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가족과의 만남
온 마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가서 하인들을 더 데려오세요.”
제 마마는 제 눈으로 보고도 믿지 못했다. 두 모녀의 짐이 배 두 척으로 운반해야 할 만큼 많다는 말인가?
‘저 안에 대체 뭐가 들었길래?’
그때, 목운요가 그 옆에 있던 금란에게 분부했다.
“금란, 어서 마마를 도와 외할머니께 드릴 선물을 가져와요.”
“네, 소저.”
금란이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육냥, 내가 일전에 따로 보관하라고 했던 상자는 어디 있어?”
이에 육냥이 급히 상자를 가져왔다. 그러다 상자가 다른 짐에 부딪히는 바람에 뚜껑이 열리고 말았다.
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각양각색의 보석과 비녀 장신구들이 조금 흘러나왔다. 놀란 금란이 재빨리 앞으로 달려가 상자를 붙잡았다.
“조심해야죠! 소저께서 노부인께 드리기 위해 어렵게 구하신 건데!”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상자에서 튀어나온 물건들을 보더니 깜짝 놀라 소리쳤다.
“이, 이것들을 은자로 치면 몇만 냥은 될 텐데?”
“무식하긴. 저런 건 돈이 있어도 구하기 힘들어! 소씨 가문에서 잃어버렸다던 저 딸, 신분이 도대체 뭐지? 소문처럼 천박한 시골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그 소문 말인가? 글쎄, 나도 그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목운요는 몹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육냥, 오늘따라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니? 외할머니께 드릴 물건인데!”
육냥은 서둘러 제 잘못을 시인했다.
“죄송합니다, 소저.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그에 소청이 목운요를 막아섰다.
“되었다. 얼른 정리부터 하렴. 서둘러 어머니를 뵈러 가는 게 도리야.”
옆에 선 제 마마가 급히 맞장구를 쳤다.
“네, 일단 저택으로 가시는 것이 급선무일 듯합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청을 부축하며 마차에 올랐다.
그들이 떠나자 그렇잖아도 왁자지껄하던 인파가 더 늘었다. 어떤 이들은 배에서 내리는 상자가 몇 개인지 세어 보고는 놀라 소리쳤다.
“못해도 이백 상자는 되겠는데?”
“이백이십 상자군요. 도대체 뭘 가져왔기에 상자가 저리 많나 몰라요.”
“그리 견문이 좁아서야……. 저 부인과 소저의 진짜 신분이 뭔지 아시오?”
어떤 사람이 의기양양하게 뜸을 들이다, 주위 사람들의 재촉에 겨우 입을 열었다.
“부인에 대해선 모르겠지만, 소저에 대해선 분명 들어 본 바가 있을 거요. 저 소저가 하운방과 불선루의 주인이라오! 경릉성에서 자수 기술을 전수하다가 황상의 포상까지 받은 목 소저지!”
“뭐라고? 그 ‘목 소저’ 말이요?”
“그렇소. 그럼 또 누가 있겠소? 목 소저가 바로 소씨 가문 노부인의 외손녀요. 소씨 가문도 참 복이 많지, 저렇게 능력 있는 외손녀를 두다니 말이야. 사람들이 퍽 부러워하겠어!”
“그러게나 말이에요. 하운방과 불선루가 날마다 내는 이익이 엄청나다면서요?”
“그래서 준비한 선물이 저리 귀한 것이었군.”
“그렇군요.”
그사이에도 소씨 가문 하인들은 계속해서 목운요와 소청의 짐을 날랐다. 큰 상자들이 하나하나 부두에 쌓이니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였다.
* * *
목운요는 마차를 둘러보았다.
마차에는 최고급 비단 휘장과 윤이 나는 옥구슬을 꿴 문발이 걸려 있었다. 한쪽에는 향단 나무로 만든 작은 탁자가 있고, 그 위에는 최고급품 찻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실로 매우 호화로운 마차였다.
목운요의 눈에 엷은 웃음기가 어렸다. 이전에는 이런 대우를 받지 못했다. 당시 탔던 마차는 지극히 평범했고 안에 깔린 방석도 두껍지 않았다.
도로가 고르지 않으니 마차가 몹시 흔들려서 혼이 나갈 정도로 피곤했다. 그저 이를 악물고 참다가 소씨 가문에 도착하자마자 큰 병이 났었다. 이에 사람들은 목운요에게 재수가 옴 붙었다고 여겼다.
그때는 병이 나아지면 생활도 점점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병이 회복되니 오히려 더 힘들어졌다. 하인들이 비꼬는 말도 알아듣지 못하니 얼마나 많은 비웃음을 샀는지 모른다.
한 번은 외할머니의 부름을 받고 인사를 드리러 갔다. 가는 길에 시녀가 노부인을 보면 꼭 큰절을 드리는 것이 예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목운요는 긴장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문에 들어서자마자 노부인을 제대로 보지도 않은 채 무릎부터 꿇고 절을 했다. 거기 있던 사람들 모두가 깔깔거리며 그녀를 조롱했다.
그때부터 노부인은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목운요를 부르지 않았다. 하인들도 목운요를 노비보다 못한 자라고 떠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과거의 일을 하나둘 떠올리던 그때, 포장된 큰길을 구르던 바퀴 소리가 끊겼다. 잠시 기다리니 밖에서 온 마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인, 소저, 도착했습니다.”
먼저 내린 금란과 금교가 양측에 서서 두 모녀가 내리는 것을 도왔다.
