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49화 (149/442)

149화 소씨 가문의 우의

옆에 있던 소청이 손가락으로 목운요의 미간을 눌렀다.

“요 녀석, 사촌 언니를 만나면 할 말을 배 위에서 달달 외워 놓고는, 막상 우의를 만나니 너무 기뻐서 바보가 되었니?”

“어머니, 제가 언제 바보처럼 굴었나요? 언니가 너무 아름다워서 놀랐을 뿐이에요. 언니는 제가 봤던 사람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거든요.”

목운요는 입술을 앙다물며 소청의 팔을 흔들고는, 이내 몸을 돌려 소우의와 함께 들어온 여인들에게도 인사를 올렸다.

“언니들께도 인사를 올립니다.”

소우의는 언제나 자매들 중에서도 휘영청 밝은 달 같은 존재였다. 밤하늘에 달이 뜨면 수많은 별이 가려지는 것처럼, 소우의가 나타나면 나머지 소저들은 그 미모에 가려져 풀이 죽곤 했다.

소아한(蘇雅嫻), 소아정(蘇雅靜), 소아령(蘇雅靈)은 이미 이런 상황에 익숙해, 목운요가 자신들에게도 예를 올릴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운요 동생은 예를 거둬도 좋아요.”

세 사람은 기분이 좋은 듯 히죽거리며 웃었다.

목운요는 실눈을 뜨며 상황을 지켜봤다. 대부인은 겉보기엔 온화하지만, 머리 굴리는 데에는 선수였다. 그래서 소씨 가문의 모든 여인들이 자신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도록 교육하고 관리했다.

하지만 대부인조차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소아한이었다.

소씨 가문의 둘째 딸 소아한은 이름만큼이나 조용한 사람이지만, 속은 누구보다 영리했다. 결국 회귀 전의 그녀는 대부인의 깐깐하고 숨 막히는 통제에서 벗어나 이황자 영군유(寧君瑜)의 첩비로 시집갔다. 첩비로 들어간 처지에 기세만큼은 누구보다 등등하여 대부인의 체면을 제대로 짓밟아 놓았다.

소아정과 소아령은 아홉 번째 첩의 여식이었다. 이들의 모친은 그다지 총애받지 못했기에 그녀들은 필사적으로 소우의의 비위를 맞추었다.

소우의도 그녀들과 어울리며, 자매들을 잘 챙기는 우애 좋은 소저라는 적지 않은 호평을 받았다.

잠깐의 대화가 오간 후, 노부인 손 씨의 얼굴에 피곤함이 엿보였다.

대부인 맹 씨는 그런 노부인을 살뜰히 보살피며 입을 열었다.

“먼 길을 온다고 시누와 운요 두 사람도 피곤할 텐데 일찍 돌아가 쉬도록 해요. 노부인께는 내일 다시 문안을 올리도록 하죠.”

그에 소청은 노부인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머니께서 피곤해 보이시니 더는 방해하지 않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노부인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두 눈은 무미건조했다.

“그래.”

모든 이가 물러나자 노부인은 온 마마를 불러들였다.

“자네가 소청 모녀를 마중 나갔는데, 어떤 것 같나?”

쌀쌀한 노부인의 안색을 살핀 온 마마는 속으로 떨며 질문에 대답했다.

“노부인의 친딸이시니 지극히 좋으신 분이지요.”

노부인은 가볍게 웃었다.

“언제부터 내게 그렇게 모호하게 대답했지? 지극히 좋다고 했는데…… 대체 얼마나 좋다는 건가?”

온 마마는 점점 노부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어서 그저 그 속을 지레짐작하며 대답했다.

“부인께선 부드럽고 단정하신 분입니다. 성정이 온화하시니 사람들과 쉽게 가까워질 수 있는 분이시죠. 그리고 목 소저께선 굉장히 섬세하신 분입니다. 일할 땐 과감하게 행동하십니다. 제게 두 분의 단점을 말하라고 하신다면, 딱히 고를 수 있는 단점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과감하다고?”

노부인은 느릿하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여자아이라면 훗날 시집을 가서 가정을 꾸려 아이를 낳아야 하네. 포목점, 차관 따위를 운영하며 여기저기에 얼굴을 보이는 건 우리 가문의 풍조와 어울리지 않아.”

