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50화 (150/442)

150화 소씨 가문에서의 첫날 밤

* * *

제월각에서는 주 마마가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었다.

목운요가 집 안 장식을 바꿔도 되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한두 가지만 바꾸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한데 목운요가 집 안 장식 전체를 다 바꿀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마, 이전 것들은 어디에 놓으면 될까요?”

주 마마가 서둘러 정신을 차렸다.

“그건…… 대부인께 한번 물어보고 오겠습니다.”

“그럼 어서 갔다 오세요. 이 많은 물건들을 계속 마당에 둘 순 없으니까요.”

주 마마가 고개를 끄덕이곤 서둘러 뛰어갔다.

대부인은 마침 소우의와 함께 추석 연회에 입을 옷을 보고 있었다. 주 마마가 뵙길 청한다고 아뢰니 곧 들어오라는 답이 돌아왔다.

“주 마마, 소청과 목운요 곁을 지키고 있어야지, 여긴 어찌 오신 겁니까?”

“그것이…… 목 소저께서 제월각 장식들을 적지 않게 바꾼지라 지금 마당에 예전 가구들을 놓아두었습니다. 소인, 그것들을 어찌 처리하면 좋을지에 대해 여쭈러 왔습니다.”

“장식들을 적지 않게 바꿨다고?”

옆에 있던 소우의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운요가 짐을 한가득 가져오더니 그게 다 가구와 장식품들이었나 봅니다.”

소우의의 빈정대는 말투에 주 마마가 입술을 움찔거리더니 건조하게 웃었다.

주 마마의 표정을 본 대부인의 눈빛이 돌연 어두워졌다.

“구체적으로 얼마나 바꾸었지?”

“아뢰건대, 아마…… 전부 다 바꾼 듯싶습니다.”

주 마마의 대답을 들은 대부인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제월각은 모두 최고급 장식품들로 꾸며 놓았는데, 그게 눈에 안 찼다? 우선 전부 창고로 옮기게.”

“네, 부인.”

대부인이 화가 났다는 걸 느낀 주 마마는 감히 더는 말을 잇지 않고 황급히 물러났다.

소우의는 옷을 고를 기분이 아니었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지만 눈빛은 상당히 차가웠다.

“어머니, 내일 언연이가 놀러 올 겁니다. 그 아이가 벌써부터 운요 사촌을 궁금해하는데 잘됐네요. 내일 같이 가서 운요에게 제 친한 동생을 소개해 줘야겠어요.”

대부인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 다만 외할머니가 언연이를 지나치게 응석받이로 키우셨어. 평소에 그 애 언행이 신중하지 못하니 옆에서 잘 지켜보거라. 사소한 일로 자매간의 정이 상하는 일 없도록 해.”

소우의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저도 다 생각이 있답니다.”

소우의와 언연은 지금껏 손발이 잘 맞아 관계가 좋았다. 자매간의 정이 상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만약 목운요 쪽에서 무슨 일이 났을 때 자신이 말리지 못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 될 터였다.

* * *

주 마마는 다시 제월각으로 돌아왔다. 급히 하인을 시켜 예전 장식품과 가구들을 모두 창고로 옮겼는데, 움직임이 크다 보니 이 소식이 곧장 노부인과 둘째 며느리에게까지 전해졌다.

차를 마시고 있던 둘째 며느리 척 씨가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다가 옆에 있는 창백한 딸을 안타까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佑)야, 운요 사촌이 너보다 3개월밖에 어리지 않은데 성격이 참 재밌어 보이는구나. 너도 관심 있으면 사촌 동생을 찾아가 이야기해 보지 그러니?”

소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앞에 놓인 약그릇을 들어 다 비웠다.

“제가 자수나 다도에 대해선 잘 모르는데 이야기를 잘 나눌 수 있을까요?”

“자수랑 다도만 이야기하라는 게 아니야. 다른 것도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지.”

“사촌 동생이 자수랑 다도 외에도 아는 것이 있을까요?”

소우는 대수롭지 않게 약그릇을 탁자 위에 탁, 하고 두었다.