소씨 가문의 저택은 북쪽에 자리한 남향집이었다. 대문 양쪽에 위풍당당한 돌사자 두 마리가 서 있어 벌써부터 높은 위세가 느껴졌다.
대문이 열리고 하인이 가마를 들고나왔다. 소청과 목운요가 각각 가마에 오르자, 하인들이 가마를 들고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가마는 서너 번 모퉁이를 돈 후에야 천천히 멈추어 섰다.
가마를 지던 하인이 가마를 내리려 하니 금란과 금교가 서둘러 이를 막았다. 그러고는 가마 앞에서 무릎을 꿇고 절한 후 조용히 말했다.
“소저, 도착했습니다.”
잠시 후, 가마 안에서 목운요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금란과 금교가 하인에게 이제 가마를 내려도 된다고 손짓했다.
제 마마는 그 광경을 보고 숨을 들이마셨다. 옆에서 대기하던 시녀들의 표정도 더욱 공손해졌다. 목운요의 시녀가 예의범절에 이렇게나 해박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저택에서 큰 아가씨를 모시는 시녀들도 이보다는 못할 것 같았다.
이윽고 두 모녀가 내리자 주변 하인들이 일제히 예를 다해 절을 올렸다. 목운요는 그저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제 마마는 서둘러 나아가 길을 안내했다. 긴 회랑을 따라 일각 정도 걸으니 드디어 노부인이 거하는 가옥에 도착했다.
기다리고 있던 시녀가 미소 가득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노부인께서 오래 기다리고 계셨답니다.”
소청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보니 눈빛이 맑고 잔잔한 것이 평온해 보였다.
그 덕에 소청의 불안하던 마음도 가라앉았다. 소청은 목운요의 손을 꼭 잡고 천천히 걸어갔다.
시녀가 안에 대고 아뢰었다.
“노부인, 소 부인과 목 소저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문이 열리자 목운요는 소청의 팔에 약간 힘을 주며 앞으로 갔다.
양측에는 부인과 소저들이 걸상을 놓고 앉아 있었다. 매우 화려한 옷에, 머리엔 진주 비녀가 반짝거렸다. 한 명, 한 명 가히 선녀 같은 자태였다.
그 화려함에 소청은 잠시 얼떨떨했으나, 곧장 정신을 차리고 나아갔다.
“어머니…….”
노부인은 나이가 들었지만 이목구비에서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다. 둘을 마주하고는 마치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우리 아가…….”
단 한마디에 눈물이 떨어졌다. 화려한 옷으로 치장한 여인들이 서둘러 위로를 건넸다.
“노부인, 기쁜 날에 이렇게 슬퍼하시면 몸이 상하십니다. 제 여동생, 소청이 얼마나 난처하고 상심하겠습니까?”
“맞아요. 소청과 운요가 벌써 놀라고 있는 것이 보이시지 않습니까? 이렇게 슬피 우시면 저들의 마음이 더 아플 것입니다.”
그에 노부인은 슬퍼하던 안색을 접었다. 이내 그녀가 소청과 목운요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참 착하기도 하지.”
“어머니, 제가 불효했습니다…….”
소청이 손수건을 쥔 채 절을 올리려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아름다운 두 여인이 소청을 부축했다.
“그리 예의 차리지 마세요. 지금까지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요? 여기에 오기까지 정말 쉽지 않았다는 거 다 알아요.”
소청은 두 사람에게 붙잡혀 더는 무릎을 꿇지 못했다. 하지만 목운요는 그 말을 듣고 곧장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황공하게 입을 열었다.
“어머니께서는 출생을 알고 나서부터 매일같이 외할머니를 위해 무릎 꿇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외할머니를 뵈면 잘 모셔야겠다고 말씀하시곤 했어요. 지금껏 효도를 하지 못했다면서요.”
원래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이 공식적인 예절이었다. 하물며 소청은 오랫동안 외지를 떠돌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절을 하지 않으면 어떤 연유에서였든 교양 없다고 여겨질 것이다. 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풍문이 돌겠는가?
소청을 부축하던 아리따운 두 여인은 순간 얼떨떨해졌다. 소청은 그 틈을 타 다시 노부인을 향해 정중히 절을 올렸다.
“불효한 딸 소청이 어머니를 뵙습니다.”
노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다, 소청을 일으켜 세웠다.
“내 착한 딸, 생각도 깊어라.”
노부인은 소청의 옆에 서 있는 목운요에게 시선을 돌렸다. 목운요를 향한 노부인의 눈빛에는 특별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 네가 운요로구나.”
목운요는 두 손을 가지런히 겹쳐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목운요가 외할머니를 뵙습니다.”
그러자 두 명의 아리따운 여인 중 왼쪽의 여인이 목운요를 일으켜 세웠다. 투명한 피부와 봉황을 닮은 가늘고 긴 눈을 가진 여인은 시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노부인의 둘째 며느리인 척 씨(戚氏)였다.
척 씨는 손을 뻗어 목운요를 유심히 관찰했다.
“형님, 운요 좀 보세요. 하늘이 빚으신 것처럼 빼어난 인물이네요. 게다가 자수에 능하고 다도에도 조예가 깊다지요. 이런 외모와 재주라면 우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겠어요. 역시 어머님의 외손녀답네요.”
오른쪽의 여인도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씨 가문의 모든 집안일을 쥐고 있는 대부인 맹 씨(孟氏)였다.
척 씨와 비교하면 맹 씨는 다소 부드러운 인상이었다. 단정한 몸가짐에서 꼼꼼한 성격이 엿보였다. 심지어 웃는 얼굴조차도 철저하게 계산된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