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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여독비-136화 (136/442)

136화 관계를 끊어 내다

“운요야, 이건 그저…….”

하지만 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목운요가 종이를 다시 책 사이에 끼워 넣더니 탁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럼 푹 쉬십시오. 다른 일 없으시면 전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운요야…….”

“왕야, 목 소저라고 불러 주십시오.”

목운요는 마음속의 분노를 억눌렀다. 소씨 가문과의 악연이야말로 그녀의 가장 큰 비밀이자 마음속 원한의 핵심이었다. 그런데 월왕이 그녀와 소씨 가문의 관계를 남몰래 조사하고 있었다니!

이는 두말할 것 없이 마음속 가장 어두운 한 조각을 건드린 것이었다. 그녀는 벽을 단단히 세울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걸 조사한 건 너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지, 나쁜 의도는 없었다.”

그녀는 냉소했다.

“왕야,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제게 비밀이 많은 걸 아셨는데도 죽이지 않기로 하신 겁니까?”

“내가 어찌 널 죽이겠느냐!”

“그럼 전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목운요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 * *

집으로 돌아와도 여전히 숨통이 조여드는 것 같았다. 금란과 금교가 걱정스레 따라왔지만, 무거운 그녀의 표정에 함부로 말을 꺼내진 못했다.

그때, 육냥이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주인님을 뵙습니다.”

그가 한쪽 무릎을 꿇으며 인사를 올렸다.

“일은 잘 처리되었습니다. 주인님께서 제명에게 보내신 서신을 이원일이 보았습니다. 과연, 이를 악물더군요. 제명은 무사합니다.”

목운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원일이 미색을 밝히긴 하지만 머리는 있는 자야. 일의 경중을 알지. 그래도 당분간 상황이 진정될 때까진 제명을 숨겨 놓는 게 좋을 거야.”

“그럼 제명을 대신할 습보헌 주인을 새로 물색해야겠군요.”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 급할 것 없어. 지금 사람들은 습보헌을 대황자의 사업으로 알고 있으니까. 소금 사건이 완전히 진정되면 그때 다시 이야기하자. 만약…….”

“주인님?”

육냥의 부름에도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침묵했다.

“혹시 몸이 어디 편찮으십니까?”

목운요는 그제야 고개를 들고 육냥을 보았다.

“아니야. 육냥, 내가 널 산 후로 넌 그동안 내게 충성을 다했지. 계산해 보면 애당초 은혜는 다 갚은 셈이니…….”

육냥은 황급히 그녀의 말을 잘랐다.

“저를 내쫓을 생각이십니까?”

예전에도 그녀가 비슷한 말을 해서 오랫동안 마음이 불안했던 육냥이었다. 그런데 오늘 또 같은 이야기를 꺼내니 불현듯 안 좋은 예감이 들었다.

목운요는 그런 그를 보며 자조적으로 웃었다.

“고작 은자 여섯 냥에 샀지만, 왠지 모르게 넌 믿음이 갔어.”

육냥의 눈빛이 약간 밝아졌다. 그는 그녀를 향해 예를 다해 고개를 숙였다.

“전 앞으로도 절대 주인님을 배신하지 않을 겁니다.”

목운요는 한참 침묵한 뒤에야 입을 다시 열었다.

“우리가 강남에 온 지도 꽤 오래됐지. 여러 일이 터져 이젠 더 이상 피할 수도 없는 지경이 되었어. 그러니 미리 방비를 좀 해야겠다.”

“분부만 하십시오.”

“사야의 신분은 너도 알 거야. 이전엔 그 신분을 이용하려 했는데,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것 같아. 그분 주위에 가벼운 바람만 스쳐도 내겐 광풍이 불어닥치는 것과 다름없는데. 그러니 이제 그분과의 관계를 철저히 끊어 낼 생각이야.”

그 말에 육냥이 고개를 들었다.

“월왕께서도 그리 원하실까요?”

목운요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결단의 눈빛이 반짝였다.

“내게 방법이 있어.”

“알겠습니다.”

* * *

요 며칠 목운요는 금수원에 찾아오지 않고 있었다.

장 의원이 대신 붕대를 갈고 나가자, 차가운 낯의 월왕이 진 총관을 쳐다보았다.

“운요에게서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는가?”

“소인이 불선루 일로 도움을 청했으나, 사람을 보내 몸이 안 좋다는 말만 전할 뿐이었습니다.”

진 총관이 걱정스러운 물음을 건넸다.

“왕야, 며칠 전만 해도 목 소저와 사이가 좋지 않으셨습니까? 어찌 갑자기 마찰이 생긴 겁니까? 이번엔 좀 큰일 같은데요.”

월왕의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운요와 소씨 가문과의 관계를 조사하고 있는 것이 들통났다. 그러니 그리 화가 난 거겠지.”

“그런…….”

대화를 나누던 도중, 우항이 나타나 보고를 올렸다.

“왕야, 목 소저께서 뵙기를 청하십니다.”

“목 소저께서 오셨다고?”

진 총관은 매우 기뻐했다.

“왕야, 목 소저의 마음이 풀렸나 봅니다. 잘 이야기하셔서 더 이상 남은 응어리가 없도록 하십시오.”

월왕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그는 옷을 단정히 매만진 후 우항에게 목운요를 들이라고 말했다.

목운요는 서재에 들어온 뒤 월왕을 향해 공손한 인사를 올렸다.

“월왕 전하를 뵙습니다.”

그녀가 부르는 칭호를 듣자 그의 마음이 무거워졌다.

“예의는 그만하면 됐다.”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책들을 탁상 위에 놓고는, 송구스러운 듯 진 총관을 보았다.