“이번에 바꾼 의원이 별로입니다. 약이 쓰고 떫어서 입맛만 버리고 효과도 하나도 없어요. 어머니, 다른 의원으로 바꿔 주세요.”

척 씨가 잠시 깊게 생각하더니 타이르기 시작했다.

“우야, 이번에 약을 처방한 사람은 소(萧) 태의(太医)님이셔. 그분의 의술은 황상도 칭찬해 마지않을 만큼 훌륭하단다. 며칠만 더 마셔 보고 그래도 효과가 없으면 그때 바꿔 주마, 어때?”

“싫습니다. 그 사람이 처방한 약은 도저히 안 넘어가요. 안 바꿔 주시겠다면 되었습니다. 뭐, 상관없으니까요.”

그런데 탕약을 너무 급하게 마셨는지 순간 속이 너무 메스꺼웠다. 소우가 참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더니 먹은 약을 토해 냈다.

척 씨가 서둘러 딸을 부축했다. 주위에 있던 시녀와 마마들이 물잔과 대야를 나르느라 방 안이 어느새 아수라장이 되었다.

척 씨는 마음이 아파 눈물을 흘렸다.

“아이고, 마시기 싫으면 그냥 마시질 말 것이지. 왜 억지로 먹었어? 내일 네 아비랑 의논하여 다른 의원으로 바꿔 주마.”

속을 다 게워 낸 소우의 얼굴색이 훨씬 더 창백해졌다. 소우는 부축을 받으며 침상에 누웠다. 호흡이 심히 흐트러져 있었다.

“어머니, 염려치 마세요. 이제 다 익숙한걸요. 갈 날이 언제…….”

척 씨는 눈이 벌게져서 온몸을 떨었다.

“네가 기어이 날 애통하게 만들어 죽일 셈이냐? 네가 이렇게 자포자기하면 그게 내 가슴을 후벼 파는 거야!”

소우는 잠시 멍해졌다. 이불 안에서 주먹을 세게 쥐었지만 겉으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어머니, 이제 익숙해지셔야 해요. 작은어머니께서 자식을 많이 낳으셨던데 누가 맘에 드나 잘 봐 두세요. 양녀 하나를 골라 잘 키우면 되지, 온종일 저한테 공을 들여 뭐 해요?”

“이 아이가 정말! 어디서 그런 뜬소문을 들은 거야? 아니면 또 누가 네 부아를 돋운 거니?”

“누군들 감히 제 화를 돋운다면 곧장 때려죽일 거예요!”

“그래그래, 화가 나지 않는 게 중요해. 네가 뭘 하든 다 좋아. 다만 스스로 비하하진 말아라. 이 어미는…….”

척 씨는 병으로 쇠약한 딸의 모습을 보며 왜 자신이 대신 아플 수 없는지 너무나 한스러웠다. 가슴이 부글부글 끓어 심한 말이 튀어나오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소우가 눈썹을 찡그렸다.

“피곤해요. 좀 쉴게요.”

“그럼 이 어미는 조용히 네 옆에서 간호하고 있으마. 편히 쉬어라.”

소우는 곧장 엎드려 누웠다. 이불 안으로 얼굴을 파묻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몽롱하게 잠에 빠져들었다.

* * *

제월각을 새로 꾸미고 나자 경릉성의 방과 꽤 비슷해졌다. 목운요는 만족스러운 눈빛이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소청도 만족스러웠지만 조금 걱정이 되었다.

“제월각 안에 있던 걸 모두 바꿨으니 조금 그렇지 않을까?”

“주 마마가 바꿔도 상관없다고 했으니 걱정 마세요. 그보다 계속 배 안에 계셔서 무척 피곤하셨을 테니 오늘은 일찍 쉬세요.”

“응, 그래야겠다.”

소청이 제 방으로 향하자, 목운요는 침상에 걸터앉아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눈을 감았다.

그때, 금란이 눈여우를 우리에 담아 들고 왔다. 눈여우가 목운요를 보더니 발톱으로 우리를 긁으며 잉잉거렸다.

