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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46화 (146/442)

146화 짐이 좀 많아 보이는데요?

그 모습을 본 온 마마가 눈살을 찌푸리며 서둘러 침대 옆으로 가서 유 마마를 가리고 섰다. 그리고 소청과 목운요에게 공손히 예를 올렸다.

“부인과 소저의 선한 마음씨에 소인이 대신 두 분께 감사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소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유 마마는 몸조리 잘하고 계세요. 저는 지금 머리가 너무 아프고 속이 좋지 못하네요…….”

목운요가 급히 와서 소청을 부축했다.

“어머니, 아직 병이 있으시니 어서 돌아가서 쉬세요.”

두 사람이 나가고 방문이 닫히자 유 마마는 분을 참지 못하고 이를 아득바득 갈았다.

“저 두 사람은 정말 상식도 없나?”

“유 마마!”

온 마마가 만면에 아주 날카로운 표정을 짓고 그녀의 말을 잘랐다.

“마음을 평온하게 다스려야죠! 아프신데도 문병해 주신 주인님들께 깊이 감사하지는 못할망정!”

유 마마도 머리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온 마마의 말을 듣고 즉각 자신이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내 유 마마가 황공한 표정을 지었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가 잠시 어떻게 되었나 봅니다. 이런 막말을 하다니……. 부인과 소저께서 문병을 오셔서 사실 정말 감동했습니다.”

비로소 온 마마의 날카로운 눈빛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머리가 맑지 않으면 말을 줄이십시오. 입으로 나온 화가 스스로에게 미치지 않도록요.”

“네, 알겠습니다.”

유 마마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사이 온 마마는 방을 나가 목운요과 소청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았다. 온 마마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 * *

방으로 돌아온 목운요는 영설과 전춘을 불러, 배가 서릉에 도착하면 즉각 약재를 사 오라고 분부했다. 두 시종이 대답하자 목운요는 손짓하여 그들을 물렸다.

소청이 옆에서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말할 수 없이 실의에 찬 표정이었다.

“요아야, 유 마마 같은 일개 하인이 어찌 그리 대담한 짓을 한 걸까?”

목운요가 그녀의 손을 꼭 붙들고 엷은 미소를 지었다.

“가문 부녀자의 일은 대부인이 관장하니, 대부인이 부리는 마마들도 어느 정도 위신이 있어요. 유 마마는 대부인의 최고 심복은 아니지만, 가문에서 총애받지 못하는 서출(庶出)의 딸들은 유 마마를 보면 문안 인사를 드린답니다.”

소청의 두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그 정도란 말이니?”

“재상의 집 앞에 삼품 관리가 오면 그 문을 지키는 하인이 삼품 관리보다 위신이 높다는 말도 있잖아요? 대부인의 수발을 드는 마마들은 보통내기가 아니에요. 게다가 어머니께선 아주 어렸을 적부터 소씨 가문을 떠나 시골에서 자라셨죠. 소씨 가문 사람들은 우리가 자기네 체면을 깎았다고 분개하고 있을 거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왜 굳이 우릴 데려가려 하는 것일까?”

소청은 지금 느끼는 것이 슬픔인지 분개인지 알 수 없었다.

“차라리 경릉성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구나.”

목운요가 살며시 웃었다.

“길을 가다가 실수로 개미 한 마리를 죽였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는 그 개미가 목숨을 잃을 때의 절망이 느껴지시겠어요?”

“그건…… 아마 알아차리지도 못할 테지.”

목운요의 웃는 얼굴에 자조적인 빛이 섞였다.

“맞아요. 소씨 가문에게는 우리가 바로 그 밟힌 개미예요. 우리 입장에는 전혀 관심도 없어요. 아마 우리가 감격의 눈물이라도 흘리며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할걸요?”

소청이 저도 모르게 딸을 끌어안으며 토닥였다.

“요아야, 너무 걱정하지 말렴. 만약 회귀 전에서처럼 그들이 널 죽이려 한다면…… 이 어미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널 지켜 주마.”

목운요는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가슴이 몹시 시큰거렸다.

“어머니, 그렇게 마음 졸이실 필요 없어요. 방금 말씀드린 개미 이야기는 그냥 비유일 뿐이니까요. 지금의 저는 쇠못이에요. 함부로 밟았다간 자기 발에 피만 뚝뚝 흐를 뿐이죠. 저도 어머니를 지켜 드릴 거예요!”

* * *

사실 배에는 다리를 치료할 약재가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다만 양이 충분하진 않았는데 그래도 모레까지 버틸 수는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약을 써도 효험이 좋지 않았다. 부러진 다리의 고통은 날이 갈수록 극심해졌다.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이상한 점이 없었기에 하 의원은 약을 먹고 쉬라는 말만 반복했다. 하 의원도 은근히 귀찮아하는 기색이었다.

온 마마도 몇 번 문안을 왔다. 처음에는 따뜻한 말로 타이르더니 나중에는 소리를 치며 훈계했다.

“유 마마, 하 의원님도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처방받은 약은 모두 최고로 좋은 것입니다.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로 아프지는 않을 거라던데요.”

“엄살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다리가 너무 아픕니다. 누가 칼로 살을 찌르는 것 같아요.”

온 마마는 이불을 젖히고 유 마마의 다리를 살펴보았다. 지금껏 아주 잘 치료해 왔다. 약재를 아끼지도 않았고 부기가 심하지도 않았다.

“잘 치료되고 있으니 더는 소란 피우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부인께 이 사실을 고할 수밖에 없습니다.”