“왕야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잠시 자리를 피해 주시겠습니까?”

진 총관은 바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은 그럼 두 분께 내어 드릴 차를 준비해 오겠습니다.”

책 더미 위로 월왕의 시선이 향했다. 어쩐지 장부처럼 보였다.

목운요는 장부를 월왕 쪽으로 밀었다.

“최근 몇 달간의 하운방 장부입니다. 왕야께 드릴 수익도 전부 계산해 놓았습니다. 이건 은표입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계산하지 않아도…….”

“당연히 계산은 정확히 해야지요.”

그녀는 겉으로는 살며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분명 이는 거리를 두려는 의도였다.

“하운방의 수익이 불선루와 비교할 수 없게 적으니 타산을 맞추고 싶습니다.”

월왕의 눈빛, 그리고 심중이 점점 깊게 침전했다.

“무슨 타산?”

“왕야께서는 하운방 수익의 삼 할과, 불선루 수익의 육 할을 가져가시기로 하셨죠. 사실 따지고 보면 제가 큰 도움도 되지 못했으니, 더 이상 후안무치하게 이리 많은 이윤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왕야께 돌아갈 하운방 수익을 제가 가질 불선루 수익과 바꾸고 싶습니다.”

월왕은 미간을 찡그렸다. 눈빛이 살벌하게 차가워져 마치 눈발이 휘날리는 것 같았다.

“나를 완전히 끊어 내기 위해 온 것이냐?”

목운요는 다소 긴장되기 시작했으나, 더욱 밝게 웃어 보였다.

“제가 너무 많은 이윤을 가져가니 왕야께서 손해를 보실까 봐 그러는 것뿐입니다.”

“내가 동의하지 않는다면?”

“불선루 수익을 전부 가져가시면 수중에 많은 돈을 쌓아 두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개 하운방의 수익을 쥐고 계실 필요 있겠습니까? 하운방이 황상의 현판을 걸긴 했지만 그저 옷 파는 가게일 뿐입니다. 대단히 번창한 가게가 아니기에 버는 돈에는 한계가 있지요. 만약 왕야께서 여전히 손해라고 생각하신다면 습보헌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심장이 밑바닥까지 가라앉는 것 같았다.

“그래도 싫다면?”

“조건이 있다면 얼마든지 제시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목운요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웃음을 머금은 아름다운 얼굴이 마치 꿀 사탕처럼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하지만 월왕은 끝없는 쓴맛만 느껴질 뿐이었다.

“운요야, 널 조사한 것 때문인 거냐?”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찌 갑자기 협력을 끊겠다는 것이냐.”

“저와 어머니는 경릉성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월왕이 놀라서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떠난다고?”

“왕야께서 조사하신 내용은 사실입니다. 제 어머니는 소씨 가문이 오래전에 잃어버린 자식이죠. 소씨 집안에서 조만간 저희의 행방을 찾아 데리러 올 겁니다.”

“소씨 가문으로 간다 해도 우리가 협력하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아.”

“제가 소문원을 외삼촌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저는 소씨 집안의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됩니다. 만약 저와 계속 협력하시면 위험에 처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하운방과 불선루를 분리해야 서로에게 좋아요.”

“네 말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난 동의하지 않아.”

그의 대답에 목운요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해가 안 된다는 눈빛이었다.

“왜죠? 왕야께선 손해를 입어도 좋단 말씀이십니까? 그럼 제가 저번에 소금 상인을 속여 얻은 천만 냥의 반을 드리겠습니다. 어떠하십니까?”

“너에게 난, 탐욕밖에 모르는 놈이더냐?”

그녀는 차갑게 웃었다.

“그럼 왕야께선 무슨 생각이신지요?”

월왕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장 입을 열었다.

“운요야, 네 부친께서 돌아가셨을 때를 조사해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혹시 소씨 가문이 네 부친을 죽인 것이냐?”

목운요는 눈을 크게 떴다. 그녀도 아버지의 죽음이 의문스럽다고 생각했지만, 능력에 한계가 있으니 구체적으로 조사할 순 없었다. 한데 놀랍게도 월왕이 수상한 점을 찾아낸 것이다.

“감히 확신할 수 없습니다.”

“내가 사람을 시켜 계속 조사해 보겠다.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네게 제일 먼저 알려 주마.”

목운요는 갑자기 정신이 번뜩 들었다.

“왕야, 지금 가지고 계신 재력으로도 세력을 넓히기에 충분하시잖습니까. 그런데도 저를 붙잡고 놓지 않으시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월왕은 잠시 침묵하더니 부드러워진 말투로 말했다.

“일단 돌아가거라. 이 장부도 자세히 살펴보겠다.”

“……네, 그럼 먼저 물러나겠습니다.”

목운요가 떠나자 진 총관이 들어왔다.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왕야, 목 소저의 안색을 보았습니다. 아직 풀지 못하신 겁니까?”

월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 총관, 어서 사람을 시켜 운요 부친의 사인을 알아내게. 그리고 소청 부인의 양부모를 심문할 방법을 생각해 봐. 그들은 뭔가 알고 있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왕야.”

진 총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등 뒤의 상처가 거의 다 나았으니 월서로 갈 거야.”

진 총관의 표정이 멍해졌다.

“아직 상처가……!”

“괜찮아. 소청 부인에게 인사를 드린 후 바로 떠날 테니, 내가 떠난 뒤에 이 장부를 운요에게 전해 주게.”

앞으로 어떻게 그녀에게 다가갈지 잘 생각해 봐야겠다. 다시 만날 땐 어떤 의심도 없이 자신을 믿게 해야 했다.

“그럼 전 선물을 준비하러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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