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교여독비-141화 (141/442)

141화 백성들에게 보답하다

* * *

다음 날, 목운요는 이부로 향했다.

주 부인은 그녀가 온 연유를 듣고는 서둘러 하인에게 이 대인을 모셔 오라고 했다.

머지않아 이목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대인을 뵙습니다.”

“목 소저, 예는 거두어 주십시오. 경릉성 백성들에게 어찌 보답해야 할지 의논하기 위해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그녀는 미소를 띤 채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경릉성 백성들을 위해 십만 냥을 쓰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경릉성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쉬움이 큰데, 이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싶습니다.”

“목 소저의 선한 마음씨에 탄복할 따름입니다.”

이목년은 목운요를 칭찬하며, 속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금세 사건으로 이씨 가문은 황상의 질책을 받았다. 부친도 황상 앞에서 각별히 조심하는 중이었으며, 말 한마디로 황상의 노여움을 살까 봐 항상 노심초사했다.

한데 목운요가 경릉성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일이 잘만 되면 자신까지 그 공로를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칭찬이 후하십니다. 사실 제가 생각해 둔 것이 하나 있는데, 듣고 웃으시면 아니 됩니다.”

목운요가 살며시 고개를 숙이며 눈꺼풀을 떨어뜨렸다. 웃는 얼굴이 불안해 보였다.

“소저, 편히 말씀하시지요.”

“그동안 저희 모녀는 다양한 집안의 부인, 규수들과 교류해 왔습니다. 모두 마음씨가 무척 선하시고 저희를 잘 돌보아 주셨지요. 한데 일전에 죽을 나눠 주는 일에 참여하지 못한 것에 유감을 표하시더군요. 해서, 만약 이 대인께서 괜찮으시다면 이 행사에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즉각 머리를 굴려 보곤 말했다.

“많은 사람이 참여할 수 있다면 경릉성의 백성에게도 기쁜 일일 것입니다.”

목운요는 안심이라는 듯 작게 미소 지었다.

“그리 말씀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대인께서 수고해 주신다면 하운방과 불선루는 그대로 따르겠습니다.”

“좋습니다. 제가 나중에 소저의 공로를 빠짐없이 보고하지요.”

화기애애한 가운데 대화가 마무리되고 목운요가 떠났다.

주 부인은 목운요를 배웅한 뒤 안타까운 얼굴을 했다.

“만약 목운요의 신분이 천하지만 않았어도 우리 주씨 가문에 보냈을 텐데. 소저의 지혜와 처세술이라면 우리 가족에게 큰 도움이 됐을 겁니다.”

이목년은 가볍게 웃었다.

“신분이 천하다고 주 가문에 기꺼이 갈 것 같소? 목 소저는 머리가 아주 비상하오.”

주 부인이 눈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부인, 노여워 마시오. 처가댁을 얕보는 게 아닙니다. 목 소저가 절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이지. 왜 그녀가 떠나려는 시점에 경릉성의 백성들에게 보답하려는 것 같소?”

“그건…… 이름도 떨치고, 소씨 가문에 강한 인상을 남기려는 것이 아닌가요?”

“허허.”

이목년은 살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지금 가서 의논할 사람이 있소. 목운요가 불을 붙였으니, 나는 장작 두어 개와 뜨거운 기름 한 바가지라도 더해야겠지.”

* * *

경릉성 곳곳이 매우 분주해졌다. 목운요가 여러 집안과 합심하여 은자를 모으니 총 십오만 냥이 되었다.

이목년은 그 은자를 곡식을 사는 데만 쓰지 않고, 일정 부분은 수로를 고치고 도로를 닦는 등 온갖 선행에 사용했다.

온 경릉성이 활기차게 변해 무한한 활력이 넘치는 듯했다.

이 소식은 사람들의 입을 통해 널리 퍼졌다. 특히 십만 냥을 기부한 목운요의 이야기가 가장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목운요가 일 년 동안 번 돈을 전부 기부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시기하던 이들도 찬탄해 마지않았다.

온 마마와 시녀들은 불선루의 창가에서 소택을 내려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저 아가씨가 정말로 평판을 다룰 줄 아는군요. 덕망에 있어 큰 아가씨께서 오히려 부족할까 걱정입니다.”

온 마마가 고개를 돌려 유 마마를 바라보았다.

“두 분을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비교할 수가 없지요.”

하나는 하늘을 나는 봉황이고, 하나는 땅을 파먹는 꿩이었다. 근본부터가 달랐다.

* * *

대량의 곡식이 경릉성으로 들어오니 주변의 성들도 떠들썩해졌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경릉성 백성을 부러워하는지 몰랐다.

사실 일 년 남짓한 시간 동안 경릉성에서는 천지개벽할 만한 변화들이 많이 일어났다.

경릉성의 여인들은 최고급 자수 기술을 배워 조금만 바느질을 해도 은자를 벌 수 있었고, 하운방과 불선루에 왕래하는 많은 객상들 덕에 경릉성 역시 발전할 수 있었다.

경릉성 백성들은 목운요에 대한 고마운 마음에, 그녀의 집 앞에 물건을 놓고 갔다. 심지어 기부금을 내는 상인도 있었다.

