 우릴 도와주지 않을 테니…….”
목운요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맹씨 가문의 신분이야 소씨 가문보다도 더 존귀했다. 하지만 목운요도 몇 번이나 황제의 상을 치하받았다. 게다가 하운방과 불선루도 있지 않은가.
게다가 소씨 가문이 가장 총애하는 자식이 소우의라는 것과 달리, 맹씨 가문은 맹언연과 대등한 지위의 자제들이 적지 않았다.
“어머니, 안심하세요. 멀쩡히 돌아올 테니까요.”
* * *
소씨 가문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가는 동원이었다.
목운요는 노부인이 보내 준 시녀 묵옥을 불렀다.
묵옥은 노부인을 수발하던 큰 시녀로, 예쁘장한 외모에 성격도 온순하여 노부인의 예쁨을 많이 받았더랬다. 그러나 나중에 노부인에게 물약을 먹였다는 누명을 쓰고 다른 곳으로 넘겨졌다고 들었다.
묵옥은 매우 공손한 태도로 인사를 올렸다.
“소저를 뵙습니다.”
“그래. 맹씨 가문의 소저께서 손님으로 오셨다고 들었다. 다만 내가 아직 길을 잘 모르니 네가 안내하는 데 수고 좀 해야겠다.”
“수고라뇨, 당치 않습니다. 소인을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목운요는 곧장 금란과 금교를 데리고 묵옥을 따라 밖으로 향했다.
그 시각 동원, 녹의(绿漪) 소전각.
맹언연은 웃음기가 가득한 모습이었다.
“요 며칠 집안에 조용할 틈이 없었다고요?”
그에 소우의가 살짝 웃었다. 그 미소는 속세의 것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고모와 사촌 동생이 돌아왔으니 집안에 두 식구가 늘었잖아요? 당연히 좀 시끌벅적했지요.”
맹언연은 살짝 입을 삐죽거렸다.
“언니랑 고모 성격도 참 좋으시지. 지금 서릉 전체에 말이 많습니다. 소씨 가문에서 보낸 하인들이 그 짐을 다 못 날랐다고요.”
“서릉이 언제 조용했던 적이 있습니까? 오늘은 이 집 얘기, 다음 날은 저 집 시비를 논하는 게 백성들의 안줏거리지요. 요 며칠 마음껏 얘기하면 그뿐입니다.”
“언니는 다 좋은데 성격이 너무 유해서 탈이에요. 고모가 계시니 제가 특별히 걱정은 안 하겠지만, 듣자 하니 목운요가 그리 간단한 사람이 아니라던데. 게다가 황상의 치하까지 받았다면서요?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 언니를 괴롭힐지 몰라요.”
소우의는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설마 그럴 리가요. 어제 운요 사촌을 만나 보니 성격이 좋던데요?”
“잠깐 봐서 뭘 알겠어요? 목운요는 자수방과 다방을 열어 온종일 손님 접대를 했다잖아요. 그러니 얼마나 연기를 잘하겠어요? 언니가 고모께 교양은 잘 배웠지만, 사사로운 수단에 대해선 정말 모르십니다.”
소우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리 없을 겁니다…….”
그에 맹언연이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오늘 한번 보죠. 옷 장사나 하던 자가 얼마나 수완이 좋을지!”
문 앞에서 묵옥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 얼굴에는 난처함이 가득해 보였다. 금란과 금교는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하지만 목운요는 조금도 불쾌해 보이지 않았다.
“소저…… 들어가실 겁니까?”
그들은 방금 동원에 도착했다가 맹언연의 말소리를 들은 참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 모두 뚜렷이 들렸다. 입구를 지키고 말을 전해야 할 시녀는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목운요는 가볍게 웃었다. 회귀 전에도 만났기 때문에 맹언연의 성격에 대해선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목운요가 소씨 가문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때도 소우의는 같은 핑계로 목운요를 초대했다. 그러곤 바닥이 더러워진다며 목운요에게 신발을 벗으라고 고집을 부렸다.
그러다 우연히 소청오와 마주쳤다. 그때 신랄한 조롱을 듣고 목운요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잠시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시녀가 황급히 걸어왔다. 그녀는 입구에 서 있는 목운요를 보더니 서둘러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소저를 뵙습니다. 소인, 배가 너무 아파서 잠깐 자리를 비웠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시녀의 목소리가 조금 컸는지 전각 안에서 소우의가 걸어 나왔다.
“운요 사촌, 이 아이가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규율을 잘 모릅니다. 공연히 사촌을 밖에서 기다리게 했으니 나중에 제가 단단히 혼내겠습니다.”
그에 목운요는 눈부시게 활짝 웃었다.
“사소한 일일 뿐입니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습니다. 언니께선 부디 시녀에게 벌을 주지 마세요. 하인 일도 녹록지 않으니 저희가 양해해 주는 게 나을 듯합니다.”
“큭큭.”
순간, 안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맹언연의 입가에는 비웃는 기색이 역력했다.
“소씨 가문은 예로부터 규율이 뚜렷하여 일을 그르치면 응당 벌을 주었습니다. 아무리 시골에서 왔다지만 스스로 하인처럼 굴면 어떡하나요? 주인이 되어서 매사에 아랫사람을 배려하면 어디 주인의 위신이 서겠습니까?”
맹언연은 목운요를 자세히 살폈다. 목운요의 의복에서 트집을 잡으려는 것이었다.
한데 아무리 살펴봐도 흠잡을 게 없었다. 외려 눈부시게 아름다울 뿐이었다.
‘지금 일부러 트집을 잡으려는 거지? 제 계략에 스스로 빠지게 해서 내 콧대 좀 세워 볼까?’
목운요는 곧장 고개를 끄덕였다. 순진무구한 눈빛이었다.
“여기에 온 것은 처음이라 소씨 가문의 규율이 엄격한 줄은 몰랐습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시녀를 그냥 놔둘 순 없죠. 언니, 그럼 소씨 가문의 규율에 근거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쳐서 죽여야 하나요? 아니면 집에서 내쫓아야 하나요?”
소우의는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맹언연도 잠시 당황해 대답을 못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