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44화 (144/442)

144화 멍청한 수를 두다

미소 짓는 목운요의 얼굴이 더욱 빛났다.

“주 마마는 예의를 무척 잘 아시는 분 같습니다. 혹시 예전에 어떤 분을 모셨는지요?”

“전엔 대부인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소저를 모시게 되었으니 소저가 제게 가장 중요한 분이십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이며 영설과 전춘을 보았다.

“너희 둘은?”

“저희는 소씨 가문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었으나, 노부인께서 저희를 직접 골라 부인과 소저를 시중들라 하셨습니다.”

“그래, 이제 날 따르게 되었으니 앞으로 잘 부탁하마. 금란, 준비한 걸 가져오세요.”

금란이 재빨리 주머니 세 개를 내보였다.

“함께하게 된 인연으로 드리는 선물이니 부담 없이 받아 주세요.”

“소저, 감사합니다.”

“내 평소 습관 같은 것은 금란과 금교의 말을 들으면 돼요. 상벌은 지금껏 확실하게 처리해 왔으니, 만약 잘못을 한다면 절대 봐주지 않을 거예요.”

“네, 명심하겠습니다.”

이내 온 마마와 시녀들이 방에서 물러났다.

밖으로 나온 그들의 입에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침묵 속에서 유 마마가 가장 먼저 말을 꺼냈다.

“처음엔 목 소저를 만만하게 봤는데, 지금 보니 배짱이 두둑하네요. 나이는 어린데 참 강단이…….”

유 마마가 가볍게 웃었다. 언뜻 비웃는 소리 같기도 했다.

온 마마는 그런 유 마마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요 몇 년간 가문의 일은 모두 대부인께서 맡으셨고, 노부인께서는 거의 관여하지 않으셨지요. 대부인께서 부인과 소저를 위해 비워 둔 방이 어디입니까?”

“조로원(朝露苑)을 비워 두라고 명하셨습니다. 경치가 수려하니 부인과 소저도 좋아하실 겁니다.”

“조로원은 공간이 조금 좁을 텐데, 가져온 물건이 다 들어갈까요?”

그제야 웃고 있던 유 마마의 얼굴이 굳어졌다. 마당 가득 차 있던 상자들을 떠올리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물건 놓을 자리도 없으면 대부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겠지. 분명 우리에게 벌을 주실 거야!’

* * *

유 마마는 문제를 깨닫고 대부인께 소식을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다 목운요를 꼬드기기로 결심했다.

“소저, 풍경이 무척 아름답지 않습니까? 사흘째 배를 타느라 피곤하실 텐데, 뭍에 올라 하룻밤 휴식을 취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목운요는 천천히 고개를 젓고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요 며칠 경릉성 일로 인해 시간이 충분히 지체되었습니다. 날개만 있다면 외할머니 앞으로 바로 날아가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제 안위만 생각해서 휴식을 취하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유 마마는 말문이 턱 막혔다.

옆에 있던 소청도 동의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요아의 말이 맞습니다. 너무 오래 지체했는데, 지금 휴식하고 싶은 마음이 어디 있겠습니까? 밤을 새우더라도 빨리 가야지요.”

유 마마는 어쩔 수 없이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네…….”

그녀는 방을 나서며 속에서 분통이 터지는 것을 느꼈다.

경릉성에 오기 전, 이번 일만 잘 마치면 대부인께 은자 백 냥을 받기로 했다. 아들에게 좋은 집안과의 혼사를 주선받기로도 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아주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시골 사람 두 명을 상대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니까.

한데 이런 상황이 올 줄이야? 대부인께서 준비해 두신 저택에 짐을 둘 곳이 모자란다면 그건 정말로 대부인의 체면이 깎이는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상은 고사하고, 벌이나 받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유 마마는 마음이 조급해져서, 어떻게 해야 육지에 배를 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잠깐이라도 배를 댈 수만 있다면 사람을 시켜 비둘기로 서신을 전할 수 있었다.

그때, 지추가 약을 달이고 난 찌꺼기를 강물에 버리러 가는 모습이 보였다.

유 마마는 순간 눈을 가늘게 뜨고 웃음 지었다. 기분이 한결 홀가분해졌다.

* * *

목운요가 입맛이 없어 음식을 많이 먹지 못하자, 소청은 걱정이 되어 직접 요리를 하기로 했다.

완성된 음식을 들고 방으로 가자, 낮잠을 자던 아이가 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식 냄새에 깼니?”

목운요는 어머니의 음식을 발견하곤 장난스레 미소를 지었다. 어머니의 마음이 놓이길 바라서였다.

“어머니께서 만드신 요리에 군침이 돌아서 깼어요.”

베갯머리에 엎드려 있던 눈여우도 일어났다. 눈여우는 재빨리 목운요의 어깨로 뛰어올라 다정히 머리를 비비며 골골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소청은 그 모습을 보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저 여우가 하는 짓이 너랑 참 닮았구나.”

둘 다 참 애교 부리기를 좋아했다.

“놀리지 마세요. 제가 눈여우보다 훨씬 귀엽거든요? 그리고 제가 더 예쁘다고요.”

“그래. 내가 말을 잘못했네. 너랑 여우랑은 안 닮았지. 왜냐하면 저 여우는 너처럼 뻔뻔하지 않거든.”

“말도 안 돼요! 슬퍼지니까 갑자기 배가 고프네요.”

