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맹 씨와 척 씨
“자네 말이 맞네. 운요는 한눈에 봐도 특출난 아이라는 걸 알 수 있지.”
맹 씨는 목운요를 칭찬하며 손을 잡더니, 자신의 손목에 있던 비취옥 금팔찌 한 쌍을 빼냈다.
“너에게 선물을 주고 싶구나. 이 팔찌는 첫 만남을 기념하는 선물이라고 생각하렴.”
옆에 있던 척 씨가 냉큼 입을 열었다.
“운요야, 어서 받거라. 나도 오랫동안 탐낸 좋은 팔찌란다!”
그에 목운요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다. 투명하게 빛나는 두 눈과 귀여운 웃음이 주변을 환하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큰외숙모.”
대부인 맹 씨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데에 능한 여인이었다. 오랫동안 소씨 가문을 관리했지만, 맹 씨에 대해 좋지 않은 말은 한마디도 나온 적이 없었다. 품성 좋은 그녀의 명성은 멀리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네 마음에 들면 좋겠구나.”
목운요는 거듭 고개를 끄덕이며 맑은 미소를 보였다. 화사한 미소를 짓자 더욱더 어여쁘게 보였다.
“당연히 마음에 들어요.”
소씨 가문에는 두 집안이 살고 있었다.
노부인 손 씨(孙氏)의 장남인 소문원은 태사(太師, 군주를 보필하는 벼슬) 맹유연(孟悠然)의 정실 차녀인 맹운상(孟云湘)을 부인으로 맞았고, 슬하에 일남 일녀를 두었다.
소문원의 자녀는 각각 소청오와 소우의로, 두 사람이 가문의 사랑을 독차지하여 첩실의 자식들은 소부에서 고개도 들지 못하고 지냈다.
노부인 손 씨의 차남인 소지원(蘇誌遠)은 광록시경(光祿寺卿, 국가의 제사를 준비하던 관직) 척수업(戚守業)의 첫째 딸 척유(戚柔)와 혼인했다.
척유는 여러 번 회임했으나 매번 배 속의 아이를 지키지 못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몸을 망쳐 가면서 젖 먹던 힘을 짜내 딸을 낳았고, 이름을 소우(蘇佑)라 지었다.
그 이름처럼 하늘이 보우하시어 탈 없이 자라길 바랐으나 바람과는 다르게 소우의 병약한 몸은 나을 기세를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소우에게 약간의 바람이라도 불면 소씨 가문의 둘째 집안은 불안에 떨었다.
맹 씨와 척 씨의 친정은 큰 차이가 났지만, 노부인은 둘째 며느리인 척 씨와 병약한 손녀 소우를 특히 애지중지했다.
그러나 소씨 가문은 대부인 맹 씨의 손안에 있던 터라, 척 씨가 있는 둘째 집안은 어떤 이득도 볼 수 없었다. 두 집안은 겉보기엔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사실 맹 씨와 척 씨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맹 씨가 목운요에게 기념 선물을 건네니 척 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척 씨는 곧장 머리에 있던 홍옥으로 만들어진 단양 비녀를 뽑았다.
“너를 보고 있자니 사랑스러운 연꽃이 생각나는구나. 이 비녀가 너와 잘 어울릴 것 같다. 내 마음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주렴. 제대로 된 선물은 나중에 다시 주마.”
목운요는 급하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작은외숙모. 어머니와 저도 외할머니와 두 외숙모께 드릴 선물을 준비했는데 워낙 급하게 오느라 하인들이 선물을 제대로 정리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대부인 맹 씨는 목운요를 바라보며 별다른 말 없이 미소만 보였다. 그와 반대로 척 씨는 목운요의 말에 굉장한 관심을 보였다.
“운요 네 자수 실력을 따라올 자가 없다고 들었다. 심지어 황상께서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셨다지? 혹시 선물로 옷을 준비한 거니?”
척 씨의 말을 들은 목운요는 부끄러웠는지 두 뺨이 발갛게 변했다.
“원래는 옷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외숙모를 뵌 적이 없어 체형을 모르는 터라 다른 선물을 준비했어요. 부디 용서하세요.”