방을 나선 온 마마는 냉소를 금치 못했다. 소청은 이제 소씨 가문 핏줄이었다. 이제 서릉으로 가는 이상, 어떤 차질이라도 생기면 그건 모두 소씨 가문의 체면을 깎는 짓이었다.

* * *

한편 유 마마가 주변에서 어슬렁거리지 않자 목운요와 소청은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둘은 간이 침상에 걸터앉아 창밖을 구경했다.

서릉 안으로 들어서니 육지의 번화한 건물들이 더 잘 보였다. 강남이 정교하다면 서릉은 웅장한 멋이 있었다. 소청은 그 웅장함에 매료되었다.

선박이 연안에 닿자, 소씨 가문 하인이 신속히 마차를 이끌고 부두에 왔다. 비록 소씨 가문이 소청과 목운요의 귀환을 크게 소문내지는 않았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소식이었다. 그에 사람들이 분분히 모여들어 구경하기 시작했다.

배가 조금씩 흔들거리더니 부두의 나무판자에 닿아 쿵 하는 소리를 내고, 이내 안정적으로 완전히 멈추어 섰다.

가장 먼저 시녀들이 서둘러 배에서 내렸다.

온 마마는 소청과 목운요의 곁에 있었다.

“부인, 소저. 배를 완전히 대었습니다. 이제 내리셔도 됩니다.”

소청이 끄덕였다.

“네, 마마. 가자, 요아야.”

소씨 가문에서 마중을 나온 사람은 대부인의 측근인 제 마마(齐嬷嬷)였다. 제 마마는 마음을 헤아리기 힘든 자였다.

소청과 목운요가 내려오는 모습을 본 제 마마의 가슴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다.

경릉성에서의 두 사람의 명성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제 마마는 내심 인정하지 않았더랬다. 하운방과 불선루가 황제의 치하를 받았다지만 그런 영광을 가진 이는 넘치고 넘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두 모녀가 소씨 가문의 핏줄이라곤 하지만 시골 들판에서 자란 사람들이었으니, 그 도량이야 소씨 가문의 하인에도 비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저렇게나 근사한 사람들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옆에 있는 온 마마만 아니었다면 사람을 잘못 찾은 줄 알았을 터였다.

소청은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풍겼다. 걷는 자태가 단정했고, 특히 옅은 미소를 띤 얼굴이 수려했다. 겉모습이 매우 우아하여 꼭 귀부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 옆에 있는 목운요는 더욱 놀랄 만했다. 가냘프지만 아름다운 몸집에 얼굴은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웠다. 자세히 살펴보기도 전에 목운요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온 마마, 저는 일전에 사촌 오라버니를 뵌 적이 있습니다. 그분의 호칭은 이제 알지만, 다른 분들은 뵌 적이 없는데 어떻게 부르면 좋을까요?”

목운요가 제 마마와 같이 서 있는 사람들을 기대에 찬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그중 누가 자신의 친지인지를 찾는 모양이었다.

이에 온 마마는 마음을 졸였다. 마중 나온 사람은 모두 하인이라 목운요가 일부러 호칭을 부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을 어찌 꺼낸단 말인가? 이번에도 소씨 가문에서 친지들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란 말인가?’

만약 목운요 한 명뿐이었다면 하인들만 마중 나와도 괜찮았다. 그런데 소청도 있어서 문제였다. 소청은 노부인의 친딸이기에 항렬이 더 낮은 친지 한 명쯤은 마중 나왔어야 했다.

온 마마에게서 대답이 없자 목운요가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침묵을 지키고 있는 온 마마의 얼굴을 본 목운요의 눈빛이 차츰 어두워졌다.

그때, 제 마마가 서둘러 나와 무릎 꿇으며 절을 올렸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노부인께서는 배가 당도했다는 소식에 벌써부터 흥분하여 앉지도 못하고 계십니다. 둘째 어르신께서 마중 나오시려 했는데 노부인께서 기다릴 참 없이 저희 하인들을 재촉하여 보냈습니다.”

소청의 얼굴에 설렘과 불안함이 엿보였다.

“노부인께서 걱정하고 계실 테니 어서 가시지요.”

“네, 마차를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목운요는 실망감을 감추고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온 마마, 어머니께서 선물을 많이 준비해 놓았습니다. 외할머니께 드릴 선물은 배 뒤편에 있습니다. 좀 이따 외할머니를 뵈면 드릴 수 있게 미리 찾아 놓아 주세요.”

“네, 소저.”

온 마마는 서둘러 제 마마에게 곁눈질했다.

제 마마가 알아듣지 못하고 살짝 뒷걸음질하여 낮은 소리로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인과 소저께서 가져오신 짐이 많습니다. 짐을 옮길 사람을 더 불러오세요.”

제 마마는 아리송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짐이 많으면 얼마나 많다고? 이곳에 서른 명이나 있는데 짐을 다 못 옮긴단 말이야?’

그에 온 마마가 조급해졌다.

“이 사람들로는 부족합니다. 좀 더 불러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주위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제 마마가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화려하게 장식된 이 층 배 두 척이 부두에 들어오고 있었다.

소씨 가문의 것보다 훨씬 크고 화려한 배였다.

주변 사람들이 새로운 배에 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저건 무슨 배지? 무척 정교하고 호화로워!”

“양식을 보니 강남 지방 배 같은데?”

“저 배의 표식을 보니 근래에 꽤 성공한 흥순 선박 배인가 보오. 요즘 서릉으로 운송하는 물건이 적지 않다지.”

배가 천천히 멈추자,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큰 상자를 하나씩 짊어지고 내려 부두 연안에 쌓아 올렸다.

제 마마는 그저 배를 신기하게 쳐다보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설마 저 상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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