온 마마는 고개를 숙이고 감히 다른 말을 아뢰지 못한 채 속으로 덜덜 떨기만 했다.

노부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 다시 질문을 이어 갔다.

“두 사람을 시중드는 하인들이 모자라진 않고?”

“부인과 목 소저께서 적지 않은 인원을 데려오셨습니다. 하여 주 마마와 영설, 전춘만 곁에 남겨 시중을 들라 했습니다.”

노부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소청과 목운요 두 사람 모두 서릉에는 처음이니 익숙지 않은 게 많을 거네. 묵옥(墨玉)을 보내도록 해.”

“네, 노부인.”

온 마마는 재빠르게 대답했으나, 속으로는 어리둥절해했다.

묵옥은 노부인의 시중을 드는 큰 시녀다. 평소에 놓치는 것 없이 꼼꼼하게 노부인의 시중을 들었는데 갑자기 소청과 목운요에게 보내라니, 대체 무슨 목적인지 알 길이 없었다.

* * *

노부인의 정원에서 나온 소청과 목운요는 주 마마를 따라 제월각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만난 하인들은 숨을 죽인 채 두 사람에게 인사를 올렸다. 완벽하게 예의를 지켰으며, 실례를 범할 만한 조금의 빈틈도 보이지 않았다.

소청의 무리가 떠난 후, 사람들은 낮은 목소리로 너도나도 입을 열기 시작했다.

“타향에서 오랫동안 떠돌며 산골에서 자랐다고 들었는데…… 이렇게 기개 넘칠 줄이야. 아무리 봐도 존귀한 신분으로 보인단 말이지.”

“우리가 모실 주인님들이시니 비범한 건 당연한 것 아니겠어? 특히 목 소저 말이야. 너무 고우셔서 마음이 동할 정도라니까.”

제월각은 넘치도록 화려하고 아름답게 지어진 곳이었다. 온갖 식물들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주위엔 맑은 물이 흘렀다.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져 사람을 황홀경에 빠지게 만들었다.

강남의 건축물을 본떠 만든 가옥도 유독 그 정교함과 영롱함을 뽐냈다.

소청을 따라 안으로 들어온 목운요는 미간 주름을 펴고 조금씩 웃음을 보였다.

“어머니, 제월각을 보시니 어떠세요? 익숙한 느낌인가요?”

“경릉성의 건축들과 비슷하구나.”

“맞아요. 앞으로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으실 거예요.”

주 마마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부인과 소저께서 좋아하시니 다행입니다. 원래 제월각은 손님을 맞이하는 곳이었습니다. 하여 필요한 물건은 모두 준비되어 있고, 가구나 물건들의 배치도 정밀하고 아름답게 되어 있지요. 혹 바꾸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제게 말씀해 주십시오.”

목운요는 눈을 끔벅였다.

“주 마마, 정말로 이곳을 제 입맛에 맞게 바꿀 수 있나요? 주 마마도 아시겠지만 강남에서 가져온 물건이 많습니다. 모두 오랫동안 사용하여 익숙한 물건인지라 제월각에 있는 물건들과 바꾸고 싶어서요.”

“물론이고 말고요. 모든 건 부인과 소저의 뜻에 따르라는 대부인의 명이 있었습니다.”

목운요는 찬란한 미소를 보였다.

“잘됐네요. 금란, 금교. 직접 배치하도록 해요.”

곧 목운요의 짐이 올라왔고, 금란과 금교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편 추실원에 돌아온 대부인은 곧장 유 마마를 찾았다. 그러다 그녀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유 마마는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으나, 대부인을 보자마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무릎을 꿇었다. ‘악’ 소리 나는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아 내며 대부인에게 아뢰었다.

“소인,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지 못했으니 부디 벌하여 주십시오.”

대부인의 얼굴은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그녀는 유 마마의 다리를 스윽 훑더니 아무런 감정도 들어 있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

“어찌 된 겁니까? 갈 때는 멀쩡히 마중을 나가더니, 돌아올 땐 어찌 다리가 부러져서 온 거죠?”