“너도 참. 방금 한 말은 농이었다. 경릉성에서 하는 사업의 규모가 꽤 크다고 들었어. 사업을 정리하고 오느라 경황이 없었을 텐데 옷을 지을 시간이 있었겠니? 그리고 식솔끼리는 정이 가장 중요하단다. 선물은 그다음 문제야.”
그 말을 들은 목운요는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이래서 노부인이 둘째 며느리를 예뻐하는구나 싶었다.
확실히 척 씨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음에 내리꽂힐 정도로 듣기 좋았다. 게다가 시원시원한 성격과 진심이 담긴 미소는, 과연 속을 알 수 없는 대부인 맹 씨보다 쉽게 가까워질 수 있겠다고 느끼게 했다.
그때, 제 마마가 잰걸음으로 들어왔다. 웃는 얼굴이었지만 자세히 보면 억지로 입꼬리를 당기고 있었다.
“노부인과 두 부인을 뵙습니다.”
“짐 정리는 마쳤습니까?”
대부인 맹 씨가 묻자 제 마마의 낯빛은 한결 더 어두워졌다. 사람이 부족해 결국 소청과 목운요의 짐은 아직도 부두에 덩그러니 놓인 상태였다.
제 마마의 얼굴을 본 대부인에게 좋지 않은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대부인이 막 입을 열어 상황을 물으려던 참에 목운요가 먼저 나섰다.
“제 마마, 어머니와 제 짐은 잘 도착했나요? 마침 작은외숙모께서 선물을 여쭤보셨거든요. 금란과 금교에게 물건을 가져오라고 전해 주세요.”
그에 제 마마는 횡설수설하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가씨…… 짐은…….”
목운요는 의아한 듯 큰 두 눈을 깜빡였다.
“혹시 가져온 짐이 너무 많아서 섞여 버렸나요?”
“그게 아니오라…….”
상황을 지켜보던 둘째 부인 척 씨가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노부인의 앞에서 어찌 이렇게도 분명하지 못하게 말하는 것입니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바로 아뢰면 될 일이 아닌가요?”
제 마마는 대부인을 한번 쳐다보곤 곧 머리를 조아렸다.
“부인과 아가씨의 짐은 아직 부두에 있습니다. 사람을 더 보내야 짐을 옮겨 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대부인은 당황한 기색이었지만 이내 다시 온화한 미소를 보였다.
“내 생각이 짧았군요. 두 사람의 짐이 그렇게 많을 줄은 몰랐네요. 제 마마도 참, 일손이 모자라면 사람을 더 부르면 됐을 텐데 말입니다.”
제 마마는 속으로 괴로움을 삼켰다.
“대부인께 아룁니다. 부두에 마흔 명은 더 나와야 모든 짐을 옮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에 둘째 부인 척 씨는 놀란 기색으로 소청과 목운요를 바라봤다.
“대체 짐을 얼마나 가져왔기에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죠?”
목운요는 살며시 머리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어머니 물건은 많지 않아요. 거의 다 제 물건이에요. 보는 물건마다 좋아 보여서 그만…….”
척 씨는 웃음을 터뜨렸다.
“원래 아가씨들은 예쁜 걸 좋아하잖니. 보는 것마다 예쁘게 보일 나이이니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다. 짐이 많으면 그만큼 많은 사람을 보내면 되는 것 아니겠어? 형님, 일손이 모자라면 제 사람들도 몇 명 보낼게요.”
“고맙네. 제 마마, 냉큼 준비하지 않고 뭐 합니까?”
속히 사람을 보내라는 대부인의 명에 제 마마는 속으로 덜덜 떨며 자리를 떠났다. 사실 제 마마가 많은 일손을 스스로 뽑을 권한이 있었다면 구태여 찾아와 밉보일 필요도 없었다.
대부인은 고개를 돌려 노부인 손 씨에게 무릎을 굽히며 예를 차렸다.