그에 목운요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금란에게 우리를 열어도 된다고 눈짓하자 눈여우가 재빨리 뛰쳐나와 목운요의 어깨에 올라왔다.

“언제 그렇게 알랑거리는 기술을 배운 거야?”

목운요가 눈여우를 어깨 위에서 끌어내려 무릎 위에 앉혔다. 머리를 쓰다듬으니 앙증맞은 귀가 이따금씩 푸르르 떨렸다.

금교가 옆에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소저, 답설(雪狐)이 참으로 똑똑합니다.”

목운요는 여우의 턱을 가볍게 긁어 주었다. 발바닥을 살짝 쥐니 날카로운 발톱이 살짝 보였다.

“똑똑하다니 그럼 많이 배워야겠네. 금교, 시간이 될 때 육냥을 불러 가르쳐 둬요. 나중에 쓸모가 있을 테니.”

“예?”

금교는 조금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여우에게 무공을 가르치시라는 건가요?”

“네. 무공을 가르쳐 놓는 게 좋겠어요.”

“하나, 그건…….”

그 모습을 지켜보던 금란이 결국 참지 못하고 살며시 웃었다.

“소저께서 널 놀리시는 거야. 설마 진심으로 생각한 거니?”

그녀의 말대로 목운요의 눈엔 웃음이 한가득이었다. 금교는 그제야 얼굴이 빨개져서 발을 동동 굴렀다.

“소인, 침상에 이불을 깔아 드리겠습니다.”

금란이 침상을 정리한 뒤 가볍게 인사했다.

“소저, 오늘은 복잡한 생각 마시고 편안히 쉬십시오. 그래야 내일 맑은 정신으로 지내실 수 있습니다.”

“그래요. 두 사람도 이만 가서 쉬어요.”

“네, 소저.”

두 사람이 떠나자 목운요는 침상에 머리를 기댄 채 생각에 잠겼다.

회귀 전, 그녀는 매일 이 씨의 손바닥 안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를 고민했다. 그러다 갑자기 소씨 가문의 친지가 되어 하언촌을 떠나게 되었다.

소씨 가문에서도 잘못된 인사법으로 노부인의 심기를 건드려 처지가 어려워졌지만, 이 씨 밑에서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나았다. 최소한 밥을 배불리 먹고 부드러운 침대에서 잘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목운요 수하에 있던 시녀와 시동이 내통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대부인은 목운요의 눈앞에서 그들을 곤장으로 쳐서 죽였다.

그 후 목운요가 크게 아파 몸져누우니 주위에 떠도는 말이 많아졌다. 소문인즉슨, 그들이 목운요의 죄를 덮어 준 거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내통한 것은 목운요라고 다들 수군거렸다.

목운요의 명성은 철저히 뭉개졌고, 반년 동안 금족령을 받아 함부로 마당 밖을 나갈 수도 없었다.

반년 후엔…….

문득 손가락 사이로 따뜻한 감촉이 전해지자 목운요가 놀라 생각에서 깼다. 시선을 돌리니 눈여우가 자신의 손가락에 고개를 비비고 있었다.

“왜 그래? 배고파?”

“끼이잉…….”

눈여우는 몸을 뒤집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 너는 여우인데 어찌 하는 짓이 고양이 같니?”

기분이 좋아진 목운요는 간식을 하나 집어서 조그맣게 쪼갰다. 곧장 그걸 눈여우에게 먹였다.

“아오우-”

눈여우는 목운요가 주는 간식을 잘 받아먹었다. 조그마한 귀가 파드득 움직이는 게 정말 귀여웠다.

목운요가 활짝 웃었다.

“네 바보 같은 모습은 고양이도 못 당하겠구나. 널 잡아 온 사람은 참 안목도 없지…….”

순간 월왕의 모습이 떠올랐다. 목운요는 잠시 당황하였으나 이내 정신을 바로잡았다.

“네가 소우의의 눈담비를 이기지 못하면 네 가죽을 벗겨서 장갑으로 만들 테야.”

“아우웅-”

그날 밤, 목운요는 평소와 달리 아주 편안하게 잘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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