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45화 (145/442)

145화 유 마마를 떠보다

* * *

의원은 소씨 가문에서 일하는 평범한 자였다. 나이는 사십쯤 되었고 등이 살짝 굽어 있었다.

의원이 소청과 목운요를 보고 서둘러 문안 인사를 올리며 얼굴 가득 미소를 지었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소인, 하우(何友)라고 합니다.”

목운요는 줄곧 유 마마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유 마마는 하우를 보자 안색이 더욱 흐려졌다. 이내 그녀의 마음에 냉기가 어렸다.

“하 의원, 저희 어머니께서 두통이 있으십니다. 무슨 연고인지 도통 모르겠으니 한번 살펴 주세요.”

“네.”

하우가 곧장 손목을 진맥했다. 얼굴의 미소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배 위에 오래 계시다 보니 몸이 허약해진 모양입니다. 약을 먹고 며칠 동안 몸조리를 하시면 됩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이 되어 그러는데, 만약 제때 몸조리를 못 하시면 병이 나실까요?”

“배 위에 약재가 좀 부족합니다. 몸조리를 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더 큰 병을 얻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아, 유 마마도 몸이 불편하다고 합니다. 한번 봐주시지요.”

“네.”

하우가 유 마마에게 가서 맥을 짚었다. 유 마마도 대동소이(大同小异)했다. 대체로 배 위에 오래 있다 보니 몸이 불편한 모양이었다.

목운요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청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저희 잠깐 육지에 배를 대고 이틀만 쉴까요? 몸조리를 하셔야 하니까요.”

말하는 도중에도 목운요의 시선은 계속 유 마마에게 머물러 있었다. 순간 유 마마에게 화색이 돌자 목운요의 마음이 극도로 싸늘해졌다.

소청이 고개를 저었다.

“되었다. 별일도 아닌데. 아까 의원께서도 말씀하지 않으셨니? 그냥 몸이 좀 불편한 것뿐이야. 게다가 서릉까지 이제 며칠 남지도 않았어.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알겠어요. 그럼 얼른 가서 쉬어요, 어머니.”

유 마마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로 의원과 함께 물러났다. 소청이 아픈데도 육지에 머물지 않고 그냥 갈 줄이야. 이제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목운요는 소청을 부축하여 침상에 눕혔다. 그리고 영설과 시녀들도 모두 내보냈다.

방에 둘만 남자 소청이 서둘러 일어나 앉았다.

“요아야, 유 마마를 의심하는 거니?”

“그녀에게서 이상한 점을 못 느끼셨어요?”

“난 잘 모르겠다. 다만 평소 의기양양하던 그 표정이 오늘따라 보이지 않더구나.”

목운요가 차갑게 웃었다.

“유 마마가 진짜 범인인지는 곧 알게 되겠지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았으니 유 마마는 분명 다른 수를 쓸 것이었다. 그저 기다려 보기만 하면 되었다.

* * *

유 마마는 자신의 방에 돌아와 조금 전 목운요의 표정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목운요는 자신과 마주치자마자 두부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당황한 나머지 목운요가 뭔가 알아차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만약 내가 음식에 뭘 넣었단 것을 알아차렸다면 그리 쉽게 보내 줬겠어?’

유 마마는 자신의 의심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팔진두부에 넣은 약재는 매우 적어 먹더라도 위험하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 시골 사람들이란 아파도 의원에게 가서 돈 쓰는 걸 아까워하지. 그래서 배에서 내리기 싫어했을 거야. 다른 방도를 생각해 봐야겠어.’

* * *

그날 저녁, 유 마마가 몸을 보양할 약을 가져왔다. 소청뿐만 아니라 목운요 것도 함께였다. 그에 목운요는 미간을 찌푸렸다.

“저는 아픈 곳도 없는데 이 약을 왜 주시는 거죠?”

유 마마가 설탕에 절인 과일을 건넸다.

“하 의원님께서 부인을 진맥하실 때 소저의 뺨이 다소 붉은 걸 보시고 몸이 쇠약해서 열이 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약재를 넣고 탕약을 달여 왔습니다. 소씨 가문분들도 자주 드셔서 보양하시곤 했습니다.”

목운요는 약사발을 들고 냄새를 맡더니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여전히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아까 같은 반감은 아니었다.

“정말인가요?”

“당연하지요. 소인이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큰 아가씨도 매일 몸보신을 위해 탕약을 드십니다! 오래 드시니 외모도 꽃처럼 아름다워져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데요.”

“그럼 그분이 드시는 것과 이 약이 같은 건가요?”

“당연히 같죠. 노부인께서는 외손녀인 소저를 친손녀만큼이나 똑같이 아끼신답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배에 몸을 보양할 약재까지 준비해 두셨겠습니까?”

목운요의 눈빛에 순간 웃음이 스쳐 지나갔다.

소우의가 오랜 기간 약을 복용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건 진귀한 최상급 약재만을 아주 세심하게 배합한 것이었다. 환약 한 알에 은자 백 냥은 나갈 만큼 값비쌌다.

하지만 목운요가 받은 탕약은 열을 좀 내릴 만한 약재들을 간단히 끓인 것에 불과했다.

‘감히 이게 소우의가 먹는 것과 똑같은 것이라고 뻔뻔스럽게 큰소리를 쳐?’

목운요는 그리 생각하며 탕약을 벌컥벌컥 마셨다. 다 마시고 나서는 절인 과일을 집어 입속에 넣었다. 그제야 표정이 좀 누그러졌다.