“꼼꼼하지 못했던 저의 불찰입니다. 시누와 운요를 어머님과 가까운 곳에 지내게 하려고 조로원(朝露苑)에 거처를 마련해 두었는데, 두 사람의 짐이 많다고 하니 다소 좁을 수도 있겠습니다. 아니면 제월각(霽月閣)을 비우는 건 어떻겠습니까? 제월각은 넓기도 넓지만, 경치도 아름다운 곳이지요.”
자신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지만 거침없이 본인의 잘못을 말하는 대부인은 오히려 당당해 보이기까지 했다.
목운요는 두 눈을 가늘게 떴다. 조로원은 정원이 좁아서 자신이 뭘 하든 노부인 손 씨가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목운요는 그런 불편한 생활은 원하지 않았다.
한편 제월각은 본 저택과 떨어져 있는 데다 주로 손님을 맞이하는 공간이라 경치도 아름다웠다.
노부인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지.”
돌연 문 어귀에서 옅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꾀꼬리처럼 청아한 웃음소리는 듣는 이까지 기분 좋게 만들었다.
아래로 내리깐 목운요의 두 눈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목운요는 소매 속에 넣은 두 손을 꽉 잡아 쥐고, 한기를 띤 얼굴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이내 휘장이 걷히고 소녀 몇 명이 걸어 들어왔다.
가장 앞에 선 소녀는 잘록한 허리와 동그란 어깨, 길고 가느다란 몸매를 지니고 있었다. 단아한 자태로 사뿐사뿐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감미롭고 부드러운 선녀들의 음악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소녀의 얼굴은 몸매보다 더욱 아름다웠다. 동그란 달 같은 얼굴에 피부는 은은한 봄꽃 같았고, 두 눈은 가을 호수처럼 맑았으며, 입술은 노을처럼 고운 붉은색을 머금고 있었다. 심지어 별다른 치장 없이 비녀로 틀어 올리기만 한 까만 머리칼까지 아름다워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소씨 가문의 보배이자 서릉에서 명성이 자자한 소우의였다.
“손녀가 할머님을 뵙습니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께도 인사를 올립니다.”
소우의를 보자 노부인 손 씨의 얼굴에 화색이 피어났다.
“어서 일어나서 할미 곁으로 오렴.”
목운요는 줄곧 소우의만 쳐다보았다. 소우의는 너무 아름다워서 속세에 몸담은 인간 같지 않았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미모여서, 활짝 웃는 그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갖다 바칠 만했다.
노부인의 옆에 선 소우의는 부드럽게 노부인의 어깨를 주물렀다.
“할머니, 오늘따라 기운이 없어 보이세요. 어디 불편하기라도 하세요? 마침 진 태의에게 안마를 배웠으니 이따 안마해 드릴게요.”
소우의의 말을 들은 노부인 손 씨의 안색이 더욱 좋아졌다.
“넌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했지.”
옆에 있던 척 씨가 입을 열었다.
“우의가 워낙 세심하잖습니까? 어머님을 향한 효심은 누구도 따라가지 못하죠. 그나저나 우의 너는 예전부터 고모를 뵙고 싶다고 하더니 공부를 마치고 바로 찾아왔구나. 어서 와서 고모께 인사드리렴.”
소청과 목운요를 본 소우의의 두 눈에 놀람과 기쁨이 가득했다. 소우의는 두 사람의 앞으로 가 예를 올렸다.
“고모를 뵙습니다. 예전부터 얼마나 뵙고 싶었는지 몰라요. 온 가족이 한데 모였으니 오늘은 정말이지 기쁜 날이 아닐 수 없네요.”
소청은 자신을 보고 싶었다는 소우의의 말에 웃음을 보였다.
“우의, 예를 거두렴. 가족이 단란하게 모이는 건 확실히 기쁜 일이지.”
소우의는 소청 옆에 서 있던 목운요를 바라봤다.
“혹시 운요 동생인가요? 난 서릉에서…….”
그 순간, 목운요가 발걸음을 앞으로 내디디며 말했다.
“언니를 뵙습니다. 경릉성에서도 언니의 아름다움에 관한 명성은 익히 들은 바 있어요. 사람들의 말이 실물보다 못하네요. 소문보다 훨씬 더 아름다우세요.”
소우의는 목운요의 솔직담백한 칭찬에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