목운요는 이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팻말을 서둘러 써서 걸었으나, 물건들은 점차 쌓여만 갔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물건들을 금수원으로 모아 놓았다. 백성들에게 보답하기로 한 날에 지금 받은 것들도 보태 더 많은 이들이 혜택을 볼 수 있게 할 생각이었다.

백성들이 그 소식을 듣고 더욱 감동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 * *

그렇게 보름의 준비 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신기할 정도로 날씨가 상쾌했다. 경릉성 백성들은 분분히 뛰쳐나와 불선루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목운요는 일찍 일어나 머리를 빗고 세수를 한 후, 옆방으로 건너갔다.

“오늘만 지나면 내일 경릉성을 떠나네요. 긴장되세요?”

“원래는 긴장됐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 되레 기대되는구나. 누가 대체 우리 딸을 괴롭힌 건지 두 눈으로 보고 싶어.”

이전에는 소씨 가문이 무슨 괴물이라도 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소씨 가문 하인과 만나 보니 별 대단한 것도 없었다. 마음속 두려움은 사라지고 회귀 전 그들이 했다는 소행에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을 실제로 보면 실망하실 수도 있어요. 외양만 두고 본다면 하나같이 신선 같지만, 깊은 마음속은 다들 시커멓고 악취가 나니까요.”

소씨 가문을 생각하자 목운요의 눈에 증오의 빛이 가득 차올랐다.

그 모습에 소청은 옥비녀를 꺼내 딸아이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요아는 원체 예쁘니 역시 무얼 해도 잘 어울리는구나.”

목운요의 온몸을 감싸던 어두운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어머니?”

소청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딸은 웃을 때가 가장 예뻐. 누구든 네 얼굴을 한 번만 보면 마음이 환해질 거야. 우리 요아가 얼마나 복수하고 싶을지는 내가 다 안단다. 나는 항상 널 응원하니 그들 때문에 네 성격까지 바꿀 필요는 없어.”

“어머니께서 곁에 계셔서 정말 다행이에요. 어머니가 안 계셨다면 제가 어떻게 변했을까요?”

소청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딸아이의 이런 모습을 보니 무딘 칼로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다.

“요아야, 이 어미는 네가 소씨 가문과 똑같은 괴물이 되길 바라지 않는다.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목운요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전 절대로 그들 같은 괴물로 변하지 않겠어요.”

소청이 따뜻한 미소를 활짝 지었다.

“그래. 오늘 아침은 다 같이 떠들썩하게 즐기자꾸나. 떠날 날이 되니 아쉽구나.”

“이곳이 그리워지면 나중에 꼭 놀러 와요.”

“그래.”

소청은 목운요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 온 마마와 시녀들을 마주쳤다.

“부인과 소저를 뵙습니다. 지금 길거리에 사람이 무척 많습니다. 나가시려거든 주의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목운요는 미소를 머금은 채 온 마마를 훑어보았다.

“기왕 이렇게 된 것, 온 마마께서도 함께 가시지요. 이 기회에 경릉성 사람들의 인정도 경험해 보시고요. 이곳 사람들은 참으로 온화하고 정이 많답니다.”

‘그들은 소씨 가문 사람들처럼 잔혹하고 탐욕스럽지 않거든.’

온 마마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르던 시녀들에게 소저를 따르라고 지시했다.

집에서 나오는 목운요와 소청의 모습에, 사람들은 서둘러 앞으로 나가 예를 올렸다. 많은 이들의 목소리가 뒤섞여서 정확히 들리지 않았지만, 모두가 선의와 감사를 표한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소 부인, 감사합니다! 목 소저, 감사합니다!”

“저희를 지극히 염려해 주시는 두 분의 마음씨에 몹시 감동하였습니다.”

“부인과 소저께선 분명 그 복을 돌려받으실 것입니다. 앞으로 쭉 평안하시고 모든 일이 순탄하시길 빕니다!”

목운요는 입꼬리가 활짝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한데 뭉친 따뜻한 선의에 마음이 절로 훈훈해졌다.

“내일 저희는 경릉성을 떠나 서릉의 소씨 가문으로 갑니다. 하지만 하운방과 불선루는 계속 여기 남아 있을 거예요. 그러니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아가씨, 걱정 마세요. 우리가 있는 한, 어떤 놈도 하운방과 불선루를 건들지 못할 겁니다.”

“맞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그때, 이목년과 주 부인이 사람들을 데리고 나타났다.

“이 대인, 주 부인을 뵙습니다.”

“부인, 소저. 예는 거둬 주십시오.”

절을 사양하는 이목년의 표정이 유달리 온화해 보였다.

“곡식을 나눠 주는 일에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소청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이 대인께서 이리 꼼꼼히 맡아 주셨는데 보완할 부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야 부인과 소저의 선심에 기대어 손을 보탰을 뿐입니다. 두 분이 없었더라면 아무리 백성을 위한 일이라도 여력이 안 됐을 겁니다.”

이목년은 말하던 중에 온 마마를 슬쩍 훑어보았다. 의구심 어린 눈빛이었다.

“그보다 소씨 가문에서 부인과 소저를 데리러 왔다고 들었는데, 친지분들은 어디 계십니까?”

순간 목운요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속으로는 미소가 절로 나왔다.

복숭아를 받으면 자두로 답례를 한다더니, 이목년이 자신을 도와준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감히 이런 말을 입에 담지 못했을 텐데, 역시 이목년은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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