목운요가 손을 깨끗이 닦고는 식탁에 앉았다. 그녀는 환한 얼굴로 음식 냄새를 맡다가 잠시 미간을 확 찌푸렸다. 그리고 태연하게 물었다.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신 거죠?”

“그래, 네가 요즘 통 입맛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소청은 목운요에게서 이상한 점을 눈치채지 못하고 젓가락을 건넸다.

“따뜻할 때 어서 먹으렴.”

목운요는 반찬을 집어 소청의 그릇에 올렸다.

“어머니도 많이 드세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팔진두부(八珍豆腐, 해물과 버섯 등을 넣고 볶은 두부 요리)를 자신의 앞으로 옮겨 놓았다.

소청은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목운요는 콩 비린내 때문에 두부를 싫어했던 것이다.

‘그건 내가 먹으려고 만든 것인데, 오늘따라 왜 저러지?’

막 이에 대해 물어보려던 찰나, 아이의 차가운 눈빛이 보였다. 소청은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배 위에 팔진두부 재료가 있을 줄이야. 누가 구해 뒀지?”

목운요가 고개를 들어 웃는 얼굴로 영설에게 물었다.

“유 마마께서 두부를 좋아하셔서 자주 드십니다.”

목운요는 젓가락을 가볍게 흔들었다.

“어머, 이런 우연이! 우리 어머니도 두부를 참 좋아하시는데.”

결국 그녀는 식사 내내 제 그릇에 놓인 팔진두부는 한 입도 먹지 않았다.

소청은 그 모습에 점점 마음이 불안해졌다.

다 먹고 사람들이 상을 치우는데, 목운요가 실수로 그릇을 떨어뜨렸다. 땅에 떨어진 음식은 원래 모양을 찾을 수 없었다.

영설과 전춘이 방에서 나가자 그제야 소청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요아야, 혹시 두부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니?”

목운요의 입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만큼은 차가웠다.

“누군가가 많이 조급했나 봐요. 우리가 편안히 있는 꼴을 보기 싫었던 거죠.”

소청의 눈이 점점 휘둥그레졌다. 소청이 애써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팔진두부에 정말 문제가 있었던 거니?”

“마전자(馬錢子) 가루가 들어 있었어요. 아주 소량이라 먹었어도 큰 문제는 없었겠지만요.”

소청은 순간 오싹해졌다.

“만약 먹으면 어떻게 되는 거니?”

“소량을 먹으면 두통, 더부룩함, 메스꺼움이 생겨요. 뱃멀미 증상과 비슷하죠. 많이 먹는다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고요.”

“요아야, 소씨 가문이 벌써 수를 쓰기 시작한 걸까?”

소청은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했다.

목운요는 그런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았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소씨 가문이 이 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제 생각에는 누군가가 잘못된 판단으로 멍청한 수를 둔 것 같네요.”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은 있고?”

“오늘 날씨도 좋은데 같이 밖에 나가 볼까요? 누가 지금 궁둥이를 못 붙이고 불안해하고 있는지 볼 겸요.”

“좋아.”

그녀는 얼굴에 미소를 띤 채 소청을 데리고 밖으로 향했다. 배는 이제 변하(汴河)에 다다라 있었다. 강가의 도시는 매우 번화해서 들쭉날쭉한 건물들이 보였다.

목운요는 소청과 팔짱을 낀 채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 보세요. 저녁노을이 정말 아름다워요.”

강물과 하늘이 같은 색이었다. 수면도 노을빛으로 붉게 물들어 잔물결이 반짝였다. 간혹 새가 낮게 수면을 스쳤다. 그 모습이 마치 물과 불 사이를 선회하는 듯하여 감탄하는 마음이 절로 들었다.

“참으로 멋진 광경이구나.”

목운요는 눈을 굴리다가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유 마마가 다가오고 있었다.

유 마마는 의기양양해 있었다. 소청이 두부를 먹고 속이 안 좋아지면 배 안에 약재가 부족하다는 핑계를 대 육지로 갈 속셈이었다. 게다가 살짝만 손을 쓴 것뿐이니 며칠 몸조리를 하면 어떤 실마리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유 마마, 식사는 하셨습니까?”

“네, 먹었습니다.”

“두부 요리를 좋아하신다고 영설에게 들었습니다. 두부가 있어 저희 어머니께서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순간 차가운 목운요의 눈과 마주하자 유 마마의 가슴이 쿵쾅거렸다.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씩 굳어졌다.

“부인께서도 두부를 좋아하시는 줄은 몰랐습니다. 일찍 알았더라면 소인이 많이 준비했을 텐데요.”

그에 목운요가 시원하게 웃었다.

“그런데 마마의 안색이 안 좋으십니다. 어디 불편하신 데라도 있습니까?”

“배에서 오래 지내는 것이 익숙지 않은가 봅니다.”

“그럼 얼른 들어가 쉬세요. 아, 의원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따가 제가 의원님께 진찰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픈 곳은 전혀 없습니다. 잠깐 눈을 붙이면 괜찮아질 거예요. 소저께서 이리 관심을 가져 주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몸이 안 좋으신데 가볍게 두면 안 됩니다. 마침 어머니께서도 두통이 있으시니 의원을 불러 다 같이 살펴봅시다.”

마침 영설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목운요는 바로 분부를 내렸다.

“영설, 유 마마와 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으시니 얼른 의원님을 불러다오.”

“네, 아가씨.”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