“약 냄새가 너무 독하네요. 시간이 늦었으니 전 이만 자러 가겠습니다. 유 마마도 쉬시지요.”

목운요가 탕약을 다 마시는 것을 본 유 마마의 눈에 통쾌한 빛이 스쳤다.

“네, 소인은 방해하지 않고 물러나겠습니다.”

유 마마가 물러나자 목운요는 재빨리 가슴의 경혈을 꾹 눌러 방금 마신 탕약을 모두 토해 냈다.

그 모습을 본 소청이 급히 뛰어와 목운요를 부축했다.

“요아야?”

그녀는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며 서둘러 소청을 안심시켰다.

“괜찮아요.”

“설마 이 약에도 무슨 문제가 있었니?”

“조금요. 아까 팔진두부에 있던 것과 비슷해요.”

“바보 같긴! 미리 알았으면서 왜 유 마마를 추궁하지 않은 거야?”

소청은 너무 마음이 아팠다. 구토를 해서인지 목운요의 눈가가 촉촉하여, 보기에 몹시 애처로웠다.

“제가 의술을 안다는 사실을 일찍 알리고 싶지 않아요. 이건 제 비장의 무기니까요. 게다가 유 마마가 어떻게 수를 쓰고 있는지 알았으니 좀 더 자세히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쓸모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소청은 여전히 분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널 계속 못살게 굴 텐데?”

목운요는 한쪽에 놓아둔 탕약을 들어 탁자 위 화분에 부었다.

“계속 당하고만 있겠다고는 안 했는데요? 어머니, 걱정 마세요. 제가 좀 속이 좁잖아요.”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밖에서 한바탕 시끄러운 소란이 일었다.

그에 목운요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머지않아 금란이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유 마마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계단에서 미끄러졌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것 같습니다.”

“다리가 부러져?”

소청이 깜짝 놀랐다.

“네. 저도 어떻게 그리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 계단은 별로 높지도 않은데, 거기서 떨어졌다고 다리가 부러질 줄은…….”

소청은 고개를 돌려 목운요를 보았다.

“요아야, 설마……?”

그녀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한 것이라고 인정하는 셈이었다.

사실 아까 유 마마가 가져온 절인 과일을 집으면서 약 가루를 뿌렸다. 먹지 않고 냄새만 맡아도 효과가 있는 약 가루를.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소청이 목운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늘은 일찍 쉬렴. 내일 유 마마에게 한번 가 보자꾸나.”

유 마마가 다친 꼴을 보지 않으면 마음속 원한을 풀긴 힘들 것 같았다.

“네, 그럴게요.”

어머니가 이처럼 분노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던 목운요는 속으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벅찬 감정이 들었다.

‘경릉성에서 지내면서 어머니의 성격이 정말 천지개벽할 정도로 바뀌셨구나. 정말로 다행이야.’

* * *

다음 날 아침, 일찍 식사를 마친 두 모녀는 유 마마의 방으로 향했다.

유 마마는 침상에 누워 끙끙 앓고 있었다. 얼굴엔 식은땀이 가득했고, 한쪽 다리는 심히 부어 있었다. 그 모습이 정말 처참했다.

두 모녀를 보좌하던 온 마마는 유 마마의 모습에 절로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유 마마, 부인과 소저께서 방문하셨습니다.”

유 마마는 침상에 누워 있다가 그 말을 듣곤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아픈 탓인지 표정이 약간 일그러져 있었다.

“부인, 소저. 소인이 있는 곳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일어나기가 불편하여 절을 드릴 방법이 없어 송구합니다.”

그에 목운요가 눈을 깜빡이더니 친절한 표정을 지었다. 한마디면 유 마마의 아픈 곳을 찌를 수 있었다.

“유 마마, 왜 그렇게 조심성이 없으신가요? 다리가 부러져서 너무 아프시겠어요. 지금 배 안에 약재가 완비되어 있지 않으니 다리에 후유증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유 마마는 속에서 천불이 났다. 그러나 감히 성질을 부리지는 못하고 애원하는 얼굴로 말했다.

“부인, 소저. 소인의 다리가 너무 아파 청하건대, 육지에 잠시 배를 대고 약재를 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목적만 달성할 수 있다면 이것도 그리 손해는 아니지.’

이를 듣고 소청은 대답은 하지 않은 채 온 마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온 마마 생각은 어떠한가요?”

“이제 곧 서릉에 도착하니 약재는 그때 사도 무방합니다. 주인이 노비 사정을 맞춰 주는 법이 어딨겠습니까?”

온 마마가 눈을 살짝 내리깔며 공손한 표정을 지었다.

소청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난처한 표정이었다.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지금 육지로 가서 약재를 구하지 않으면 주인인 제가 너무 무정한 게 아닐까요?”

이는 사실 목운요가 이렇게 하라고 권해 준 말이었다. 서릉에서 도리어 모함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였다. 그들의 더러운 마음씨로 볼 때 이건 두 모녀의 명성까지 충분히 더럽힐 수 있는 일이었다.

온 마마는 순간 눈꺼풀이 떨렸다. 이내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유 마마도 응당 이 정도 고통은 감내할 수 있습니다.”

유 마마 때문에 두 모녀가 소씨 가문으로 가는 시간이 더 지체되어서는 안 되었다.

그제야 소청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어쩔 수 없지요. 유 마마, 얼른 쉬십시오. 모레면 서릉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목운요도 어머니를 따라 걱정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유 마마, 걱정 마세요. 배만 대면 바로 약재를 사 드릴 테니까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

계획이 뜻대로 되지 않자 유 마마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그녀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저건 분명 날 보며 고소해하는 표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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