“소인이 조심하지 못하여 계단에서 넘어졌는데, 재수가 없어서 다리가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유 마마는 숨 막히는 상황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부인은 두 눈을 치켜떴다.

“실수로 다쳤다고 했는데, 약은 제때 사용했나요?”

“그게…… 마침 배 위에 약이 있어서 사용했습니다.”

“알겠어요. 다녀오느라 고생이 많았습니다. 가서 은자를 챙겨 가요. 푹 쉬다 몸이 나으면 다시 일하는 것으로 하죠.”

유 마마는 벌을 받을 거라고만 생각했지, 상을 받을 거라곤 상상하지 못해서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 멍하니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대부인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유 마마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함이 가득했다.

“감사합니다, 대부인! 정말 감사합니다!”

“가서 쉬어요.”

유 마마가 물러간 후, 소우의가 찻잔을 들고 대부인의 곁으로 왔다.

“고모와 운요를 맞이하느라 그간 얼마나 고단하셨어요. 어머니를 위해서 심신 안정에 좋은 차를 끓여 왔어요. 한번 드셔 보세요.”

절세미인이라고 칭송해도 마지않은 소우의의 모습을 보며 대부인은 자신의 귓가에 달린 장신구의 술을 쓰다듬었다.

“역시 이 어미를 걱정하는 건 우리 딸밖에 없구나. 네 오라버니는 내게 얼굴을 보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난다.”

“오라버니는 황상의 명을 받들어 삼황자를 따라서 전선에 나갔어요. 오라버니는 황상의 근심을 덜어 드려야 하니 하늘께선 어머니께 효도하라며 저를 보내신 거죠.”

소우의가 꽃처럼 웃어 보이자 주변의 분위기가 훨씬 밝아진 것 같았다.

마음의 평정을 찾은 대부인은 웃음을 멈추지 못하고 소우의에게 말했다.

“너와 네 오라비만 아니었다면 이 어미도 오랫동안 고생하지 않았을 거다.”

소우의는 대부인의 뒤로 가 가볍게 대부인의 어깨를 주물렀다.

“어머니께서 고생하시는 건 저도 다 알아요. 나중에 꼭 어머니의 은혜에 보답할게요!”

대부인은 그제야 만족했다.

“이번 중추절에 장공주께서 궁으로 돌아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너도 알겠지만 장공주께서 궁에 돌아오실 때마다 황상께선 크게 기뻐하셨지. 하여 이번에도 반드시 연회를 여실 거다. 요즘 돌던 소문들을 반드시 명심하고 연회가 열리는 날에는 그 어떤 실수도 보여선 안 된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소문이 사실이라면 저도 반드시 노력할 테니까요.”

대부인은 외모로는 이길 사람이 없는 소우의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며 웃음꽃을 피웠다.

“우리 딸의 이런 얼굴과 재능이 장공주의 눈에 들지 않는다면 다른 이들은 더더욱 공주의 눈에 들 기회가 없을 거다.”

그에 작게 웃던 소우의의 눈빛이 살짝 가라앉았다.

“어머니께선 목운요가 어떤 것 같습니까?”

“쌀알의 빛이 어찌 밝은 달빛과 겨룰 수 있겠니?”

대부인의 얼굴에 무시하는 눈빛이 희미하게 스쳤다.

“잔꾀는 많아 보이지만 품위를 크게 손상할 정도는 아니더라. 우의야, 네 마음과 시선을 그 아이에게 두지 말아라. 일개 시골에서 자란 계집애잖니. 그런 애 하나 처리하는 건 손가락 하나면 돼. 이 어미에게 다 생각이 있으니 궁궐의 연회만 잘 집중해서 준비해. 알았지?”

“네, 어머니. 그리하겠습니다.”

소우의의 웃음이 다시금 피어났다.

목운요가 노부인의 외손녀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소우의가 연회에만 참석하면 줄곧 목운요에 관한 이야기가 들렸다. 목운요가 경릉성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하운방과 불선루가 얼마나 유명한지…….

소우의는 그런 이야기가 불쾌했다. 그러니 목운요에게 적당한 교훈을 주어야 마땅했다.

‘이 서릉이 경릉성처럼 조그만 곳인 줄 알아? 네가 날뛰는 게 그리 쉬울 줄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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